인생 41

술, 그리고 인생

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선가, 누군가가 나에게 술 마신 걸 마치 전쟁에서 겪은 전투이냥 이야기한다며 지적했다. 하긴 그랬다. 그래, 지금도 그렇지. 하지만 간이 좋지 않다는 건 가족을 제외한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보니, 1주일에 한 두 번으로 술자리를 줄여도 힘든 경우가 많아졌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것이라, 마음이, 인생이, 사랑이 답답할 때면 술이 생각난다. 아무 말 없이 술잔만 봐라봐도 좋다. 이쁘다. 영롱하다. 한 때 사랑했던 여인의 입술같다. 앞으로 사랑하게 될 그녀의 볼같다. 어쩌면 지금은 읽지 않는, 과거의 흔적, 상처, 씁쓸한 향기같은 추억,처럼 밀려든다. 어떤 술은. 세월은 참 빨리 흐르고, 술맛은 예전만 못하다. 마음따라 술맛도 변하고 사랑따라 술잔도 바뀐다.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으..

misc. 2014.09. 05.

창원에 내려가기 위해 옷 몇 가지를 챙겨 집을 나왔다. 아내와 아이는 이미 창원에 내려갔고, 오늘 저녁 모임을 나간 뒤 심야 우등 버스를 탈 계획이다. 어젠 이런 저런 업무들로 인해 밤 늦게 사무실에 나올 수 있었고 벌써 내 나이도 사십대 중반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 사는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누군가 정해준 곳으로 갔으며, 심지어 대학 전공마저도 그랬다. 나처럼 고등학교 3년 내내 모의 고사에서 한 곳만 지원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그 대학 그 전공을 다 마치고 한참 후에야 내가 받은 대학 교육의 형편없음을 욕했지만).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 당하며 산다. 내 의지대로 의사결정 내리기 어려운 ..

몇 장의 사진, 그리고 지나간 청춘

요즘 페북과 인스타그램에 빠져 블로그짓에 뜸하다.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인스타그램을 한다면, 내 아이디는 yongsup이다. 요즘은 먹스타그램으로 빠지긴 했지만. 퇴근길, 나이가 들었다. 조금 있으면 사십 중반이 될 텐데, 스스로 아직 청춘인 줄 안다. 밤 11시, 술 생각이 나는 건, 오늘 때문일까, 아니면 내일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들 때문일까. 나이가 들었다. 그러나 질문들은 줄지 않고 믿었던 답들마저 사라진다. 그렇게 나이를 먹었다. 참 맛없는 치킨 옆의 맥주가 안타까웠다. 참 맛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대박을 꿈꾸긴 않았지만, 적어도 여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서울, 한국을 사로잡은 21세 자본주의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엉망으로 된 전 회사..

어떤 술은 참 오래된 벗.

어떤 술은 참 오래된 벗.에라주리즈 에스테이트 까베르네쇼비뇽. 이 가격대(1만원 ~ 2만원 사이)에서 가장 탁월한 밸런스를 보여준다고 할까. 가벼운 듯 하면서도 까쇼 특유의 향이 물씬 풍기는 와인. 이 와인을 즐겨 마신 지도 벌써 10년. 그 사이는 나는 이 와인을 참 많은 사람들과 마셨구나. 아직 만나는 사람도 있고 연락이 끊어진 이도 있고. ... 흐린 하늘의 춘천을, 사용하지도 않을 우산을 챙겨들고 갔다 돌아온 토요일 저녁, ... 한없이 슬픈 OST를 들으며 ... 참 오랜만에 혼자 술을 마신다. 오마르 카이얌도 이랬을까. 인생은 뭔지 모르지만, 술 맛은 알겠다고...

'젊음'에 대해 게을러지는 순간, 우리는

벨앤세바스티안 신보를 사지 않은 지도 ... 몇 년이 지났다. '젊음'에 대해 게을러지는 순간, 우리는 늙어간다. 락을 들은 지도, 몸을 흔든지도, 맥주병을 들고 술집 안을 이리저리 배회한 지도 참 오래 되었다. 시를 외워 사람들에게 읊어준 지도, 새로 나온 소설에 대해 지독한 악평을 한 지도, "그래, 세상은 원래 엉망이었어"라며 소리지르곤 세상과 싸울 각오를 다진 지는 더 오래 되었다. 이 노래 들은 지도 참 오래 되었구나. 포티쉐드다! 중간에 베스 기븐스가 담배 피우며 노래 부르는 장면은 압권!

어느 화요일 선릉역 인근

무관심한 듯 시선을 거두는 행인 A, B, C, ... 무수한 알파벳들은 실은 다른 알파벳들, 다른 숫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고 어떻게 평가할까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지고 봐주고 평가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였다. 커피 위로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선릉역 인근 빌딩숲에서는 그 수를 세기 어려운 모기들이 가을 깊숙한 곳까지 진을 치고 있었다. 화요일이 왔고, 수요일이 올 것이고, 목요일, 금요일, ... 2013년이 지날 테지만, 우리에게 인생의 해답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안 그녀는 연애를 포기했고 그 남자는 한국을 떠났다. A는 그림을 포기했고 B는 사업을 시작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세속적 가치, 뉴튼이 공표했고 데카르트가 뒷받침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