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22

크랙업 캐피털리즘, 퀸 슬로보디언

크랙업 캐피털리즘 - 시장급진주의자가 꿈꾸는 민주주의 없는 세계퀸 슬로보디언(지음), 김승우(옮김), 아르테   2024년 읽은 최고의 책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흥미롭게 탐구하며 앞으로의 다소 어두운 전망을 쏟아낸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이야기할 때, 나는 민주주의 자체가 가지고 있는 허약함 같은 것이라 여겼다. 가령 대중의 지혜가 아닌 대중의 무능력함이 표현될 때라든가(대표적으로 지난 대선 때 2번을 찍어 한국을 퇴보시켰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계엄을 선포해 나라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이나 국민의 힘이라는 정당명을 내란의 힘이나 국민의 짐으로 변경해도 모자랄 지경인, 어리석한 행동을 아직도 보여주는 정당을 보면서 민주주의란 유지하기 어려운 정치 시스템이라는 생각..

인공지능(AI)와 일자리

몇 주 전 리멤버*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게시물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MZ세대로 보이는 어떤 이가 고참 직원들(관리자들)은 AI를 통해 업무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나이 든 이들이 AI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며, 그리고 AI로 찾으면 바로 나오는 걸 자신에게 시킨다고 했다. 세상은 변하고 AI가 대세로 여겨지지만, 과연 그것이 옳은 방향일까.  오늘 페북에서 누군가가 레딧에서 올라온 글을 Chat GPT로 번역해 올렸더라. 내용은 미국의 지역 방송국 직원인데, 1명을 제외하고 스물여명이 일자리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하던 일을 AI 기반의 솔루션 회사가 스물여명이 하던 일을 AI 기반 솔루션이 다 처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일자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실은..

노예의 길,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노예의 길 The Road to Serfdom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지음), 김이석(옮김), 자유기업원   작년 말부터 재개한 독서모임에서 20세기 초반을 중심으로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 에릭 홉스봄의 >를 읽은 후 케인즈 평전을 읽었고 케인즈와 대척점이라고 알려진 하이에크의 >까지 온 것이다. 대척점은 무슨 대척점. 솔직히 형편없는 책이다. 경제학자가 쓴 정치학 책이라면 차라리 앨버트 O. 허시먼의 책들이 훨씬 뛰어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이 책을 선정해서 읽고 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20세기 초반 좌우대립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하이에크는 파시즘과 사회주의를 동일선상에서 파악하고 있으며, 사회주의가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

자본의 무의식, 박현옥

자본의 무의식 박현옥(지음), 김택균(옮김), 천년의상상 23년 늦은 봄부터 읽기 시작해 가을이 되어서야 다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펼쳐 보이는 박현옥 요크대학교 교수의 접근이 일반적인가, 설득력은 있는가는 뒤로 미뤄두더라도, 상당히 파격적이고 놀라우며, 어쩌면 서글픈 현실 직시같다고 할까. 그만큼 자본주의가 강력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에드워드 챈슬러는 (위즈덤하우스)를 통해 인류 최초의 문명에서부터 시작된 금리(화폐의 시간 가치)의 흔적을 이야기한다. 화폐와 금리로 이루어지는 경제 시스템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와 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 금리에 기반한 화폐 경제에 대한 반복된 거부, 혹은 비판적 접근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엘런 호지슨 브라운은 (이재황 옮김, 이른아침, 200..

자본가의 탄생, 그레그 스타인메츠

자본가의 탄생 The Life and Times of Jacob Fugger 그레그 스타인메츠(지음), 노승영(옮김), 부키 푸거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서문에 나온 아래 문단만 읽어도 된다. 책은 이 요약문의 자세한 설명이며 역사적 근거와 시대적 배경을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카를이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푸거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푸거는 카를이 황제가 될 수 있도록 거액의 뇌물을 빌려주었을 뿐 아니라 카를의 할아버지에게 자금을 투자해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정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중앙 무대로 진출할 수 있게 도왔다. 푸거는 다른 분야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그는 고리대금업 금지 조치를 해제하도록 교황을 설득해 상업을 중세의 미몽에서 흔들어 깨웠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자본의 무의식

남북한 밖에 거주하는 한인 인구는 중국인, 유태인, 이태리인, 인도인 다음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디아스포라 집단을 이루며 본국의 인구 대비 비율로는 이스라엘 다음으로 두번째이다. - 박현옥, , 185쪽(김택균 옮김, 천년의 상상) 캐나다 요크대학교 박현옥 교수의 책 을 읽으며 한국인 디아스포라, 그 기원과 역사, 의 숨겨진 의미, 만주 이주의 역사나 배상의 정치학 등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영정조 르네상스에서 바로 세도정치 체제의 전환, 개화개방과 쇄국을 오가던 구한말 위기, 한일 합방의 이후의 일제 식민지가 이어지듯, 어쩌면 이번 정권이 그러한 몰락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함께 하면서 말이다. 거의 육백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의 중심 주제는 자본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통일에 대한 연..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지음), 안규남(옮김), 동녘, 2013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뒤늦게 읽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2013년에 번역되었으니, 이 무렵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그 동안 나는 이 문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언제나 쫓기듯 살아왔다. 어쩌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럴 것이다. 저 거대한 외부 세계가 어떻게 변해가는가에 이해가 점차 옅어지고, 관심 마저도 둔해져 하루하루, 혹은 한주한주 벌어지는 회사 일에 치여 멍청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저 세계에서의 사소한 변화가 우리 개개인이 살아가는 이 작고 소중한 일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이 책이 씌여..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정지돈(지음), 문학동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가끔 내가 작가의 길로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조금 끔찍해진다. 분명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가 되었다면 하는 생각을 요즘에도 잠시 하곤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국내 작가가 쓴 책보다 외국 작가의 번역된 책을 읽게 된다. 어찌 되었건 이미 검증을 받은 이들일 가능성이 높고, 이런 이유로 한국어 번역까지 이루어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된 책마저도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 국내 작가에 대해선 더욱 더 인색해진다. 작년 겨울 교보문고 강남점에 갔다가 이 책을 우연히 보았다. 교보문고의 문학 담당 MD의 추..

플래시보이스, 마이클 루이스

플래시 보이스 Flash Boys - A Wall Street Revolt 마이클 루이스Michael Lewis(지음), 이제용(옮김), 곽수종(감수), 비즈니스북스 “제 평생에 불쾌한 사람들을 1년 동안 그렇게 많이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빚으로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더군요. 그게 제게는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41쪽) 이 책은 초단타매매(HFT)와 둘러싼 월스트리트 거대 금융 회사와 그들이 이용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것과 싸우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마 이 책을 읽으며 증권거래소의 옛날 풍경을 떠올리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 증권사의 오프라인 지점으로 나가거나 전화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거래가 프로그래밍된 시스템 위에서 움직인다. 초단타매매..

새로운 충견들, 세르주 알리미

새로운 충견들 Les nouveaux chiens de garde 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지음), 김영모(옮김), 동문선, 2005년(1997년) “우리는 철학자의 가면에 인정된 존경이 결과적으로 은행가의 권력에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영원히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폴 니장, 중에서 ‘1932년 폴 니장은 ‘자기 시대의 부도덕한 시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참여를 위대한 개념 더미 아래로 숨기기를 좋아하는 철학자들을 고발하기 위해 이라는 에세이를 썼다(11쪽).’ 약 60여년 후인 1997년 세르주 알리미는 권력과 자본주의를 위한 매끈한 이미지를 제공하며 공모를 일삼는 기자들, 저널리스트들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리고 2020년 기자라는 정식 명칭 대신 ‘기레기’라는 혐오스러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