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11

2050 거주불능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2050 거주불능지구 The Uninhabitable Earth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지음), 김재경(옮김), 추수밭 번역되자마자 구입했지만, 선뜻 손이 가는 책은 아니었다. 다소 반복되는 내용들과 기후 위기나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증명하는 정보나 통계, 자료 등을 인용하는 것으로 책이 구성된 탓에, 형식 상으로만 보자면 상당히 지루하다. 하지만 반대로 이 책에 실린 내용은 꽤 충격적이고 끔찍하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다음, 우리는 왜 이렇게 태평한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이들이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기후변화는 티머스 모턴Timothy Morton이 ‘초과물hyperobject’이라고 부르는 개념, 즉 인터넷처럼 너무 거대하고 복잡해서 ..

힐링별밤수목원캠핑장, 가평

캠핑을 다니기 시작한 지도 몇 년이 되었다. 장비도 제법 늘었고 봄, 가을이면 매달 가고 있다.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한 두 번 나가기 시작하니, 이젠 계속 나가고 싶어진다. 운전을 시작한 것도 한 계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요즘 업무나 인간 관계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결국 도시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역시 자연 속에서 해소된다는 걸까(아니면 그렇게 느껴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걸까). 특히 텐트를 열고 나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그 상쾌함이란! 첫 캠핑을 간 게 2020년 가을이니, 벌써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많은 캠핑장을 다녔고 각 캠핑장마다 서로 다른 환경과 분위기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동안 갔던 캠핑장에 대해서 기록 차원에서 한 번 정리해본다. 아마 여기 오는..

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지음), 민승남(옮김), 마음산책 메리 올리버의 시를 읽는다. 번역도 나쁘지 않지만, 원문이 더 좋다. 시어는 확실히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정확하게 옮겨지지 않는다. 하나의 단어가 가지는 세계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언어를 익혀야 된다. 그 언어 속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메리 올리버는 확실히 생태주의적이다. 자연과 하나가 된다. 아름다운 장소들로의 여행에 대하여 나는 아직도 날마다 신을 찾아다니고 아직도 도처에서 신을 발견하지, 먼지 속에서, 꽃밭에서, 물론 바다에서, 저 멀리 누워있는 섬에서, 얼음의 대륙들, 모래의 나라들, 모두가 저마다의 청조물들과 신을 갖고 있지, 어떤 이름으로든 주머니에 아직 백 년쯤 넣고서 배..

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Entropy 제레미 리프킨(지음), 이창희(옮김), 세종연구원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제 1법칙),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 2법칙) - 50쪽 그리고 고전 경제학 이론대로 하다가는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165쪽 대학 때부터 이 책을 알고 있었으나, 이제서야 완독했다. 너무 뒤늦은 독서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그 시절엔 어떤 이유에선지 이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과학책도 아니고 철학책도 아니며 그렇다고 경제서적도 아니다. 그러나 물리학 법칙에서 시작해 고전물리학을 비난하고 근대 기계론자들-베이컨, 데카르트, 로크, 애덤 스미스 등-을 엄청 공격한다. 뉴턴 물리학을 부정하며(‘뉴턴 물리학은 운동하는 죽은 물질을 순수한 양으로 다..

차 유리 현상 windshield phenomenon

과학자들은 '차 유리 현상'을 언급했다. 사람들이 몇 년 또는 몇십 년 전에는 운전을 하다가 날벌레 사체를 치워야 했는데 요즘 그럴 일이 없어지면서 비로소 곤충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을 일컫는 용어이다. 예전에 자동차 여행자들은 몇 시간마다 차를 세워서 차장을 더럽힌 메뚜기, 파리, 총채벌레, 각다귀 따위의 수많은 곤충을 닦아 내야 했다. 시골의 농경지나 숲 근처를 지날 때면 곤충의 날개, 다리, 더듬이 등으로 차창은 점점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어지러운 악보처럼 변했다.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그랬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차창이 안 더럽혀진다. 우리의 컴퓨터 스크린이 동물로 가득 차고 있는 동안, 우리와 자연 사이의 오래된 산업적 경계선인 차 유리창에서는 그것들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시선들, 캐서린 제이미

시선들: 자연과 나눈 대화 Sightlines 캐서린 제이미(Kathleen Jamie), 장호연(옮김), 에이도스 스코틀랜드 시인 캐서린 제이미의 수필집이다. 책 뒷표지에 실린 여러 찬사들과 이 책이 받은 여러 상들로 인해 많은 기대를 했지만, 그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어쩌면 번역된 탓일지도 모른다. 역자의 번역이 아니라 캐서린 제이미의 언어가 한글로 번역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역자는 이미 에드워드 사이드의 를 탁월하게 옮긴 바 있으니, 도리어 믿을 만한 번역가이다. 이 수필집은 캐서린 제이미의 두 번째 모음집이며, 영어권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 영어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연사(自然史)와 연관된 경험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들은 ..

고래가 가는 곳, 리베카 긱스

고래가 가는 곳 Fathoms: The World in the Whale 리베카 긱스Rebecca Giggs (지음), 배동근(옮김), 바다출판사 고래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 고래의 삶, 일생 같은 게 궁금했다. 그리고 그 일부를 알게 되긴 했지만, 책 대부분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고통받는 고래의 모습과 환경 오염 이야기뿐이었다. 20세기 후반 후기구조주의라든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는 우리를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오만함, 바로크적 근대주의에 대한 반발,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이끌었다면, 최근의 인문학적 논의는 철학적인 견지를 넘어서 실제 우리 문명, 문화, 일상생활의 문제, 가령 환경 오염이나 기후 위기, 경제적 불평등이나 정치적 갈등으로 우리를 유도한다. 그리고 이 책 또한 고..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 리움

OLAFUR ELIASSON THE PARLIAMENT OF POSSIBILITIES LEEUM, 2016.9.28 - 2017.2.26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 리움미술관 "I like to believe that the core element of my work lies in the experience of it" 올라퍼 엘리아슨은 다양하고 실험적인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자연에서 영감받은 듯한, 빛을 반사하고 색조로 물결치는 유리, 그리고 인공적인 장치들을 통한 자연 현상들의 재현들로 갤러리, 혹은 미술관 안에서 자연을 느낀다. 2017년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올라퍼 엘리아슨의 전시는 그 해 가장 성공적인 전시였으며, 관람객들에게는 보기 드문 감동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계..

자연을 탐하다 - 이재효 展, 성곡미술관

자연을 탐(探)하다이재효 1991-2012 성곡미술관, 2012.3.30 - 5. 27 "작업 모티브가 그러하듯 대부분의 작업은 자연에서 구한 재료를 사용한다. 나무와 나뭇가지, 떨어진 이파리, 크고 작은 돌, 풀 등이 그것이다. 못이나 볼트, 철제와이어와 철근, 용접술 등도 일부 개입한다." - 전시 설명 중에서 한참 지난 전시 소개를 이제서야 올린다. 전시가 일상의 뒤로 밀려나가고 있지만, 가끔 만나는 좋은 작품은 언제나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재효. 그는 자연 속에 손을 넣어 인위적인 세계를 구성해내었다. 자연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아름다운 방해를 보여주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를 지나, 사람의 손이 닿은 자연. 작가가 선보이는 자연은 붙이고 깎고 문지르고 구부린 자연이었다. 그..

오징어뼈, 에우제니오 몬탈레

출근길에 시집 한 권을 챙겨 나섰다. 지하철 안에서 시집을 읽는 건 너무 낯설어서, 꺼내지도 못했다. 이는 사무실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시집을 읽기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로만 했다. 어쩌면 모든 시는 위기의식으로 만들어지듯, 모든 시 읽기는 현대적 공간에선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시를 읽는 나는 물신적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21세기 현대적 공간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 같았다. 한 때 내 모든 것이었던 시는 이제 시 읽기조차도 어색해진 상황이 되었으니, … 그런 내가 들고 나온 시집은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오징어뼈’였다. 이탈리아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그의 시는 번득이는 슬픈 유머와 깊은 통찰, 그리고 나와 너, 자연을 아우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는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