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90

슬픈 노란색

짙은 갈색의 원두커피의 깊고 거친 맛이 입 안 가득했다. 때이른 더위에 사무실 에어콘은 긴 소음을 내며 운전하고, 5월말 어느 오후는 나른하기만 했다. 하지만 나른한 몸과 마음은 남쪽 마을의 어느 새 이름을 딴 바위로 향했다. 일상의 바쁜 일들이 끝나면, 부산, 김해, 진해, 광주, 해남을 거쳐가는 여행이나 떠나야 겠다. 그 때쯤 되면 세상은 조용해져 있겠지. 아마 그 때쯤 되면, 오늘 일은 조금은 잊혀져 있을 것이고 정부와 언론들은 연신 '북핵'과 '경제'만을 외쳐되고 있겠지. 아마 알튀세르의 말처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의해 '호명'당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주류라고 믿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비주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비주류임을 자각하고 있는 비주류의 정치적 ..

관성과 시간

나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형성된 것은 언제부터 일까? 가령 예를 들자면, 술버릇이라든가, 말 하는 속도라든가, ... ... 실은 이것도 일종의 관성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최근에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관성 이상의 어떤 힘이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고... 특히 인생에 있어서 이러한 힘이나 에너지들은 종종 사랑의 실패, 오랜 인연의 결렬, 사소한 실수로 인한 감당하기 힘든 시련, 혹은 우연에 의한 비극 등으로 인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온 관성 속에서 어떤 변화를 시도하지만, 아주 소극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고, 변화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으며, 번번히 관성에 이끌려 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볼 때, 감당하기 어..

위기의 경제, 유종일

위기의 경제 - 유종일 지음/생각의나무 위기의 경제 - 금융위기와 한국경제 유종일(지음), 생각의 나무, 2008 얼마 전 일어났던 용산의 불행한 사건이 나에게는 마치 앞으로 닥칠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의 서막처럼 보여졌다. 전제 군주가 나라를 다스렸던 조선 시대에도 아무런 권력도 없이 그저 가난하기만 백성들의 말을 귀담아 듣기 위해 노력했다.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김철 옮김, 이숲, 2008)을 보면, '조선 정부는 많은 잘못을 저지르긴 했으나 그래도 그때까지 말할 자유를 막은 적은 거의 없었다'라고 언급하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보수적인 신분 제도에,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조선 시대에도, 백성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고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참조:http://..

리네케 딕스트라 Rineke Dijkstra

리네케 딕스트라. 1959년 네덜란드 Sittard에서 출생한 사진 작가. Evgenya, Induction-Centre Tel Hashomer, Israel, March 6, 2002 Evgenya, North Court Base Pikud Tzafon, Israel, December 9, 2002 삶은 늘 변화하고 우리도 변한다. 성격이 변하기도 하고 외모도 변하고 사는 것도 바뀌고 심지어는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이들마저 있다. 성형 수술을 하여 얼굴 뜯어 고치고 이민을 가, 모든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이들마저. ... ... 하지만 변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모더니티의 특징 중의 하나는 '변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존재(Being)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

박물관의 탄생, 전진성

전진성(지음), 박물관의 탄생, 살림, 2004. 초판 알튀세르가 강압적 국가 기구(Repressive State Apparatus)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Ideological State Apparatuses)를 이야기했을 때, 그는 우리의 삶 전체가 정치적인 기구들에 의해 둘러 쌓여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 전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알튀세르에게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정치적인 것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가족, 학교, 미디어 등을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로, 어쩌면 군대, 경찰 제도보다도 더 위험한 기구들임을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은 분명 알튀세르의 기여라고 해야 할 것이다('아미앵에서의 주장'(솔출판사, 현재 절판)에서 여기에 대한 알..

마키아벨리

퀜틴 스키너(지음), 신현승(옮김), , 시공사, 2001 니콜로 마키아벨리(지음), 강정인(옮김), , 까치, 1994(1판), 2000(9쇄) 최근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해서 공부를 하면서 르네상스에 대한 찬사가 19세기의 유산임을 알았다. 그간 공부를 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그 정도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인가에 대해 매우 많은 의구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19세기의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편견일 수도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게 된 셈이다. 이런 문예 부흥의 시기에 니콜로 마키아벨리 같은 인물은 다분히 이해하기 힘들고 받아들여지기도, 높게 평가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는 공공연하게 '비열한 권모술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

이데올로기의 시대, F.M.왓킨스

이데올로기의 시대 (The Age of Ideology - Political Thought 1750 To The Present) F.M.왓킨스(Watkins) 지음 이홍구 옮김 을유문화사, 1982년 초판 (* 요약 정리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꽤나 유용한 책이었다. 그러나 현재 절반 정도만 정리해두고 난 다음 시간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스스로에게 자극이 되기 위해 정리된 절반이라도 웹사이트에 올린다. 요즘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 듯한데, 이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려면 모더니즘을 확실하게, 체계적으로 이해하듯이 탈 이데올로기를 알려면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0. 최근에 읽은 R.P.Appelbaum의 도 그러했지만, 이 책 Wat..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장집 지음, 후마니타스 주로 읽는 책이 문학, 철학, 예술 중심이라, 이 책은 무척 생소한 종류다. 가끔 읽는 비즈니스 실용서들도 있지만 주로 맥킨지나 부즈앨런해밀턴에서 나오는 리포트들이 많다. 어차피 비즈니스야, 실제 기업의 적용 사례가 중요한 것이니, 원론적인 책 두 세권 읽고 난 다음부터는 case study가 핵심이다. 하지만 정치 서적은 생소하다. 그만큼 정치는 꼴도 보기 싫은 종류의 것이고 술자리에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싸움의 발단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일독을 권한다. 꼴 보기 싫다고 해서 투표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나라를 떠나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계획도 세우지 않은 바에는 이 책을 읽어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

정치와 지식인

되도록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면 어느 것이 옳다고 쉽게 판단내릴 능력도, 판단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되, 충분히, 그리고 사려깊게 비판적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비판적인 태도가 냉소적인 태도로 흘러가면 안 된다. "미국의 기만적 논리를 충직한 앵무새처럼 복창하는 지식인들이 버젓이 행세하는 사회를 미국이 새삼 존중할 리 없다." 한국일보 4일자, 어느 칼럼에 실린 문장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집에서 조선, 중앙, 동아일보를 받아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조선일보는. 나는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회의적이고 비판적일 때, 지식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질 수 있을 것이다. 보머Bau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