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16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메를로 퐁티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음, 김화자 옮김, 책세상 1. 1년 전의 메모를 꺼내 읽는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두 세 번 읽어야 할 책이었으나, 한 번 읽었고 읽은 것을 정리하다가 그만 두었다. 결국 그 정리는 포기하고 읽은 지 1년 만에 간단하게 읽은 바를 적어본다. 메를로 퐁티는 프랑스의 현대철학자로, 현상학에 있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다. 특히 그의 예술론은 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 영향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아래는 그 메모의 일부분이다. 내가 쓴 것보다 인용한 것이 많다. 원래는 더 많았다. 퐁티의 글이 짧고 압축된 것이라, 어설픈 리뷰도, 상세한 설명도 어려웠다. 2. 우리가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

'도전'과 '침묵'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국내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과격한 방식의 프랑스 소설가. 20세기 후반 문학 비평의 일대 혁신을 몰고 온 지를 주도했던 인물. 이라는 소설로 여자를 긴 시간에 걸쳐 까발리기도 한 그는 정신분석학자이자 기호학자이며 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은 국내에 여러 권 소개되었으나, 워낙 대중적이지 않고 식견있는 문학 애호가들에게조차 인기를 끌지 못한 채 곧바로 사장되었다. 그의 데뷔작은 80년대 초반에 나온 범한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 실려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제 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내가 1997년에 그러했듯이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헌책방에서 쥐를 잡듯이 뒤져야 한다. 그냥 쥐가 아닌 황금으로 도배했다는..

침묵에의 지향

잠자리에 일찍 들었지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늘 그렇듯이.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가라 앉고 까닭 없이 끝 간 데 모를 슬픔으로 가득 찰 때면,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거나 글을 읽거나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악기 하나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만, 지방 중소 도시에서 자란 터라 학원도 많지 않았고 여유도 되지 못했다. 그 흔한 기타 하나를 사놓긴 했지만, 몇 곡 연습하다 그만 두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 기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버린 적이 없는데.) 우울할 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지난 연말부터 무너진 마음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쫓기듯 살아온 걸까. 아니면 게을러져서. 그것도 아니라면, 판도라의 상자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인터넷 서점에..

침묵

"내가 죽으면 나를 알고 있었던 이 대상들은 더이상 나를 증오하지 않게 되겠지. 나의 내부에 있는 내 생명이 꺼져버릴 때, 내게 주어졌던 이 통일성을 내가 마침내 흩어버리게 될 때, 소용돌이는 중심을 바꿀 것이며 세계는 그 자체의 존재 방식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긍정과 부정의 대결, 소란, 빠른 움직임, 압박들이 이제는 더이상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시선의 차디차고 불타는 흐름이 멈추게 될 때, 긍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던 저 숨은 목소리가 말하기를 그치게 될 때, 흉물스럽고 고통스러운 이 모든 소란이 잠잠해질 때, 세계는 간단하게 이 상처를 되아무릴 것이며, 부드럽고 한가한 세상의 층을 넓혀갈 것이다. 더이상 과거의 잠재적 나를 초월하여 가기 위한 무슨 상처자국도 추억도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고통의 침묵

오래 전부터 안으로부터 말라버린 갈색 프라스틱 화분에 갇힌 채, 몇 해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견뎌온, 이름 모를 화초가 죽었다. 이번 겨울, 내 바쁜 일상은 내 방을 거처로 삼은 그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해내고 말았다. 그가 죽어가며 내뱉었을 고통이 눈 앞에 선하다. 하지만 고통의 침묵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법. 꼭 사랑의 침묵처럼. 이제 세상은 침묵을 귀담아 듣지도, 눈여겨 보지도 않는 곳.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나 그녀의 사랑스런 볼이나,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슬픈 그림자.

토요일 오전의 허무한 <자살>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가 하고 묻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주위의, 많은 이들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만나기로 예정되어있던 몇 명은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 무척 재미있다. 하지만 너무 끔찍해서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르 끌레지오의 이 생각난다. "내가 죽으면 나를 알고 있었던 이 대상들은 더이상 나를 증오하지 않게 되겠지. 나의 내부에 있는 내 생명이 꺼져버릴 때, 내게 주어졌던 이 통일성을 내가 마침내 흩어버리게 될 때 소용돌이는 그 중심을 바꿀 것이고 세계는 그 원래의 존재 방식으로 되돌아 가겠지." 어제 집에 있었고 오늘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드디어 흔들리는 공간 속으로 되돌아왔다. 끔찍하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