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33

태평양을 막는 제방, 마르그리트 뒤라스

태평양을 막는 제방 Un barrage contre le Pacifique 마르그리트 뒤라스(지음), 윤진(옮김), 민음사 이십 대 때 자주 읽었던 소설가들, 파드릭 모디아노, 마르그리트 뒤라스, 르 클레지오, ... 압도적으로 프랑스 문학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많이 읽었던 건 아니고 한 권만 읽어도 그 분위기에 취해 한참을 허우적 되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는 냉정을 유지해야 하지만, 독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때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읽지 않은 작품들이 더 많고, 읽었던 소설마저 이젠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읽었던 소설까지 다시 읽어야할 시기인가. 이 소설이 프랑스 문단에 준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프랑스(제국)의 식민지에 건너간 프랑스인 가족의 밑바닥 삶을 적나라하게 보..

조르주 상드의 편지, 조르주 상드

조르주 상드의 편지 Correspondance 조르주 상드George Sand(지음), 이재희(옮김), 지만직고전선집 아름다운 계절이 오면 우리를 만나러 오세요. 우리 모두 기뻐할 거예요. 우리는 당신을 존경하는 만큼 또 사랑하기도 하니까요. - 이반 투르게네프에게, 1876년 2월 19일 (209쪽) 어쩌면 어떤 감미로움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뜬금없고 철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내 존재를 소진시킨 그 기쁨들과, 숨이 막힐 듯이 가쁘게 뛰던 그 심장 박동소리를 어떤 마음의 동요나 회환이 없이 회상해 봅니다. 그것이 행복이었을까요? 무엇보다 황홀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불현듯 깨어났을 때, 분명 하늘의 소리이기는 했지만 뭔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여 아들의 침대로 부랴부랴 달려갔을 때, 그것이 행복이었을까요? 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년 8월호

르몽드 디블로마티크, 2021년 8월호 Le Monde Diplomatique 창간호부터 약 2년 가까이 매월 사서 읽다가 그만 두었다. 의외로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른 나라의 지엽적인 부분까지 다루고 있어, 차라리 다른 책이 낫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또한 종이 종류나 두께(살짝 두꺼워 제대로 접히지 않는다), 그리고 사이즈도 애매해서 서가에 보관하기도 쉽지 않았다(반으로 접어 세우면 서가에 들어가지 않는 칸이 더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잡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돈 주고 사서 읽을 만한 거의 유일한 잡지에 가까워서, 종종 사서 읽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다른 책을 들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이번에, 마틴 스콜세지의 헌사, “펠리니와 함께 시네마..

에릭 사티 Erik Satie

에릭 사티(Erik Satie)의 '짐노페디Gymnopédies'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에릭 사티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가드 멜리낭(Agathe Melinand, 툴루즈국립극장 공동극장장)은 2016년 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에릭 사티(1866~1925)에 대해 묘사하려니 복잡한 심정이 된다. 그의 성품에 대해 말하려니 조심스럽다. 그는 반항적이었고 농담을 즐겼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등을 돌렸고, 거처인 아르쾨유의 오두막에 처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를 되살리는 것은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다. 벨벳 정장차림의 젊은 혁명가와, 공증인 차림을 한 사티 중 누구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니면 언제나 걸어서 교외 생제르맹의 노아유 마을을 가끔 방문하던 사티? 아니면 아르..

새로운 충견들, 세르주 알리미

새로운 충견들 Les nouveaux chiens de garde 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지음), 김영모(옮김), 동문선, 2005년(1997년) “우리는 철학자의 가면에 인정된 존경이 결과적으로 은행가의 권력에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영원히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폴 니장, 중에서 ‘1932년 폴 니장은 ‘자기 시대의 부도덕한 시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참여를 위대한 개념 더미 아래로 숨기기를 좋아하는 철학자들을 고발하기 위해 이라는 에세이를 썼다(11쪽).’ 약 60여년 후인 1997년 세르주 알리미는 권력과 자본주의를 위한 매끈한 이미지를 제공하며 공모를 일삼는 기자들, 저널리스트들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리고 2020년 기자라는 정식 명칭 대신 ‘기레기’라는 혐오스러운 ..

자유 또는 사랑!, 로베르 데스노스

자유 또는 사랑! 로베르 데스노스Robert Desnos(지음), 이주환(옮김), 읻다, 2016 미끈한 뱀의 움직임을 흉내 내면서 사랑이 우리 수중에 들어올 때, 우리는 절망하여, 이어질 것도 생각 않고 다음날들을 남겨두었네 멍청하게도, 성당 앞자리에서 훌쩍거리는 교구 재산관리인처럼 아, 픽션이여, 위안을 주는 네 몸을 꼭 껴안을 만한 제 남성적 정력을 의심하며, 역겨움 느껴가며, 편집증적으로, 확신도 없이, 우리는 녹색 마법 물약을 동물적인 행복감에 젖어들 때까지 들이켰네 지나고 보면 슬픔이란 더욱 좋은 강장제 나무에 피는 접시꽃보다도, 따스한 키니네보다도 우리 모두는 벌거벗은 채, 각자의 플라톤적 지옥에 이르렀다네 기묘한 호랑이에게 살해당한 심장까지를 드러낸 채 괴혈병을 이겨내고, 루이 금화를 씹어..

파리는 날마다 축제, 헤밍웨이

파리는 날마다 축제 A Moveable Feast어니스트 헤밍웨이(지음), 주순애(옮김), 이숲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너무 유명한 나머지, 시간이 지날수록 소홀히 대하게 되는 소설가가 아닐까. 너무 이른 나이 -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 에 , , 를 읽게 되고, 성숙하지 못한 정신으로 조각난 이해만을 가진 채, 헤밍웨이와 그의 작품들은 나이가 듬에 따라 잊혀져 간다. 대체로 고전이라고 알려진 것들 대부분은 고등학교나 대학 시절 잠시 우리 곁을 머물다가 사라진다. 소설이든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현대 영미 문학사에서도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길게 언급되지 않는다. 그만큼 뛰어난 작가들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전후 문학의 특징이 아닐까. 전쟁(의 ..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라로슈푸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라로슈푸코(지음), 강주헌(옮김), 나무생각 원제는 『잠언과 성찰』(Reflexions ou sentences et maximes morales, 1665)이다. 니체가 매우 존경하였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 라로슈푸코(Francois de La Rochefoucauld, 1613 ~ 1680)의 잠언집을 읽었다. 17세기 작가의 문장들은 쉽게 읽힌다. 몇 개의 문장들은 흥미로웠다. 적당히 염세적이고 시니컬했다. 생각하는 것보다 팬이 많아서 어느 일본인 작가는 평전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도 했다. 몇 개의 문장들을 옮긴다. - 우리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 - 철학은 과거의 불행과 미래의 불행을 그럴듯한 이유로 극복하라고 설..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장-폴 뒤부아(Jean-Paul Dubois) 지음, 김민정 옮김, 밝은세상, 2006년 "공사판에서 일하는 작자들, 죄다 미치광이들이라오. 조심해야 해요. 진짜 미치광이들이니까. 40년째 공사판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지금도 그 작자들하곤 어울릴 맘이 나질 않아요. 개중에서도 제일 심한 미치광이들이 바로 수도배관공들이라오. 난 아예 계약도 하지 않아요. 그 작자들하고 같은 시간대에 작업을 해야 한다면."- 176쪽 한편으론 답답하고 한편으론 흥미롭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고 주인공 타네씨는 참 운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읽는 소설이다. 등기우편으로 날아온 삼촌의 유산인 오래된 저택을 상속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웅장하고 근사한 저택을 상속받은 타네씨. 그러나 그가 기억하던 저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