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3

70년대 후반 일본

얼마전 읽은 어느 기사에서 요즘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1970년대 후반, 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세대들에 대한 질투와 원망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아마 자신들의 부모 세대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지금도 위 이미지과도 같은 느낌을 일본에게 받곤 하는 나에겐,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해석되는 일본과 실제 살아가는 이들이 느끼는 일본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저 이미지가 내 시선에 잡힌 이유는 단순한다. 마치 신기루같다고 할까. 상당히 작위적인 풍의 사진이라서 연출된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나는 그것이 거품 시대 일본이 가진 이미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일본은 역사를 잊고 과거를 잊고 현재를 살려고 노력했던 건 아닐까 하고. 그런데 위 사진의 출처를 검색하다가 더 기묘한 상황에 놓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 김근태 의원은 어느 전시장에서 보았다. 다소 왜소해 보이는 체격에 부드러운 인상은 나에겐 놀라움이었다. 저런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인내와 신념이 숨겨져 있었던 걸까 하는... 하지만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전세계에서 유래없는 경제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의 유산을 단지 몇 년만에 수십 년 후퇴하는 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이 때 그는 너무 일찍 가셨다.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남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출처 : '민주화의 대부' 김근태, 역사 속으로 지다 - 오마이뉴스

위험한 상견례

위험한 상견례 - 김진영 지금도 이럴까? 하긴 지금은 수도권-비수도권, 그리고 지역마다 지역 이기주의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는 한때 슬프고 비극적이었으나, 이젠 떠올릴 수 있는 추억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갈등을 해석하는 걸까. 영화는 유쾌하다. 작고 사소한 소재들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마치 즐거운 순정 만화 같다고 할까.또한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이까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로 포지셔닝되었고, 성공한 듯 보인다. 그 뿐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를 연결시키기 위한 장치들로만 모든 것들은 이용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재미있지만, 그렇기에 씁쓸하기도 한 영화다. 그 두 지역의 갈등을 경험한 이들에게 있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