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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명견만리 -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

KBS <명견만리> 제작팀(지음), 인플루엔셜, 2016 




한 경제연구소에 우리나라 2000대 기업의 성장률을 분석했는데, 이들 기업이 올린 총매출액은 2000년 815조원에서 2010년 1711조원으로, 10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날만큼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일자리는 얼마나 늘었을까? 156만명에서 161만명으로, 겨우 5만명 늘었을 뿐이다. 임금 역시 해마다 증가하는 생산성에 비해 얼마 오르지 않아 임금과 생산성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110쪽)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책은 금방 읽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용을 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알면 행해야 하지만, 국가의 정책 수립과 실행은 쉽지 않다. 


심지어 지금 드러나는 문제들 대부분은 십수년 이상 누적된 것들의 결과다. 그리고 그 십수년 동안 누군가는 이득과 혜택을 누려왔으며, 지금도 누리고 있을 것이니, 대부분의 이들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좋은 것들이니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유치원 관련 법이 통과되지 않은 것도 여기에 있고, 최저임금과 관련해 거의 모든 언론에게 공격 해대는 것도 여기에 있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제일 밑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노동 값어치를 매기는 것에 대해 왜 이렇게 인색한 것일까! 심지어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위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 그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제일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의 임금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하청구조의 맨 밑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는 바, '낙수효과' 따윈 없다. 100명의 한국 사회에서 단 1명만이 30대 대기업 종사자이지만, 한국의 정책은 이 1명이 근무하는 대기업 위주로 설계되고 실행된다(혹은 그렇게 보인다. 심지어 노조도 그렇게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 옵션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중 한 가지가 최저임금을 올려 버리는 것이라면? 


하지만 언론에선 잘못된 산업 구조에 대한 언급 없이 자영업자들만 물고 늘어진다. 실은 한국의 자영업은 경제 규모에 비해 너무 많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언론인이라면 최저임금을 묻기 전에 산업 구조에 대해 먼저 묻고 자영업을 묻기 전에 우리는 왜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있는가에 대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걸 묻고 답하기에 1)이미 기자들이 기레기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2)설령 묻는다고 하더라도 기사 한 꼭지로 되지도 않을 뿐더러, 3)심도있게 진행하면 반-기업정서로 흘러가 광고가 떨어져나갈지도 모를 일이니,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내가 언론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일지도.... 하지만 결국 연합뉴스에서 OECD 주요국 자영업자 비율을 인용하는구나. ㅡㅡ.).




건설경기에 쏟아부은 그 1조엔을 청년과 교육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 일본의 지방 정부 연권이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건설 경기 부양보다 무려 30퍼센트나 높은 투자 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한다. 돈을 다 쓰고 난 다음에 나온 뒤늦은 후회였다. (73쪽)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도 아니다. 소셜 미디어에선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하여 문재인 정부 때의 여러 거시 경제 지표를 비교해가며 차라리 지금이 그 때보단 낫다고 이야기하지만, 절대로 신문이나 방송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긴 나온다고 해서 이미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너무 심하게 나서 아무리 대기업이 잘 나가더라도 서민이 느끼는 경기 체감과 아무런 연관이 없으며, 심지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니, 거시 경제 지표는 이미 우리의 경기 체감과는 무관하다. 


즉 우리의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경제는 계속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경제 시스템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선택으로 인해 다 잃어버린 상태다. 너무 많은 것을 이번 정부에서 기대하지 말자. 최소한의 기반만 마련해도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수십년 이상 자유한국당 류의 수구 보수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최소 십년 이상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일이기에.


경제가 어려우니, 이번 정부에서도 여러 가지 경기 부양책을 고민한다. 그리고 가장 파급 효과가 큰 건설 투자를 고민할 것이다. 솔직히 3기 신도시 계획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즉 부동산 안정화 대책으로 나온 것이 반대로 너무 손쉬운 경기 부양책으로 기능할 것이다. 꽤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경기 부양에도 단기 정책이 있고 장기 정책이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명박 정부 때 4대강이며 자원외교로 다 써버린 공적 자금으로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그냥 투자했다면 지금 경제 상황은 훨씬 좋아졌을 것이고 부동산 가격도 훨씬 안정화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이런 걸 몰라서 안 했을까? 그 정도로 한국의 공무원들은 그정도로 바보들이 아니다. 아마 그 돈으로 청년 투자나 신혼부부를 위한 지원 정책을 내어놓았다면 난리났을 것이다. 여기저기 비난하고 반대하고 퍼퓰리즘이라고 공격했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할 필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자원외교가 더 그럴싸하다(이 점에선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서 길게 언급된 부분들 중 하나가 북한과 관련되어 있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 때 확실하게 개선된 것이 있다면 북한과의 관계 회복일 것이다. 그 정도로 중요하지만, 그만큼 해결하기도 어려운 문제였다. 이미 북한은 중국 - 러시아 접경 지대의 다양한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다. 이미 나진항은 중국, 러시아에 빌려준 상태다. 나선-훈춘-블라디보스톡은 앞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소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출처: Zum학습백과 http://study.zum.com/book/12217


출처: http://changzhu.tistory.com/151




핀란드는 '실패의 날(Day for Failure)'이 있을 정도로 실패의 가치를 아는 사회다. 매년 10월 13일, 핀란드에서는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타인의 실패를 축하해준다. 모든 성공 뒤에는 수많은 실패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제정된 날이다. (86쪽) 


핀란드의 '실패의 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에선 크게 언급되지 않았으나,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들 중 하나가 실패에 대해서 관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령 비만의 문제는 개인의 탓이 아니라 시스템의 탓이지만,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린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성공의 이득과 혜택은 소수가 독점하고 성공의 수배, 수백배 이상 많을 실패의 고통과 책임은 개인에게, 하청 기업과 노동자에게, 비정규직에게, 사회적 약자에게도 돌려버린다. (뭐, 이 책에서 시스템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이 나간 후, 방송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였다.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이 책을 읽은 시간보다 이 리뷰를 쓰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이런 이야기를 할 일도 별로 없다. 술자리도 드물어졌고 일에 치여 산 지도 꽤 되었으니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은 꽤 유용할 것이니, 도서관에서라도 빌려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책 말고 '새로운 사회', '미래의 기회'라는 부제가 붙은 두 권이 더 있다. 나머지 두 권도 읽고 이런 식으로 리뷰를 올릴 예정이다. 




명견만리 :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 - 8점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인플루엔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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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의 삶 Vie des Formes 

앙리 포시용 Henri Focillon (지음), 강영주(옮김), 학고재, 2001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 




책은 책을 따라간다.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의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문학과지성사, 1993)을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책이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이었다. 프랭크 커모드는 앙리 포시용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종말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그 때,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외국 서적을 구하기 쉽지 않았고, 더구나 앙리 포시용을 읽기는 커녕, 앙리 포시용을 아는 이조차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술작품은 시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면서도 영원에 속해있다. 미술작품은 특별하고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성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작품은 이 다양한 의미에서 군림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역사와 인간과 세계 그 자체를 예증하는 데 이바지하지만, 인간의 창조자요 세상의 창조자이며, 역사 속의 다른 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질서를 확립한다. (12쪽) 


앙리 포시용의 명성은 미술사학 뿐만 아니라 그의 유려한 문장에서도 나온다. 종종 그의 문체로 인해 그의 미술사학이 묻힌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이니. 그래서 나는 십수년 전 월간 <<현대문학>>에 실린 김화영 교수의 번역을 꼼꼼히 읽었다. 1999년 경에 이 책의 초반 일부가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실렸으나, 몇 번 연재 이후 나오지 않았다. 아마 그 때쯤 이 번역서가 마무리되고 있었던 시점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미술작품은 유일무이한 것을 지향하는 하나의 시도이며, 하나의 전체, 하나의 절대로 입증되는 동시에 복합적인 관계들로 이루어진 체계에 속한다. 미술작품은 독립적인 활동에서 나오며 탁월하고 자유로운 몽상을 표현하지만, 또한 여러 가지 문명의 에너지가 그 속에 수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컨대 (아주 분명히 대립되는 용어들을 잠정적으로 존중한다면) 미술작품은 물질이자 정신이고, 형식이자 내용이다.(12쪽)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조는 책 전반을 가득 메운다. 그러면서 그것에 대한 논의를 놀랍고 우아한 통찰로, 실제 작품과 작가를 예로 들면서 전개시킨다. 


왜냐하면 미술작품은 무엇보다도 시각을 위하여 고안된 것이고 공간은 시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공간은 평범한 활동의 공간, 전략가의 공간, 관광객의 공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물질이자 어떤 움직임인 기법으로 처리된 공간이다. 미술작품은 공간의 척도이자 형태(forme)이다. (13쪽) 


1장 <형태의 세계>에서는 미술작품의 형태에 대한 개론적 성격의 글이라면, 2장 <공간 속의 형태>부터는 실제 형태가 어떤 삶, 어떤 변천을 겪는가를 상세히 기술한다. 


공간은 미술작품의 거처이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공간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술작품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공간을 다루며 규정하며 자신이 필요한 대로 공간을 창조하기도 한다. 생명이 움직이고 있는 공간은 그것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주어진 여건이지만, 미술의 공간은 가변적인 재료이다. 알베르티 원근법의 지배를 받게 된 이래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가 상당히 힘들게 된 것같다. (42쪽) 


하지만 포시용은 원근법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가면서 원근법 속에서 미술작품이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해나가는가를 이야기한다. 즉 원근법을 지나 다시 공간을 변화시키고 만들고 있음을 예증한다. 그 한 예가 보티첼리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4-86).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67.9 in × 109.6 in). Uffizi, Florence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는 선원근법과 공기원근법을 그럴듯하게 구성할 수 있는 기교란 기교는 전부 알고 있었으며, 때로는 거장답게 그것들을 실제로 사용했다. 그러나 그런 공간에서도 움직이는 존재가 공간으로 인해 완전히 규정되지는 않는다. 이 움직이는 것들은 구불구불한 장식적 선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 선은 물론 어떤 목록 안에서 분류된 기존의 장식적 선이 아니다. 그것은 이러한 형상들을 구성하기 위해 육체의 생리적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무용간의 굽이치는 동작이 그려낼 수 있는 선이다. 이러한 특권은 오랫동안 이탈리아 미술의 속성으로 남아 있는다.(62쪽) 



The Hora of Spring


이후 3장 <물질 속의 형태>, 4장 <정신 속의 형태>, 5장 <시간 속의 형태>를 통해 형태가 어떻게 존재하고 영향을 주며 변화하는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손의 예찬함>>이라는 짧은 글이 부록처럼 실려있다. 


앙리 포시용의 문장들 대부분이 밀도가 높고 함축적이기 때문에 읽는데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미술사가 어떤 무늬를 가지는지 이 책을 통해서 확실히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류의 책이 그리 흔치 않는 걸 제외한다면.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 - 10점
앙리 포시용 지음, 강영주 옮김/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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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이해 Pour Comprendre La Peinture (Painting and Painters) 

리오넬로 벤투리 Lionello Venturi (지음), 정진국(옮김), 눈빛, 1999 




인문학 책읽기란 쉽지 않다. 어떤 땐 쉽게 읽히더라도 어떤 때는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인문학 책읽기는 한결 편해지고 더 깊은 이해와 감동을 가질 수 있다. 회사 생활로 바쁘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이런 이해와 감동 때문이리라. 


이 책은 불어판을 영어판과 비교해가며 번역되었다. 영어판의 경우, 벤투리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불어판은 그렇지 못하다. 중역인 셈인데, 그렇다고 읽기 불편하진 않다. 


리오넬로 벤투리 (1885 ~ 1961) 


리오넬로 벤투리의 책은 한 두 권 번역되었으나, 서양 미술사 책이니, 대중적인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미술에 관계된 이들마저 읽지 않거나 대학 시절 잠시 수업 교재 목록에 올라왔을 때 들춰보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어쩌면 실제 읽혀져야 할 뛰어난 책은 제대로 읽히는 경우가 드물고, 도리어 미술 작품에 대한 깊은 공감과 감동이라곤 제대로 경험해보지도 못했을 저자의 얄팍한 (이론) 책들만 읽히고 팔리는 건 아닐까. 


이 책은 르네상스 미술부터 현대 미술(20세기 초반)에 이르는 과정을 신과 인간, 자연, 정신과 육체, 추상과 환상 등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기술하였다. 대체로 이런 유형의 저서들은 개별 작가나 작품에 집중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시대 분위기나 양식의 변천 등에 집중하면서 서술되어 전반적인 흐름을 쉽게 알 수 있으나(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런 미술사 책을 읽으면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의 차이를 설명할 순 있으나, 티치아노와 카라바지오가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 다른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동시대 미술가였던 지오토 디 본도네와 시모네 마르티니가 왜 다른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왜 윌리앙 부그로나 장 프랑소와 밀레가 형편없는 예술가인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미술사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도상학적인 해석이나 미술 양식의 변천 뿐만 아니라, 왜 이 작가와 작품이 중요한지, 이 작품의 어떤 면이 혁신적이며 이 혁신이 후대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이러한 도전이 그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래서 결국 이 작품이 얼마나 새롭고 감동적인가를 머리가 아닌 눈으로 깨닫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확실하다. 벤투리는 개별 작가와 작품에 집중하면서 현대미술에 이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아래 인용들은 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오토, <요하임과 목동들>, 1305년경 



지오토는 평면상의 전개와 공간의 감각 사이에 지극히 희귀한 종합, 내적 데생과 구조 속에서 이미지의 극단적인 단순화를 통해 드러나는 종합을 찾아낸다. 신성의 이미지는 제시되고, 인간의 삶은 재현된다. 즉 이들의 종합은 잠재적 에너지로 충만한 평형에 의해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지오토의 이미지들은 추상적인 동시에 구체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보편적인 것에 포착된 인간들의 이미지로, 어떤 계급이나 어떤 시대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다. 또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로, 모든 물질을 능가하는 생명의 이미지이다. 인간이 된 신성은 동정심과 사랑에 대해 말한다. 또 신성화된 인간은 위엄과 정신적 위대성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43쪽) 




시모네 마르티니, <수태고지>, 1333년경 



시모네 마르티니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재단한 전통적 수법들을 고집했다. 그는 지오토가 배척했던 모든 속성들에 열광했다. 즉 운동, 장식, 기교, 세부에. 그리고 특히 지오토가 무시했던 관념적인 것, 즉 미를 실현하려는 야망을 불태웠다.

지오토는 물질적 미에 마음을 두기에는 너무나 영적인 것으로 가득한 천성을 지녔다. 또 천상의 미를 걱정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반대로 시모네 마르티니는 천상의 미를 필요로 했고, 그렇게 발견했던 것은 섬세하고 미묘한 은총의 꽃이었다. 이는 하나의 온실의 꽃이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시모네 마르티는 궁정의 귀족적 생활을 신성한 생활과 혼동했고, 세속적 미를 천상적 미와 혼동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름다움을 두드러지고, 세련되고, 귀족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희귀한 분위기 속에는 신성한 것도 인간적인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의 인격은 분명 지오토의 인격보다 한결 폭이 좁다. 아무튼 그 한계 내에서, 그 또한 예민하고 온화한 완전성을 찾아냈다. 프랑스는 사라으이 궁전에 대한 시를 지어냈었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사랑의 궁전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였다. (44쪽) 


벤투리는 지오토와 마르티니의 비교를 통해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어떻게 나아가는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각 시대별로 중요한 화가들과 작품들을 서로 나란히 배치하고 비교하고 분석함으로서 개별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와 감상 뿐만 아니라 그 너머 미술의 변화를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티치아노,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1570 - 71 


그의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는 빛의 개념에 있어서 하나의 시금석이다. 여기에서 '보편적 빛'과 '특수한 빛'을 구별하는 것이 적절해보인다. 야외에서 한낮동안의 빛은 보편적이가. 그것은 인체와 모델을 감싼다. (... ...) 달리 말해서 이미지의 빛으로 밝혀진 부분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상상되는 어둠에 잠긴 부분의 존재를 암시한다. 바로 이것이 특수한 빛의 효과이다. 또 이런 특수한 빛을 표현하는 화가는, 형상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빛의 효과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더구나 조형적 형상은 은연 중에 어떤 무게를 감지하게 하며, 형상의 운동은 언제나 이 무게에 의해 제한될는지 모른다. 반면에 형체가 없는 빛은 하나의 지속적 파장으로서, 결국 환상적인 운동이다. 특수한 빛은 번개의 속도를 갖는다. 즉 빛은 건드리고, 드러내고, 이내 사라진다. 다시 말해서, 빛은 심지어 주저앉은 형상에도 운동을 부여하며 또 운동 못지 않게 동태를 강조한다. (108쪽 - 110쪽) 

 

빛에 대한 설명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벤투리는 두 가지 빛을 구분하고 이것이 엘 그레코,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등으로 연결지어 설명해나간다. 이러한 설명들은 책 전체에 걸쳐 있으므로, 이 책은 르네상스 미술부터 현대 추상 미술까지 한 눈에 파악하면서 주요 예술가들까지 보다 깊은 수준에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따라서 생각보다 읽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카라바지오,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성 마태>, 1592년경 


르네상스초기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인상주의를 지나 추상미술을 향해가는 후반부는 더 흥미진진하다. 쿠르베, 르느와르, 세잔, 피카소로 오면서 미술사가 어떻게 작가와 작품, 그리고 시대의 흐름과 연결하고 해석하는가를 알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시중에서 이 책을 구할 수 없다는 것. 다시 출간되기를 기대해보자. 


좋은 책은 그냥 책 내용을 옮기게 된다. 이 책도 그렇다. 서평은 어렵고 요약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의 주요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보기 드문 책이기에 읽어보길 권한다. 또한 미술작품에 대한 글쓰기가 어떤 것인지도 알게 해줄 것이다. 





회화의 이해 - 10점
리오넬로 벤투리 지음, 정진국 옮김/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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