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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산, 낸 셰퍼드

살아있는 산 - 경이의 존재를 감각하는 끝없는 여정낸 셰퍼드(지음), 신소희(옮김), 위즈덤하우스 술자리에 남북 통일의 여러 이유들 중 하나로 '개마고원에서 하루나 이틀 야영(캠핑)하는 것'을 이야기했다. 한반도 면적의 약 20%를 차지하며 평균 해발 고도가 700미터에서 2000미터 사이에 있는 고원지대. 한반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곳. 이 책을 읽으며 '개마고원'을 떠올렸다. 한국도 캐언곰 같은 곳이 있다면 아마 개마고원일 것이라고. 산을 아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등산 장비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20세기 중반에 낸 셰퍼드는 참 잘 다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남자이지 않을까 추정했다. 가끔 여자 이름을 쓰는 남자도 있는 법이니. 하지만 여성 작가였다니. 아래는 책을 읽으..

세계-사이, 최정우

세계-사이 최정우(지음), 타이피스트 워낙 시간이 파편적으로 변한 탓에, 자연스럽게 짧게 읽을 수 있는 산문집에 먼저 손이 가게 된다. 꾸준하게 하루에 한두시간 씩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최정우의 글을 읽다보면, 문장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지적 측면이 희석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곧잘 하게 된다. 자주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파리에 머무르면서 그동안 쓴 글들 - 일기를 포함해서 - 을 모아 펴낸 것이다. 일상 이야기도 있고 문학이나 철학, 예술에 대한 글도 있다. 대부분 길지 않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의외로 금방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기준에서의 근대 예술이 예술 작품이라는 사물 자체의 유일무이한 아우라aura로부터 가능했던..

인천 장봉도 진촌해변 캠핑

자주 캠핑을 가고 싶지만, 쉽지 않다. 이번에도 혼자 텐트를 세우려고 해보았으나, 되지 않았다. 지난 번 캠핑 때는 혼자 기립시켰는데. 살짝 해변으로 경사진 모래 언덕 위에 피칭하려다 보니, 더 어려웠던 것같다. 이번 캠핑은 M의 주도로 S와 함께 했다. 내 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하다가 출발 바로 직전에 따라 나선 후, 해변가 텐트 안에서 아빠의 핸드폰으로 무려 삼만원 이상의 소액 결제를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목적지는 장봉도 진촌해변이었다. 영종도 삼목항에서 신도를 경유해 장봉도를 가는 배편을 타야 한다. 자동차를 끌고 간 적은 이번이 처음인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 어려워지는 듯하다. 익숙한 것과 멀리 떨어지고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더욱 많이 경험해야 하는데,..

알렉산드로스, 침략자 혹은 제왕, 마이클 우드(지음)

알렉산드로스, 침략자 혹은 제왕마이클 우드(지음), 남경태(옮김), 중앙M&B '동서양의 역사를 바꾼 대원정과 쓸쓸한 귀환'이라는 부제가 상당히 인상적인 책이다. BBC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긴 것으로, 이 분야에 있어 마이클 우드(Michael David Wood)는 압도적이다. BBC에서 진행한 많은 역사 다큐멘터리를 주도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책들을 집필하였고,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마이클 우드가 쓴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몇 권 되지 않는다. 인터넷이 발전하고 한국이 글로벌 사회의 주요 일원된 지금, 예전만큼 세계사에 관심을 덜 가지는 듯하다. 그 나라의 역사를 알고 지금 현재를 보면 더 흥미진진하지만,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가령 제국의 후예들 - 터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스가 아쓰코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스가 아쓰코(지음), 송태욱(옮김), 문학동네 이것으로 스가 아쓰코의 수필집은 다 읽은 건가. 지금 찾아보니, 문학동네에서만 번역된 줄 알았더니, 그 이후 다른 출판사에서 몇 권이 더 번역되었구나. 스가 아쓰코의 수필이 주는 매력은 분명하다. 그냥 잔잔하다. 읽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때로 이탈리아 문학 이야기도 나오고 일본 이야기도, 이탈리아 친구들 이야기, 카톨릭 좌파와 코르시아 서점 이야기도. 이 책은 이탈리아 친구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가령 이런 시를 쓴 친구이야기도. 나에게는 손이 없네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어줄 ... ... 다비드 마리아 투롤도(David Maria Turoldo)의 첫 번째 시집 에 실린 시다. 신부이면서 시인이었던 투롤도. 남편이 죽고 처..

보수와 능력주의

낮에 잠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급여 격차에 대해서 멤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급여 격차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적게 받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이니, 도리어 설득력이 없거나 자격지심 같은 것이고 대기업에 다니는 이들이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보수적이지 않냐고 말을 덧붙였다. 그 땐 보수와 그것이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대선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재명을 지지 않다고 좌파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정보의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정치인 이재명 주위에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저 저주받을 한국 언론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에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건, 이 나라..

샤이닝, 욘 포세

샤이닝욘 포세(지음), 손화수(옮김), 문학동네 어느새 눈이 앞 차창을 온통 덮어버렸다, 나는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이제 보니 눈은 그쳤고 앞에 보이는 땅은 하얀 눈으로 덮였다, 숲 속 나무가지에는 하얀 눈이 쌓였다. 아름다웠다. 하얀 나무, 하얀 땅. 이제 차 안이 기분 좋게 따뜻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차 안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한다. (19쪽) 하얀 눈 속에 갇히면 어떨까. 온통 하얀 세상. 그 하얀 공간 속에서 혼자 고립되어 잠들어갈 때, 어떨까. 이 짧은 소설이 주는 여운은 꽤 단단하고 슬프다. 결국은 가족 뿐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가족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처 입고 있는데 말이다. 세상은 하얗고 서로가 있다는 걸 알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일을 잘 한다는 것

일을 잘 한다고 평가할 때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 그런데 일을 잘 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 중 일부는 배려심이 없고 갈등을 만들며 자신의 것만을 지키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 경우 확실하게 일을 못한다고 평가한다. 업무를 수행하고 난 다음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이 좋았다면 다음 기회를 노려볼 수 있지만, 결과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과정이 엉망이라면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없다. 왜냐면 그 업무를 수행해던 멤버들 대부분은 뿔뿔히 흩어질 테니까. 결과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접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의 일만을 고르게 된다. 불투명하고 명확하지 않은 일은 배제한다. 위험이 보이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그리..

봄날의 쓸쓸함

도심의 봄은 쓸쓸하고 고요하다. 부산스러운 자동차 소리가 바닥을 스칠 때, 떨어진 분홍 꽃이파리들이 살짝 살짝 좌우로 물결치며 외로운 연인들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사랑하지 않았다. 근대적 고독과 동시대적 고립은 하나의 쌍이 되어, 이젠 연인들마저 쓸쓸하게 만들었다. 이제 다들 챗지피티에게 사랑을 묻고 사랑에 답하며 실연의 슬픔을 위로 받는다. 어쩌면 앞으로 이어질 끔찍한 봄날의 전주곡일지도 모른다. 봄날의 쓸쓸함이 가을날의 외로움으로 이어지겠지. 그렇게 봄 꽃잎이 지고 가을 낙엽마저 쌓여 흙으로 사라질 때, 그 때 그 사람을 그리워하겠지. 늘 후회는 예상보다 빨리 와선, 나를, 우리를 고통스러운 겨울밤의 고뇌 속으로 더 깊이 밀어넣겠지. 아마도, 언제나 그랬듯이.

알프레드 지로 Alfred Giraud 테이스팅 클래스 후기

알프레드 지로Alfred Giraud 테이스팅 클래스에 우연히 참가했다. 프랑스 위스키는 난생 처음이다. 프랑스 와인이야 늘 마시는 것이지만, 위스키는 ... 그러고 보니, 프랑스는 왜 위스키가 없지. 와인이나 코냑이 너무 막강해서 그런 건가. 그런데 이번 클래스에 참가하면서 전 세계 1인당 위스키 소비량은 프랑스가 1위라고 한다(그래서 프랑스 애들이 가면 갈수록 와인을 마시지 않는 건가). 또한 위스키의 재료가 되는 맥아(몰트)의 생산량은 세계 2위라고 하니. 물이 좀 나쁜 거 빼곤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추어져 있는 셈인데. 물도 알프스 쪽으로 가면 괜찮은 걸로 알고 있으니까, 의외로 위스키 시장의 숨겨진 인재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보리로 술을 담그는 문화를 나폴레옹 때부터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