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내 머리 속의 휘익.휘익.

지하련 2003. 7. 6. 22:02

몇 주 만인가. 아니 몇 달 만인가. 토요일 오후, 내 사각의 방에 앉아 청승을 떨어본 것이. 다행히 ‘낙타과음’이라는 글 속에서 시인 김수영이 ‘어쨌든 근 두 달 동안이나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얻긴 했지만.1) 술잔가에 맺힌 물방울 모양이 계속 머리 속을 휘익휘익 밀려다니는 걸 보면 꽤나 나도 술에 쩔어있었구나.

종일 라면 두 개와 초코파이 두 개로 보내고 에머슨레이크앤팔머의 세라비와 조용필 베스트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는 방바닥을 뒹군다. 요즘은 오래된 우리나라 노래가 좋다. 나이가 든 탓일까. 오래 전에 재미없게 읽었던 김수영의 산문이 오늘 재미있게 읽히는 것도 그렇고 정종 생각이 나는 것도 그렇고.

창 밖에선 어느 남자가 술에 취해 장인에게, 변명 반, 싸움 반으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고 조용필의 목소리를 헤치고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너머 한 아이는 친구를 기다리다 오지 않아 혼자 술 마신다면서 날 괴롭혔다.

오늘 뉴스에선 아내와 두 아이를 캐나다로 보낸 어느 젊은 가장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낯선 여자를 사귀다 캐나다의 아내에게서 이혼당한 채, 사업마저 힘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하며 자살했다는 소식을 죽은 그 가장의 나이쯤 되어보이는 아나운서가 딱딱한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인터넷 뉴스에선 아내에게 사랑하고 미안하다는 유서가 나왔다.

창 밖에서 들리는 ‘아버님.. 그것이 아니고 말입니다’라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간다. 그만큼 조용필의 노래는 슬퍼지고 내 머리 속 혈관을 따라 밀려다니는 물방울 모양도 더 큰 소리로 휘익~휘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