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다섯 번째 계절

지하련 2003. 6. 24. 22:08
 서양의 기후 학자는 korea의 계절을 다섯 개로 나누고 그 속에 장마(우기)를 집어넣는다. 장마 속에서, 잠시 비를 그친 도시의 도로는 한적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바람은 낮고 낮은만큼 하늘도 낮고 구름도 낮고 그녀의 시선도 낮았다.

   어느 새 점심식사 대용으로 가져다 놓은 머그 잔 속의 까페라떼는 허연 자신의 가슴 바닥을 들어내고 정오의 고요 속으로 몸을 묻는다.

   어느 검색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은 에릭 사티의 짐노패디를 들으면서 그간 슬프게 살아왔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너무 슬프게 살아왔었다. 두 달 정도 충격 속에 빠져 지내왔다. 부모님의 결혼에 대한 강요는 견디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사랑은 없지만 결혼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사회의 시스템이 바뀌면 결혼도 바뀌는데, 시스템 속에 있는 이들은 그 사실을 무시하거나 아예 모른다.

   삶이 슬프다. 파리에서 그를 사랑하던 여자는 한국 부모의 반대와 그의 우유부단함에 실망하고 그를 떠나버렸고 그것으로 인해 겨우겨우 마흔이 넘어 결혼을 한 남자는 나에게, 마흔을 넘기자 부모들이 흑인이라도 좋으니 결혼을 해달라고 했다며 씁쓸해 했다.

   한 때 마음 깊이 사랑한다고 여겼던 아이가 있었는데, 그것이 내 착각, 내 공상, 내 상상, 내가 만든 내 삶의 기형적인 궁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고작 며칠 만난 것으로... 그 때 난 경험론이 무엇인지 알게 된 셈이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사서 읽어야겠다. 열하일기를 읽고 대륙 기행 준비를 해야겠다. 내 마음 속의 대륙 속으로. 저 우주 저편 너머의 대륙으로. 깊은 바다 속 유선형의 몸을 자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