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콘텐츠의 미래, 바라트 아난드

지하련 2019. 2. 9. 13:44




콘텐츠의 미래 The Content Trap 

바라트 아난드(지음), 김인수(옮김), 리더스북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인터넷이 새로운 라디오라고 생각하니까요" - 닐 영Neil Young 




읽은 지 벌써 반 년은 흘렀고, 출퇴근하는 지하철이나 일상 속에서 가끔, 띄엄띄엄 생기던 토막 시간에 읽은 탓에 정리해놓은 노트도 없다. 그러니 리뷰 쓰기도 살짝 부담스럽다. 


돌이켜보건대 책을 다 읽었을 때의 느낌은, 짧게 쓸 수 있는 책을 왜 이리 길게 적었을까 였다. 살짝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2016년 10월에 출간된 책이 2017년말경에 번역되었으며(1년이 지난 시점), 내가 사서 읽은 건 2018년 중반이었던 탓에(거의 2년이 지난), 책의 상당 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꽤 있어, 책 읽는 도중 살짝 산만해지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연결관계Connection'이다. 아예 대놓고 '콘텐츠의 힘을 믿지 말고 연결의 힘을 믿어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너무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생태계Ecosystem이나 네트워크Network, 심지어 플랫폼Platform도 이러한 '연결성'에 주목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이 없다면 연결의 힘이 제대로 작동할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저자는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만으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음을 강조하며 그 너머 연결의 힘을 깨닫고 이를 기반으로 콘텐츠 비즈니스를 전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네트워크 효과의 핵심은 사용자 연결이다. 기술 기업들이 전통적 기업들과 다른 행태를 보이는 듯한 이유도, '공짜' 모델, 빠른 성장, 신속한 시제품화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모두 네트워크 효과 때문이다. - 68쪽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바라트 아난드는 "우리는 네트워크 외부성으로 기회를 찾는다"라는 빌 게이츠의 말을 인용하며 콘텐츠 비즈니스에 있어서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뛰어난 제품이었던 애플의 맥Mac은 시장에서 뒤쳐졌고 MS의 Dos나 Windows는 시장의 승자가 되고, 위키피디아가 브리태니커를 넘어서듯, 콘텐츠 자체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르웨이의 '십스테드'(언론사) 사례를 이야기하며 뉴스마저도 사용자 연결을 적극 수용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음을. 


콘텐츠 비즈니스에서 디지털 기술이 힘겨운 상대로 느껴지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 중 하나다. 디지털 제품에 의한 전통 제품의 자기잠식, 신기술 수용을 거부하는 기존 관리자들의 안이함, 디지털 세상에서 콘텐츠 수익 창출의 악화. 그러나 이런 요인들은 힘차게 디지털 여정을 나서려는 기업들에게도, 이전부터 종이책을 출판하던 출판사에게도 그다지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출판사들이 속앓이를 하는 진짜 이유는 고정비 때문이다. - 174쪽 


할인소매업은 기본적으로 고정비 사업이다. 월마트 역시 소요되는 총 비용 중 대략 3분의 2가 매출원가(판매한 상품의 구입원가), 즉 제품 공급업자들에게 나가는 변동비variable costs다. 그리고 나머지가 상점을 짓거나 임대하는 데 필요한 자본적 지출capital expenditure과 창고, 트럭, IT 시스템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 등으로 지출되는 고정비다. 흔히들 월마트가 매출원가를 낮춤으로써, 즉 공급업자들에게 단 돈 몇 푼이라도 덜 지불해서 이익을 남기는 줄 알고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매출원가를 통해 성공을 이어가긴 힘들다. 월마트가 거둔 성공의 비밀은 매우 효율적인 방법으로 고정비를 관리하는 능력에 있다. - 179쪽 


고정비 문제는 콘텐츠 비즈니스라는 이 책의 전체 주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항목이긴 하지만, 디지털의 도전 앞에서 실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디지털 환경 변화가 아니라 '고정비'라는 사실에 대한 강조는, 기업, 또는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비즈니스 전략이나 실행 방향이 달라짐을 알려준다. 월마트는 매출원가 대신 고정비 관리를 비즈니스 성공의 핵심 요소로 파악한 것이다. 어차피 매출원가를 통해 수익을 거두기는 어려운 환경으로 시장이 변했으므로.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싸게 물건을 만들어서 비싸게 팔면 된다고 여긴다. 최근 자영업이 최저임금 때문에 어렵다는 신문기사들도 이러한 잘못된 인식에 호소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문제라면 인력을 줄이면 된다. 하지만 가게를 옮기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인건비를 고정비로 볼 것인가 변동비로 볼 것인가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이런 측면에서 콘텐츠 비즈니스도 디지털 환경에 대한 대응 이전에 사업 자체에 대한 비판적 조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아마존 웹서비스는 아마존이 자사의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할 수 밖에 없는 고정비용 기반으로 새로운 비지니스를 만들어낸 성공사례다. 


이런 획기적인 성공은 클라우드컴퓨팅이 아마존의 핵심 사업이어서가 아니다. 서버 구축에 들어간 고정비를 지렛대로 활용해 고객에게 어느 누구보다 더 빠르고 더 나은 온라인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 181쪽 


음악 산업은 디지털 환경에 대한 부침이 유독 심했던 곳이다. 특히 Mp3 공유(넵스터나 소리바다)는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디지털 기업들을 천당과 지옥을 오가다가 끝을 맞이하기도 했다. 


CD판매가 감소한 건 사실이다. 무려 80퍼센트 이상 줄었다. 스튜디오의 수익도 감소했다. 급격하게 감소한 곳도 있었다. 그동안 업계의 다른 부분에서 무언가 색다른 상황이 나타났다. CD 수요가 감소하는 만큼 라이브 콘서트의 입장권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콘서트 수익이 증가한 것이다. (...) 그런데 1990년대 말 파일 공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콘서트 입장권 가격도 급상승했다. - 228쪽 


하지만 아난드는 지적한다. 디지털 음악 파일 공유가 음악 산업을 위기에 몰아넣지 않았다고. 도리어 음악 산업이 디지털 환경에 맞추어 변화한 것인데, 기존 시장 참여자들이 음악 파일 공유에만 신경 쓰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보완재complements는 (...) 사용자가 두 가지 제품을 함께 사용하는데서 얻는 가치가 두 제품을 따로따로 사용할 때 얻는 각각의 가치를 더한 것보다 크면 두 제품은 보완재다. 달리 말하자면 2개의 보완재를 함께 팔면 고객은 두 제품을 따로따로 구입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도 구입할 것이라는 뜻이다. - 233쪽 


먼저 CD와 콘서트가 보완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둘 중 하나의 가격이 하락할수록(따라서 소비량이 늘어난다) 나머지 제품의 수요는 더욱 증가한다. 오랫동안 콘서트는 값싼 보완재 역할을 하며 CD 판매를 밀어올렸다. 하지만 파일 공유가 늘어나고 CD 가격이 떨어지자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러다가 그들이 라이브 콘서트로 향하게 된 것이다. - 234쪽


음악 산업의 사망 선고는 너무 일렀다. 죽기는커녕 오히려 지난 10년간 음악 산업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해냈다. 단지 가치의 재분배가 일어났을 뿐이다. 음반사에서 음악가로, 소매 판매점에서 기술 제조사로, CD에서 라이브 콘서트로 가치가 옮겨갔다. - 236쪽 



책에 나온 보완재 도표를 옮긴다. 아마 콘텐츠 비즈니스 뿐만 아니라 산업 전 분야에 걸쳐서 다양한 보완재가 있을 것이다. 다만 콘텐츠 비즈니스에 있어서 보완재는 사업 성공의 KSF(Key Success Factor)일 지도. 더 나아가 슈퍼스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수퍼스타의 경제학. (...) 제품 간 '불완전한 대체imperfect substitution'(다른 가수 3명의 앨범보다는 좋아하는 가수 한 명의 앨범을 갖는 것이 좋다)의 특성과 한 제품의 '결합 소비joint consumption'(한 명의 예술가가 수천 명 또는 수백만 명의 청취자에게 동시에 다가갈 수 있다)의 특성이다. (...) 이 두 가지를 합치면 슈퍼스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 302쪽 



하나 주목할 것은 핵심역량에 기반한 상호 보완성이다. 핵심 역량이라는 단어를 이미 알고 있었고 여러 책들을 통해 접했지만, 나도 오해하고 있었음을 고백해야 겠다. 솔직히 핵심 역량을 제품이나 서비스의 관점에서만 이해하고 있었다. 즉 핵심역량을 완결된 형태, 즉 Product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다가 1991년 C.K. 프라할라드와 게리 하멜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기업들이 제품의 관점이 아닌 과정 또는 수행 능력의 측면에서 연관성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혼다Honda가 자동차에서 잔디 깎는 기계로 영역을 넓혀간 것은 제품의 연관성 때문이 아닌, 엔진과 동력 전달 장치에 대한 전문성 때문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한 확장이었다. 이렇게 다각화를 향한 '핵심 역량core competence' 논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고 많은 기업들이 이 논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 366쪽 


상호 보완을 통한 지속적인 성공 (...) "개별적인 특성과 그 개별적 특성들이 일본의 경제 성공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알려면, 그 시스템을 품은 환경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환경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거나 시스템의 상호 보완적인 다른 요소들을 분리한 채 개별적인 특성들을 하나하나씩 보아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간단하지만 강력한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조직이 하는 선택들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 그 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든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교차 기능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 밀그롬과 로버츠는 이 개념을 그들의 저서 <<경제, 조직 그리고 관리Economics, Organization and Management>>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 402쪽 ~ 403쪽 


이는 조직 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상호보완성의 개념은 이후 마이클 포터의 '전략Strategy' 개념에도 반영되었으며, 포터의 제자 얀 리브킨Jan Rivkein은 "전략을 구현하는 결정들이 많고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선택의 효율적인 조합을 찾아내는 기업은 세 가지 방향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라고 했다. 


첫째, 연결 관계를 맺은 선택들은 다른 기업들이 성공적인 전략을 찾아내기 더욱 힘들게 만든다. (...) 둘째, 성공을 거둔 회사가 내린 결정들을 하나하나씩 흉내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셋째, 서로 연결된 경쟁사의 결정들을 통째로 모방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복잡함에 혼란스러워져 이도저도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406쪽 


이런 이유로 우리가 흔히 하는 벤치마킹 분석Benchmarking Analysis는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아난드는 사용자(고객)의 맥락Context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시작해 차별화와 경쟁우위를 만들어야 된다고. 


다소 두서 없이 옮기면서 책 소개를 해보았다. 책이 상당히 두껍긴 하지만,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하지만, 등장하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 어쩌면 콘텐츠 비즈니스로 성공하는 기업이 드물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만큼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굳이 읽어야 되는 필독서 목록에 이 책이 올라가야 하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한다. 막상 따지고 보면, 나쁜 책은 아니지만, 책 두께에 비한다면 실제 기업에 종사하는 우리들에게 실천적인 조언을 준다고 보기엔 살짝 아쉬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높은 평점을 주고 있기에 낮은 평점을 매긴다. <<콘텐츠의 미래>>라는 역서 제목이 나에게 주었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콘텐츠의 미래 - 6점
바라트 아난드 지음, 김인수 옮김/리더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