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우리가 세계에 기입될 때, 한유주

지하련 2022. 7. 3. 20:36

 

 

 

우리가 세계에 기입될 때

한유주(지음), 워크룸프레스 

 

 

언제나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아직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눈이 내리고 있다. 재형은 집에 들어가기 전 - 몸을 흔들어 눈을 털어내고, 춥다고 생각할 것이고, 느낄 것이고, 심연을 자유자재로 건너뛰는 고양이들의 식사를 챙겨줄 더 좋은 방법을 떠올릴 것이다. 눈이 내리기 때문인지, 혹은 용감하게 페이지를 벗어나고, 또 다시 들어오는 존재들 때문인지, 경비원은, 혹은 경비워들은, 가스 점검원은, 택배기사는, 행인들은 그 순간, 자신이 살아있음을,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안다. 3층의 그는 불투명을 되찾은 손으로 고양이의 등을 쓸어내린다. 지킬 수 있다면 지켜야 해, 지킬 수 없더라도 지켜야 한다. (79쪽) 

 

 

이 짧은 소설은 스틸 사진, 혹은 짧은 다큐멘터리 필름의 병렬적, 순차적 편집이거나 일종의 모자이크다. 하나하나, 등장인물이건, 공간이건, 사건이건, 평범하지만, 그 밑으로는 어떤 기적, 신비, 살아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들은 끊어지면서도 동시에 이어지며 반복된다. 살아있음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죽음이 아래 깔려있다. 소설은 짧지만, 이야기는 짧지 않고 여운을 길게 남긴다. 어쩌면, ... 

 

 

소설가 한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