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지하련 2023. 7. 15. 14:21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지음), 을유문화사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건축 관련 책은 흥미진진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건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구성하고 있던 사상이나 문화, 실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적 인간이라고 하였을 때, 건축가를 떠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학자이면서 예술가이면서 사상가. 이것이 이상적인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랄까. 이 책은 그런 측면을 맛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 만 하다. 

 

20세기 후반, 우리의 일상을 가장 크게 바뀐 발명품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휴대폰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것도 너무 대단한 발명품이긴 하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세탁기'라고 할 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세탁기'의 등장 이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 지금은 모든 가정에 '세탁기'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도 불과 4~50년 전만 해도 세탁기 보급률이 높지 않았다. 

 

 

1970년대나 80년대에는 세탁을 하기 위해서는 마당이 있거나 집 근처에 공동 우물이나 빨래를 할 수 있는 개울이 있어야 했다. 이 측면에서 보자면 마을의 모양새가 얼추 그려진다.  세탁기의 보급률이 높아지고 세탁에 들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여성의 경제 활동이 늘어난다. 도시 형태의 변화나 건축 양식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할 때 더욱 깊어진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은 한 마디로 엘리베이터가 만든 스카이라인이다. 뉴욕은 섬이기 때문에 땅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63쪽)

 

이런 측면에서 엘리베이터도 흥미로운 발명품이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초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시설이어서 사고가 상당히 많았다. 이런 이유로 주택 건물에서 가장 비싼 층은 2층이었고 그 다음이 1층과 3층, 이런 식으로 가격이 매겨졌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기술이 발달하고 사고빈도가 현저히 떨어지자, 꼭대기층에 가장 비싼 층이 되었다. 그야말로 펜트하우스(옥상가옥)가 가장 비싸게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냉장고가 발명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음식을 보관할 수 없었기에 식재료를 조금씩 사서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생산지에서 도시까지 오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식료품점에서 집으로 가져가서 음식이 상하기 전에 먹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주변에 모여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냉장고의 발명 이후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만 장을 보면 되게 되었다. (…) 도시는 기존의 고밀도 도시에 달걀 프라이처럼 땅에 널리 퍼진 주거지와 고속도로 교차로 주변의 쇼핑몰로 대체되었다. (103쪽)

 

냉장고의 발명이 도시 형태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책은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아우르며 현대 도시의 여러 측면을 이야기한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특히 성당 내부 구조가 아래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음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제사의 형식은 앞서 말했듯이 양을 도살하여 피를 흘려서 제단에 뿌리고 고기를 태워서 연기를 하늘로 보내는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레위지파 사람들만 할 수 있었는데, 레위지파 사람들이 이동시에 성막의 모든 텐트와 제사 집기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궤를 운반하였다. 모세의 성막 공간은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번째는 담장과 텐트 사이의 공간인 성막의 마당이다. 이 공간에는 이동하면서 물두멍이라고 해서 제사장이 손을 씻는 커다란 물동이가 있었다. 광야에서 이동하면서 물이 얼마나 귀한지 상상해보면 이 물두멍이 얼마나 귀중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이 물두멍이 발전해서 지금도 성당의 입구에는 성수를 담아 놓는 작은 그릇이 있는 것이다. 이 마당 공간에는 민간인들도 진입이 가능했지만, 거기까지가 그들이 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다음 공간인 텐트 안의 ‘성소’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고, 그보다 더 안 쪽에 위치한 성궤가 있는 ‘지성소’는 여호와 하느님이 거하시는 공간으로서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다. 혹시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심장마비라도 일으켜서 죽으면 그 시체를 가지러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발목에 방울을 달고 밧줄을 묶고 들어갔다. (168쪽 - 169쪽)

 

신약시대에 와서 가장 큰 변화는 제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예수가 희생양이 되어서 한 번의 십자가형으로 제사를 대신하게 되었고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기독교가 된 것이다. 이는 건축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과거의 성전은 동물을 잡고 제단에 피를 뿌리고 고기를 태우는 제사의 행위가 주된 예배 행위였는데, 예수가 전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다 수행했기 때문에 기존의 제사행위가 필요없게 된 것이다. 대신에 그 자리에 제사를 대신하는 예수님의 업적과 교리, 스토리들을 전파되어지는 설교가 대신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바뀌면 건축의 외형도 바뀌는 법이다. (172쪽) 

 

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메모해둔 문장들이다. 

 

'공간은 권력을 만들어낸다'라는 명제를 팬옵티콘(Panopticon)처럼 잘 설명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71쪽)

 

돈으로 공간의 권력을 사는 것이다. 펜트하우스는 부자들이 권력을 갖는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구조를 확실히 보여주는 주거형태라고 할 수 있다.(77쪽) 

 

건축은 사회, 경제, 역사, 기술의 산물이며 도시는 살아움직인다. 이 명제를 뉴욕의 로프트(Loft)처럼 잘 보여주는 건축 형태도 없다. 로프트의 사전적인 정의를 찾아보면 '예전의 공장 등을 개조한 아파트'라고 되어 있다.(97쪽) 

 

자동차는 우리로 하여금 멀리 있는 공원에는 갈 수 있게 해주었지만, 가까이 있던 마당과 거실 같은 골목길을 빼앗아갔다. (193쪽) 

 

요즘 젊은이들은 집보다 자동차를 먼저 산다. 자동차는 이 사회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완벽히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이동하면서 공간의 성격도 바꿔 줄 수가 있어서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222쪽)  

 

프라이빗한 공간을 얻는 다른 방식은 익명성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대도시화되면서 공간의 부족으로 없어지는 사생활의 자유는 대도시의 익명성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회복된다. (...) 익명성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222쪽)  

 

 

유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