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세상 풍경

지하련 2024. 7. 30. 18:44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이었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라크 전쟁 때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사담 후세인을 지지 않았더라면 지금 팔레스타인 정치 지형은 지금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사담 후세인을 지지했을까? 같은 수니파여서 지지했던 걸까? 참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독재 정권이나 파시스트 정권은 투표로 선출된다. 나폴레옹도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등장했고, 히틀러의 나치도 그렇게, 무솔리니도 그렇게 정권을 잡았고 한 나라를 독재 폭력의 시대로 물들이며 세계를 전쟁의 수렁으로 몰아 넣었다. 몇몇 사례를 보면, 국민 투표가 문제가 된다. 실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혹자들은 다수결의 원칙이나 민주주의를 문제 삼는다.)

 

제임스 서로위키는 이런저런 자료들을 들이대며 <<대중의 지혜(The Wisdoms of The Crowds)>>를 이야기하지만, 과연 얼마나 옳을까? 정말 다 옳은 걸까? 그럴 수도 있다는 걸까? 하고 생각하면 역시나 답은 없다. 빅데이터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안다는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론의 종말(The End of Theory)>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크리스 앤더슨은 무수한 데이터를 향해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므로, 이제 이론은 끝났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실은 그 반대인데 말이다. 드디어 답을 찾았다고 믿었던 근대 바로크 시대의, 계몽의 빛이 사라지고 저 끝없이 어두운 현대 과학의 터널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미지는 더 늘어나, 이제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모르는 것, 궁금한 것, 그래서 더 신비스러운 것을 목도하고 있다. 

 

지나온 역사를 보면 참 부질없어 보인다. 알지 못하니까 아무렇게 행동해도 되는 걸까. 시간과 공간은 하나이며 현대물리학에선 '미래'란 없고 '결정된 어떤 것'만 있다고 할 때, '결정되지 않았을 때의 수학적 오류'보다 '결정되었을 때의 수학적 타당함'이 더 우선시 될 때, 우리가 마주한 현실 세계는 더욱 더 불가해진다. 그래서 저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한 발 한 발 내일을 향해 걸어간 역사적 발걸음을 무시하고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일까. 그런데 왜 젊은이들은 가만히 있는 거지? 현재 일어나는 불합리가 자신의 현재를 결정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최근 현 정권/정부의 여러 정책들과 의사결정들을 보면 욕 밖에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의사결정의 일반적인 원칙은 무시되었다. 100여명이 넘어가던 흉부외과 전공의가 내년이면 8명이 된다고 한다. 실은 의대 정원을 늘리더라도 의사 양성 시스템(교육 시스템)이 늘어난 정원을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의사를 키워낼 수 없다. 그런데 그냥 밀어붙인다. 한국 의료 시스템은 이제 무너질 것이다. 무너지면 모두 우리들의 피해로 다가올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관심없어 보인다. 언론들은 정부의 입장에서만 서서 정권을 대변하며 의사들을 공격한다. 하긴 언론들도 교과서적 원칙만 이야기할 뿐 자신들이 앵무새라는 사실을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러니 공중파에 나와 떳떳하게 자신을 변명하는 바람에, 도리어 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들더라.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풍경인가. 티메프 사태는 또 어떠한가? 도대체 사도광산 등재에 동의한 정부는 정녕 무뇌아인가? 아니면 일본 앞잡이인가? 월급쟁이들의 급여에서의 세금은 확대하고 상속세율을 인하한다고? 하지만 언론에서 이를 비난하는 걸 보지 못했다. 상속세를 조정하는 것이 중산층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라는 뉴스 제목을 보니, 말문이 막힌다. 이진숙 청문회는 더 가관도 아니었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을 두고 옹호하는 이들이 있고 이들을 취재하는 기자가 있고 이 청문회가 일방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언론이 있었다. 

 

히틀러의 나치가 히틀러만의 문제라고 여기면 안 된다. 히틀러가 등장하여 정권을 잡도록 도와준 그 당시 독일인들을 떠올려야 된다. 현재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그것을 안다. 그래서 끊임없이 회상하고 회고하고 반성하며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자주 술을 마시는 건가. 거참, 어두워져가는 내일을 보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 바보들아! 

 

Egon Schiele. Four Trees, 1917. Oil, canvas; 110.5 x 141 cm Belvedere Museum, Vienna, Aust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