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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비평의 역사, A. 리샤르

미술 비평의 역사 A. 리샤르(지음), 백기수, 최민(옮김), 열화당 ‘미술 비평의 역사’같은 책을 읽는 이가 몇 명쯤 될까(안타깝게도, 나이가 들수록 이런 시니컬한 반응부터 먼저 보이게 되는 것은 정직한 미술사 연구자의 수만큼이나 미술사, 또는 미술 비평의 학술적 영역과 대중적 영역과의 괴리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매우 좋은 책이다. 짧고 간결하게, 그러나 풍부한 인용들을 통해 미술사에 있었던 여러 비평적 태도에 대해 그 장점과 한계를 명확히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상학적 미술사 연구가 주된 경향으로 자리 잡은 이 때, 리샤르는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비평을 위한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은 미학, 또는 미술 비평에 있어서 거의 권력..

두 얼굴의 ‘숲’

두 얼굴의 '숲' 문명화된 숲 어렸을 때, 나는 언제나 마을 뒷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채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의, 내 호기심을 자극하던 뒷산 너머에 있을 그 무언가, 미지의 세계. 거대한 바다가 있거나 반짝이는 조명으로 찬란한 대도시이거나, 아니면 내가 세계 최초로 발견하게 되는 외계인 마을이거나. 그리고 결국 나는 뒷산에 오르고 만다. 오전 일찍 집을 나선 나는 마을 뒤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키에 적당한 길이로 나무 가지를 꺾어 지팡이로 사용하면서. 그렇게 몇 시간을 올라갔을까. 산 정상은 보이지 않고 좁은 길 흔적마저도 사라진 채,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들 소리만 들리고, 눈앞에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 속으로 가느다랗게 내려앉은 햇빛뿐. 이..

현실과 꿈 사이에 있을 숲 속 그 곳

사랑의 정원이 된 숲 내 몸 어디에서도 고된 노동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틈 날 때마다 그 흔적을 지우고, 또 지우고, 지우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탓이다. 자줏빛 뿔테 안경을 끼고 한 손에는 낡은 수필집을 든 채, 매일매일 전투 같은 일상을 보내는 직장인으로써가 아니라 책 읽기와 산책으로 소일하는 한가로운 룸펜처럼 보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 이 세상과는 무관하게 살아간다고 웅변하고 싶은 것이다. 현실을 떠나 꿈 속 세계로. 내가 원했지만, 절대로 실현되지 않았던 어떤 것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세계로. Fete Galante. 우아한 축제. 그 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알 턱이 없지만, 아름다운 무희가 춤을 추고 한순간도 술잔은 비는 법이 없으며, 새가 사랑을 노래하고, 얇은 바람이 시샘하듯..

여름 감기

감기에 걸렸다. 설마 했는데, 역시. 원래부터 목이 취약했는데, 바로 걸려버렸다. 해마다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때쯤 목감기에 걸리는데, 올해에는 여름에 걸렸으니, 겨울엔 걸리지 않으려나. 영어강사 이지영 씨의 학력 위조는 학원가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오던 일이라고 한다. 학력 위조는 용서받지 못할 일이나, 이지영 씨의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는 나로선 그녀의 영어 강의나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는 어느 점에서 보나, 열정적이며 정성을 다했다. 그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신정아 씨는, 글쎄, 우리 미술계의 한계와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 아닐까 싶다. 계속 콧물이 흐르고 기침을 한다. 잠이나 잘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런데 너무 덥다. 난 더운 건 정말 싫다. 약 먹어야 겠다. 오늘 약만 먹어댄다. ..

[민경욱의 워싱턴 리포트] 미움과 한풀이의 유혹

KBS 민경욱 기자가 귀국했다면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3년 동안 있으면서 느꼈던 것을 적었는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버지니아 공대에 추모석이 있는데, 32명의 희생자와 함께 조 씨의 것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술을 마시면서 한국은 일본을 보면서 그들의 장점을 배워야 하고 중국을 보면서 그들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고 열을 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타인들의 장점을 보기 보다는 단점부터 먼저 보고 멀리하려고 하니, 큰 문제인 듯 싶다. 민경욱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힘을 다시 느끼게 한다. [민경욱의 워싱턴 리포트] 미움과 한풀이의 유혹 http://news.kbs.co.kr/bbs/exec/ps00404.php?bid=134&id=828

금요일 오전

창을 연다. 방충망이 없는 쪽으로 여니, 가느다란 빗줄기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바람이 밀려온다. 금세 비는 그치고 얇은 구름 뒤 태양의 흔적이 책상 위로 와 닿는다. 여름 감기에 걸렸는데, 그간 피곤했었나 보다. 거의 12시간을 잤다. 오디오에 시디 한 장을 집어넣고 금요일 오전의 고요를 즐기려고 하지만, 내 일상은 그리 즐겁지 못하다. 소주를 마시곤 휴대폰을 잃어버린 탓에 연락처를 다 상실했으니, 연락할 곳도 그리 많지 않다. 자주 배는 아프고 술만 마시면 취해 인사불성이 되고 순수한 언어는 내 영혼을 빗겨 저 흐린 하늘 위로 달아나버린다. 암울하다면 암울하다고나 할까. 슬프다면 슬프다고나 할까. 아무렇지 않다면 아무렇지 않다고나 할까.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런데 ..

역사란 무엇인가, E.H.카

역사란 무엇인가 E.H.카(지음), 김택현(옮김), 까치 다 읽고 생각해보니,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보다 ‘역사학이란 무엇인가’가 더 적당한 제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학자들에게 시선이 고정된 이 책은 학문으로서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마르크 블로크가 그의 시선을 ‘인간’에게 고정했던 것과는 다소 관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위상이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비관주의자들에게는 Carr가 너무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종종 겁을 내는 듯이 비추어지거나 억지로 낙관주의적 관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논리적인 완결성, 또는 철저한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인류는 계속 살아갈 것이고 역사는 이어질 것이라..

트랜스포머

김포공항 안에 자리잡은 CGV에 가서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를 봤다. 감독 마이클 베이, 제작 스티븐 스필버그. 이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다는 보증서이다. 그리고 재미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좋은 것들은 다 집어넣었다. 사랑, 권선징악, 가족, 국가 등등... 어느 기사를 보니, 스토리라인이 어떠니 저떠니 하는데, 2시간 짜리 영화 안에 스토리를 담으면 얼마나 담겠는가? 이 영화는 환상적인 CG와 박진감, 흥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우선하고 난 뒤 스토리라인을 구성한다. 따라서 전자를 위해 스토리라인의 완성도는 뒤로 미룬다. 만약 스토리라인의 완성도를 좀 더 높였다면, 영화 상영 시간이 길어지던지 영화의 재미는 떨어졌을 것이다. 영화는 한정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시간 매체다..

떠남 혹은 없어짐 - 죽음의 철학적 의미, 유호종

떠남 혹은 없어짐 - 죽음의 철학적 의미 유호종(지음), 책세상, 2006년 초판 4쇄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생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 법적, 의학적 정의에 대해서 논하며, 이것이 가지는 어려움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 사회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 화장터가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런데 문제는 전국의 화장장의 수는 47개이며, 이 중 인구의 절반 가까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는 불과 4곳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화장터를 강하게 반대한다. 이로 인해 많은 사회적, 경제적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http://news.chosun.com/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