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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파트 하나 얻어 혼자

작은 아파트 하나 얻어 혼자고양이 키우면서 살고 싶다. 고양이 먹이 주면서 아침 떠오르는 해를 쳐다보며 삶을 비관하고 싶다.순환적 역사관을 굳게 믿으며 내 생 다시 꽃 필 날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혼자 살고 싶다.봄에는 이름 모를 꽃향기가 스며들고가을이면 낙엽 지는 소리가 들리는 그런 아파트였으면 좋겠다.여름에는 바람은 불되, 아무도 찾지 않는 아파트이면 좋겠고겨울에는 눈이 쌓이고 밤의 하늘이 낮게 드리우고 사랑하는 여자만 찾아오는 그런 아파트였으면 좋겠다. 그런 작은 아파트에서, 오래된 오디오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말러나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살고 싶다.낮고 긴 서가에 빼곡히 꽂힌 책들 중 한 권을 꺼내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에 앉아 책을 읽으며 살고 싶다. 그렇게 나, 그렇게 혼자 고양..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글

문화 산업과 관련해 몇 번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하였다. 고부가가치라고는 하지만, 성공확률로 따진다면 제조업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이다. 성공하는 경우의 부가가치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지만.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이창동 장관의 글이다. 과연 공직 사회를 얼마만큼 잘 리드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이다. 처음 드리는 인사말 안녕하십니까. 이창동입니다. 제가 문화관광부 장관이란 중책을 맡은 지 어느새 두 주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취임식을 생략하는 대신 취임사는 인터넷으로 올리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도 이제사 인사의 글을 올려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럴싸한 포부나 의례적인 인사보다는 뭔가 생각을 가다듬어 말씀을 드리고자 했지만,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로베르토 무질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로베르토 무질 지음, 박종대 옮김, 울력. ‘지난 시대의 교육 정책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련의 소설들, 1891년의 프랑크 베데킨트Frank Wedekind의 , 에밀 슈트라우스 Emil Strauß의 (1902),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헤르만 헤세의 여러 소설들과 함께 무질의 이 소설 또한 그 시기에 유행했던 소설들 중의 하나이다.(1) 하지만 나이가 너무 든 탓일까. 아니면 그 때의 학교와 지금의 학교가 틀리기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퇴를레스, 바이네베르크, 라이팅, 바지니, 이렇게 네 명의 소년들이 펼치는 흥미로운 학교 모험담은, 나에게는 무척 낯선 것이었다. 무질은 이 소설을 통해 영혼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쉽게 말해 나이를 어..

miscellaneous, 또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돈 많이 주고 산 오디오가 말썽이다. 앰프에 문제가 있는 건지, 스피커에 문제가 있는 건지, 계속 한 쪽 스피커 소리가 죽는다. 오늘 테스트를 해보고 바꿀 생각이다. 빚을 내어. 아마 미친 짓이라고 혹자들은 말할 지도 모른다. 통장에서 고작 몇 십만원 있는 주제에. 공과금 내면 사라지는 돈인데. 하지만 통장에 돈 없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음악 들을 때 한 쪽 스피커가 죽는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크니 어쩌겠는가. 오랫만에 토요일날 휴식을 취한다. 내가 원하는 걸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참 부럽고 속이 타고 내 경제적 처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내 고매하기 짝이 없는 순결주의는 시대 착오적이고 혐오스..

염증

Mary Flannery O'Connor, 1925.3.25 ~ 1964.8.3 어제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식사를 많이 한 것이 원인이 된 듯하다. 그런 와중에 11시까지 일을 했고 밤새 배를 잡고 뒹굴다 급기야 아침에는 토하고 말았다. 이틀이 지나가고 있건만, 무식하게 약을 먹고 있지만, 배는 계속 아프다. 오늘 일찍 집에 들어왔지만, 몇 시간을 잤지만, 배는 계속 아프다. 아픈 몸이라. 무척 낭만적이다. 수잔 손탁의 "은유로서의 병"를 영어원서로 사서 읽고 있는데.. 몇 페이지 읽었나. 병하니, 프란네리 오코너가 생각난다. 홍반성난창으로 죽으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생의 구원이라는 테마만 생각했다니. 그리고 보면 나는 죽지 않는다면서 죽은 프랑스의 어느 소설가도 있었는데.

하나비

하나비를 보다 잠이 들었다. 바다가 참 많이 나오는 영화다.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위로 총성이 두 번 울릴 때, 난 눈을 감고 코까지 골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네모난 브라운관 속에 갇힌 파란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수평선으로 두 번의 총성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총성 끄트머리에서 피어오르는 불꽃. 생(生)에의 열망. 머리가 아프고 손마디는 떨리고 가슴은 터질 것 같다. 어디 멀리 도망쳐야지. 도망쳐선 소문으로만 존재해야지.

하나비

하나비를 보다 잠이 들었다. 바다가 참 많이 나오는 영화다.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 위로 총성이 두 번 울릴 때, 난 눈을 감고 코까지 골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네모난 브라운관 속에 갇힌 파란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수평선으로 두 번의 총성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총성 끄트머리에서 피어오르는 불꽃. 생(生)에의 열망. 머리가 아프고 손마디는 떨리고 가슴은 터질 것 같다. 어디 멀리 도망쳐야지. 도망쳐선 소문으로만 존재해야지.

misc.

헨델의 사라반데를 듣고 있다. 무척 격정적인 음악이다. 실은 오늘 일을 봐주고 있는 친구의 사무실에서 영업직원 한 명을 짤랐다. 슬픈 일이다. 그런데 웃음만 나왔다. 몇 년 사이, 너무 많이 변한 내가 서있었다. 허무의 끄트머리에 서서 삶을 조롱하고 있는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날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 클래식 음악만 듣는다. 무척 좋다.

봄비에 잠긴 이태원

요즘 있는 사무실 창을 내다 보면 역삼동 라마다르네상스호텔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호텔 앞 사거리가 다 보이고. 비가 내린다. 잔뜩 슬픈 물기 먹은 표정을 짓고는, 이건 봄비야, 라고 하얀 벽을 향해 지껄여댄다. 어젠 장충동 소피텔 엠버서더 호텔 1층에 있는 그랑-아라는 바에서 술을 마셨다. 아시는 분의 단골 술집인데, 혼자 와서 술을 마시기에 적당한 곳이다. 여기에도 필리핀 밴드가 와서 노래를 부른다. 남자 세 명과 여자 두 명. 키가 작은 여자 두 명 중 한 명은 앙큼하게 생겼고 한 명은 순하게 생겼다. 순하게 생긴 아이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고 앙큼하게 생긴 아이보다 몸매도 낫다. 필리핀에 가면 일본이나 한국으로 노래부르러, 춤을 추러, 몸을 팔러 나올려는 여자아이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밀레, 아라키

. 어제 밀레를 보았다. 하지만 광고와는 달리 세잔, 고흐, 피사로 등의 작품은 한 점씩 밖에 없었다. 밀레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영향을 받은 미술가의 작품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 중에서 무리요의 작품은 바로크의 이념이 어떤 것인가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밀레 전시에서 주목해야할 지점은 2층과 3층으로 나누어진 전시 공간의 차이이다. 즉 바르비종 이전과 이후 사이의 밀레가 얼마나, 확연하게 틀려지는가. 그리고 이렇게 틀려지는 동안 밀레가 삶이나 세계 속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부서지는 대기 속에서 밀레가 응시하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일요일이라 사람들은 너무 많고 밀레의 작품을 보고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할 어린아이들까지 있었다는 점에서, 과연 미술 작품 감상은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가를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