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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혹은 리듬의 파괴

아침 7시까지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 그리고 12시가 막 지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마디로 '폐인'처럼 지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생활 이면에 드리워진 경제적 공포가 그 무게를 더하고 있다. 역시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새벽에 서준식 선생의 편지들을 읽었다. 감동적이었다.

불멸, 밀란 쿤데라

불멸 - 밀란 쿤데라 지음/청년사 밀란 쿤데라, 청년사 오랜만에 뛰어난 현대 문학의 수준을 한 눈에 가늠할 수 있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그 형식에 있어서도 놀랍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짧은 글에서 이러한 평가에 대한 정당한 이유와 논증을 다하지 못함을 고려해볼 때, 이러한 평가는 위험한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소설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적는다면 이 소설이 현대 문학의 어떤 흐름에 이어져 있으며 무엇을 반영하고 있는가, 이와 유사한 내용이나 형식의 소설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다른 예술에서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고 있는가를 논의하는, 적어도 소논문 정도는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소논문에 대한 부담을 나는 늘 그렇듯이 내 처지를 내세운다. 다만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대..

1월 3일 스터디

간단하게 공부한 바를 정리하였습니다. 틀린 부분을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정신현상학 부분은 설명할 자신이 없어 헤겔과 장 이뽈리트를 인용하였습니다.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Vorlesungen u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35쪽 강독 부분 한글로 옮김 : 우리는 저 결과를 웅변조의 과장 없이 민족 형태와 국가 형태 및 개인적 덕에 있어서 가장 화려한 것이 감당했던 불행의 적절한 총합을 가장 끔찍하고 가장 무서운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고 그 그림으로 인해 그 어떤 위로의 결과로부터 보상받을 수 없는 가장 심각하고 억누를 길 없는 극한 비탄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때에야 비로..

12월 31일

역삼역에서 내려 8번출구로 나와 조금 걸어 올라가면 스타벅스가 눈에 보인다.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들고 나와 M 모텔을 지나고 룸싸롱인 Basic을 지나 입구 계단으로 올라가면 내 책상이 있다. 이제 정기적인 수입은 없고 힘들어하는 친구 사업을 정상 궤도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밤에 눈이 내린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번 겨울에 본 첫 눈이었다. 이번 겨울, 참 눈이 없다. 대학로의 따뜻한 난로가 있는 찻집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압구정동의 고급스러운 일식 집에서 정종에 차가운 요리를 먹을 약속을 만들어두었다면 무척 좋았을 텐데. Basic에 들어가는 아가씨들을 보니, 저절로 젊어지는 느낌이다. 영혼은 이미 늙었고 육체는 늙어가고 물질적인 부는 포기한 지 오래되었으니, 젊어진다는 느낌은 거짓이며 허상일..

밀란 쿤데라, 불멸

1. 불멸을 다 읽었다. 하지만 불멸에 대한 글을 쓰기란 까다롭기 이를 데가 없다. 문제는 쿤데라가 인용하였듯이, 랭보의 말처럼 '현대적인 작품'이 되기 위해 꽤나 노력한 작품이며 이전의 소설들과 비교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2. 현대적인 소설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소설 양식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3. 후기 하이데거적 문제 의식, 은 소설 에서는 어떤 식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일까? 4. 현대의 개인주의와 에서 나타나는 인물들과는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5. 예술 양식 상 은 여러가지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는 무엇을 위한 것이며 이러한 특징들은 다른 양식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6. 인간 소외의 문제는 쿤데라에게 와서도..

개인주의의 역사, 알랭 로랑

1. 독서의 경험 밤 늦게, 대략 10시 쯤부터 읽기 시작한 알랭 로랑의 (한길크세주 24)를 다 읽은 것은 새벽 3시였고 새벽 5까지 서평을 쓴다고 끄적이다가 서평이 아니라 요약본이 되어가는 모습에 쓰다 그만 두고 강희안의 을 읽다 잠이 들었다. 오전 11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간밤의 독서 경험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하기 위해 이렇게 간략하게나마 노트를 해둔다. 2. 근대성의 문제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글들은 무척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것이 진짜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글은 드물다. 데카르트주의를 언급하지만, 데카르트가 현대의 허무주의적 태도와 어떤 연관을 지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태도가 왜 '반휴머니즘'인지에 대해서, 대부분 그 설명은 인색하기 이럴 때 없다. 이는 글이란 읽는 이에 따라 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일요일에 낯선 사람들과 술을 마셨는데, 썩 행복하지 못했다. 그들이 날 낯설게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이 낯설었다. 내가 누군가를 낯설어하듯이 누군가도 나를 낯설어할 것이다. 낯설다는 느낌은 '근대'에 새롭게 발견되어 주목한 느낌이다. 낯설다는 건 우리의 삶이 모험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도시는 난리다. 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차들은 거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영풍 문고에서 몇 권의 책을 샀고 밤 늦게 통닭과 케익과 맥주 한 잔을 마실 계획이다. 아주 조금만 먹어야지.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건 따뜻해진다는 걸 의미하는 것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낯설게 느낀다는 건 스산하거나 쌀쌀하다는 걸 의미하는 것같기도 한데,..

불멸, 베르메르, 칸트

*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도서관에서 가지고 간 책들을 읽었다. 쿤데라의 을 다 읽었고 창해 ABC북 시리즈의 한 권인 와 지성의 샘에서 나온 아담한 사이즈의 를 읽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를 읽는 몇 십분 동안 너무 집중을 한 탓인지, 지금 머리가 무척 아프다. 여기 몇 가지를 메모해 둔다. 1. 불멸 밀란 쿤데라의 소설 이름이다. 바흐친이 말한 다성성, 또는 카니발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가 등장하는 이유는 허구와 실재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매우 철학적인 통찰을 담고 있는데, 형이상학에서 문제되는 가상과 본질의 문제와 연관된다. 이는 다시 변증법적 순환과 연결된다. 2. 베르메르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관능적이다. 이러한 관능성은 로코코와..

청담동 나비

나비에서 술을 마셨다. 지하 1층이었는데, 더 밑에 조성모 작업실이 있다고 한다. 지하로 내려가는 문 앞에 여학생들이 서있다. 여학생들이라. 회사가 없어지고 난 무직자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프거나 두렵거나 ... 그렇지 않다. 도리어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우며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음에 기뻐하고 있다. 토요일이다. 종일 잠을 잤다.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다들 헤어지고 난 다음, 집 근처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셨다.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춤을 춰서 피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