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2 3

햄릿과 오필리어

오전의, 텅 빈 카페의 빈 의자 위로 내 마음을 살짝 내려놓고 나온다. 그 마음 위로 누군가의 시선이 닿고 어떤 이들의 수다와 몸짓들이 내려 앉을 때쯤 그제서야 내 자유의지로 숨 쉬기를 시작할 것이다.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겠지만, 낯익은 결론, 예상되었던 비극, 인과율적인 종말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자유로 그것을 거부하는 용기를 꿈 꾼다. 햄릿 이후 꿈마저도 죽음과 맞바꾸어야 하는인생의 숙명같은 것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햄릿이 아니고, 너는 오필리어가 아니다. 불륜같은 사랑을 하고, 천생연분같은 결혼을 하고 신탁으로 낳은 자녀들 속에서 잠들지도 모를 일. 그리고 눈을 뜨면, 오후가 되었고, 아직 카페 안이지만, 소리없이 소란스러워져 있고, 길거리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두 눈을 치켜뜨고 내 앞을 ..

예상 밖의 전복의 서, 에드몽 자베스

예상 밖의 전복의 서 (Le petit livre de la subversion hors de soupcon)에드몽 자베스Edmond Jabes(지음), 최성웅(옮김), 읻다 글은 무엇이고 책은 어떤 존재일까. 그것의 시작은 어디이며 그 끝은 언제일까. 이 형이상학적 질문은 우리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끌어당기지만, 우리는 금세 그 힘으로부터 도망쳐 나온다. 어쩌면 포기일지도, 혹은 도망이거나, 실질적인 결론 없는 무의미에 대한 경악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드몽 자베스에게서 이 질문들은 글쓰기의 원천이며 삶의 의지이며 우리를 매혹시키는 향기다. 작품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우리가 죽게 되는 미완 속에 우리를 내버려둔다. 우리에게 남은 공백은, 무언가를 쏟아야 할 곳이 아닌 견뎌야 하는 곳이다. 그곳에 자..

혼돈의 기원, 로버트 브레너

혼돈의 기원 - 세계 경제 위기의 역사 1950 - 1998 (Turbulence in the World Economy)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지음), 전용복, 백승은(옮김), 이후, 2001 갑자기 바빠진 탓에 책을 거의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읽어야지 하면서 책을 읽는다(최근 감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불성실한 책읽기와도 관련 있는 것 같고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한다. 제대로 된 시각으로 똑바로 살아가야 되는데.). 오래된 경제학 서적이라 약간 듬성듬성 읽은 감이 없진 않으나, 책을 읽는 동안, 예전에 장하성 교수와 경실련이 주도했던 소액주주운동을 떠올리며 씁쓸해지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천천히 진행된 경제 위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