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2 2

가을 하늘, 때 늦은 단상.

외출도 예전만 못하다. 풍경은 마음을 비켜나가고 바람은 내 곁으로 오지 않는다. 언어는 애초 예정된 방향과 다르게 나아가고 결국 지면에 닿지 못한 채 흩어진다. 과거와 현재, 오늘과 미래는 서로 단절되어 부서진 채 오해만 쌓아가고, 결국 시작하지 않았던 것이 좋았을려나. 에밀 시오랑이 태어남 그 자체를 저주했듯이. (그게 내 뜻대로 되었다면 ... ) 자기 전 몇 권의 책을 뒤적거리며(그 중에는 교황 요한 23세의 일기 도 있었구나), 프린트해 놓은 영어 아티클들을 정리하였다. 이것도 읽고 싶고 저것도 알고 싶고. 하지만 나는 두렵다. 내가 상처 입는 것이, 내가 못할 것이, 결국 실패로 끝나지나 않을까 하고. 그래서 정해지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며, 이미 정해진 오늘이 가는 것을 자지 않음으로 막고 있..

과학사상사, 혹은 과학사

그리스 과학은 주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순수하게 지적이었다. 그것은 정신의 내부에서 출발했고 현상을 자기 인식이라는 낯익은 말로 설명하기 위하여 그 속에서부터 목적, 영혼, 생명, 유기체 같은 개념이 외부로 투영되었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어떤 설명을 할 때 그 성공 여부는 오직 그것의 보편성과 이성을 만족시키는 능력에 달려있었다. 그리스 과학은 실험을 거의 몰랐다. 그리고 호기심을 넘어서 적극적인 힘으로 나아가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서 근대 과학은 비개성적이고 객관적이다. 그것은 그 출발점을 정신 외부의 자연에 두며,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고 새로운 개념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수학적으로 표현하고, 또 실험을 통해서 검증하기 위하여 모은 현상의 관찰 결과들을 분석-종합하여 여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