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6

쓸쓸한 아픔

팔짱을 끼고 베갯머리에 앉아 있자니 천장을 보고 누운여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죽을 거예요.여자는 긴 머리채를 베개 위에 풀어두고, 그 속에 부드러운윤곽의 오이씨 같은 얼굴을 가로누인다. 새하얀 빰에 따뜻한 혈색이 알맞게 비치고 입술 빛깔은 역시나 붉다.도저히 죽을 사람 얼굴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는조용한 목소리로, 이제 죽을 거예요, 분명하게 말했다. 나도 이제 죽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벌써 죽는 거야?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어보았다. 죽고 말고요. 여자는눈을 크게 떴다. 커다랗고 물기 어린 눈이었다. 긴 속눈썹에에워싸인 곳은 온통 검었다. 그 검은 눈동자 깊은 곳에내 모습이 선명하게 비친다.- 나쓰메 소세키, (>, 김석희 옮김, 이소노미아)중에서   나를 귀찮게 하던..

아이의 방학

방학을 했다. 이제 아이는 핸드폰의 지배를 받는다. 핸드폰을 많이 한 날과 그렇지 않는 날의 태도나 반응은 현저히 다르다. 사춘기가 왔지만, 사춘기보다는 핸드폰의 영향이 더 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난감하다. 사춘기 자녀가 있는 모든 집의 문제다. 모든 집의 문제인데, 그 누구도 정책적 해결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도리어 핸드폰을 활용한 수업을 학교에서 할 지경이다. 가령 동영상 제작 수업이나...  아이가 방학을 했다. 매일 전쟁이다. 질풍노도와 같은 방황과 고민은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그것의 해결이 핸드폰이면 안 된다. 세상이 너무 변했다. Digital Natives라고?  Digital Addiction의 다른 말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아이에게 마시멜로 효과라든가..

I fall in love too easily, Andrew Bird

나이가 드니, 이젠 쉽게 사랑에 빠지지도 않는다. 이제 사랑도 남의 일이다. 체력도 부족하고 건강도 엉망이라, 술 마시는 것도 겁나고 할 일은 많고 배울 것도 쌓여있고 새 책도 쌓여간다. 얼마 전에 사다놓은 물리학 책은 꺼내보지도 않았구나. 우주에 대한 책인데. 난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 고민인 남자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여자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에 드는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 앤드류 버드는 이런저런 음악을 연주하고 부르는 바이올리니스트다. 찾아보니 경력이 상당히 다채롭니다. 아, 나이도!  Chet Baker의 목소리말고 Andrew Bird의 바이올린과 목소리로 '나는 너무 쉽게 사랑에 빠져'를 들어보자. 이 곳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근사한 사랑이 깃들길~

misc. 24. 07

'생의 약동(elan vital)'이라는 단어에 나는 얼마나 감동했던가. 생명은 변화한다. 마치 헤라클레이토스가 파르메니데스를 거부하며 '만물을 유전한다'라고 했을 때의 그 순간이 다시 현대적 언어로 해석되고 재창조된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늙어가면서 변화한다. 그것이 우리의 본질을 이룬다.  하지만 그 변화가 반응적이면 안 된다. 외부 환경에 종속적이면 안 된다. 월요일 저녁 술을 마시면서, 사람들의 변화를 이야기했고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상당히 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와 다시 혼자 술을 마셨다. 마음이 쓸쓸했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우리는 변해야 한다. 정의라든가 하는 그런 것을 위해 싸워가며 투쟁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옳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변해가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면 ..

한국 사회에서의 리더, 혹은 신분제 사회

한국에선 대체로 마트 계산원들이 잘못된 계산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마트 관리자가 누구더라도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하는 단계에서 계산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마트 계산원들은 계산기에만 의존한다(고 들고 읽었다). 그래서 마트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마트 관리자는 잘못된 계산을 찾고 그 원인을 분석한다. 대수롭지 않은 차이라고 여길 수 있고 조금 더 오해를 한다면,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것이 사회 시스템 전체로 확대되면 큰 문제가 된다. 일선 학교에 가서 큰 소리 치는 학부모들의 문제나 동장이나 시장, 심지어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이 사회는 이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건 정치 리..

잡담 - 민희진, 의사파업, 강형욱, 대통령의 거부권

1. 민희진 인터뷰 영상을 보지 않았다. 유퀴즈에 나온 민희진을 보면서 좀 낯설다고 생각했다. 뉴진스의 자리인데, 프로듀서가 있다? 뮤지션들과 인터뷰를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보면서 혹시 그녀는 프로듀서 출신의 CEO가 아니라 스스로 예술가라고 여기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스스로 주목받고 싶어하며 뉴진스의 역량보다는 자신의 역량이 더 중요하고 부각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듯 했다. 실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바람직한 기업 리더의 모습도, 올바른 의사소통도 아니었다.  하이브는 게임 업체들이 게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가듯 보이그룹이나 걸그룹, 혹은 뮤지션을 키우고 있다. 성공적인 접근인가에 대해선 별로 고민하지 않는 듯 보인다. 게임이 아니라 사람인데 말이지. 여러모로 하이브의..

작은 화분

화분을 샀다. 서양란이 이쁘고 화사했다. 그녀에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만나지 못했다. 한 번 만나고 전화 통화를 몇 번 한 것이 다였다. 서로 바쁘기도 했고 친구 관계 이상으로 진전될 가능성도 없었다. 지독한 외로움은 거짓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어두컴컴했던 방안에 있다가 결국 그 서양란은 몇 주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이십오년 전쯤 일이다. 그녀와는 몇 번 전화 연락을 한 것이 다였지만 보기 드문 이름이기도 해서 아직도 기억나는 이름. 한 때 아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다고 여겼는데, 아는 사람이 많은 것과 외로움은 별개더라. 이젠 예전만큼 술을 마시지도 못해, 최근 1달 정도 외부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즐거운 술자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

언론이 문제다. 그런데,

한국 언론이 문제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 예전 기자들과 달리 지금 기자들의 역량이 상당히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10흘'이라는 단어를 보고 놀랐다. 예전에 '4흘'라는 단어도 놀라웠지만, '10흘'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언론사 기자가 되는 시기인가. 아니면 교육이 어떻게 된 것인가. 하긴 초등학교 시절 아이는 문서 작성을 에세이가 아니라 파워포인트로 배우고 있었다. 도대체 초등학생에게 파워포인트를 왜 가르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적분, 미분을 빼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던데, 사람들은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기반이 되는 것이 수학이며, 특히 확률, 통계, 행렬, 적분, 미분이라는 걸 ..

폴 발레리와 사춘기

세상도 많이 달라졌지만 독자층의 책읽기 버릇도 영 딴판이다. 세로 읽기가 가로 읽기로 바뀌고, 한자나 한자말보다 한글과 토박이말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다. 판을 다시 짜게 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선 괄호에 묶인 한자를 다 없애버렸다. 낱말은 귀로만 들어서도 얼른 뜻이 잡혀야지, 눈으로 글자를 확인해야만 짐작이 간대서야 말이 안된다는 생각에서이다. - 박은수, '개역판을 내면서', >, 을유문화사  행이 세로로 편집된 책이 있는가 찾아봤더니, 딱 한 권 남아 있었다. 나 또한 가로 읽기 세대여서, 가끔 절판된 책들 중에 세로로 편집된 것들을 구해 읽었던 몇 번이 전부다. 변화 속에서 있으면 그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하나이듯, 변화도 우리와 하나이다. 우리가 변하고,..

이사

이사를 했다. 빌라에서 아파트로 옮겼다. 다들 그러듯, 나도 그렇게 옮겼다.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뒤로 물러날 나이도 아니다. 아. 자본주의 안에서, 안 그래도 서로 비교하기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아파트로 가족의 거처를 옮기기란. 이번 총선 결과는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이번 정부의 무능력함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으나, 사람들은 무시했다. 무엇보다 언론들의 무책임함은 분노를 일으킨다. 지난 대선 때 그들은 이번 정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도 이 정부를 방어하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지 않자, 그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실은 한국 언론에게 철학이나 신념 따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