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72

달러, 엘렌 호지슨 브라운

달러 - 엘렌 호지슨 브라운 지음, 이재황 옮김/이른아침 베르나르 리에테르(Bernard Lietaer)는 단일 통화 시스템(유로)을 설계하는 데 조언을 하고 통화 개혁에 관한 책도 몇 권 썼다. 그는 이자 문제를 이렇게 설명한다. 은행이 당신에게 담보 대출로 10만 달러를 주었다면 거기서는 원금만 발행한다. 그 돈을 당신이 소비하면 사회 안에서 유통된다. 은행은 당신에게 앞으로 20년에 걸쳐 20만 달러를 갚으라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10만 달러, 즉 이자 부분은 은행이 발행하지 않는다. 대신 은행은 당신을 각박한 세상으로 내보내 다른 모든 사람과 싸우라고 한다. 나머지 10만 달러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주화를 제외한 모든 돈이 은행의 대출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먼저의 대출..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카포티

인 콜드 블러드 -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1. 주기적으로,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살인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방송과 신문들은 그 사건을 연일 다룬다. 사람들의 궁금함을 풀어주기 위함이지만, 실은 자신들의 수익모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자신들의 전문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그 사건의 의미와 해석을 쏟아낸다. 실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와 피해자, 혹은 그들의 가족에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하며, 아무런 예방 효과도 가지지 못하는 이야기만 떠들어댈 뿐이다. 먼 훗날, 사람들은 그런 사건들을 기억할까? 아마 정신이 나간 몇몇 보수주의자들은, 전쟁 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며, 애써 그런 사건들의 의미를 축소시킬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통..

독일 하르모니아 문디 50주년 기념앨범 50CD

[수입] DHM 창사 50주년 기념앨범 (50CD) - 여러 아티스트 (Various Artists) 작곡/DHM 미친 짓이라는 걸 안다. 이 시디를 사기 전에 나는 이미 2월에만 도서 구입으로 15만원 이상을 지출한 상태였다. 하지만 선택에 그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바로크 이전 음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그리고 종종 이 시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설레는 기분을 어쩌지 못하는 나는, 이 박스 세트를 구하지 못했음을 최근 통탄해하고 있었다. 이 박스세트는 작년 초에 수입되었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야 이 박스세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작년에는 광화문 교보 핫트렉에 자주 들리지 않았고, 주위에 클래식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없었던 탓에, 나는 이 박스세트를 알지 못하..

세계화의 폭력성,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프랑스의 사회학자. '시뮬라시옹'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중심에 서있었던 학자이다. 나는 장 보드리야르의 암울한 사회 분석을 싫어했으며, 그것이 진실로 드러났을 때의 끔찍함을 무시하면서 장 보드리야르를 전파하는 일군의 학자들을 경멸했다. 그들 대부분이 의지하는 책이나 이론은 오직 시뮬레이션 이론이었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극단적인 반-플라톤주의자이면서, (우호적으로 평가하자면) 마키아벨리와 같은 전도된 이상주의자였을 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20세기 후반 이후의 매스미디어에 의해 희석되고,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은 사라지고 미디어들에 의해 새롭게 조작된 것들이 진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하이퍼-리얼리..

그림 좋다 展 과 Propose 展 - 순수와 상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그림 좋다 展 (KAMI’s Choice: The Soul of Korean Contemporary Art) 2008. 12. 24 ~ 12. 30, 인사아트센터 프로포즈(Propose) 展, UNC갤러리 2009. 1. 8 ~ 1. 23 1. 나에게 이 두 전시는 묘하게 겹쳐져 보였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선호를 떠나, ‘순수’라는 단어와 ‘상업’이라는 단어는 상식적으로 서로 극명하게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동일한 궤도에서 움직이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즉 순수하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할 여지가 높다는 … 꽤 모순적이지만 말이다. 순수 미술에 있어서 시장(market)이 본격적으로 떠오른 것은 19세기 초의 일이다. 그 전에도 미술 시장(판화나 주문 제작의 유화를 위한)이 존재했지만, 모든 예술..

다색 빗물의 파동 - 김영민 개인전

다색 빗물의 파동 - 김영민 개인전 2009. 1. 29 - 2009. 2. 20 굿모닝신한갤러리(여의도) Untitled, 130.3X162.2cm, Mixed media on Canvas, 2008 얼마나 한참 앉아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열 살 정도 되었을 때.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비포장 길 한 쪽 구석, 오전에 내린 비로 얕고 작은 웅덩이 하나가 생겼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앉아, 바지 끝이 닿는지도, 소매 끝이 더러워지는 지도 모른 채, 맑게 갠 하늘이 빗물 웅덩이의 수면 위로 비친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바람이 부면 그 작은 웅덩이에도 물결이 일었다. 바로 옆 미루나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에 요동을 쳤고 내 작은 손가락 하나에도 흔들거렸다..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송영진(편역)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 앙리 베르그송 지음, 송영진 옮겨엮음/서광사 이 책은 질 들뢰즈(Giles Deleuze)가 "베르그송주의"(PUF,1968년)을 내고 8년이 지난 후에, 베르그송의 저작들 중에서 선별한 원문들로 구성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한 권으로 베르그송의 사상 전반에 대해서 일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이미 국내에는 베르그송의 저작들이 많이 번역 소개되어 있다. 특히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창조적 진화"도 번역되어 있으니, 베르그송에 대한 척박한 환경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베르그송의 여러 저작들을 읽기 전에, 혹은 읽은 후에, 이 책은 요긴한 선집이 될 수 있겠다. 그만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베르그송의 철학 세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시간과 존재에 대한 예술 - 온 카와라 & 로만 오팔카

살아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 심장이 뛰고 내 혈관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성을 만나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걸까?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는 일종의 가상이거나 허위일 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 그리고 그 인생을 둘러싼 모든 사건들이 시뮬라크르일 지도, 나란 존재하지 않고 나란 누군가의 눈에 비친, 누군가의 생각과 언어에 의해 형성된 어떤 픽션일 지도 모른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내 것이 아닌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늘 내가 생각했던 것은 어긋나고 내가 한 말은 오해되고 내 글은 무시되고, 내 사랑이 번번히 막다른 골목의 시궁창에 빠지게 될 지라도, 나는 내 인생을, 내 존재를..

캐비닛, 김언수

캐비닛 - 김언수 지음/문학동네 , 김언수(지음), 문학동네, 2006 쉽게, 아주 짧은 시간에, 힘을 거의 들이지 않고 다 읽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잘 읽히고 종종 흥미 있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신기하고 낯선 스토리였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스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단지 이러한 스토리로 소설을 쓸 생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확실히 나라면, 이런 소설을 쓰지도, 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책 뒤에 실린 심사평의 일부는 동의할 수 있었고 일부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몇 이들의 높은 평가과 찬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평가들이 많았고, (심각하게)스스로 내가 이상한 독자나 평자가 아..

내 마음의 무늬, 오정희

오정희(지음), , 황금부엉이, 초판3쇄 산문집을 출판한 뒤, 보름 만에 3쇄를 찍은 이 산문집을 보면서 책 읽는 사람이 없다는 게 꼭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도리어 읽을 책이 없는 것은 아닐까. 신뢰할 만한 작가가 없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휙 돌고 나오고 나온다. 일간지에 실린 광고 생각부터 오정희가 가지는 개인브랜드까지. 얼마 전 어느 신문 기사에 한국 문단은 정부가 먹여 살린다는 짤막한 시평이 실렸다. 소설 써서 정부 지원금 받고 재단 지원금 받고 하면 연봉이 한 이 천 만원 정도 된다는 웃지 못할 글이 신문에 실린 것이다. 진짜 밥벌이용 소설인 셈이다. 소설가는 소설을 출판해 독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원금 신청에 사용하고 독자는 독자 나름대로 책을 고르기도, 서점에 가서 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