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소설 19

미국의 송어 낚시,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 낚시Trout Fishing in America리처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지음), 김성곤(올김), 비채 ‘미국의 송어 낚시’氏를 만나는 것이 쉬워진 탓에, 읽기는 맥주 캔 마시기와 비슷해졌다,고 빨간 말보루 담배를 피우던 그녀가 더듬, 더듬거리며 말했다. 티브이에 나오는 걸 그룹 아이돌이 꿈인 그녀는, 반드시 예능토크쇼에 나가 칼 마르크스의 에 대해 발언할 것이라고, 다시 나에게 말을 더듬, 더듬,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건전하고 낙천적이어서 그녀가 좋다. 그녀의 꿈과 행동, 그리고 현실에 심각한 오류가 있듯이, ‘미국의 송어 낚시’氏도 그와 그를 둘러싼 소설, 혹은 이야기가 가진 치명적 결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예의가 바르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

리처드 브라우티건

태양은 누군가가 석유를 붓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다음, "신문 가져올 동안 좀 들고 있어"하며 내 손에 놓고 가서는 돌아오지 않아 불타고 있는 거대한 50센트 짜리 동전 같았다. (23쪽) 가을은, 마치 육식 식물 속으로 질주해 내려가는 롤러 코스터처럼, 포트 와인과 그 진하고 달콤한 와인을 마셨던,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기억에서 오래 전에 사라진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39쪽) 나는 그녀와 섹스를 했다. 그것은 막 1분이 되기 전의 영원한 59초와도 같았고, 아주 수줍게 느껴졌다. (52쪽) - 리처드 브라우티건, 중에서 출처: http://www.pasunautre.com/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읽으면 왠지 우울해진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주의 소설 -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Woman on the Edge of Time), 마지 피어시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1 -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민음사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Woman on the Edge of Time 1권, 2권 마지 피어시 Marge Piercy 지음, 변용란 옮김 민음사 모던 클래식 031, 032 1. 이 책은 민음사 홍보기획부의 정은년 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그것이 작년 여름(8월)이니, 벌써 몇 달이 지난 것인가! 책은 완독한 것은 올해 2월이었다. 책을 받고 몇 달은 밀린 책 읽기에 여념 없었고 그 이후에도 이 소설 읽기는 어수선한 일상의 삶에 의해 방해 받았다. 겨우 소설을 다 읽었지만, 그 이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이렇게 서평을 올린다. 이 소설에 대한 서평은 자신 없고 깊이를 가지기엔 내가 아는 지식도 부족하고 여러 문헌을 뒤져가며 연구할 만..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민음사 대단한 찬사 속에서 읽을 만한 소설책은 아니다. 하지만 대단한 찬사 속에서 이 소설을 읽었을 독자들에게 아마 그 찬사는 그대로 전달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관심과 자기 보호로 뒤범벅이 된 폭력성'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주제의식이라면,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단편은 매우 잘 씌여진 소설임에 분명하다. 그녀의 작가적 재능은 폭력적인 이 세계나 이 세계 속의 개인들에 대한 집요한 탐구 의식, 또는 진지한 성찰에 있기 보다는 번뜩이는 재치가 묻어나는 짧고 강렬한 스토리라인에 있는 듯하다(그래서 그녀의 많은 단편들이 영화로, TV 드라마로 재사용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곳에서 멈춘다...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카포티

인 콜드 블러드 -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1. 주기적으로,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살인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방송과 신문들은 그 사건을 연일 다룬다. 사람들의 궁금함을 풀어주기 위함이지만, 실은 자신들의 수익모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자신들의 전문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그 사건의 의미와 해석을 쏟아낸다. 실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와 피해자, 혹은 그들의 가족에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하며, 아무런 예방 효과도 가지지 못하는 이야기만 떠들어댈 뿐이다. 먼 훗날, 사람들은 그런 사건들을 기억할까? 아마 정신이 나간 몇몇 보수주의자들은, 전쟁 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며, 애써 그런 사건들의 의미를 축소시킬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통..

뉴욕삼부작, 폴 오스터

폴 오스터(지음), 한기찬(옮김), 뉴욕 삼부작 The New York Trilogy, 웅진출판, 1996 초판2쇄. 어둠 속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밀어 넣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을 때, 내 실수와 과오, 내 조그마한 상처, 또는 내 고귀했던 사랑마저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렇게 되었을 때, 왜 누군가가 날 찾는 것일까. 소설은 누군가를 계속 찾아 다니다 그 누군가를 잊어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실은 오래 전부터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졌고 그것을 그 스스로 선택했으며 그렇게 남은 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제 날 찾는 따위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 전부터 세상은 나의 것이 아닌 타인들의 것임을. 그..

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폐허의 도시 -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열린책들 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열린 책들 이야기는 안나 블룸이라는 여자가 그 도시로 오빠를 찾아들어가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도시는 정말 ‘폐허’였다. 그 풍경은 먼 미래, 무시무시한 핵전쟁 이후 무정부상태를 묘사하곤 하는 SF 영화들과 닮아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한 개인(안나 블룸)에게만 그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녀의 실존적 환경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SF 장르 영화의 서사구조와는 틀리다. 그렇다고해서 장르 영화와 얼마나 틀릴 수 있을까. 끝까지 달성 가능한 희망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1) 소설은 안나 블룸이라는 여자가 그 도시에 들어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그 도시를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는,..

염증

Mary Flannery O'Connor, 1925.3.25 ~ 1964.8.3 어제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식사를 많이 한 것이 원인이 된 듯하다. 그런 와중에 11시까지 일을 했고 밤새 배를 잡고 뒹굴다 급기야 아침에는 토하고 말았다. 이틀이 지나가고 있건만, 무식하게 약을 먹고 있지만, 배는 계속 아프다. 오늘 일찍 집에 들어왔지만, 몇 시간을 잤지만, 배는 계속 아프다. 아픈 몸이라. 무척 낭만적이다. 수잔 손탁의 "은유로서의 병"를 영어원서로 사서 읽고 있는데.. 몇 페이지 읽었나. 병하니, 프란네리 오코너가 생각난다. 홍반성난창으로 죽으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생의 구원이라는 테마만 생각했다니. 그리고 보면 나는 죽지 않는다면서 죽은 프랑스의 어느 소설가도 있었는데.

공중곡예사, 폴 오스터

공중 곡예사 -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열린책들 폴 오스터, Mr.Vertigo, 열린책들. '공중곡예사'라는 번역 제목은 썩 성공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미스터 버티고'나 '현기증씨'가 낫지 않을까.(그만큼 이 소설 속에서 '현기증'이라는 소재는 매우 중요하다. 소설 속에 아주 짧게 언급되지만, 주인공 인생에 있어 한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거리감'이다. 가령 고등학교 때 친구가 건네준 빨간 포장의 말보루를 가슴 깊숙이 삼키고 난 다음 펼쳐지는 거리 풍경과 팽창하는 동공과의 거리 변화 따위나 대학 때 옆에 사모하는 여자를 앉히고는 연거푸 데킬라 스트레이트 잔을 여러 잔 마시고 손을 뻗쳐 그 여자의 얼굴 위로 갖다댈 때, 손가락 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