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27

금요일이 가지는 어떤 공포

금요일, 5시에 일어났다. 아직 어두울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도시는 환해 있었다. 2주 정도 청소를 하지 못한 탓에, 한 명, 옐로우빛깔 사내가 푸른 곰팡이처럼 서식하는 작은 빌라에는, 온통, 낡은 먼지들과, 이리저리 나뒹구는 시디들과, 이미 그 존재의 위력을 잃어버린 LP들, 읽다만 하이데거, 여러 권의 미술 잡지와 도록들로 채워져 있었다. 마치 형이상학적 대기의 밀림 같이 느껴졌다. 지난 계절 벽에 걸어놓은, 철 지난 겨울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사각형으로 구획지어진 밀림 속에서, 한 달, 두 달 밀린 여러 고지서들을 한 쪽에다 밀어제치곤, 브람스와 슈베르트를 들었다. 이른 아침, 낮게 깔리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향이 진한 커피를 마셨다. 육체는 그간 쌓인 피로를 못 견뎌했으며, 정신은 얇게 흐..

사진 몇 장

점심 식사를 했다. 사무실 근처에서의 점심 식사는 대체로 무의미하거나 우울하거나 쓸쓸하다. 하루 종일 기획서를 쓰고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고객이나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를 협의한다. 어젠 신사동에 있는 어느 갤러리에 들렸다. 그 갤러리의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한다. 회사 일에, 아트페어 준비에, 이젠 갤러리 일까지 해야 하는 건가. 흥미가 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 몇 장을 올린다.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100%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일요일 오전이 전부다. 마지막 연애도 오래 전에 1년을 지났고 이젠 2년을 향해 달려간다. 일상을 꽉 짜여져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가끔은 치명적인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이 지상에서 살아온 시간이 늘어나는 것과 비..

바쁜 주말

15일 스승의 날이라, 아트페어 준비 행사를 끝내자 마자 바로 수서까지 내려갔다. 수서에서 새벽까지 있다가 홍대로 넘어와, 맥주 한 잔을 더 하고 집으로 왔다. 토요일엔 오랜만에 오후까지 잠을 잤다. 그리고 밤에 다시 간단하게 맥주와 와인을 마셨다. 오늘, 일요일 아침에는 일찍 가평에 있는 쁘띠 프랑스엘 다녀왔다. 너무 먼 거리인지라, 아침 9시 반에 출발했으나, 그 곳에서 일을 보고 넘어오니 오후 4시 가까이 되었다. DSLR 카메라를 들고 갔으나, 사진을 찍을 여유는 없었다. 저녁에 잠시 잠을 잤다가, 밤 9시에 일어나 라면 하나를 끓여먹곤 지저분한 내 방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미네르바 기사를 프린트해서 몇 구절 읽었다. http://www.nytimes.com/2009/05/16/..

환상 버리기

종종 살아가다 보면,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한 결과 앞에서 좌절할 수도 있고, 곤혹스런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만드는 건 외부적인 요인 보다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경우가 더 많더라. 오늘 오후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휴대폰 전화는 계속 오고 몇 가지의 일을 동시에 신경 써야만 했다. 멀티태스킹의 환상을 버린지 오래,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충실히 하려고 하고 있다. 대기가 투명할 땐, 서재 정리하면 참 좋은데 말이다. 대체로 오래된 고정 관념이나 습관, 그리고 환상을 버리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일민미술관 안에서 밖을 찍은 풍경.

현실 정치, 장자연, 그리고 나

요즘 한국을 살아가면서, 왜 이렇게 낯설고 힘들까 곰곰히 따져보았더니, 92학번인 나는 사회생활을 IMF 때 시작해 DJ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쳐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에도 현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피부에 와닿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이론적인 수준이었고 현실 정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사회 생활을 해보니, 견고하고 철저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고 마르크스주의를 새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대학 시절, 데모 하지 않는다고 다른 친구들을 왕따시키고 공격하던 이들 대부분은 지금 너무 평범하게 변해버려, 너무 낯설고 도리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좌파라는 건 아니다. 나는 확실히..

메이데이의 출근, 그리고 연휴

천천히 집을 나섰다. 지난 밤 숙취가 풀리지 않아서였고, 노동절이라는 핑계로 다소 여유를 부리고 싶어서였다. 지하철 대신 김포공항에서 삼성동까지 오는 공항버스를 탔다. 역시 연휴의 시작인지라, 88도로는 꽉 막혔고(여의도 구간은 현재 공사 중이라 한 차선을 막아놓아 더 막히고 있다), 강변북로도 사정은 비슷했다. 마치 연휴의 시작이 아닌, 그저 평범한 금요일 오전 같았다. 혼자서, 나이가 이만큼 들고 보니, 긴 연휴가 불편하기만 하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벗들도 결혼을 하든지, 연애를 하든지, 외국으로 나가든지 한 탓에, 누군가를 불러 술 한 잔 마신다는 것도 불편한 일이 되었다. 어디 혼자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있을까 싶다. 오전에 한강 변을 지나는데, 하늘을 나는 브이자로 나는 새떼..

안드로메다같은 일상의 연속

매우 피곤한 날들이 있었다. 마치 내 일상이 늦가을 낙엽처럼 사소한 바람에도 흔들려 떨어지는 것처럼, 떨어져 무심히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으깨지는 듯한 느낌의 날들이 있었다. 종일 사무실에서 이슈들이 난무하는 회의에, 까다로운 문서 작성에, 고객이나 대행사와의 전화에 시달리다가, 저녁에는 바짝 긴장해서 만나야만 하는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 도수가 높은 술 한 잔에, 이어지는 2차에, ... ... 이런 날이 하루 이틀 연속되면, 피로와 스트레스에 지쳐 거실 불을 켜놓은 채,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곤 했다. 책들로 어지러진 서재는 이미 책들을 수용할 자신의 역량을 한참을 벗어나, 거실에까지 책들이 어지렇게 널린 어느 빌라 4층, 오랜 독신 생활의 사내가 그렇게 잠에 들었다. 프로이트의 견해대로라면, 나는..

중독

요즘 부쩍, 자주, 곧잘, 심심치 않게, 흔하게, 우울해지곤 한다. 집 청소를 하지 못한지, 2주일 째. 냄비에 담긴 음식물은 미동도 없이 2주일 째 그대로 방치되었고, 금붕어들이 노는 어항의 물도 2주일 째, 그대로다. 일요일마다 배달되던 신문은 요금 미납으로 끊겼고 그 누구의 편지도 오지 않는 우편함에는 딱딱한 표정을 가진 고지서들만 쌓여가고 있다. 몇 주 전 사놓은 미국산 피노누아 와인은 어두운 찬장에서, 어떤 기분으로 무너져가고 있을 지. 다시 젊은 마음을 가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오래된 친구들 얼굴 깊은 곳에서 나이를 느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참 이뻤던 친구가 무표정한 시선으로, 이 세상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할 때면,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까마득한 후배들과 아직도 종종 말이 통하지 ..

아트페어 준비와 구인

낮에는 Web Service 회사엘 다니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동시에 여름에 할 아트페어(Korea Art Summer Festival 2009) 준비도 하고 있다.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트페어 준비는 주로 주말에 한다. 그러나 이것도 내가 시간이 빌 때에나 가능할 뿐. 사정이 이러다 보니, 아트페어 준비 일이 많이 밀렸다. 이런 연유로 아트페어 쪽 일을 도와줄 친구를 구하고 있는데, 예상보다 어렵다. 대학을 졸업한지 몇 년 이내인, 경험은 적으나 배우려는 열정이 넘치는 여자 친구로 뽑으려는 중인데, 막상 일이 어렵게 느껴진 탓인지 힘들게 뽑은 한 친구는 일을 좀 같이 해보려고 하니, 하기 어려울 것같다고 말한다. 아트페어 기획이나 운영을 한 번 경험해보면,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배울 수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