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27

토요일 아침의 단상

미디어법이 통과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황당했고,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그 기분을 떨쳐버리고자, 글 하나를 썼는데, 차마 블로그에 공개할 수 없더라.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국민에 그 국회의원' 정치판이 개선되길 바란다면, 먼저 스스로의 언행부터 되돌아보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과외로 대학 가는 시대를 끝낼 것'라는 표현은 너무 형편없지 않은가. 정말 끝낼 수 있을까? 다시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대학 가는 시대에 과외가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일선 학교에서의 보충수업도 일종의 과외가 아닌가. 여튼 기분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선생님께서 책을 내셨다. 다음 주에 책이 일선 서점에 깔릴 예정이다. 내가 서평을 올린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올린다면 몇..

正義의 길

문자 한 통을 보내고 난 뒤, 어지러운 방안을 쳐다보았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어디에서부터 해야할 지 난감하다. 몇 주째 몸상태가 좋지 않아, 집에 들어와선 잠만 잔 탓이다. 오전에 세차게 퍼붓던 비는 잠시 멈추고 바람만 요동치듯 집 안을 휙 스치고 지나간다. 그런데 살아간다는 게 뭘까. 하루종일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말에도 일하고, 그것도 모자라 틈만 나면 책 읽고 글 쓰고 음악은 집중해서 듣고 ... ... 참 재미없는 삶을 사는 건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을 읽고 나면,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다는 것에 경악하고 만다. 그 앞에선 보여주어야 할 것만 있는 듯 싶다. 아마 리 호이나키도 보여주기 위해서 산 것은 아닐까.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 리 호이나키 지음, 김종철 옮김/녹색평론사 ..

Beautiful day

They were silent for a while. "Beautiful day," she then said through a sigh 숨쉬기 조차 힘든,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더위와 땀, 거친 숨소리와 낯선 화장품 향과 향수 내음이 실내 에어콘 소리와 뒤범벅이 된 지하철 2호선 객차 안에서 서서, 소설을 읽다가 한참을 중얼거렸다. 내 기묘한 일상이 너무 어색한 요즘이다.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환상 소설의 한 토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낯선 언어의 쓸쓸한 반어는 내 시선에서 한참을 머문 후, 다음 페이지로 향했다.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어느 수요일의 정오는 슬프게 흘러간다.

요즘

1. 완전 병자 모드다. 몇 주전부터 어깨결림, 목 통증이 있었는데, 지난 주 월요일 침 맞고 난 뒤, 더 심해진 것같다. 잠시 감기 때문에 잊고 지내다가, 오늘 아침 돌발적으로 통증이 심해졌다. 지난 주의 감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목은 계속 아프고 불편하다. 아픈 몸 따라 집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엉망이 되어버린 집 따라 마음도 엉망이 되어, 손을 쓸 방편이 없다. 혼자 사는 남자에게서 육체의 건강은 인생의 전부가 되는 걸까. 혼자 사는 생활, 이제 좀 지긋지긋해졌다. 2.  몇 개의 일을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회사에선 도통 여유를 부릴 겨를도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밤 늦게까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 뿐. 올해 내내 이런 모드이지 않을까 싶다. 3. 고질적인 늦잠이 사라졌다. 출근 시간을 ..

금요일의 출근

김포공항 옆에서 2호선 선릉역까지 오는 건, 꽤 고역이다. 지하철 안에서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읽었다. 대학은 오직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뿐이며, 교수들은 오늘날의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보여질 수 있는 것 사이의 차이를 아는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다고 나는 느꼈다. (13쪽) ... 때때로 우리는 석공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돌을 깨는 데는 의심이 깃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페이지마다 의심과 두려움 - 캄캄한 공포가 있다. - 조셉 콘라드 (3쪽) 그 사이 많은 책들을 읽었다. 허균의 누이였으며, 조선 시대 가장 뛰어난 여류 시인으로 알려진 허난설헌에 대한 책을 읽었고, 조르주 아감벤의 '호모 사..

지난 일요일, 시루SIRU에서의 한 때

와인을 즐겨 마신 지도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아주 우연히 와인에 빠졌다. 그 이후 와인 가이드 북만 몇 권을 읽었고, 거의 매주 와인을 마셨다. 와인에 빠지는 것만큼 위험한 짓도 없다. 재정적인 위기가 오기도 했고 보관을 잘못하는 바람에 값비싼 와인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와인을 알게 된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지난 일요일에는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와인 모임을 가졌다. 일행 중에 사진을 찍던 이가 있어, 사진 몇 장을 올린다. 시루(SIRU)라는 곳에서, 오후 3시에 만났다. 천정 위로 빼곡히 빈 와인병이 쌓여있다. 제법 좋은 인테리어 아이디어다.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 1병, 보르도 AOC 1병, 칠레산 쉬라즈 와인 1병. 그 뒤로 보이는 디켄터.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는 디켄팅을 ..

모짜르트...

요즘 너무 바쁘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책 두 권 읽고 리포트를 하나 써야 하고, 모짜르트의 대관미사(KV 317)을 무려 10번은 듣고 가야 한다. 외워오라고 시키지 않은 것만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을 정도니. 내일까진 여름에 있는 아트페어를 위한 몇 개의 원고를 써야 하고, 회사에서 PM을 맡은 다른 프로젝트에 몇 개의 다른 업무가 추가될 듯 하다.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개인적 일엔 무관심해져 버렸다. 그러다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요즘 내 사는 모습이 딱히 좋아보이지 않아 보인다. 쓸데없는 자기 반성이랄까. 근처에 사는 친구라도 있으면 소주라도 한 잔 하면 딱 좋은 밤이다. 사무실 근처에서 사온, 브랜딩된 원두 커피 향이 좋다. 오디오에 모짜르트의 대관 미사 CD를 올려놓고..

대학 시절

지난 주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가만히 있어도 목 둘레와 어깨가 아프다. 해야 일은 많고 내 마음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80년대 후반, 성음레코드에서 나온 팻 매쓰니의 레코드를 낡은 파이오니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작고 네모난 창으로 밀려드는 6월의 축축하고 선선한 바람이 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에 아파한다. 잠시 감기에 걸릴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혼자 있으면서 아픈 것 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아주 가끔, 이 방 안에서 내가 죽으면, 나는 분명 며칠이 지난 후에 발견될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일까. 르 끌레지오의 젊은 날에 발표한 소설 '침묵'은 자신이 죽은 후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현의 번역을 좋아했는데, 복사해놓은 종이는 잃어버렸고 김화영의 번역본은 어디에 있는지 서재..

우리가 꿈꾸는 여유

(갤러리 아트링크의 정원) 일요일 낮에 안국동, 사간동 갤러리들을 돌아다녔다. 청바지에 가방을 매고, 가방 속엔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철부지 같은 공부의 열정을 증명하듯 몇 권의 책과 노트, 그리고 철 지난 니콘 D70 카메라가 있었다. 수요일 오전, 지난 일요일의 한가로움이 쓸쓸하게 그립다. 회사 건물 1층에 나가, 몇 주만에, 극소량의 나프틸아민, 니켈, 벤젠, 비닐 크롤라이드, 비소, 카드뮴을 먹었다. 그러면서 내 일상을 탓했다. 고상한 척 하지만, 고상하지 않고, 강한 척 하지만 절대로 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100%,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정말 비극적이고 슬픈 곳으로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아..

生의 스산함을 지나

고등학교 때, 나는 일요일마다 경남도립도서관에 갔다. 창원 공단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지나 아파트 단지들이 시작되는 곳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다. 그 곳에서 탐독했던 책은 헤르만 헤세이거나 오래된 세계문학전집, 혹은 근사한 제목을 가진 수필이었다. 종종 이쁜 소녀가 도서관에 오길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지만,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철부지 같은 공상이었다. (하긴 아직 그 공상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같지도 않지만) 주말에도 찾는 사람이 없었던 그 도서관의 복도는 어둡고 스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책들 속에선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고 있었다. 어제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