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27

misc - 2006. 04. 16

마산 창동거리에서 어시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 동성동인가, 남성동 어디쯤 있었던 레코드점에 들어가 구한 음반이 쳇 베이커였다. 그게 94년 가을이거나 그 이듬해 봄이었을 게다. 그 때 우연히 구한 LP로 인해 나는 재즈에 빠져들고 있었고 수중에 조금의 돈이라도 들어오면 곧장 음반가게로 가선 음반을 사곤 했다. 어제 종일 쳇 베이커 시디를 틀어놓고 방 안을 뒹굴었다. 뒹굴거리면서 스물두 살이 되기 전 세 번 정도 손목을 그었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삶의 치열함이라든가 진정성 같은 거라든가. 스무살 가득 나를 아프게 했던 이들 탓일까. 아직까지 인생이 어떤 무늬와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 도통 아무 것도 모르겠다. 문학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집트 예술가의 진정성과 현대 예술가의 진정..

안드로메다 은하 여행자 보험 판매 중.

메신저 닉을 '안드로메다 은하 여행자 보험 판매 중'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메신저로 여행자 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다들 무슨 보험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안드로메다 은하계를 여행할 때, 가입해야한느 여행자 보험'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보험 판매를 계기로 내 인생의 대박이 시작될 지도 모르겠다. 기대해 봄 직하다. 이 보험에 가입하고 싶은 이는 날 메신저 등록해서 가입하겠다고 하면 된다. 메신저는 프로필에. 구체적인 서비스 내역과 약관, 보험금 등은 쪽지로. (* 은하계 최신 보험 상품이라..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스럽게. )

근황

요즘은 주로 클래식 음악만 듣는다. 베르디의 오페라는 너무 좋다. 요즘은 보라매 공원에 있는, 낡은 건물의 도서관에 간다. 요즘은 저금통에서 동전들을 잔뜩 꺼내어 소비한다. 도서관 출입비 삼백원. 자판기 커피값 이백오십원. 동전으로 인생을 가리고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면도를 한다. 면도할 때마다 인생 모양으로 턱 수염이 난 것에 경악한다. 요즘은 책만 읽는다. 허먼 멀빌의 모비딕을 읽고 뽈 발레리의 산문을 읽는다. 요즘은 그림책을 많이 본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영어로 된 글을 읽는다. 요즘은 핸드폰을 잘 받지 않을 뿐더러 아예 꺼놓기까지 한다. 요즘은 하늘 볼 일도 땅 볼 일도 없이 뿌옇게 변해가는 거리만 본다. 거리 속에서 추악한 모습들을 한 영혼들을 피해다닌다. 요즘은 가슴이 텅 비었다는 생각..

앤디 워홀

머리가 무척 아프고 몸이 무겁다. 낮게 깔린 하늘 탓인가. 아니면 지쳐가는 세상 탓인가. 오늘 오후 혼자 이리저리 방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어제 밤 늦게라도 맥주를 마실 걸 그랬나. 그런데 오늘은 어디 가서 혼자 노나. 책이라곤 하이엔드오디오컴플릿가이드만 들고 왔는데 말이다. 갑자기 허공을 감싸고 있는 공기의 무게가 느껴진다. 공기의 무게가. 날 짖누르는 공기 알갱이들의 무게가. Andy Warhol (1930-1987) Self-Portrait 1979 Instant Color Print 20" x 24"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출처: http://www.zootpatrol.com/index.php/2009/12/andy-warhol-polaroids-..

일과 인생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나에게 일이 있다는 건, 글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아침에 일어나 티브이를 보는데, 독일 뉘른베르크에 있는 소세지들이 나왔다. 뉘른베르크라고 하면 뒤러의 고향이었던 것같은데. 뒤러와 소세지라. 많은 소세지들을 보면서 침을 삼켰다. 오늘 저녁에는 집에서 소세지를 구워먹어야겠다. 12월, 올 1월,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있다. 뭐, 그렇게, 슬픈 일이 있다고, 뭐, 그렇게, 꿀꿀하다고, 술을 마셔대는 걸까. 술 마시고 노래하면 그렇게 우울해지면서 말이다, ... 술 마시고 날카로운 면도날 하나 가슴 주머니께에다 숨기고 거리를 걸으면서 ... 세상은 너무 끔찍해서 눈을 뜨고 볼 수 없다. 저녁, 소세지를 먹으면서 하나비를 빌려다 봐야 겠다. 요즘 통 옛날 영화만 보는 것이, 나도 ..

계절과 계절 사이

01. 가을이 오면 그대 울게 되리, 가을이 오면 그대 옷자락 끝을 붙잡고 바람 속에 둥지를 틀리, 가을이 오면 그대 눈물 얼어 심장이 되고 그대 눈동자 갈색으로 늙어 빛바랜 훈장이 되리, 그대 향한 이 마음 주춤거리는 사이, 아, 가을은 무섭게 내 가슴 도려내리니, 손가락 자르고, 발가락 자르고, 그대 위해 글을 쓰지도, 그대 향해 걸어가지도 못하게 하여, 그대 향한 이 마음 식히리라. 02. 오랫만에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순간들이 모여있는 곳이 계절과 계절 사이이다. 이틀 전엔 밤을 세워 공부를 했고, 어젠 새벽 한 시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보통 일어나는 시간이 오전 11시쯤이니,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것은 ..

순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01. 오후와 저녁 사이에 난 경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그리고, 새벽과 아침 사이 난 중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난 달렸 다. 그러나 내가 달리지 않더라도 시간과 시간 사이는 물결처럼 흐른 다. 하지만 난 달렸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된 순간, 그것 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그리 고, 이때까지 그 유일한 일을 난 희망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 림자일 뿐이다. 희망의 그림자. 난, 아니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세계의 본질은 '절망'이다. 그 절망을 만든 것은 우리들 옆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단 지 희망의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