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27

잡다한 일상

며칠 부모님께서 지난 주에 서울 오셨다가 어제 내려가셨다. 고향 집에 전화를 하고 난 다음, 운동을 했다. 거의 열흘 만에 운동을 했는데, 온 몸이 쑤셨다. 결국 아침 늦잠을 잤고 회사엔 지각을 했다. 몸이 피곤할 땐, 딸기와 같은 달콤함이 그리워지고 마음이 쓸쓸할 땐, 쓰디쓴 술이 그리워진다. 사무실에 와서 커피를 마신다. 집에선 버릴 책들을 꺼내놓는다. 몇 권은 이미 사라졌다. 쓴 술만 마신다. 러시아의 겨울을 견디고 한반도의 봄 속으로 들어온 보드카 두 병. 낡고 오래된 오렌지 쥬스와 만나,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이번 주말에는 전시 몇 개를 챙겨볼 예정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 다소 지칠 지도 모르겠다.

이스탄불의 바다

며칠 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몇 달만에 처음, 평일 음주를 했다. 홍대에서 1차, 신촌에서 2차를 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방화동 집까지 와서 3차를 했다.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너무 바빠서 그런 걸까. 실은 여행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일로 갔던 이스탄불, 다시 가고 싶다. 어젠 이스탄불에 사는 젊은 화가의 전시 소식을 메일을 통해 받았다. 이스탄불에 전시보러 가고 싶다. 올핸 조금 정갈하고 규칙적으로 살고 싶은데, 의외로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 3월말이 되니, 내 일상의 긴장이 다소 떨어져 간다. 다시 추스려야 겠다. 이스탄불 곳곳에 이슬람 사원(모스크)가 있다. 그런데 이 모스크도 바탕에서는 로마의 바실리카가 숨겨져 있다면? 문..

Dindi

이마트에서도 원두커피를 파는지 몰랐다. 어느새 원두커피도 대중화된 셈이다. 몇 번의 유럽 출장으로, 입에 원두커피가 붙어버렸다. 그 사이 터키에서 물 건너온 차와 스리랑카에서 넘어온 홍차가 그대로 먼지를 먹고 있는 중이다. 어디 찻집에라도 줘야할 판이다(혹시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마트에서 파는 원두커피의 품질과 맛은 '글쎄'올시다. 딱히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그런데 원두커피, 마시면 마실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것이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끓려 증기를 올려 뽑아내는 커피를 마시다가, 그 다음에는 커피를 망으로 된 부분에 넣어 뜨거운 우려먹는 방식으로, 요즘은 드랍 커피를 먹고 있다. 이 중에서 드랍커피가 제일 낫다. 필터 종이에 대한 불만, 주전자에 대한 불만이 늘고 ..

초겨울의 빛깔

내 서재가 있는 곳은 김포공항 근처의 작은 빌라 4층이다. 창 밖으로는 빼곡히 들어차 있는 빌라들의 옥상과 나즈막한 산이 보이는 것이 전부다. 12월말의 햇살이 건조한 색채의 빌라 외벽에 닿아 미세한 소리들을 만들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읽은 책, 읽지 않은 책들이 오래된 먼지에 뒤섞여 내 빈곤한 영혼과 내 거친 폐를 위협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지만, 실은 나는 '아름다운 침묵'을 배우고 싶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순수한 열망이 전달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우리가 가진 언어의 한계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백 년 전 소쉬르를 기억해내도 충분할 것이다. 이런 날 멘델스존과 자클린 드 프레는 사소한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 연말 근사한 공연이라도 한 편 보러갈 생각이었는데, 불행하게도..

심한 스트레스와 조절

약 3주 정도 매우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냈다. 그리고 오늘 그 일을 끝냈다. 일은 많고 시간은 없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일이 잘못 되기라도 하면, 내 책임이 될 상황이었다. 이래저래 일을 끝냈다. 일을 끝내는 그 날, 면접도 봤다. 이러는 동안에도 내 규칙적인 생활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루에 3시간을 잘 때조차 운동을 했다. 그 사이 나에게 예술의 역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너무 반가웠다. 그 일로 인해 지쳤던 내 마음이 다소 상쾌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회사를 다닐 때 면접을 보고 들어갔던 적이 없다. 면접이라고 해 봐야, 사장, 혹은 담당 임원과의 약식 인사 정도였다. 한 번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원만했고 성과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사람을 뽑아본 경험이 있는..

일상

파리에 계신 작가의 메일을 받았다. 내년 2월에 일본으로 간다고 하니, 내년 일본에서 볼 수 있을 것같다. 남편은 프랑스 작가인데, 7~8미터 길이의 작업을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을 구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동경에 계신 noi님께도 연락해야지. 아참, 아직 책을 읽지 못했다. 빨리 읽고 서평을 올려야 겠다. 한 번 잡으면 놓지 못할 책임을 알기에 좀 태평스러웠다. 서문은 읽고 서가에 놓아둔 상태다. 이젠 시차엔 적응한 것같은데, 잠자는 시간을 놓치면 잠을 통 자지 못한다. 오늘도 벌써 새벽 두시 반이다. 오후엔 오랜만에 옷을 샀다. 겨울 옷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없다는 걸 며칠 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운동화도 한 켤레 샀다. 운동화라기 보다는 트래킹화. 피트..

황혜선 - 기억의 창, 이화익갤러리

HAESUN HWANG 기억의 창 황혜선 2007.9.12 - 10.2 이화익갤러리 www.leehwaikgallery.com 시간은 흘러간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아파하고 숨을 쉬며 움직인다. 이러한 운동이 끊김 없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때로는 당혹스럽고 때로는 놀랍다. 황혜선의 비디오 아트는 시간과 운동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지만, 그 전에 그녀의 시선은 디테일한 일상의 무미건조함에 대한 반발로 구성된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비디오 아트를 넘어선 낯선 즐거움을 안겨준다. ‘기억의 창’이라는 제목에서 환기하듯이, 그녀의 이번 전시의 주된 테마는 일상의 기억들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다양한 매체와 작업 속에서 우리에게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인해 그녀의..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 크~. 안경테를 뿔테로 바꾸었다.살아있음을 알리는 셀프카메라. 일요일 오후 늦게 국제갤러리에 갔다.바스키아의 작품 앞에서, 바스키아라는 인물이 나와 무척 친했던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생에 친구로 지냈나?)그의 작품이 낯설지 않고 친숙해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런데 바스키아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이토록 매력적일 수가. ㅡ_ㅡ;;;그런데 왜 나와 인연 닿는 이는 없는 걸까.

일상의 힘

하루. 하루. 하루. 하루. 이 시간-존재'들'이 어떻게 흘려가는 것일까. 아니 무슨 까닭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이들이 흘러가는 것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계집같은 하루가 내일을 향해 가는 것에는 하루 뒤에서 나쁜 마음을 품은 사내가 쫓아오는 건 아닐까. 퇴근 후 사무실 근처 까페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따뜻한 에스프레소 더블. 그리고 차가운 에스프레소 더블. 연거푸 마신 두 잔의 커피로 어둠 속에서도 나는 자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환함 속에서의 졸음을 견디지 못했다. 시가를 얻었다. 쿠바에서 바다 건너 육지 건너 여러 차례 비행기를 탄 끝에 나의 손에까지 당도한 시가. 시가에 불을 붙여 한 모음 빨아땡기자, 담배잎을 말리던 쿠바 사람들의 땀냄새가 나는 듯 ..

까칠까칠. 내 인생

요즘. 밤이. 무서워. 라디오를 틀어놓고. 잔다.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 제작되어 출시된 캔우드리시버에 물려놓은 작은 에어로 스피커로. 어느 허름한 빌라 4층 방 새벽. 라디오는 계속 이어진다. 잠을 자다 문득 놀라 잠에서 깰 때. 혼자라는 느낌을 가지지 않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 셈이다. 그렇게 밤 곁에 라디오 소리가 흐른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계속 하루가 가면. 상처는 아물고 새 피부가 돋고 나이를 먹겠지. 그러면서 잊혀지고 잊혀지고 잊혀져서 결국 잊어버리게 되겠지. 하지만 잊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늘 옆에서 생생하게, 생동하는 것들이 있다. 잊고 싶은 내 의지와는 무관, 아니 반비례하여 더욱 커지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럴 때일 수록 내 마음은 까칠까칠해지고 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