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90

독재라고 불리는 이 나라

우연히 받아보기 시작해 이젠 끊을까 생각하고 있는 신문, 중앙일보에 이라는 칼럼이 실렸다. 단국대 영문과 오민석 교수의 칼럼이다. 종종 뛰어난 산문으로 가끔 읽는 재미를 선사하는데, 이번 칼럼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적었더라. "독재타도"라는 말도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이 말이 진정성을 가질려면 이 말을 하는 주체가 이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체포, 구금, 고문, 죽음 등의 공포를 경험할 수도 있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이 말엔 그런 처절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그리하여 이 말은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고난의 삶들을 횐기한다. 그러나 지금의 누구가 이런 말을 해도 잡혀갈 일이 없다.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울려퍼지는 이 말이 공허하고 우스꽝스러운 이유가 바로 ..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Representations of the Intellectual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최유준(옮김), 마티 사진 출처 - http://www.h-alter.org/vijesti/remembering-edward-said 나이가 들어 새삼스럽게 애정을 표하게 되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다. 대학 시절, 을 읽었으나, 그 땐 그 책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인문학은 나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건 이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새삼스럽게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으며 감탄하게 되고 당연한 일.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사이드는, 어쩌면 그의 인생 전체가 20세기의 거대한 갈등 ..

왕따의 정치학, 조기숙

왕따의 정치학조기숙(지음), 위즈덤하우스, 2017 정치학이라는 단어가 있어 정치학 이론서라고 오해하기 쉽다. 더구나 아래 동영상을 보면 꽤 전문적인 정치 이론서라는 면모까지 풍긴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이 책은 팟캐스트 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기초로, 조기숙 교수의 개인적인 경험들과 의견(노무현과 문재인에 대한 왕따 현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언론사들의 사례들,이해를 돕기 위한 서구 정치사의 변화와 관련된 이론들이 다소 어수선하게 전개되는 대중 정치 서적에 가깝다. 지식인 중에 이명박과 노무현이 다르지 않다며 '노명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최근에는 친박과 친문이 패권주의적이라는 점에서 같다며 반문연대를 지지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흑백을 구분하지..

(정치)평론가의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지금 페이스북은 정치 싸움 중이다. 각자 편을 나누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야기를 퍼다 나른다.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여는 즐거운 이벤트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한국의 정치 지형은 너무 형편없고 몇 명의 후보는 누가 봐도 함량미달인데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만만치 않다(일부 국민의 정치에 대한 이해나 식견이 한참 모자른다고 볼 수 밖에 업다고 말하는 너무 심한가. 하긴 트럼프도 만만치 않았으니, 여기나 거기나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도덕 수준은 형편없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치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정치에 대한 이해나 분석력이나 판단이 희미해지는 듯 싶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학자나 정치평론가, 전문가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

대의민주주의 - 저질이 되어가는 한 편의 연극

오랜만에 르몽드 디플로마크 한국어판 4월호를 읽으며 자크 랑시에르의 인터뷰 일부를 옮긴다. 끔찍하고 지독한 분석이지만, 동의하게 되는 건, 실제 이렇게 변했는지도 모를 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쎄다. 어떻게든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으면 안 된다. 그냥 선거 때 반짝하고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계속 지켜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참여해야 한다. (참으로 말은 쉽구나, 쉽지!) "대의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애매모호한 성격 외에도 국민들이 대표자를 선출함으로써 자신들을 표현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민은 정치과정에 선행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의 결과물이다. 어떤 정치 시스템을 갖추느냐에 따라서 그에 따른 국민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그 반대가 ..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박종훈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박종훈(지음), 21세기북스 몇 해 전에 나온 책을 이제서야 다 읽는다. 이미 칼럼을 통해 박종훈 기자의 통찰력 있는 글들을 읽었던 터라, 책을 읽는 과정은 마치 복습하는 느낌이었다. (칼럼 주소: http://news.kbs.co.kr/news/list.do?mcd=0849#1) 유명세를 치른 책이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테고, 읽은 사람들은 다 읽었을 것이다. 정작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들은 내가 아니라 저 쪽에 있는 사람들인데. 흥미로운 것들은 경제전문기자(실은 박종훈 기자만 말하겠는가!)가 지적하는 사항들과는 정반대로 국가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국가에서 홍보하고 대단한 성과를 내는 것처럼 포장하는 여러(더 많겠지만) 잘못된 정책들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

비판의 자유, 혹은 메릴 스트립 수상 소감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는 망가졌고 시스템은 과거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무척 당혹스러웠다. 다행인지 몰라도, 작년 하반기. JTBC의 용감한 보도, 그 이후 이어진 촛불 집회가 있었다. 아마 그것마저 없었다면 계속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것이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조금의 식견이 있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힘 있다고 믿었던 정치인들은 권력 앞에 무능력했고(공무원, 검사, 기업인들을 모두 한 통속이 되어 부패해졌고) 평범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야 비로소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하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 언론들은 정신차리지 못했으며, 학교는 무너졌고 그 곳의 실질적인 리더인 교수들은 가장 추악한 면모를 드러냈다.(청와대..

10월 30일 단상

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이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모한 용기에 뒤이어 오는 경제적 고초와 무참한 절망, 패배감이 아니라 빠르고 현명한 포기였다. 그리고 그 포기 대신 내 포기는 종북들과 빨갱이들 때문으로 몰아가면 되었다. 지난 잃어버린 10년 정권으로 인한 것이면 되었다. 헬조선도 경제에 뛰어나지 못한 진보 정권으로 인한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엎지르진 물이고 뒤짚기엔 너무 강력하다. 그러니 왜 나에게 꿈과 희망을 밀어넣는가! 나에게 필요한 건 한 끼 밥과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와 종편 TV에서 틀어대는, 나보다 불쌍하고 처참한 북한 사람들의 실상이다. ..

어떤 단상

총각 시절에는 직장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받는 돈이 적거나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제서야 경영의 가치나 기업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대체로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 결정의 피해는 불행하게도 회사 구성원들이 진다. 그러나 작은 회사의 경우에는 (약간 달라서) 경영진이 책임지고 아예 집안이 망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기업 경영과 연관된, 잘못된 정치적 관행(뇌물 같은 것들)에 대한 책임은 이상하게도 기업가들만 진다. 정치가나 행정가들은 교묘하게 기업가들의 마음을 움직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고,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그 책임 대부분은 기업가나 기업, 더 나아가 그 기업이 있는 지역사회가 진다(대우조선처럼)..

종이신문, 그리고 한국 청년 잔혹사

종이신문을 구독한 지 몇 달이 되었다. 그 전에는 모바일 포털사이트나 Social Media, 특히 페이스북을 통한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이럴 경우 미디어 편식이 발생한다. 또한 예전이라면 스포츠신문을 읽어야만 볼 수 있는 기사만 읽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처럼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나는 스포츠신문을 읽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디지털을 통해선 그냥 스포츠신문만 읽는 느낌이다. 그만큼 엉망이 되었다. 더구나 제대로 된 기사문을 읽을 일이 줄어든 셈이다. 다시 종이신문을 읽기 시작하자 여러 모로 장점들이 많아졌다. 다소 느리지만, 깊이있는 칼럼들을 읽게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디지털 세대의 여론과는 다소 무관해 보인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을 지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