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 25

미켈란젤리와 잭 케루악

1.한동안 미친듯이 들었던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한참만에 꺼내 듣는다. 한껏 마음이 부풀어오른다. 너무 혼란스러운 세상. 이틀 만에 레오 14세 교황님이 선출되었다. 다행이다. 지금 전 세계를 보라. 제대로 된 정치가가 어디 있는지. 종교 지도자라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할 판이다. 여기 이 땅도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 것이니. 그나마 오늘 우리를 위로해주는 건 한 잔의 술과 임윤찬, 살아있는 몇 명의 작가들과... 대부분 이미 죽은 예술가들 뿐이다. 그리고 지금 미켈란젤리의 오래된 피아노 소리... 2.술 이야기로 시작하는 보기 드문 소설. 심지어 잭 케루악은 과음으로 죽었다. 진정 비트문학! 이 책을 읽고 "On The Road"를 읽어야지. 하지만 술은 멀리. ... 그러나 술들의 유..

주말 오전의 첼로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음반을 꺼내 듣는다. 대체로 음반들은 몇 달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꺼내 듣는 게 전부다. 먼지 쌓인 음반을 닦으며 슬픈 표정으로 웃게 된다. 한 두 번 듣겠다고 지금도 음반을 사고 한 번 읽겠다고 책을 산다.결국 헤어질 운명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시인 남편은 바람이 나 집을 떠나고, 사랑 속에서 사랑을 잃고 시를 쓴 실비아 플라스도 죽고, 몇 년 후 그녀의 남편과 사랑에 빠져 살림을 차렸던 시인 아시아 베빌도, 테드 휴즈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딸과 함께 죽는다. 사랑이 뭔지. 이젠 테드 휴즈보다 실비아 플라스가 더 유명해졌지만, 사후의 명성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첼로 소리는 주말 아침과 참 잘 어울린다. 고통받고 있는 마음을 가..

The Deer's Cry, Arvo Part.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를 말하라고 하면 단연코 "아르보 페르트"다. 그는 모더니즘 시대에 태어나 탈근대와 억압적 사회주의를 거치면서, 어찌된 일인지 중세적인 신성(神聖, Divine)에 빠져들었다. 그의 미니멀리즘은 감각적이면 본질적, 함축적이면서 우리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제 우연히 Arvo Part의 >를 들었다. 아! .... VOCES8 performs 'The Deer's Cry' by Arvo Part at St Vedast Church in London. Text Christ with me, Christ before me, Christ behind me, Christ in me, Christ beneath me, Christ above me, Christ on my right, C..

골든베르그 변주곡, 손민수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와, 어떻게 이렇게 연주할 수 있는 거지, 라며 놀라게 된다. 우연히 보게 된 손민수 교수의 연주다. 상당히 좋다. 원래 자장가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진 않고, 그런 소문이 있을 정도로 조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 탓일까.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복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난 다음, 겨우 휴식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후, 골든베르그 변주곡을 듣고 싶어 이 연주를 보게 되었다. 그 전엔 먼저 글렌 굴드를 듣긴 했지만. 임윤찬이 연주하면 한 번 뒤집어질 것같은데. 내년 카네기홀 연주 때 선보인다고 하니... !!  명동성당에서 이 연주 들었던 사람들은 참 좋았겠다.

Arvo Part, The Collection

Arvo Part, The Collection, Brilliant Classics “나의 칼레비포에그(Kalevipoeg)*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아르보 페르트 습관적으로 음반을 올리고 플레이 버튼를 누른다. 사각의 방은 어느 새 단조로운 음들로 가득차고, 마음은 가라앉고 대기는 숨을 죽이며 공기들의 작은 움직임까지 건조한 피부로 느껴진다. 이 때 아르보 페르트가 바라던 어떤 영성이 내려앉는다. 적대적인 느낌을 풍기며 나를 옥죄던 저 세상이 어느 새 감사한 곳으로 변하며 한 때 나를 힘들게 했던 아픔들마저도 나를 끝끝내 성장시킨 어떤 고비였음을 떠올리게 한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는, 20세기 후반 이후 최고의 작곡가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정확히 2..

아르보 페르트 CD 박스 세트

책도, 음반도, 인터넷이 등장하고 오프라인 상점들에서 사라져가니, 그 신비감도 사라졌다.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부재란 언제나 신비한 법이다. 예전엔 신문, 잡지 등을 통해서 제한적으로 새 책이나 새 음반을 확인했고, 일부는 그런 경로로도 확인할 수 없어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가 지인에게 소개받거나 우연히 들른 상점에서 발견하는 보물들이 있었다. 그런 보물들은 대체로 소리 소문 없이 서점이나 음반 가게에 깔리곤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떠돌 때쯤, 더 이상 살 수 없거나, 지방 도시 변두리나 시골 읍내 작은 가게를 뒤져야 겨우 나오는 진기한 존재가 되었다. 나는 레코드판이 사라지고 시디가 주류가 되어갈 때쯤 상당히 좋은 음반들은 문 닫기 직전의 가게들에서 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검색하면 ..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손열음(지음), 중앙books 지금은 구독하지 않는 주간지에서 손열음의 칼럼을 읽으면서 ‘글을 참 잘 쓴다’고 생각했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문장은 그녀를 처음 만나더라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할까. 음악가(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콘스트 피아니스트')가 쓴 음악(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그런지 음악 평론가나 애호가가 쓴 책과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고 할까, 흥미롭다고 할까. ** 그렇다면 상대 음감이란 무엇인가? 제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절대음감의 반대가 상대음감이다. 한마디로 절대음감이 없는 상태. 절대음감의 소유자가 1만 명 중 하나라는 통계가 맞다면 상대음감은 1만 명 중 9999명이라는 소린데 …. 그렇다면 이것은 아무나 다 가지고 있는..

새벽을 견디는 힘

CANDID 레이블. 지금은 구하지도 못하는 레이블이 될 것이다. 집에 몇 장 있는데, 어디 꽂혀있는지, 나는 알 턱 없고. 결국 손이 가는 건, 역시 잡지 부록으로 나온 BEST COLLECTION이다. 레코드포럼, 매달 나오는 대로 사두었던 잡지, 그 잡지의 부록은 클래식 음반 1장, 재즈 음반 1장. 제법 좋았는데. 유튜브가 좋아질 수록 음반은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하기 힘들던 시절의 아련함은, 우연히 구하고 싶은 음반을 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아는 이들을 불러모아 맥주 한 잔을 하며 낡은 영국제 앰프와 JBL 스피커로 밤새 음악을 듣던 시절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나의 서양음악순례, 서경식

나의 서양음악순례 서경식(지음), 한승동(옮김), 창비 한국과 일본은 참 멀리 있구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서경식 교수의 유년시절과 내 유년시절을 비교해 보며, 문화적 토양이 이토록 차이 났을까 싶었다, 일본과 한국이. 내가 살았던 시골, 혹은 지방 소도시의 유년은, 쓸쓸한 오후의 먼지 묻은 햇살과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바다 풍경이 전부였다. 책 속에서 이야기되었던 윤이상 선생의 통영에서의 유년 시절은 내가 겪었던 유년 시절과도 달랐다. 그가 통영에서 살았던 당시(20세기 중반) 보고 들었을 전통 문화라는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서양 신식 문화랄 것도 내 유년시절에는 없었다. 전통 문화와 신식 문화 사이에서 길게 획일화된 공교육과 책을 읽으면 안 되는 자율학습과 텔레비전, 라디오, 팝송이 있었다(..

디어 클래식, 김순배

디어 클래식 Dear Classic 김순배(지음), 책읽는수요일 저자는 피아니스트다. 그런데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그녀처럼 쉽고 재미있게 글 쓰는 재주는 없는 것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금세 빨려들어가, 책 중반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며, 클래식 음악을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내는 저자가 부러웠다(그녀의 아버지는 김현승 시인이다. 시인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닌지..). 내가 모르는 작곡가들과 그들의 음악, 그리고 내가 알고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이들의 음악에 대해 저자는 부드러운 어조로, 깊이 있는 내용까지 언급하며 독자를 안내한다. (내가 얼마 전에 올린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도 이 책에서 읽은 바를 옮긴 것이다) 1966년 초연된 이 작품은 펜데레츠키 특유의 극단적인 실험기법으로 채워져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