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28

한국 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 강수미

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 - 강수미 지음/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한국미술의 원더풀 리얼리티 - 탐미와 위반, 29인의 성좌 강수미(지음), 현실문화 미술비평가란 존재는 낯설다. 기묘하다. 현대 미술 작품에 대해 설명하지만, 그 설명은 활자 언어의 한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글로 설명된 미술 작품을 전부라고 믿는 순간, 작품은 은하계 너머 미지의 세계로 달아난다. 활자 언어로 담을 수 없는 어떤 이야기(narrative)를 미술은 시각적 언어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활자언어로 된 비평은 작품의 보조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것이 비평 본연의 업무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작가들마저 아이러니하게도 글(활자언어)로 설명된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싶어 한다. 도저히 현대의 표현으로..

갈라파고스 신드롬과 로컬리티, 그리고 한국 미술

오늘 아침에 날라온 예병일 씨의 메일레터에,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갈라파고스는 찰스 다윈에 대해 조금의 관심만 있다는 알고 있을 지명이다. 그런데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또 무얼까? 몇 해 전 일본의 NTT도코모 홈페이지와 KDDI 홈페이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곳 어딘가에서 일본 사람들이 사용하는 최신 휴대폰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때 한국에서 유행하던 최신 기종의 폰보다 더 나아보였다. 그런데 일본의 휴대폰 제조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 며칠 전 뉴욕타임즈 기사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일본의 이동통신 관련 산업은 국제 표준이나 트렌드와는 무관하게 일본 로컬 시장만을 겨냥한 나머지,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를 '갈라파고..

Star Wars - Episode II, UNC갤러리

Star Wars - Episode II - The Phantom Menace - UNC갤러리, 2009.2.12 - 3.12 눈이 환해지는 전시가 있다. 그런 전시를 만나면, 그 전시 기획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을 유심히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전시를 만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늦은 겨울, 오랜만에 들른 사간동 UNC 갤러리에서 나는 그런 전시를 만났다. 건조한 늦겨울 바람이 불었고 피부는 딱딱해지고 눈은 침침해지는 2월 중순, 바쁜 일상 속에 전시를 보기 위해 시간을 내는 건 꽤 큰 투자다. 늘 누군가와 함께 전시를 보러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지만, 나를 따라 나서는 전시 관람이란, 그 누군가에게도 꽤 큰 고역이 될 것임에. 늦은 오전, 안국역에서 내려 정독도서관..

Permanent Story - 이연주(Lena Lee) 展

Permanent Story - 이연주(Lena Lee) 展 2009. 1. 19 - 1. 30, 갤러리 담 이연주, 시간과나, 혼합재료, 60×60cm, 2008 붓 터치의 묘한 감정선들, 그리고 즐거운 방황의 흔적. 아무렇게나 그린 듯 보이는 이연주의 작품은, 실은 오랜 경험과 고도의 테크닉이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작품은 쉬운 듯 보이나, 산뜻한 유희를 선사하고 화사한 영혼의 사유를 노래한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명확히 알고 있는 작가는 무모하게 도전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솔직한 표현법과 유쾌한 접근법으로 깊이 없는 깊이를 담아낸다. 쉽게 '쿨(cool)하다'는 표현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연주의 회화엔 적당친 않다. 현대 예술에 있어서 이 표현은 적당한 절망을 바탕으로 한 도피(현실..

冬.中.之.情 - 민병권 展, 갤러리 갈라

冬.中.之.情 - 민병권 展 갤러리 갈라_GALLERY GALA 2008. 12. 17 ~ 12. 30 민병권, 백제송(百濟松), 한지에 수묵담채, 99×76cm, 2008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소리 내어 읽는다. 에서는 ‘소나무 가운데 큰 것은 둘레가 몇 아름이고, 높이는 십여 길이다. 돌을 쌓은 것같이 마디가 많고 껍질은 매우 거칠고 두꺼워 용의 비늘과 같다. 뿌리는 굽어 있고 가지는 늘어져 있다. 사계절 푸르러 가지와 잎의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봄 2~3월에 싹이 트고 꽃이 필어 열매를 맺는다. 여러 품종 가운데 잎이 세 개인 것은 고자송(枯子松)이고, 다섯 개인 것은 산송자송(山松子松)이다. 송진은 쓴데, 땅 속에서 천년을 묵으면 복령(茯笭)이 되고 또 천 년을 보내면 호박(琥珀)이 된다...

박진아(Park, Jina)와 회화의 쓸쓸한 여유

박진아_마지막 한 입-everybody's leaving_캔버스에 유채_225×155cm_2008 술집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그녀도 자리를 떠나려던 차에, 마지막으로 한 입 먹는다. 적당하게 오른 취기와 추운 새벽의 허전함을 텅빈 테이블 위의 남겨진 안주가 조금의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상 되돌아 생각해보면, 꼭 그럴 때마다 드라이크리닝까지 해서 입고 간 외투에 뭔가 떨어뜨리기 일쑤다. 다음 날 오전, 술자리를 후회하게 만드는 '마지막 한 입'인 셈이다. 작가는 일기를 쓰듯, 자신의 주변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회화의 본질은 주술이면서 기록이었다. 뭔가 바라는 마음으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두운 동굴 벽에 벽화를 그렸고 근대 사람들은 자..

가을의 오르세(Orsay)

어제 오전 일찍 나와, 세느강 옆을 걸었다. 서울은 마치 표준화, 규격화, 효율화의 전범처럼 꾸며져 있다면, 파리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르다. 얼마 전 서울시 청사의 재건축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 문화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느강 옆을 걸으면서 보게 된 강 옆에 놓인 배들의 모양 하나하나는 각각의 개성을 살려 설계되고 장식되어 있었다. 동일한 디자인의 아파트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서울은 꼭 20세기 초 근대주의자들의 잃어버린 로망을 되살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보인다. 하나가 잘 되면, 그 하나를 따라하기 바쁘다. 한국 사업가들이 '벤치마킹'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문화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있어 세계가 놀랄 정도의 시간 단축을 보..

지각과 충동, 관훈갤러리 개관 30주년 기념전

지각과 충동, 2008. 8. 13 - 8. 26, 관훈갤러리 인사동에 나가면 나는 두 가지에 자주 놀란다. 그 하나는 인사동 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 때문이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이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사동을 지나간다. 그런데 나는 그 많은 사람들과 대조적인 텅 빈 갤러리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인사동 갤러리에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오픈식이 있는 수요일 오후를 제외하고). 많은 갤러리들이 청담동, 신사동으로 떠나고 새로 오픈하는 갤러리들은 주로 사간동이나 삼청동에 자리를 잡는 요즘, 인사동은 참 애매한 공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훈갤러리는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최근 관훈갤러리에서 개관 30주년 기념전 '지각과 충동'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