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0

무지한 백성들의 나라

작년부터였나, 아니면 그 이전이었나. 정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아직도 시작하지 못했다. 마음 속의 분노와 절망은 너무 커져 폭발하기 직전이다. 오늘 광화문을 지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는 듯 사는 내가 미워졌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이젠 치료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건 아닌가 싶다. 조 단위로 해먹은 전직 대통령을 불러 조사하지도 못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그간의 갈등을 끊고 악수하는 자리에 한국 대통령은 없고 도리어 고산병을 극복하며 열정적으로 남미 외교를 하고 있다는 기사는, 대놓고 국민들을 무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스페인 1937', W.H.오든(Auden) - 2015년을 향한 詩

"but to-day the struggle."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 구절이라는 생각에 한글로 옮겼다. 역시 영시는 한글로 옮길 수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뜻을 통하게 옮길 수 있지만, 영어 고유의 맛을 옮길 순 없었다. 옮긴다면 아예 새로 창작한다는 기분으로 옮겨야 하고, 이럴 땐 번역이 아니다. 아는 지 모르겠지만, 스페인은 20세기 대부분은 프랑코 독재 정권의 시대였고, 20세기 초반 무수한 유럽 지식인들이 '국제 여단Brigadas Internacionales)'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게 된다. 소설가이자 프랑스 초대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도 이 전쟁에 참여하였고, 오든(W.H.Auden)은 구구절절하게 스페인 내전 참전을 독려하는 시를 적었는데, 바로 아래 라는 시다..

밤 10시 반, 택배.

밤 10시 반 현관벨 소리에 나가 보니, 단감 1박스가 놓여있다. 택배 기사 아저씨가 놔두고 간 것이다. ... 마음이 아프다. 오늘같이 이렇게 추운 날, 그는 이 한 박스를 배달해서 버는 돈은 2012년 기준으로 325원, 올해 택배 시장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채 400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낮에 점심 식사를 하면서 앞으로 한국은 10년 이상 최악 환경을 맞이할 것이라며 흘러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나도 최악을 향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바람 소리가 아파트 창을 두드리는 수능 바로 전 날, 학력고사를 치러 서울로 올라왔던 그 때가 무심코 떠오른다. 그 땐, 이렇게 춥지 않았지. 내일, 좋은 일만 가득해보길 기원한다.

침묵하며, 언론의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한국의 언론. 그리고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옮긴다. 어제 아침 CNN에 올라온 기사라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 언론, TV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날이 멀다하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시국선언을 하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다. 언론과 관련된 교과서에는 '비판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 그런 언론을 찾기 어렵다. 이 나라의 미래는 이렇게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화살은 지금 침묵하는 언론들에게, 그 침묵을 강요하는 정부와 여당으로, 그 옆 무능력하기 이를 데 없는 야당에게까지 돌려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정치적 지형에 대해 알 생각도, 알아도 침묵하는 국민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선거

"사전에 결과를 쉽게 알 수 있는 선거에, 무능력하다고 소문난 온갖 후보들이 출마한다고 상상해봐라. 모든 선거가 자칭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실은 광대극에 불과한 것이다." - 바츨라프 하벨 Vaclav Havel, 'A Table for Tyrants', NYTimes, 2009, 5,11. (체코 전 대통령) 한국에서의 선거란, 민주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실은 광대극에 불과하며, 광대극으로 만든 이들은 예전엔 정치인들이었고 지금은 이상한 편견을 가진 대중들이 합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래와 같은 발언이 가능한 것이다. 이번 두 당선자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그 사안을 알고도 당선시켰다는 점이다. 유권자의 심판을 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요즘 세상에 대한 생각.들.

지난 4월 중순, 4.19와 관련된 TV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문득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이들의 인터뷰는 나오는데, 왜 당시 경찰이었던 이의 인터뷰나, 자유당의 입장에서 투표를 독려했던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들의 인터뷰는 왜 나오지 않을까 의아스러웠다. 그리고 생각은 한 발 더 나아가, 현대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지배와 피지배가 바뀐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에 이르렀다. 피지배의 위치에서 서서 시위를 하던 상당수가 물질적 여유,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정신적 평온함으로 인해 스스로 지배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착각을 가지며, 자신이 언제 피지배였냐고 반문하게 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지배의 계층은 별도로 존재하며(어쩌면 이것은 지배의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르겠다), 피지배..

부끄러운 이 나라

최근 '미디어법 통과'는 여러모로 여당에게 유리한 정치적 포석이다. 그들은 이른바 보수언론이라 일컬어지는 '조중동'의 바람을 들어주었으며, 앞으로도 그들의 입을 빌어 자신들의 정치 행보나 정책 입안에 대한 대 국민 홍보 매체를 가지게 된 것이다. 법적 해석을 통해 이번 통과가 무효가 되더라도(이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보수언론을 향해,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선 여론이나 합리적 추론이나 사고, 정치적 신념의 일관성 따윈 헌 신짝 버리듯 버릴 수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는, 마치 '정치판'라 불리는 비옥한 평원에서 살아가는 원시적 감각으로 번뜩이는 야생 동물처럼 보였다. 이에 비해, 야당은, 뭐랄까, 마치 야생의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이상한 나라가 되어가는 중

나라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온라인와 오프라인은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좌파'라는 이름으로 네티즌들과 젊은이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 나는 남은 4년이 걱정스럽지 않다. 도리어 10년 후가 더 걱정스럽다.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주류가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지금 나이 들었지만, 흑백으로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하기 그지없는 이 세상을 무조건 흑백으로 가르려고 하는 무식한 어른들 앞에서, 그들은 반대의 흑백논리로 가르려고 하지 않을까. '우파'도 아니면서 우파인 척하는 이들이 '좌파'도 아닌 사람들을 좌파로 몰면서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하는 것처럼, 똑같이 '좌파'도 아닌 어떤 사람들이 그 때 당한 경험을 밑천삼아 '우파'라고 말하는 이들을 소수로 만들어 더한 궁..

일본의 재구성, 패트릭 스미스

일본의 재구성 -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마티 일본의 재구성 패트릭 스미스(지음), 노시내(옮김), 마티, 2008 1. 일본과 한국, 그 닮음에 대해 이 책을 읽고 있는, 그리고 읽었던 일본인은 이 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까? 하긴 나도 박노자의 책을 읽고 우리 한국인들, 우리들의 가치관, 그리고 우리들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뜨끔했다. 한국인 스스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박노자는 자신이 살아왔던 서양 세계의 가치관대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트릭 스미스의 이 책은 박노자가 한국, 한국인에 대해 묻는 것 이상으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분석하고 따져 묻는다. 그리고 많은 문헌들과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은 그 동안 나왔던 일본학이 얼마나 허구적이며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두 명의 사람

우연찮게 웹 서핑을 하다 두 사람을 알게 되었다. 한 명은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입양되어 온 사춘기 소녀이고 한 명은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되었다가, 지독한 사춘기를 보내고 난 뒤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처녀다. 두 사람의 표정이 대비되면서, 인생이란 뭘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된다. 러시아서 입양온 장수인양 네덜란드 입양 26년만에 영구 귀국한 윤주희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