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46

서쪽 부두 Quai Quest,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서쪽 부두 Quai Quest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지음), 유효숙(옮김), 연극과 인간 서쪽 부두 -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지음, 유효숙 옮김/연극과인간 이 희곡은 공연을 위해서도 씌여졌지만 동시에 읽히기 위해서도 씌여졌다. - 163쪽 이 연극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감정적으로 연기하는 것이며, 이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이 연극의 어떤 장면도 사랑의 장면처럼 해석되어져서는 안 된다. 그 어떠한 장면에서도 사랑의 장면이라는 가정 하에 쓰여진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장면들은 거래, 교환, 암거래를 나타내는 장면들이며, 이런 장면들로 공연되어야 한다. 거래를 할 때 부드러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169쪽 1989년 에이즈로, 40대 초반의 나이로 사망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마리 콜..

'도전'과 '침묵'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국내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과격한 방식의 프랑스 소설가. 20세기 후반 문학 비평의 일대 혁신을 몰고 온 지를 주도했던 인물. 이라는 소설로 여자를 긴 시간에 걸쳐 까발리기도 한 그는 정신분석학자이자 기호학자이며 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은 국내에 여러 권 소개되었으나, 워낙 대중적이지 않고 식견있는 문학 애호가들에게조차 인기를 끌지 못한 채 곧바로 사장되었다. 그의 데뷔작은 80년대 초반에 나온 범한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 실려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제 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내가 1997년에 그러했듯이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헌책방에서 쥐를 잡듯이 뒤져야 한다. 그냥 쥐가 아닌 황금으로 도배했다는..

컨트롤된 카오스 - 휴머니즘에서 뉴미디어의 세계로

컨트롤된 카오스 - 노르베르트 볼츠 지음, 윤종석 옮김/문예출판사 Das Kontrollierte Chaos Norbert Bolz 1995. (번역본은 2000년) 전선 속에 결박당한 번갯불, 즉 붙잡혀 있는 전기는 이교도들과 더불어 창궐하는 하나의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전기가 가져오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의 폭력들은 더 이상 인간 형질적 또는 생물형질적 접촉 속에서 관찰되지 않고, 버튼 하나로 인간에게 복종하는 무한한 파동으로 관찰된다. 그러한 파동들을 매개로 기계 시대의 문화는 신화에서 성장한 자연 과학이 힘들게 쟁취했던 것 ? 즉 사고의 공간으로 변용되었던 경건한 안식처 ? 을 파괴했다. 모던의 프로메테우스와 모던의 이카루스, 프랭클린과 라이트형제는 지구를 또 다시 카오스 상태로 몰고 가려고 위..

어느 사적인 일요일

안개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린다. 겨우 일어났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발바닥이 아팠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드립용으로 잘게 부서진 브라질 산토스 원두로 드립 커피를 내린다. 물 끓는 소리, 위로 향하는 수증기, 떨리는 손, 돌보는 이 없는 듯 무심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뒤엉켜 어느 일요일 아침을 구성하였다. 요즘 힘겹게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 본래 ‘박탈된’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사적인’이라는 용어는 공론 영역의 이러한 다양한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완전히 사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선 진정한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박탈되었음을 의미한다. 타인이 보고 들음으로써 생기는 현실성의 박탈, 공동의 사물세계의 중재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거나 분리됨으로써 형성되는 타인과의..

정의란 무엇인가, 혹은 낯설고 기묘한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김영사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지음), 이창신(옮김), 김영사 이 기묘하고 낯선 책은 무엇인가? 21세기형 출판 마케팅의 승리인가? 아니면 정의(justice)에 굶주린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상징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우연한 유행인가? 이 황당한 베스트셀러는 너무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일반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머리 아파할 벤담, 칸트, 롤즈,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이 나오지만, 우스운 것은 그것에 대한 불만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세상에 한국에 이토록 많은 고급 독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아니면 나는 그동안 이렇게 많았던 고급 독자들을 무시해왔던 것인가! 하버드 대학 교수 마이클 샌델은 실제의 다양한 사례(..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조중걸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 조중걸 지음/베아르피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조중걸(지음), 베아르피, 2009. '마술과 의미를 동시에 잃어'버린 세계, 사막이 되어버린 세계. '우리는 거울만을 보도록 운명 지어져 있고, 우리의 운명은 사슬을 벗어날' 수 없다는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오랜 역사는 현대의 비트겐슈타인에서 머물러 있고, 그는 거짓된 말보다 진실된 침묵을 택한다. 이 얼마나 아찔한 귀결인가. 책은 짧고 문장은 단순하다. '철학은 관념적 독단과 유물론적 회의주의를 양 끝으로는 하는 스펙트럼'이고, 우리 '인간은 관념론자가 되거나 유물론자가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품지 않는다. 아니 이는 배운 사람들(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관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