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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 - 중국미술의 새로운 흐름, 국립현대미술관

부유(浮游) - 중국미술의 새로운 흐름 FLOATING - New Generation of Art in China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07. 8. 17 - 10. 17 아직도 중국이라고 하면 품질 좋지 않은 싸구려 제품을 떠올리는 것이 먼저다. 아니면 서울 근교의 공장 지역에서 마주치게 되는 중국인을 떠올린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중국을 단편적으로만 학습하고 이해하고 그렇게 여기고 만다. 장 샤오강이나 유에 민쥔 정도는 알고 있을지 몰라도, 현대 중국 예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장 샤오강의 높은 작품 가격은 전 세계 화교 자본의 영향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서울의 우리가 현대 중국 예술의 수준을 이해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있었던..

Chateau Godeau, 2003, Saint Emilion Grand Cru

Chateau Godeau 2003, Saint Emilion Grand Cru 얼마 전 롯데백화점 세일 기간 중에 운 좋게, 저렴한 가격에 구한 와인이었다. 솔직히 Grand Cru 등급 와인에 길들여지면, 경제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신대륙 와인이 제 아무리 과일향이 풍부하고 좋다고 하더라도, 프랑스나 스페인 와인을 따라오려면 한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와인, 풍부한 과일향으로 입 안을 가득 자극하면서 부드러운 피니시를 자랑한다. 멜롯 75%에 카베르네 쇼비뇽과 카베르네 프랑을 적절히 브랜딩한 와인으로 Grand Cru 등급의 와인들 중에서 다소 저렴한 편에 속한다. 세일 기간 중 이벤트 와인으로 나왔으며 약 20,0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실제 판매 ..

소리와 사랑

옥소리와 박철의 사건을 보면서, 한국적 상황이 빚어낸 슬픈 초상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을 지속시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고 있다. 이제 사랑은 관습의, 규범의, 제도의 규제도 벗어난 채 도전과 모험, 그리고 도피의 회오리 속에 존재하고 있다. 아, 이탈로 칼비노라면 ‘보이지 않는 사랑’라고 불렀을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잠시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자 물음표들이 연속적으로 호수의 물결처럼, 내 마음 가장자리에 가 부딪혔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사랑이라는 텍스트보다 사랑의 주위를 구성하는 콘텍스트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차라리 모른 채 시작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온라인서점에서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그 중에 ‘소리, 말..

진실된 이야기, 소피 칼

진실된 이야기, 소피 칼(지음), 심은진(옮김), 마음산책 자기 전에 소피 칼을 만나다. 그녀가 만든 이미지들 사이로 흐르는 활자들. 하지만 서사적이기 보다는 회화적이길 원하는 그녀의 텍스트들 앞에 서서 이미지들이 움직였다. 섬세하면서도 단조로운 그녀의 산문은 이미지들과 겹쳐져 사뿐하고 경쾌한 운율을 만들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보면서, 박상순과 롤랑 바르트를 떠올렸다. 한 명은 시어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고 한 명은 이미지들로 통해 놀라운 현대적 사유를 보여주었던 사람이었다. 한 명의 시집을 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한 명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소피 칼의 이미지들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진실된 이야기 - 소피 칼 지음, 심은진 옮김/마음산책

미술시장의 유혹, 정윤아

미술시장의 유혹, 정윤아(지음), 아트북스, 2007 제법 묵직하고 비싼 가격에,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쉽고 재미있게(그림 가격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읽힌다. 하지만 일반 독자에게 이 책 읽기를 선뜻 권하고 싶지는 않다. 미술품 투자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권할 만한 책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먼저 읽는 건 좋지 않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이 책은 현대 미술 작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이후에 읽기 적당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미국 미술 시장의 동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전 세계 미술 시장의 절반 가까운 금액이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세계 미술 시장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

장 뤽 고다르와 영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약간 읽기 불편한 번역이긴 하지만, 꾹 참을 수 있는, 국내 저널에서는 읽기 힘든 생소한 칼럼들의 모음. 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를 읽는다. 나에게 익숙한 이름들: 노암 촘스키, 장 브리크몽, 레지 드브레, 존 버거. 하지만 나를 감동시킨 건 기 스카르페타의 ‘장 뤽 고다르’. 영화에 대한 내 생각 - 그것은 시작하자마자 자본주의 앞에서 몰락해버린 예술, 혹은 예술가에 대한 저주다. 스크린 앞에서 이제 누구도 예술을, 영혼을,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돈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리고 예술 영화의 정신은 스크린에서 사라지자마자, 그 영상 이미지는 시간 위에 수놓아지는 서사를 시적인 감수성으로 육체를 바꾼 채, 미술관의 작은 브라운관..

예술의 우주 2007.10.24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김서령(지음), 실천문학사 제법 탄탄하고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표현력을 가진 김서령의 첫 소설집 읽기의 시작은 매우 유쾌했다. 하지만 다 읽은 지금, 요즘 작가들은 왜 여기에서 멈추어 버리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불쾌해졌다. 도리어 뒤에 찬사에 가까운 평문을 쓴 방민호(문학평론가)나 소설가 이혜경, 문학평론가 서영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러 단편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가난하거나 불행하거나, 그리고 주변의 누군가가 죽는다. 이 얼마나 손쉬운 작법인가.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소설가는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 신과 같은 권능을 부여받는다고는 하지만, 이 젊은 소설가의 세계 속에서 곧잘 사람들이 죽고, 그 옆의 주인공들은 슬퍼하다가 지쳐 도망가..

사물들, 조르주 페렉

사물들 Les Choses, 조르주 페렉(지음), 허경은(옮김), 세계사 에밀 졸라의 실험소설론은 정해진 환경(콘텍스트) 속에서 인물(텍스트)가 어떻게 망가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 속에서 이 세계가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를 밝히는데 주안점을 둔다. 이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소설과는 전적으로 다른 방식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소설은 전형적인 환경과 전형적인 인물을 내세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바탕으로 이 세계가 왜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주력한다. 이렇게 보면, 조르주 페렉의 소설 작법은 에밀 졸라와 닮아있다. 지극히 유희(놀이)적이라는 점. 실험도 일종의 놀이나 게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단, 결말을 알 수 없는. 조르주 페렉의 을 읽으면서 그가 등장시킨 인물이나 ..

근황

소란스러운 아침을 보낸다. 십분 단위로 울리는 핸드폰 알람만으로, 우울하기 그지없는 영혼에 거추장스럽게 매달린 듯한 내 몸을 일으켜 세우기엔, 서른 중반의 나에겐 너무 벅찬 일이다. 결국 오늘도 늦잠을 잔 셈이다. 녹색 빛깔의 배설물로 가득찬 분홍 대야에 담긴 금붕어들에게 아무렇게나 먹이를 던져주고 부랴부랴 세수를 한다. 아, 오늘, 또 화분에 물을 주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꽃들아. 녹색 이파리들아. 몇 년 만에 다시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겨우겨우 읽는 건 되지만, 말하는 건 늘 어려운 일이다. 그 전에도 여러 번 영어 학원을 다녔지만, 새벽반은 불가능하다고 내 스스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어떻게 잘 다니고 있다. 나이가 든 탓인가. 그래서 아침잠이 없어진 건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놀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