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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지음), 정영목(지음), 해냄 소설을 읽다 끔찍한 기분이 들어, 읽기를 멈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은 지금도, 그 끔찍한 기분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 놀라운 소설 앞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위대한 서사가 어떻게 우리 인간의 삶과 영혼, 그 밑바닥에 숨겨진 고통스러운 존엄성에 대해 상기시켜 주는가를 목격하게 된다. 내가 그 동안 읽었던 그 어느 소설보다 위대했고, 고통스러웠으며, 인간이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누구든지, 이 소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들 중의 하나다. 눈먼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네오북) * 아래는 주제 사라마구의 단편 소설이다. 일독을 권한다. ..

광기와 천재, 고명섭

, 고명섭(지음), 인물과사상사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알라딘 서평 대회(?)에 서평 하나 내어 도서 구입비라도 받아볼 생각이었다. 동시에 한겨레신문사에서 고종석 기자 이후로 필력을 자랑한다는 고명섭 기자의 문장을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서평을 내야 하는 기간 중에 책을 다 읽지도 못했으니, 그냥 책 값만 날린 꼴이 되었고, 대신 위안이라고 할 만한 것이, 고명섭 기자의 머리말 은 근래에 읽어본 글들 중에서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책은 전반적으로 재미있고 쉽게 읽히나, 저자가 읽었던 책들의 다이제스트 판으로 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아돌프 히틀러, 세르게이 네차예프, 조제프 푸셰, 장-자크 루소, 나쓰메 소세키, 프란츠 카프카, 루트비히 비트겐..

매의 노래, 바진

, 바진(지음), 홍석표, 길정행, 이경하(옮김), 황소자리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 중국 사회에 있어서 ‘문화혁명’(1966년 ~ 1976년)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고, 아직도 아물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노(老) 작가 바진은 끊임없이 한 개인의 삶과 문학의 존재 의미를 물으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문화혁명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끊임없이 문화혁명 시기의 자기 자신과 그의 가족, 그의 동료들에 대해 회상하면서 후회했다. ‘바진 타계 일주년 추모 수상록 선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에서 독자는 시간 앞에서 끝없이 진실해야 된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왜 자신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일을 쓸 수 없단 말인가?..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수잔 벅 모스

, 수잔 벅 모스(지음), 김정아(옮김), 문학동네 근사한 이름이다. 발터 벤야민.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그는 ‘아우라(Aura)’를 부정하였지만, 시간이 지나 그의 이름에도 ‘아우라’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에는 천재적인 문필가들이 자주 겪게 되는 사후의 명예가 따라다니고, 궁핍한 생활 속의 방황과 끝없이 펼쳐지는 사유의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다. 수잔 벅 모스는 발터 벤야민의 최후의 저작, 끝내지 못하고 폐허로 변한 파리에서 먼지들 속의 메모 뭉치로만 남은 를 새로운 방식으로 엮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일종의 연구서이면서 문학적 창작물이 된다. 이 두꺼운 번역서를 손에 쥐고 있을 독자들이란, 신비주의적이면서도 마르크스적 시각을 가지고 대중문화, 번화한 거리, 상가, 아무렇게나 읽고 버려진..

오랜만에 잡담

경실련 2007대선 후보선택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후보를 선택해본 결과, 문국현/권영길 후보와 50% 일치를 봤다. 제일 낮은 건 이명박 후보(10%). 그 다음 이회창(15%), 정동영(30%) 순이었다. 흠. 의외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는 아닌 것 같고 자유주의자이거나 중도 보수에 가깝다고 여겨왔는데 말이다. 그리고 후보선택도우미는 아무래도 문항 수를 늘리고 디테일을 보강해야 할 것같아. 질문들이 어수선하기도 하고 국민들이 스스로 정책들에 대한 의견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 하긴 한국에선 자유주의자도 무식한 보수 꼴통들한테서 빨갱이 소리를 들으니깐. 그러고 보면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은 확실한 보수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봐야하는 것인가. 어설픈 평등을 지향하는 정책이 작금의 수능 등급제 사..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

미켈란젤로 하인리히 코흐(지음), 안규철(옮김), 한길사 하인리히 고흐의 전기는 미켈란젤로의 일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이 책 서두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라는 챕터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전기의 일부는 이 논란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 속에서 미켈란젤로는 예술가이면서도 피렌체 장사꾼처럼, 자기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았지만 은행과 부동산 투자로 대단한 부를 가진 이로,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끊임없이 가족을 경제적으로 부양했던 이로 묘사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예술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매우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그려질 뿐이다. 예술(조각)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뜨거운 열정과 끊임없는 번뇌와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다른 책에서도 언..

Come back from Contemporary Istanbul Art Fair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빨리 서울의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다행스럽게도 오래된 음악이 있고 따뜻한 커피가 있어, 글은 막힘이 없고 마음은 낮고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몇 해 전에 만들어놓은 여권에 이국의 입국, 출국 도장이 찍힌 것도,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탄 적도, 잠에 들기 전 호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어 보인 적도, 터키 이스탄불에서의 모든 것들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나는 이것들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암스텔담 스피치 공항까지 가는 동안 폴 오스터는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칠레산 와인은 산뜻하고 맛있었다. Contemporary Istanbul Art Fair 내내 이스탄불 구시가지에 위치한 Ya..

Contemporary Istanbul 2007 art fair

오늘 오후 2시에 출국한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가 다시 이스탄불로 가는 여정이다. 이스탄불 공항 세관에 낼 서류들을 준비하고, 짐을 꾸렸다. 우습게도 해외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 때문에 해외에 처음 나가면, 계속 일 때문에 나가게 되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하긴 내년에도 계속 일 때문에 나가게 될 예정이니. 이번 일을 준비하면서 영어가 조금 늘긴 했으나, 아직 간단한 생활 영어 수준이다. 가서 어떻게 설명은 할 것같은데, 행정적인 절차가 다소 걱정이긴 하다. 영문 보도 자료도 만들어야 하는데, 미처 챙기질 못했다. 의외로 할 일이 많아, 시간에 쫓겼다. 그 사이, 돈을 벌기 위해 원고 집필 때문에 더 바빴다. 또 감정적인 혼란 상태에도 여러 번 빠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

예술의 우주 2007.11.26

성상파괴주의와 성상옹호주의, 진형준

, 진형준(지음), 살림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지만, 잘 정리되어 있다거나 분명한 논점을 가진 책은 아니다. 그래서 다소 맥이 빠지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는 다소 부적절해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문학평론가의 재능을 살려, 문학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사상사, 예술사, 종교사의 내용이 서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따로따로 놀아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원론(dualisme)에 대한 설명은 다소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성상에 대한 두 가지 태도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개념을 보이게 할 것인가, 보이지 않게 그대로 놔둘 것인가에 결정에 따라 성상파괴주의와 성상옹호주의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원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