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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자전거 여행 김훈, 생각의 나무, 2000 김 훈의 문장은 그 서정성의 깊이로, 그리고 그 문장의 우아함으로 언제나 여러 평자들의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이번 뒷 표지에 실린 정끝별의 글은,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오버'다. 늘 소설이나 시집, 혹은 산문집 뒤에 실린 평론가들의 평은 작가들의 영혼을 비켜나가선 스타카토 풍의, 뚝뚝 끊어지는 문장의 공허함만을 선사한다. 이번도 틀리지 않아서 '가히 엄결하고 섬세한 인문주의의 정수'라든 가 '그의 사유와 언어는 생태학과 지리학과 역사학과 인류학 과 종교학을 종(縱)하고 횡(橫)한다'라는 문장은 을 아무리 다시 읽어도 이해가 불가능하다. 왜냐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글쓴이가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적은 기행문이기 때문이다. 가끔 몇 권의 책을 언급하지만 그건 잠시..

미켈란젤리와 첼리비다케

짧은 휴식 만으로 내 영혼은 평정을 되찾는다. 오래되고 낡은 스피커에선 쉬지 않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의 손이 그리울 때가 된 책들의 신음 소리가 방 안의 사물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건조하고 두터운 대기를 출렁이게 하는 바람은 쉴 새 없이 창 밖을 울린다. 한 해가 지났다. 한 해가 왔다. 그 사이 내 언어는 지나간 시간만큼 얇아졌고 내 정신의 힘은 늘어난 피부의 주름만큼 허약해졌다. “음악이 없다면, 삶은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느 새 불편해진 활자나, 직업처럼 변해버린 그림이 아니라, … 공기를 울려서 만들어내는 음악이 아직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그나스코와 로코코 미술 Magnasco and Rococo Art

Alessandro Magnasco, Sacrilegious Robbery, 1731, Oil on canvas, Quadreria arcivescovile, Milan 이탈리아 로코코 화가인 Alessandro Magnasco의 작품은 어딘가 어둡고 무거우며 침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바로크적이거나 로코코적이기 보다는 매너리즘에 더 가깝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이런 느낌을 환기시키는 그림을 떠올린다면, 'Stil Life'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Jean Simeon Chardin, Still Life (The Silver Tureen), 1728, Metropolitan Museum of Art 둘 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목적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작품의 스타일은 판이하게 틀리..

IDEO와 Innovation

작은 기업이든, 큰 기업이든, 경영자든 직원이든, 입에 달고 다니는, 입에 달고 다니지 않았다면 이제부터 입에 달고 다녀야 할 단어가 있다면, 바로 혁신(Innovation)이다. 하지만 말로만 떠들 뿐, 혁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무책임한 Consultant들은 통계와 도표로만 가득찬 보고서만 던져주고 갈 뿐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인들은 혁신이라고 하면, 원가 절감이나 생산/제조 기술 간소화 따위를 떠올린다. 그리고 다수의 Consultant들도 이러한 활동을 '혁신 활동'으로 포장한다. 실은 이러한 활동은 개선(improvement)에 속하지, 엄밀하게 정의된 '혁신'에 포함되지 않다. 물론 이러한 개선 활동을 통해 기업은 기존 산업에서의 경쟁 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

Flight To Denmark , Duke Jordan Trio

Flight To Denmark Duke Jordan Trio Steeple Chase, Denmark 눈으로 뒤 덮인 숲 속에 한 남자가 서있다. 두꺼운 외투에, 끝이 뾰족하게 솟은 모자, 둥근 안경, 두 손은 외투 주머니에 꽂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쌓인 눈의 울퉁불퉁함 때문인지, 사진을 찍은 사람이 약간 비스듬하게 카메라를 쥐고 있는 탓인지, 이 남자의 서 있는 포즈가 약간 오른 쪽으로 기울어져, 불안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흰 색으로만 채색된 그림 한 가운데 어정쩡하게, 잘못 자리잡은 듯한 그 남자의 이름은 듀크 조단(Duke Jordan). 1922년 태생의 그는 1940년대 후반 찰리 파커 쿼텟(Charlie Parker Quartet )에서 활동한 것으로 잘 알..

Bourgogne Chardonnay Vieilles Vignes 2005, Albert Bichot

Bourgogne Chardonnay Vieilles Vignes 2005 Albert Bichot, France 가끔 이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대형할인마트에서 와인을 구입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와인 전문 샵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은지. 그런데 이런 대답이면 어떨까. 와인마다 틀리다고. 작년에 갔던 양천구에 위치한 어떤 와인샵에서는 내가 자주 가는 강남의 어느 와인샵보다 가격을 10% 정도 비싸게 받고 있었다. 가끔 어떤 와인 경우, 몇 만원까지도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와인을 어느 와인 샵에서는 30% 세일가격에 판매하고 어느 와인샵에서는 정상가격에 판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와인샵이나 시중 와인 전문 샵에서는 와인의 보관에 많은 신경을 쓰기 때문에 비싼 와인을 구입할 때..

Marques De Elche, Reserva 2001, Spain

Marques De Elche, Reserva 2001 Monastrell, Alicante, Spain 와인을 즐겨 마신 지 2년이 되었다. 제작년 이맘때쯤, 소주, 맥주, 양주까지 마신 상태에서 입가심으로 마신 프랑스 1999년산 생-에스테프 와인에 빠진 이후, 거의 매주 1병씩 마셨다. 혹자는 와인이 매우 비싼 취미라고 하지만, 자신의 경제적 처지에 맞게 소비하고, 저렴한 와인들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한다면, 한 달에 몇 만원으로도 가능한 취미이다. 다만 가격이 좀 높은 와인을 마실 기회가 적어지지만 말이다. 이 와인은 암스테르담의 스피치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하였다. 세일 가격인 6유로 정도 주고 구입한 걸로 기억하는데, 오늘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스페인에서는 4~5유로에, 미국에서는 6달러에 구입할..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생애와 작품에서 단절이 없었다는 것은 희귀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가 어린시절에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어휘 하나는 쥬피터 교향곡에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모차르트는 실생활에서는 자신이 처리할 수 없는 일들과 부딪혔던 반면에 자신의 예술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아르농쿠르) 출처: 고싱가숲(http://www.gosinga.net/archives/432)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때면, 그 순수함이 도리어 낯설어지기까지 한다. 삶의 문제와는 무관한 듯한 그의 음악은 유미주의적이다. 그래서 계속 빠지는 것일까. 아르농쿠르의 저 대답은 너무 마음에 든다.

예술의 우주 2007.12.25

리서치 보고서를 던져버려라, 앤디 밀리건, 숀 스미스

리서치 보고서를 던져버려라 - 앤디 밀리건 외 지음, 이현주 옮김/위즈덤하우스 , 앤디 밀리건, 숀 스미스(지음), 이현주(옮김), 위즈덤하우스 일독을 권할 만한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하라(See, Feel, Think, Do)’이다. 이 원래 제목이 다소 과감한 느낌의 ‘리서치 보고서를 던져버려라’라는 제목으로 바뀐 것이 이 책의 매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려고 할 때, 광범위한 설문조사, 포커스그룹인터뷰, 유사 사례 조사, 리서치회사나 컨설팅회사의 관련 보고서 등 다양한 방식의 리서치와 보고서에 의존한다. 꽤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고 성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면서 신제품과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하지만, 대부분 ..

대선 이후

오전에 식사를 하고 투표를 하러 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누구를 찍을 것인가를 감으로,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로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대다수에 속하지 못했다. 전체적인 내 삶은 한 번도 그 대다수로 포함된 적이 없다. 놀랍게도 나는 어떤 대다수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 때, 도리어 끔찍한 기분에 휩싸인다. 반골기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이가 지긋한 몇몇 예술가 분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려다가, 무안을 당한 경험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정치가(정치인이) 나의 예술에, 나의 (경제적) 삶에 도움이 되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그림만 열심히 그리면 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쓸데없는 정치에 신경 쓰지 않고 작품 활동에만 매진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도리어 우리의 모든 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