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1002

일요일, 낮잠 자는 고양이

오랜만에 여름 태양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지만, 낯설기만 하다. 몇 달만에, 코로나 등으로 인해 가지 못했던 도서관에 가 책을 반납했다. 빌린 책을 거의 읽지 못했고 최근 산 책들은 서가에 그대로 가 잠들었다. 실은 무슨 책을 구입했는지도 잊어 버렸다. 올해 초 수주했다고 신나했던 프로젝트들은 한결같이 어려움에 처했고, 누군가가 해야 할 일들은 모두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심지어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너무 심한 나머지, 나로 하여금 악몽을 꾸게 했고, 술만 마시면 취하게 하였다. 그리고 오늘, 모처럼, 일요일, 시립도서관에서 구립어린이도서관으로 가는 길, 나는 결국 아들과 티격태격했다. 나이가 무슨 소용일까. 결국 다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다만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상대방을 능수..

8월 3일, 혹은 4일

문득 업무 총량의 법칙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주팔자에 이 친구는 직장인이고, 직장인으로서 해야할 업무량이 있는데, 중간에 사업을 했다거나 자기가 원하는 일을 했더라도 그냥 업무량이나 시간은 줄지 않는다는... 그래서 내가 요즘 힘든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밤 9시 프로젝트 멤버들의 호출로 나가, 소주를 두 세 병이 마시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든다.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걸, 어쩌면 자유는 포장이고 우리 삶은 백조의 발짓과 같은 어떤 성실함을 그냥 기본적으로 요구한다는 것을. *** 그렇게 집에 오니, 취기가 올라 노래를 듣는다. 요즘 유튜브는 너무 좋다. 음질이 아니라, 노래가 많다. 예전엔 음반 구하려고 노력했던 것..

어느 여름, 작은 새와의 만남

손에 스타벅스 에스프레소 더블샷 캔커피와 땅콩크림빵을 들고 프로젝트 사무실로 가려고 하였으나, 빌딩 보안요원이 "선생님, 빵은 지퍼백에 넣어서 오셔야만 출입이 가능합니다"라고 나를 막았다. 선생님이라 ~ ... 그제서야 며칠 전 프로젝트 멤버가 김밥을 사오면서 지퍼백도 함께 사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시 발길을 돌려 편의점으로 향했다. 흐린 하늘은 물기 가득한 무거운 표정으로 여의도 빌딩들 너머의 배경을 채우고 있었다. 편의점 앞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가득했고 나는 그 옆 테이블 앞에 서서 빵을 꺼내 스트레스 찌든 입으로 서걱, 빵을 잘라 먹기 시작했다. 아침을 채우던 여름 비는 그쳤으나, 아직 거리를 젖어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빵을 먹고 있는 사내의 테이블 바로 앞, 회색빛 콘크리트로 된 낮..

스트레스의 극복

각자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극복 방법이 있다. 나도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 간단하게 적어본다. 1. 스트레스를 받는 일/공간/시간을 벗어나자. 하지만 이제, 이것은 불가능하다. 대체로 밥벌이와 관련되거나 어쩌지 못하는 인간 관계, 또는 불가항력적 상황일 경우가 더 많아졌다. 예전엔 아예 그냥 잠수를 타기도 했지만, 이젠 그럴 시기도 아니다. 2. 술을 마신다. 그냥 소주를 마셔선 안 된다. 조용하고 아늑한 바에서의 몰트 위스키 한 잔이거나 좋아하는 와인을 좋은 음식과 먹는 것. 살짝 사치스러워야 한다.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수준의. 예전에 자주 가는 단골 술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마시길 좋아했으나, 이젠 그 단골 술집도 문을 닫았고, 음악을 들으며 마시다 보면 내일이 사라지다..

햄릿과 오필리어

오전의, 텅 빈 카페의 빈 의자 위로 내 마음을 살짝 내려놓고 나온다. 그 마음 위로 누군가의 시선이 닿고 어떤 이들의 수다와 몸짓들이 내려 앉을 때쯤 그제서야 내 자유의지로 숨 쉬기를 시작할 것이다.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겠지만, 낯익은 결론, 예상되었던 비극, 인과율적인 종말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자유로 그것을 거부하는 용기를 꿈 꾼다. 햄릿 이후 꿈마저도 죽음과 맞바꾸어야 하는인생의 숙명같은 것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햄릿이 아니고, 너는 오필리어가 아니다. 불륜같은 사랑을 하고, 천생연분같은 결혼을 하고 신탁으로 낳은 자녀들 속에서 잠들지도 모를 일. 그리고 눈을 뜨면, 오후가 되었고, 아직 카페 안이지만, 소리없이 소란스러워져 있고, 길거리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두 눈을 치켜뜨고 내 앞을 ..

반 고흐, 비 내린 후의 밀밭

Vincent van Gogh: Wheat Fields after the Rain, July 1890 고흐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굵고 선명한 붓 터치가 마치 내 마음을 긁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는. 하지만 반 고흐와 친하게 지내진 못했을 것이다. 그의 변덕스러움, 민감함 등등에 도리어 내가 상처받았을 지도. 쌓여있는 뉴스레터 이메일에 반 고흐의 저 작품이 있었다. 비 내린 후의 밀밭이라.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하니, 이 더위도 잠시 비켜가려나. 문득, 자주, 나는 내 나이를 잊곤 한다. 내가 좋아하던, 이미 죽은 작가들보다 더 나이 먹었는데도 말이다.

독한 술의 위로

작년에 알게 된 술들이 몇 가지 있다. 탈리스크나 라프로익 같은. 그러다가 가장 입에 맞는 술은 아드벡이었다. 일을 하다 스트레스로 인해 폭발 지경에 이르러 사무실 근처 위스키바에 가서 위스키를 마셨다. 나이가 들면 안정적이 되고 쉽게 솔루션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걸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는 걸 몰랐다. 어찌되었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것이 나라는 사실은 내 일상을 참 피폐하게 만든다. 주장, 혹은 그것에 따른 실행, 한 마디로 권한 뒤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앞의 것에 대해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지만, 뒤의 것에 대해선 갖고 싶어하지 않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의 학교에서는 '책임'에 대해서 제대로 ..

한국의 언론

페이스북에 올린 메모를 조금 살을 붙여 올린다.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다들 아는 내용이다. * * 언론은 사건 사고를 먹고 산다. 굶주린 언론은 작은 사건도 크게 부풀리며 경미한 사고도 심각한 사고인양 부각한다. 더 나아가 말초적이며 표피적인 표현에만 신경 쓸 뿐, 그 사건 사고의 깊은 분석이나 재발 방지책, 더 나아가 이 사회와 국가에 대한 진심 어린 배려나 걱정, 대안 제시나 비판적 실천에 대해선 그 어떤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다. 도리어 잘못된 보도로 혼란을 초래하고 사회적 정치적 갈등만을 조장한다. 이것이 지금 한국 언론의 실체다. 끔찍하다. 1차적으로 정확한 사실의 전달이 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부터 어긋나 있다. 2차적으로는 그 사실에 대한 의견 전달이다. 그런데 이 의견 대부분이..

2020.05.21. 드가와 함께 당구장에서

Billiard Room at Menil-Hubert, Edgar Degas, 1892, 오르세미술관 사는 게 쉽지 않다. 하루 24시간 중 가장 좋은 시간은 잠을 잘 때. 나머지는 조금 힘들거나 많이 힘들거나, 아니면 힘들었던 것들에 대한 걱정, 두려움, 후회같은 것으로 얼룩져 있다. 아주 짧게 그렇지 않은 순간이 있기도 하는데, 그건 사랑에 빠졌거나 사랑을 꿈꾸거나, 사랑에 빠진 듯한 봄바람, 봄햇살, 봄날을 수놓는 나무 잎사귀 아래 있을 때다. 그러나 이런 순간은 극히 드물어서 기억되는 법이 없다, 없었다. 원근법적 세계에 대한 그리움. 인상주의자들에게 원근법은 고민거리였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이어져온 어떤 원근법을 벗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원근법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건 우리가 보는 방식..

중앙의 정책, 지방의 대책

1.그래서 물어봤다. 중국에선 그런 권위주의에 저항하느냐고. 그는 '상유정책(上有政策) 하유대책(下有對策)'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정부엔 정책이 있지만, 민간은 빠져나갈 대책을 세운다는 말이란다. 우한 봉쇄 전에 시민 절반이 타지로 빠져나간 것처럼 저항보다 살 궁리를 먼저 하는 게 '중국인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코로나19는 우한을 넘어 중국 전역과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되었다. - , 양선희 - 선데이칼럼, 중앙선데이, 2020년 2월29일 2.중앙일보와 중앙선데이를 받아보다가 몇 달 전 끊었다. 지난 촛불 정국 때부터 받아보기 시작했다가 최근 끊은 것이다. JTBC의 활약이라든가 읽을거리가 풍부한 중앙선데이로 인해 중앙일보까지 받아본 것이다. 아파트까지 찾아온 신문영업 아저씨의 영업술 -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