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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도서관에서의 빡침 - 공적 공간의 사적 점유

책들이 고요하게 숨을 쉬는 서가 사이로, 눈 내리는 창 밖 풍경을 보러 집 근처 도서관에 왔지만, 아, 나는 스트레스로 터질 것만 같다. 내 옆에 앉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는 참고서를 잠시 보다가, 다시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고는 다시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참고서를 잠시 보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고, 그리고 이 행동을 무려 한 시간 이상 반복을 하다가 나갔다. 심지어 커피를 가지고 간 사이 내 책가방을 내려놓고 자신의 책가방을 올려놓는 대범함까지 보여주었다. 그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집어던질 뻔했다. 그 화를 참는데 약 삼십분 정도 걸렸다. 앞 좌석에 앉은 한 여성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앉더니,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기 시작한다. 책상 위에는 아무..

이미 시작된 전쟁, 이철

이미 시작된 전쟁 이철(지음), 페이지2 가끔 한국에서의 전문가 집단이 있는가 의아스러울 때가 있는데, 이런 책을 읽을 때이다. 러셀 저코비가 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의 지식인이 사라진 현상을 분석했듯이, 한국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다. 실은 대중들이 학교 선생이나 대학 교수들에게 기대하는 면이 있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과 식견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와 앞으로 닥칠 세계에 대한 이해와 대비일 것이다. 하지만 러셀 저코비가 프레드릭 제임슨을 비난하듯이 한국 대학 교수들 대부분은 학술지에만 글을 기고할 뿐, 대학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러셀 저코비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저서들은 학자들 사이에선 유명할 지 모르나, 일반 대중, 또는 인문학 전공으로 정상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이들조차 읽기 힘들고 심..

독서모임 빡센 - 책읽기 멤버 모집

안녕하세요. 한참을 닫아두었던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재개하였습니다. 아는 분의 강권으로 책 읽기 모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나, 너무 오래 쉬었던 탓인지 참여하는 멤버가 거의 없네요. 몇 달동안 2명이 모여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빠지는 연말에 잠시 쉬고 있는 중에, 이렇게 블로그에 공지를 올립니다. 저 또한 미루다 미루다 독서모임을 시작한 것입니다. 예전엔 혼자 읽기 어려운 인문학 책들 위주로 독서모임을 운영하였으나, 이젠 그 범위를 넓혀 다양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책을 넘어서 역사, 사회, 철학, 과학, 정치 등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1달에 한 번 정도 오프라인 모임을 할 ..

책들의 우주 2023.12.14

연결된 위기, 백승욱

연결된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반도 위기까지, 얄타체제의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백승욱(지음), 생각의 힘 가끔 전국의 대학에 인문학 교수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이 가끔은 너무 신기하다. 왜냐면 내가 읽거나 읽으려고 기록해두는 인문학 책들 중에 국내 대학의 교수가 쓴 책은 정말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수십 년부터 이야기되던 인문학의 위기는 실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 교수의 위기라는 점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대학의 인문학 교수들은 좀 반성해라) 중앙대 사회학과 백승욱 교수의 글은 종종 여러 지면에 읽은 바 있다. 꾸준히 읽는 저널이 없음에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일반 대중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하고 있는 인문학자라 할 수 있다(그런가?). 이 책 는 최근의..

계속되는 이야기, 세스 노터봄

계속되는 이야기 Het Volgende Verhaal 세스 노터봄 Cees Nooteboom (지음), 김영중(옮김), 문학동네 이것이, 내가 믿는 그것이다. 육체적 죽음의 거친 고통이 아니라, 존재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데 필요한 신비로운 정신적 행위에 비할 데 없는 고통이다. 그 고통은 쉽게 찾아온단다. 알겠니, 아들아.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공허함, 그것은 어지러워하는 개의 눈에서 볼 수 있는 공허함이다. 내가 그 낯선 침대에서 느꼈던 것도 공허함이다. (13쪽) 사랑이야기지만, 사랑에 대해선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단어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히 사랑이야기다. 동시에 불륜이야기다. 동료 교사 유부녀와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한참 어린 제자에 대한 사랑이야기다..

동네 구멍가게의 폐업

마지막 남은 동네 구멍가게가 문을 닫았다. 이제 내가 사는 곳 반경 1km 이내에 구멍가게는, 없다. 대형 수퍼마켓과 편의점들만 남았다. 하나 둘 있던 식당들도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간판을 바꾸고 있다. 각자의 개성은 사라지고 평준화되며 비슷비슷하게 변해간다. 익숙해지고 평범해지면서 활력을 잃어간다. 풍경의 변화가 익숙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곳엔 이젠 나무 한 그루만 남아있다. 뒷산은 그대로이지만, 산으로 들어가는 길들은 모두 변했다. 어렸을 때 집들이, 마을이 사라지는 풍경을 보았다. 논, 밭, 집들이 있던 곳은 텅빈 황토빛 대지로 변했다. 그렇게 변해가던 몇 년 동안 그 곳을 돌아다니며 수정을 모았다. 자수정 광산이 있는 창원은 땅을 파헤치면 어렵지 않..

가치 창조 성장(value-creating growth)의 10가지 규칙

경영은 참 쉽지 않다. 아예 사고나 행동이 경영에 최적화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주 경영이나 리더십 관련 책들이나 아티클을 찾아 읽으며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며칠 전 읽은 맥킨지 쿼터리의 에선 당연한 규칙을 적어놓았지만, 나를 다시 반성하게 만들었다. 글을 좀 길지만, 핵심적인 부분은 아래와 같다. Ten rules of value-creating growth 1. Put competitive advantage first. Start with a winning, scalable formula. 2. Make the trend your friend. Prioritize profitable, fast-growing markets. 3. Don't be a laggard. It'..

23년 늦가을 어느 날

작은 가방을 앞으로 돌려맨 그녀는 9호선 급행 열차의 문이 열리자 곧바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누구보다 빨리 돌진했다.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 비장한 돌진이었다. 새치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일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삶은 돌진이 아니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종종 자신의 일상을, 인생을, 세계를 규정짓는다. 열차 안 가득 빼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 그녀 위로 다른 사람들이 다시 쌓이고 출입문이 닫히고 다음 역을 떠난 전동 열차를 보면서 다양한 대안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작은 행동들이 쌓여 결국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자주 잊어버린다. 이러니 세상 탓을 해야할 것도, 자기를 탓하게 된다. 뒤늦은 반성과 후회로 자신을 보니, 모든 게 자기 탓이..

에라주리즈 맥스 리제르바 까베르네 쇼비뇽

예전엔 사오만원 대에 있던 와인인데, 가격이 많이 떨어져 삼만원대에 구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수입되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와인이다. 도리어 Max Reserva가 아니라 바로 아래 가격대에 있는 에라주리즈Errazuriz 와인을 보기 더 힘들어졌다. 만 원대에서 쉽게 마실 수 있는 와인으로 에라주리즈, 얄리, 우드브릿지, 디아블로 등이 있었는데, 에라주리즈나 얄리는 쉽게 보기 어려워졌고 디아블로만 엄청 구하기 쉬워졌다. 우드브릿지도 보기 힘들어졌다. 에라주리즈 맥스 리제르바에서는 '쉬라'의 명성이 한때 대단했다. 가성비가 최고라는 평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칠레에서 유명한 와인너리인 에라주리즈. 이 곳에서 나오는 와인들 대부분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적당한 가격대의 에라주리즈 ..

70년대 후반 일본

얼마전 읽은 어느 기사에서 요즘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1970년대 후반, 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세대들에 대한 질투와 원망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아마 자신들의 부모 세대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지금도 위 이미지과도 같은 느낌을 일본에게 받곤 하는 나에겐,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해석되는 일본과 실제 살아가는 이들이 느끼는 일본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저 이미지가 내 시선에 잡힌 이유는 단순한다. 마치 신기루같다고 할까. 상당히 작위적인 풍의 사진이라서 연출된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나는 그것이 거품 시대 일본이 가진 이미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일본은 역사를 잊고 과거를 잊고 현재를 살려고 노력했던 건 아닐까 하고. 그런데 위 사진의 출처를 검색하다가 더 기묘한 상황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