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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백일몽, 로르카 시집, 민음사

사진출처: https://www.concertgebouw.be/en/event/detail/1442/Federico_Garcia_Lorca 강의 백일몽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지음), 정현종(옮김), 민음사 이 번역 시집은 시인 정현종이 스페인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다. 하지만 어떤 시들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지고, 옮겨진 그 언어에서 다시 또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사이에도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집의 경우에 해댱된다. 채 마흔이 되기 전에 총살당한 이 스페인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자면,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첫 사랑을 만난 듯 가슴 떨리고 흥분된다. 서정적인 강렬함이 지배하는 로르카의 시 세계는 후회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 청춘의 아름다운 ..

설중매

2004년에 쓴 포스팅이라니. 벌써 12년이 흘렀구나. 함민복과 채호기의 시다. *** 2004년 1월 27일 *** 강화도 어느 폐가에 들어가 산 지 꽤 지난 듯 하다. 세상의 물욕과 시의 마음은 틀리다는 생각에 인적 뜸한 곳으로 들어가버린 시인 함민복. 그의 초기 시들은 무척 유쾌하면서도 시니컬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연시들이 많아졌다. 외로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광고를 위해 지은 그의 시 "설중매"는 세상의 술에 취한 영혼을 살며시 깨우고 저기 멀리 달아나는 그리움을 조용히 잡아 세운다. 설중매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 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 눈 위에 피었습니다. 꽃 피라고 마음 흔들어 주었으니 당신인가요 흔들리는 마음마저 보여주었으니 사랑인가요 보세요 내 향기도 당신 닮아 둥그렇게 휘..

더 고독했던 때는 없네, 고트프리트 벤

더 고독했던 때는 없네 - 고트프리트 벤 (Gottfried Benn, 1886 ~ 1956) 8월처럼 고독했던 때는 없네성숙의 계절 -, 땅에는붉은, 황금빛 신열(身熱)그런데 그대 정원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가? 맑은 호수, 부드러운 하늘,깨끗한 밭들은 조용히 빛나는데그대 군림하는 왕국의 개선(凱旋)은,그리고 그 개선의 자국은 어디에 있는가? 모든 것이 행복을 통해 드러나는 곳,술 냄새 속, 물건 소리 속에시선을 나누고, 반지를 나누는 곳에서그대는 행복의 적(敵)인 정신에 몸 두고 있네 지독했던 8월이 가고, 여기저기 긁힌 마음의 가장자리는 찢어진 헝겊으로 잘 덮어두곤 가을 놀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변화는, 몸에 무리를 주기 마련. 노트 정리를 하다가 메모 해 두었던 벤의 시를 읽으며, 문득 ..

고착된 생각A Fixed Idea, 에이미 로웰

점심 식사 대신 에이미 로월(Amy Lowell, 1874 - 1925)의 시를 한글로 옮겨보았다. 며칠 전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 로웰의 시가 실렸는데, 처음 듣는 시인이었고 처음 읽는 시였다.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흥미가 일었다. 하지만 시인의 이름만 제공하고 시 제목은 영어를 병기하지 않았다. '고착된'이라는 단어는 쉽게 fixed를 떠올릴 수 있었지만, 먼저 에이미 로웰로 검색해 로웰의 시 목록(http://www.poemhunter.com/amy-lowell/)을 훑었다. 하지만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구글에서 Amy Lowell fixed idea를 추천 검색 키워드로 제시해주었다.(원문 -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and-poets/poems..

푸른 곰팡이, 이문재

푸른 곰팡이 -산책시 1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이문제, 중에서 이문재의 (민음사)가 있는데, 서가를 찾아보니 없다. 정리되지 않는 서가, 정리할 시간도 없는 서가, 이젠 책 읽을 시간과 여유마저 사라지고, 이 시도 읽었으나 이젠 기억나지 않아, 신문에서 읽은 다음, 출처를 찾아본 다음에서야 시집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문재를 읽던 시간도 이젠 드물어지..

귀향, 자끄 프레베르

귀향자끄 프레베르 Jacques Prevert 안민재 역편, 태학당 헌책방에서 구한 시집. 예전엔 외국 번역 시집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긴 시집 읽는 이도 드문 마당에... 번역이 다소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오늘 다시 보니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형편없는 것이 아니라... 1994년에 출판되었고 인터넷서점에선 검색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 소개한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닫혀있는 마음은 밖으로 무너지고 저녁 바람을 새삼 느끼고 저 하늘 달빛이 이 버릇없는 작은 도시의 사람들 위를 비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될 것이다. 대학시절 불어로 시 읽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불어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흔적으로 남았다. 시를 읽으며 술을 마시던 그 시절..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삶이란, 제가 확신하건대 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시는 낯설지 않으며, 앞으로 우리가 보겠지만 구석에 숨어 있습니다. 시는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튀어나올 것입니다. (11쪽) 예술의 세계에서 '그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행하는 것'은 종종 전혀 다른 궤도를 돌기도 한다. 시를 쓰는 것과 시를 아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과 그림을 아는 것, ... ... 이 둘은 서로 연관되어 있지만, 때로 다른 세계를 지칭한다. 그래서 어떤 예술가들은 자신이 위대한 작품을 쓰거나 그리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죽기도 한다. 현대에 있어서는 아르튀르 랭..

여름 소식, 파울 첼란

여름 소식 파울 첼란 이제는 아무도 밟지 않는, 에둘러 가는 백리향(百里香) 양탄자 종소리벌판을, 가로 질러 놓인 빈 행(行).바람이 짓부수어 놓은 곳으로는 아무 것도 실려 오지 않는다. 다시금 흩어진 말들과의 만남, 가령 낙석(落石), 딱딱한 풀들, 시간. - 전영애 옮김, (민음사) 중에서 이렇게 다시 시집을 읽을 줄 알았다면, 그 많던 시집들을 버리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외국 시를 읽게 될 줄 알았다면, 지금 나오지 않는 번역 시집을 사두고 버리지 말 걸, 이렇게 외국 시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될 줄 알았다면 외국어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해 둘 것을... 이번 주 내내 파울 첼란의 시를 읽었다.

고독행성, 박정대

고독 행성 박정대 콜 미, 가수는 밤 새 노래를 하고 나는 로즈제라늄 곁에 누워 있네 여기는 12월의 입구를 떠도는 고독 행성 방울토마토처럼 입 안 가득 깨물고 싶은 밤 그 밤의 옆구리로 밤새도록 눈발들은 허공의 밀사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데, 눈발들이 내려와 고독고독 쌓이는 이곳은 하얀 침묵의 지붕을 모자처럼 쓰고 서 있는 고독 행성 콜 미, 밤 새 가수는 저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지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쌓이는 노래들 고독 행성에 호롱불이 켜지는 점등의 시간이 오면 생의 비등점에선 주전자의 물이 끓어오르고 톱밥 난로의 내면을 가진 천사들은 따스하게 데워진 생의 안쪽에서 영혼의 국경선을 생각하네 콜 미, 가수의 목소리도 가랑잎처럼 바람에 뒤척이는데 창문 밖 국경수비대들도 하얀 눈발을 뒤집어쓰고 곤하..

기러기, 메리 올리버

기러기 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다만 당신 육체 안에 있는 그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라 내게 당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라, 그러면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리라.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비는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산과 강 위로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세상은 당신의 상상 앞에 스스로를 드러내며 기러기처럼, 거칠고 들뜬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다. 다시, 또 다시 네 자리가 있다는 걸,이 세상 모든 것들 속에. - 메리 올리버 장석주의 책, 을 다 읽고 짧은 서평을 올렸다. 최근에 책도 못 읽고 글도 못 쓴 탓에, 그 짧은 서평 쓰는 것도 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