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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 맨, 장정일

슈가 맨 아 - 입 벌려요. 너는 마른 휘파람을 불기 위해 입술을 모았고,나는 그게 지겨웠어.슈가 맨, 벤츠를 사 줘. 너는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훔쳐 왔지.꽃집에서 버린 시든 꽃을 주워 왔지.아울렛에서 싸구려 팬티를 사 왔지.나는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넣었어. 슈가 맨, 너한테 없는 것을 줘.다이아몬드 - 은빛 배 - 파리로 날아가는 전용 비행기 - 번뜩이는 빌라의 지붕 - 금빛 넘실거리는 전자 오르간 - 아 - 입 벌려요. 너는 녹아 사라지고,깊게 썩은 입이 말하기 시작했어. 가엾은 슈가 맨.너는 노래방에서 ... ... - 장정일, , 2015년 여름호 도서관에서 문학잡지를 읽는다. 밖은 낮아지는 구름, 어두워지는 대기, 사랑을 꿈꾸지 않는 젊음, 어긋나버린 시간들로 채워지고, 나는 흔들리며 가라앉는 ..

어느 화요일 밤, 혹은 수요일 새벽

어제 11시에 퇴근하곤 오늘 8시에 프로젝트 사무실로 나왔다. 그리고 오늘, 혼자 저녁을 먹고 서점에서 두 권의 수필집을 산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굳어졌고 프로젝트 걱정, 미래에 대한 염려, 세상에 대한 불안, 가족에 대한 책임,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젠 잠마저 쉬이 들지 못하는 중년의 초가을. 장석주의 , 헬렌 맥도널드의 을 충동적으로 사선 내 마음이 물렁해지고 내 몸이 사랑으로 물들고 세상으로부터 온전한 내 전부가 자유로워지길 꿈꾼다.

어느 터널 속에서

주말 내내 출근을 했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을 홍수 난 강물처럼 흘러갔고 바람은 여름을 버리고 가을을 택했다. 끝내 프로젝트 사무실에서 내 허무를 견디지 못하고, 빌딩 근처 커피숍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토니 주트의 책. 내가 앉은 네모나고 긴 테이블 주위, 둥글거나 네모나거나 가볍거나 무겁거나 따뜻하거나 차겁거나, 모든 테이블에는 다들 연인이 흔들리는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답게 보이진 않았다. 나는 끝내 사랑을 믿지 못할 나이가 된 것이다. 마르케스라면 노년의 사랑도 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사랑을 잃어버린 후이거나 사랑을 믿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러니 사랑을 믿다가 끝내 사랑하지 못한 이에게는 차라리 사랑은 없다고 믿는 편이 살아가는 데 더 용이할 것이다. 마치 ..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지음), 김난주(옮김), 바다출판사 1.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2. 가족, 이제 해산하자3.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4.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5.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6. 신 따위, 개나 줘라 7.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8.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9.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10.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 이 책의 목차다. 정말 이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도 이십 여년이 지났다. 그의 소설, 투명한 서정성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의 산문은 거침없다. 그가 소설에서 보..

2014년의 독서 기록 - 책읽기의 어려움

2014년의 독서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줌파 라히리와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읽었다는 건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다. 또한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다. 2014년 12월에 읽었던 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아직 리뷰를 쓰지 않았지만. 비즈니스 분야의 책들은 많이 읽지 못했으나, 읽는 책마다 나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 주었다. , , , 등은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이 출판되지 않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에선 개정판이 나와 계속 읽히고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한국은 좋은 책이 계속 읽히는 풍토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의 원인은 출판계보다는 독자의 사정 탓인 듯 싶다. 그만큼 책을 읽어 구조화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 아니 습득하는 능력 자체마저 떨어지고 있다고 하면 너무 비약..

금요일 오후, 어느 중년의 일상

금요일, 급격한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이번 주말도 참 힘들게 달렸다. 목요일 오후 늦게 퇴근하면서 나를 위해 혼자 초밥집에 가서 초밥을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리고 설정샷을 찍었다. 이름하여, ... "설정샷. 쓰잘데없이 고귀한 초밥들과의 중년 목록. 광어 지느러미의 애환과 함께 하는, 사라진 백화수복." 그리곤 낯선 소문처럼 주문한 책들이 왔고 ... (올해 목표 100권 읽기를 향해... 아래와 같은 서적들을.. 헐, 미셸 푸코도 끼어있다) 어느 새 다가온 목요일 밤, 빛나는 맥주와 함께 하는 중년 목록. 그리고 이태원에서의 행복한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혹시 ... 당신도... 7월 초 갔던 송도 현대자동차 더 브릴리언트 페스티벌에서 본 노랑색 포니자동차. 저 차 타고 해안 도로 달리면 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지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시미즈 레이나(지음), 박수지(옮김), 학산문화사 La', tout n'est qu'ordre et beaute',Luxe, calme et volupte' 그 곳에선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호화로움, 조용함, 쾌락 뿐.- 보들레르, 중에서 나에게 행복이 있다면, 그건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이미 절판되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책을 우연히 구하는 것. 1990년대 중반, 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나는 그 지역의 서점과 레코드샵을 찾아 다녔다. 작은 서점 구석에 낡은 문고판 책이나 문학 전집의 낱권을 샀다. 작은 도시의 서점에 있을 법 하지 않은 인문학 책을 구할 때면, 신기함마저 느끼곤 했다. 대학 시절, 얼마 안 되는 용돈이었으나, 그 돈으로 틈만 나면 책과 ..

책, 그 살아 있는 역사, 마틴 라이언스(지음)

책, 그 살아 있는 역사 마틴 라이언스(지음), 서지원(옮김), 21세기북스 책이 없었더라면 서구 역사의 위대한 전환기적 사건이 과연 가능했을까?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그리고 계몽주의 모두 활자의 힘을 빌려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영속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지난 2500여 년동안 인류는 필사본 혹은 인쇄본 형태의 책을 이용해 자료를 기록하고, 국가를 통치하고, 신을 숭배하고, 후대를 교육했다. (7쪽) 책의 시작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시대순으로 배열한 이 책은 풍부한 도판과 저자의 흥미진진한 설명으로 독자를 즐겁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나오자 마자, 금서와 검열의 역사도 같이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저자들보다 ..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 이용재

딸과 떠나는 인문학 기행이용재(지음), 디자인하우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도 책 한 권 써서, 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경제적인 위기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아주 비현실적인 상상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뭔가 힌트를 얻을 요량으로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잘 팔리는 책과는 거리가 먼 필자에 가깝기 때문에, 잘 팔리는 책은 어떠한가 살펴보기 위해.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목적이 아니었다면, 정말 후회했을 것이다. 이 책은 글의 조탁(彫琢)이라든가, 단어의 선택, 문맥의 흐름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글의 내용과는 무관한 누군가의 리뷰가 글 초반에 인용되기도 하고(재미 삼아 옮긴 듯한) 인문학 기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했고 마치 짧은 참고서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