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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이

멍멍이를 먹고 난 다음 창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낮고 소리는 세밀해진다. 비에 거추장스러운 인생이 젖는다. 젖은 인생을 창 틀에다 걸어 말리면서 음악 하나 허공으로 던져 여름 바람의 활으로 연주되는 풍경을 듣고 싶지만, ... 그렇다, 여기는 도시다. 도시에선 멍멍이를 먹고 나 다음, 할 일이라곤 주섬주섬 몇 단어 엮어 몸을 흔들어 뛰어갈 수 밖에 없다. 비에 젖지 않기 위해서.

수요일 오전

비가 내리는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선물한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청승맞음에도 여러 가지 단계가 있나 보다. 빨간 장미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로, 수분을 공급하게 만들고 자신의 몸을 적시는 그 물을 하늘의 눈물이라 여기고, ... 그러면서 가끔은 손에 든 빨간 장미가 짤려진 상태라는 걸 잊듯이 자신의 영혼도 불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장미야 짤려진 몸뚱아리 흙과 공기과 물기가 있는 어느 곳에 심으면 자기 힘으로 살아 다음 계절에 꽃을 피우지만, 영혼의 불구는 그렇게 되지 못하나 보다. 오전 내내 고객사에 가서 프로젝트 현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회사로 돌아오는 좌석 버스 안에서 땀을 흘리며 잠시 졸았다. 어느 여름 폭우 쏟아지는 수요일, 내 영혼의 장미꽃 한 다발을 위해, ... ..

하루

가 십 년 내지 십만년 정도로 느껴질 때가 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난 건 아니다. 아주 작은 일이 여러 개, 혹은 조금 큰 일이 하나 정도... ... 꼭 가을에 낙엽 하나가 떨어졌는데, 그 낙엽 모양새가 이미 떠나간 여자의 손을 닮았다든가 아니면 자살한 친구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든가 뭐 그런 것이다. 오늘 그랬다. 어느 여자에게 '난 사랑을 믿지 않아요'라고 메세지를 남겼고 어느 여자에게는 아주 무뚝뚝하게, 아주 이기적인 태도를 남겼다. 언제나 나에게 진실이 존재하지 않았듯이 모든 게 진실이었다. 나에게 하나의 확신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확신이었으면 좋았다. 그러고 보면 쓰잘데 없는 인생에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

희나리

희나리 - 구창모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그렇게도 그대에겐 구속이었소 믿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헤어지는 이유가 됐소 내게 무슨 마음의 병있는 것처럼 느낄 만큼 알수 없는 사람이 되어 그대 왜려 나를 점점 믿지 못하고 웬지 나를 그런쪽에 가깝게 했소 나의 잘못이라면 그대를 위한 내 마음의 전부를 준 것뿐인데 죄인처럼 그대 곁에 가지 못하고 남이 아닌 남이 되어버린 지금에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 새벽 한 시, 어느 택시를 타고 젖은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릴 때, 심야의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줄기, 내 볼 위를 타고 흐르며 느리고 자욱하게 흘러가는 새벽 공기를 울린다. 다시 나는 잠을 잘..

msn

MSN이 되지 않는다. Client 및 협력사와의 Communication을 MSN으로 하고 있는데, ... 오늘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누군가가 날 등록할 예정인데, 그 사람도 날 보지 못하겠군.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러고 보면 Techonology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인터넷이 되지 않으면 업무가 되지 않고 휴대폰이나 IM(instant messenger)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 ... 우리는 삶의 편의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편의를 위해 새로운 제약들을 개발하고 있었던 셈이다.

레퀴엠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듣는다. 종일 집 밖으로 두 번 나갔다. 어제는 한 번 나갔다. 다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먹는다는 것만큼 서글프고 고달픈 것도 없다. 이건 정기적으로 여자와 자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해서 후자의 경우처럼 어떤 애정이나 감미로움이 흐르는 것도 아니다. 모짜르트 음악의 최고는 '레퀴엠'이 아닐까 싶다. 이야말로 음악에 대해 문외한인 이가 떠드는 것이긴 하지만. 위 앨범은 영화 의 O.S.T이다. LP Side 4에 레퀴엠이 실려있다. 그 외 모짜르트 레퀴엠 앨범만 두 장이 있는데, 다음 기회에 소개할까 한다. '장송곡'이라, 좀 그렇긴 하지만. 하루키의 유쾌한 말은 듣는다면 당신도 장송곡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죽은 자를 칭송하는 건 기분좋은 일이다. 젊어서 죽은 사람은 더더..

공중곡예사, 폴 오스터

공중 곡예사 -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열린책들 폴 오스터, Mr.Vertigo, 열린책들. '공중곡예사'라는 번역 제목은 썩 성공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미스터 버티고'나 '현기증씨'가 낫지 않을까.(그만큼 이 소설 속에서 '현기증'이라는 소재는 매우 중요하다. 소설 속에 아주 짧게 언급되지만, 주인공 인생에 있어 한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거리감'이다. 가령 고등학교 때 친구가 건네준 빨간 포장의 말보루를 가슴 깊숙이 삼키고 난 다음 펼쳐지는 거리 풍경과 팽창하는 동공과의 거리 변화 따위나 대학 때 옆에 사모하는 여자를 앉히고는 연거푸 데킬라 스트레이트 잔을 여러 잔 마시고 손을 뻗쳐 그 여자의 얼굴 위로 갖다댈 때, 손가락 끄..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페터 한트케

페터 한트케,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문학동네. 힘들게 읽은 작품. 몇몇 뛰어난 문장들이 눈에 보임. 그러나 전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그냥 일반적인 소설 읽듯이 읽어선 접근하기 어려움. 구성의 치밀함이 있는 듯 하나, 그것을 알기에는 지하철은 무척 안 좋은 공간이었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당한 텍스트는 헐리웃 영화인 듯함. 이 소설, 무척 재미없음. 예술이 대중과 멀어지는 이유는 그 어떤 것도 이 세상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데, 페터 한트케의 작품도 여기에 포함됨. 최근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예술이 스스로의 담을 쌓고 그 속에서 완결된, 무척 행복한 자기 변명의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

미학적 마케팅

번 슈미트의 미학적 마케팅 - 번 슈미트.알렉스 시몬슨 지음, 인피니트그룹 옮김/김앤김북스 미학적 마케팅 Marketing Aesthetics - 번 슈미트, 알렉스 시몬스, (한상만, 최주리 편역) 한언, 1999. The Strategy of Brands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기업의 브랜드 아이덴터티 구축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론적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 책이 브랜드 아이덴터티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져다 주지만,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브랜드 아이덴터티 전략을 세울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의 상품 내지 한 기업의 브랜드 전략은 멋진 브랜드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경쟁력, 기업의 서비스 경쟁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