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345

베네치아의 종소리, 스가 아쓰코

베네치아의 종소리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문학동네 자주 수필집을 찾게 된다. 심각한 소설이나 엄숙한 인문학 책 대신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 내가 늙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크게 상처 입지 않으며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글을. 스가 아쓰코. 우연히 도서관 서가를 살펴보다 꺼낸 산문집의 저자이다. 역자 송태욱은 잘 아는 이름. 십수년 전 가라타니 고진의 책 여러 권을 무난하게 번역한 이니, 믿을 만하다. 어쩌면 역자 때문에 스가 아쓰코의 책을 집어든 것일지 모른다. 스가 아쓰코. 1929년에서 1998년을 살다 죽은, 일본의 번역가이자 수필가. 예순 하나에 쓴 에세이로 일본 문단 최고의 에세이스트로 유명세를 얻었다. 에는 총 12편의 글이, 시간의 순서나, 주제나 소재의 질서와 무관하게 배열..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지음), 이윤기(옮김), 열린책들 하나, 둘, 셋, 넷, ... ... 계단을 올라가듯 만남도, 사랑도, 인생도 그렇게 올라갔으면. 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요즘 초등학생도 알고 있을 터, 꿈은 부질없고 희망은 덧없고 현대의 사랑은 하면 할수록 쓸쓸해지기만 한다. 이 소설 속 '나'도 그렇게 여겼던 건 아닐까. 나는 구석자리에 앉아있었다. 한기가 느껴져 두 번째로 샐비어 술을 시켰다. 나는 자고 싶은 욕망과 이른 새벽의 피로, 그리고 적막과 싸웠다. 나는 희뿌연 창문 저쪽의, 뱃고동과 짐수레꾼, 뱃사람들의 고함 소리로 깨어나는 항구를 바라보았다. 보고 있는 동안 바다, 대기, 그리고 내 여행 계획으로 짜인, 보이지 않는 그물이 내 가슴을 압박하는 것 같았다. (..

라틴어수업, 한동일

라틴어수업한동일(지음), 흐름출판 집에 있던 '라틴어-영어 사전'을 최근 버렸다. 이십여년 전 구한 사전이었다. 그 때만 해도 한글로 된 라틴어 교재는 거의 없었고 라틴-한국어 사전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책을 읽으며 라틴어를 확인하는 용도로라도 필요하겠다 싶어 영국 옥스포드대학 출판사에 나온 작은 사전을 교보문고 외서 코너에서 구했다. 원서 강독을 하면서 자주 그 사전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인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지 십 수년이 지났고 더 이상 집 서가에 책을 꽂을 공간이 없어, 읽은 책들, 그래서 앞으로 더 이상 읽지 않을 책들을 버리는 중, 빛 바래고 낡은 그 사전도 함께 버렸다. 그리고 몇 달 후, 이라는, 이 책을 읽었다. ,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딱 그 정도인 수필..

낭만적인 자리, 이영주

도서관에서 시집을 꺼내 읽는다. 어느 토요일 오전. 가족 몰래 나온 도서관. 가끔 가서 책을 빌리는 동작도서관 3층. 어색한 시집 읽기다. 한 때 시인을 꿈꾸기도 했지. 그러게. 요즘 시들은 어떤가. 문학상 수상 시집을 꺼내 읽는다. 한 시가 눈에 꽂힌다. 이영주다. 예전에도 이 도서관에서 잡지에 실린 시를 읽고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지. 하지만 그녀의 시집을 사진 않았어. 이번엔 사야 하나. 길게 마음 속으로 고민을 한다. 그리고 시를 노트에 옮겨 적는다. 몇 개의 계절이 지난다. 지났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고, 나는 출근을 했다. 그리고 밤이 왔다. 시를 블로그에 옮겨적는다. 그러게 이번엔 이영주의 시집을 사야 하나. 이번엔 짧게 고민해야지. ** 낭만적인 자리 그는 소파에 앉아 있다. 길고 아름다..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폴 칼라니티(지음), 이종인(옮김), 흐름출판 You that seek what life is in death,Now find it air that once was breath.New names unknown, old names gone:Till time end bodies, but souls none.Reader! then make time, while you be,But steps to your eternity- Baron Brooke Fulke Greville, "Caelica 83"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세월..

연인들Lovers, 리처드 브라우티건

Lovers - Richard Brautigan I changed her bedroom:raised the ceiling four feet,removed all of her things(and the clutter of her life)painted the walls white, placed a fantastic calm in the room, a silence that almost had a scent,put her in a low brass bedwith white satin covers and I stood there in the doorwaywatching her sleep, curled up,with her face turned away from me. 1969년에 나온 시집 에 실린 시다. 초..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처드 브라우티건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지음), 김성곤(옮김), 비채 원제는 이지만, 보다 가 더 나아보인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하지만 이 책의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편은 . 잭은 할머니와 30년이나 같이 살았다. 내 친할아버지는 아니었고 플로리다에서 물건을 팔던 이탈리아 사람이었다.잭은 사람들이 사과를 먹고 비가 많이 오는 곳에서 영원한 오렌지와 햇볕에 대한 비전을 파는 사람이었다. 잭은 마이애미 다운타운 근처에 있던 할머니집에 물건을 팔러 왔다. 그는 일주일 후 위스키를 배달하러 왔다가 30년을 눌러 살았으며, 그 후 플로리다는 그 없이 지내야 했다. - 중에서 (* 위 인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브라우티건은 사물의 관점에서 종종 서술하는데, 꽤 흥미롭다. '플로리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라로슈푸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라로슈푸코(지음), 강주헌(옮김), 나무생각 원제는 『잠언과 성찰』(Reflexions ou sentences et maximes morales, 1665)이다. 니체가 매우 존경하였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 라로슈푸코(Francois de La Rochefoucauld, 1613 ~ 1680)의 잠언집을 읽었다. 17세기 작가의 문장들은 쉽게 읽힌다. 몇 개의 문장들은 흥미로웠다. 적당히 염세적이고 시니컬했다. 생각하는 것보다 팬이 많아서 어느 일본인 작가는 평전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도 했다. 몇 개의 문장들을 옮긴다. - 우리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 - 철학은 과거의 불행과 미래의 불행을 그럴듯한 이유로 극복하라고 설..

흰밤, 백석

흰밤 옛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묵은 초가지붕에 박이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 백석, 1935년 11월, 혼자 술에 취해 거실 탁자에 앉아 시집을 꺼내읽다 왈칵 눈물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눈물에, 내가 왜 이럴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감수성이라는 게 살아있었나 하는 안도감을 아주 흐르게 느꼈다. 글쓰기는 형편 없어지고 책읽기도 그냥 습관처럼 변해, 종종 내가 왜,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지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논리 정연해진 것도, 그렇다고 사람들을 감화시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리더십을 가지게 된 것도 아니다. 도리어 거짓말장이가 되고 불성실해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선사..

데보라 레비Deborah Levy가 이야기하는 다섯 권의 책

이젠 습관이 된 탓에 시간의 여유만 생기면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글들을 수시로 프린트해서 읽는다. 며칠 전에 읽은 인터뷰에 몇 권의, 인상적인 책 소개가 있어 옮긴다.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고, 내가 미처 몰랐다는 사실이 다소 미안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당신의 침묵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라는 메시지로 사회 참여를 강하게 외쳤던 오드리 로드, 영국 출신이면서 20세기 초반 초현실주의 세례를 받은 화가이자 소설가 레오노라 캐링턴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였다. 셜리 잭슨은 이미 많은 작품이 영화화되기도 한, 고딕 호러 분야에 있어선 최고의 소설가였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데보라 레비는 흥미로운 작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녀도 이미 영국의 부커상 최종 후보로 여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