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 9

혼술과 커피에 대한 실존적 고찰

매일 아침 저녁, 또는 시간 날 때마다 일기를 쓴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과 종교적 기원을 적는다. 오늘 하루가 어떤 일들로 구성되었는지 적지 않는다. 그걸 적으려고 보니, 너무 길어질 것같기도 하고 그럴 정신적 에너지도 남지 않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작은 나이다. 앞으로 그 비율은 더 심해질 것이다. 딱히 지혜나 통찰을 가지지도 못했고, 그나마 있던 지식이나 상식도 얇게 스쳐가는 바람에 휘익 쓸려 날아가고 있는 늦겨울, 혹은 초봄이다. 낯선 이들과 교류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젊은 이들과 술을 마시거나 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감수성이 무뎌지거나 슬픔이 덜 하거나 쓸쓸함이나 고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외면할 뿐. 다시..

글로벌리티, 해럴드 L. 서킨 외

글로벌리티 Globality 해럴드 L. 서킨, 제임스 W. 해머링, 아린담 K. 바타차르야(지음), 김광수(옮김), 위즈덤하우스, 2010 비용격차를 규명하라인력을 양성하라시장 깊숙이 파고 들라조직을 최적화하라크게 생각하고, 재빨리 행동하고, 밖으로 나아가라민첩하게 혁신하라다수성을 포용하라 이 책에 강조하는 주제이자, 목차이다. 그리고 이 주제를 중국, 인도, 태국, 멕시코, 브라질 등 국가에서 급 성장한 여러 기업들을 통해 강조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다양한 기업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기 부담없다. 다만 2009년에 번역 출간된 책이라, 지금 읽기에는 다소 철 지난 느낌이 없지 않다. 지금은 이름만 남은 노키아도 사례로 등장하고..

고전학 공부의 기초, 브루스 손턴

고전학 공부의 기초 : 서구 문명의 뿌리를 이해하는 법 (A Student's Guide to Classics) 브루스 손턴Bruce Thornton(지음), 이재만(옮김), 유유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선 서양 고전 -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학, 역사, 언어, 철학 등 - 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동양학을 하더라도 이젠 기본적으로 서양 고전에 대한 이해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내 개인적 소망일 지도 모르겠구나. 고대 그리스 로마는 너무 멀리 있는 시대이기도 하거니와, 인문학 전공자들 가운데 서양 고전에 대한 제대로, 아니 기본적인 이해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은 서양 고전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대학 강의를 하거나 인문학 서적을 출간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

인생의 발견, 시어도어 젤딘

인생의 발견 The Hidden Pleasures Of Life 시어도어 젤딘 Theodore Zeldin (지음), 문희경(옮김), 어크로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이다. 시어도어 젤딘이라는 학자를 알지 못했으며, 이 정도로 수준 높은 인문학 서적일 지 예상하지 못했다. 시어도어 젤딘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다양한 인물들과 저서들, 그리고 관련된 인용과 이야기들로 책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으며, 고대와 현대, 중세를 오갔다. 지역과 세대를 넘나들며 독자들로 하여금 사고의 틀을 깨고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해주었다. 특히 '1866년 벵골에서 태어난 하이마바티 센Haimabati Sen의 기록'은 무척 흥미로웠으며, 뿐만 아니라 에이젠슈타인, 메버릭, 심복, 린네 등 각각의..

낭만적인 자리, 이영주

도서관에서 시집을 꺼내 읽는다. 어느 토요일 오전. 가족 몰래 나온 도서관. 가끔 가서 책을 빌리는 동작도서관 3층. 어색한 시집 읽기다. 한 때 시인을 꿈꾸기도 했지. 그러게. 요즘 시들은 어떤가. 문학상 수상 시집을 꺼내 읽는다. 한 시가 눈에 꽂힌다. 이영주다. 예전에도 이 도서관에서 잡지에 실린 시를 읽고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지. 하지만 그녀의 시집을 사진 않았어. 이번엔 사야 하나. 길게 마음 속으로 고민을 한다. 그리고 시를 노트에 옮겨 적는다. 몇 개의 계절이 지난다. 지났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고, 나는 출근을 했다. 그리고 밤이 왔다. 시를 블로그에 옮겨적는다. 그러게 이번엔 이영주의 시집을 사야 하나. 이번엔 짧게 고민해야지. ** 낭만적인 자리 그는 소파에 앉아 있다. 길고 아름다..

텅빈 주말의 사소한 희망

설 연휴가 지난 어느 토요일, 종일 집에 틀어박혀 두 권의 책을 다시 펼쳤다(리뷰를 쓰지 못했기에). 젤딘의 과 바라트 아난드의 . 그리고 한 권의 책, 게오르그 짐멜의 를, 억지로 다 읽었다,고 여기기로 했다. 과 를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다. 오랜만에 트래백(trackback)을 해볼까 했더니, 네이버 블로그엔 그런 기능이 아예 없었다. 아난드는 콘텐츠의 미래는 '연결관계connection'에 있다고 했는데... 아이와 함께 노량진수산시장에 가서 전복과 산낙지를 샀다. 며칠 전부터 전복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서 주말에 간 것인데, 살아있는 낙지를 보더니, 그것도 먹고 싶다고. 결국 전복과 산낙지를 사와 집에서 산낙지부터 회로 준비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걸 자르려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거의 ..

콘텐츠의 미래, 바라트 아난드

콘텐츠의 미래 The Content Trap 바라트 아난드(지음), 김인수(옮김), 리더스북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인터넷이 새로운 라디오라고 생각하니까요" - 닐 영Neil Young 읽은 지 벌써 반 년은 흘렀고, 출퇴근하는 지하철이나 일상 속에서 가끔, 띄엄띄엄 생기던 토막 시간에 읽은 탓에 정리해놓은 노트도 없다. 그러니 리뷰 쓰기도 살짝 부담스럽다. 돌이켜보건대 책을 다 읽었을 때의 느낌은, 짧게 쓸 수 있는 책을 왜 이리 길게 적었을까 였다. 살짝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2016년 10월에 출간된 책이 2017년말경에 번역되었으며(1년이 지난 시점), 내가 사서 읽은 건 2018년 중반이었던 탓에(거의 2년이 지난), 책의 상당 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When Breath Becomes 폴 칼라니티(지음), 이종인(옮김), 흐름출판 You that seek what life is in death,Now find it air that once was breath.New names unknown, old names gone:Till time end bodies, but souls none.Reader! then make time, while you be,But steps to your eternity- Baron Brooke Fulke Greville, "Caelica 83"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세월..

신기관, 프랜시스 베이컨

신기관 Novum Organum 프랜시스 베이컨(지음), 진석용(옮김), 한길사 근대(Modern)를 여는 대표적인 고전이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평이했다. 도리어 아리스토텔레스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베이컨의 문장들이 더 흥미로웠다. 지금 해석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당시(1620)에 받아들여졌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르든가, 아니면 스콜라철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본 아리스토텔레스였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은 전체적으로 연역법적 태도를 공격하고 귀납법적 태도를 옹호한다. 어쩌면 전체주의 시대를 겪었던 칼 포퍼가 시대를 거듭하며 다른 모습을 재현되는 플라톤주의를 공격하듯(), 베이컨은 17세기 초반 서구 문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중세주의(연역법, 스콜라철학,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