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65

Marquis De Chasse Bordeaux 2007

Marquis De Chasse Bordeaux 2007 Ginestet, France 메를로(Merlot)와 카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을 브랜딩한 전형적인 보르도 와인이다. 참 이렇게 적고 나니, 할 말이 없다. 위 문장으로 마르퀴스 드 샤스 보르도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니 말이다. 와인이 이렇게 밋밋한 감상평으로도 끝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이 리뷰를 적기 위해 이 와인 정보를 검색해 보니, Marquis De Chasse Medoc의 가격은 이 와인의, 거의 두배 가격이었다. 하긴 몇 년 전 파리에 갔을 때에도, Medoc 와인은 따로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때 환율을 고려해 환산해보면 만원 이하 와인은 보기 드물었다. 다행히 다른 지역의 좋은 와인들이 ..

루피노 키안티 Ruffino Chianti 2009

Ruffino Chianti Bottle Italia, 2009 Sangiovese 90%, Canaiolo 10% 주위 사람들에게 와인을 권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구입 가격이 일반 술보다 비싸고 마시는 것마저도 이렇게 잔을 들어야 한다거나 화이트 와인은 언제, 레드 와인은 언제 마시면 좋다는 등 와인을 처음 마시는 우리에게 와인은 참 불편한 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와인을 찾는 것일까. 그건 무작정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과 달리 와인은 숨을 고를 수 있고 상대방의 시선을 의식하며, 상대방의 호흡과 숨소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긴 모든 술이 그렇긴 하다. 그러나 그랬던 술이 지쳐가는 세계 속에서 무작정 취하기 위한 술이 되어버린 탓이다. (프랑스에서 와인은 늙은이들이나 마시는 ..

샤또 세규르 드 까바냑 Chateau Segur de Cabanac

오랜만에 깊고 부드러운 와인을 마셨다. 붉은 빛깔이 나는 알콜은 원래 바람이 지나는 풍경을 나풀거리는 가로수의 잎사귀로 알아차릴 수 있는 커다란 유리창 안 한적한 공간 안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일상이 가져다 준 긴장한 마음을 잠시 풀고, 피곤에 지친 몸을 낡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마시는 것이 제격이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한동안 그러지 못하리라.) 용산 후암동에 위치한 이탈리안 식당. 남산도서관 인근의 독일 문화원 옆 주차장 아래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일 비노 로쏘(IL VINO ROSSO)에서 나는 이 와인을 마셨다. 샤또 세규르 드 까바냑(Chateau Segur de Cabanac) 2003. 오래된 와인을 마실 때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오후 일찍 시작해 해질녁까지 이어지는 술자..

Villa Antinori 2005

Villa Antinori Toscana 2005 Sangiovese 60%, Cabernet Sauvignon 20%, Merlot 15%, Syrah 5% 오랜만에 맛보는 이탈리아 와인이었다. 이탈리아 와인 특유의 부드러움이 있으면서도 향긋한 묵직함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와인이라, 이제서야 마신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 안티노리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와이너리이며, 이 와이너리의 대표적인 와인이다. 샵가격은 4만원 수준에서 형성되어 있다. 다른 년도의 이 와인의 맛은 잘 모르겠다. 축복받은 해인 2005년산이라는 것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이 가격에서는 다른 좋은 와인들도 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 오랜만에 와인 리뷰다. 이제 자주 올릴 생각이다.

와인 정치학, 타일러 콜만

와인 정치학 -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와인 애호가로서 나는 좋은 품질의 와인을 저렴하게 마시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그 바람이 단기간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하긴 와인도 하나의 비즈니스이지 않은가. 우리는 종종 예술가처럼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해 포도를 수확하고, 정성스럽게 와인을 만들고, 이렇게 생산된 와인에 대해 마치 예술작품인 것처럼 현란한 수사로 포장된 현학적 평가나 평론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와인 정치학은 종종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유명한 와인 제조업자는 와인을 만드는 데 있어 모든 노하우를 쏟아 붓겠지만 그들 ..

지난 일요일, 시루SIRU에서의 한 때

와인을 즐겨 마신 지도 벌써 5년이 되어간다. 아주 우연히 와인에 빠졌다. 그 이후 와인 가이드 북만 몇 권을 읽었고, 거의 매주 와인을 마셨다. 와인에 빠지는 것만큼 위험한 짓도 없다. 재정적인 위기가 오기도 했고 보관을 잘못하는 바람에 값비싼 와인을 날려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와인을 알게 된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지난 일요일에는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와인 모임을 가졌다. 일행 중에 사진을 찍던 이가 있어, 사진 몇 장을 올린다. 시루(SIRU)라는 곳에서, 오후 3시에 만났다. 천정 위로 빼곡히 빈 와인병이 쌓여있다. 제법 좋은 인테리어 아이디어다.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 1병, 보르도 AOC 1병, 칠레산 쉬라즈 와인 1병. 그 뒤로 보이는 디켄터.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는 디켄팅을 ..

주말

한 두 달 전, 삼성동 인터알리아에서 요시토모 나라의 판화를 보면서, '이 사람 참 감각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일요일 아침, 아트저널 2009년 신년호를 보면서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치 피부 세포 하나 하나가 낮은 하늘을 가진 어느 날, 대기 속의 물방울에 젖어, 까끌까끌하게 날이 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트저널에 실린 어느 갤러리의 요시토모 나라 전시 광고 페이지. 오래, 혼자 살다보니, 이것저것 다 해보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금붕어 돌보기와 화분들이다. 이 방 저 방 한 두개씩 있던 화분들을 현관 입구에다 모아놓았더니, 제법 보기 좋았다. 아무도 없는 낮에는 꽤 쓸쓸하고 답답하겠지만, 퇴근 후 나는 이들을 위해 온 집의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둔다. 일요일 낮에는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나,..

사진 몇 장

점심 식사를 했다. 사무실 근처에서의 점심 식사는 대체로 무의미하거나 우울하거나 쓸쓸하다. 하루 종일 기획서를 쓰고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고객이나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를 협의한다. 어젠 신사동에 있는 어느 갤러리에 들렸다. 그 갤러리의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한다. 회사 일에, 아트페어 준비에, 이젠 갤러리 일까지 해야 하는 건가. 흥미가 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 몇 장을 올린다.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100%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일요일 오전이 전부다. 마지막 연애도 오래 전에 1년을 지났고 이젠 2년을 향해 달려간다. 일상을 꽉 짜여져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가끔은 치명적인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이 지상에서 살아온 시간이 늘어나는 것과 비..

와인 애호

지난 주부터 매일 술을 마시고 있다. 다시 오늘만 약속이 없고. 수, 목, 금, 토, 계속 약속이 잡혔다. 갑자기 사정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사는 게 무척 터프하게 변해버렸다. 여간해선 요즘에 술 마시고 실수하지 않는데, 어젠 술을 너무 많이 마셔버렸다. 그리고 술 잔뜩 취한 채 몇 명에 전화를 했다.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긴장을 놓으면 안 되는데 말이다. 근사한 와인 마시고 싶은 열망이 요즘 부쩍 심해졌다. 결국 와인 동호회 활동을 좀 열심히 하기로 했다. 아는 사람들끼리 와인 소모임 만드려고 했으나, 일정을 잡아서 정해진 시간에 만난다는 것이 예사 일이 아니라서, 그만 두었다. 그리고 주변에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도 드물고 해서. 오늘 저녁은 집 근처에서 운동하고 집에서 쉬는 모드다. 오랜만에 집 청..

B&G Bordeaux 2005

Barton & Guestier Bordeaux Merlot - Cabernet Sauvignon, 2005 일요일 저녁 김포공항 이마트에서 한 병 구입해 마셨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마신 것이, 결국 한 병을 다 마시고 말았다. 지난 한 주, 심리적 긴장과 정신적 불안이 극에 달해 있었으며, 내가 취하는 어떤 행동들도 최선의 것이 되지 못했던 순간들로 채워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못할 어떤 일을 겪었고, 지난 일요일 그것을 끝냈다. 다행히 이 와인은 특별함이 없었다. 특별했다면, 나는 와인 향에 기뻐했을 것이고 결국 술을 더 마셨을 지도 모른다. 여느 프랑스 와인이 그렇듯이, 멜롯과 카베르네 쇼비뇽의 조합이다. 그런데 멜롯의 달콤함만 부각되고 카베르네 쇼비뇽의 거칠고 깊은 풍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