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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기도하는 마음으로 견디자.

2023년말 우리 모두가 알았던, 이제는 세계 사람들이 아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던 영화배우가 스스로 이 세상과 등졌다. 두 아이의 아빠가 그렇게 떠났다. 이제 한국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비가 와도 내 책임, 눈이 와도 내 책임 같다던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가신 후에, 한국 사회는 안타깝게도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잠시 선진국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지금은 하염없이 뒤로, 과거로 밀려내려가는 중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 나라의 리더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과 비례할 뿐이다. 새해 초부터 야당 지도자의 피습 소식이 멀리 남쪽 도시로부터 전해져 오고, ... 혹시 사람들은 알련지 모르겠지만, 야당 지도자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대부분이 구속되었거나 검찰 고발을..

2023년의 대한민국이 싫다

두 아이의 아빠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너무 화가 나는 하루였다. 검찰, 경찰, 언론의 합작품이다. 그리고 자극적인 컨텐츠를 올리는 유튜버들과 무관심한 척하는 대중들의 묵인 아래 이루어진 일이다. 실은 며칠 전 아파트 화재 속에서 어린 딸들을 안고 뛰어내린 아빠의 부고 기사를 보면 열이 받아있었다. 방 안에서 담배 때문에 불이 났고, 그 담배를 피운 이가 70대 노인이라는 사실에, 그냥 지금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의 앞날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정치든, 경제든 ... 평일 교외 카페를 가보라. 한껏 꾸며 입고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로 가득하다. 실은 노인이라고 부르기도 그렇다. 60대, 70대여도 아직 젊게 보이니까.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이 젊을 때 열심히 일해 쌓아 올린 부라고 ..

<<서울의 봄>>을 보고

성탄절 연휴 때 아들과 을 보았다. 그냥 보고 난 다음 생각을 메모해본다. 1. 지금 60대는 80년대에 이십대 청춘을 보낸 이들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기사들을 보면 이들 대다수가 현 여당(국민의 힘)을 지지한다. 그들이 그들의 청춘을 어둡게 만들었던 신군부 세력의 정치적 후배들을 지지한다. 나는 그것에 심한 절망감을 느꼈다. 심지어 80년대 반정부 민주화 투쟁으로 젊음을 불태웠던 이들 중 일부는 신군부 세력의 정치적 후배들이 되었다. 더 나아가 뉴라이트의 핵심 주축이 되었다. 2. 어쩌면 이것은 한국인 특유의 성향이 개인 삶의 일관성이나 자신을 증명하는 세계관이나 가치, 철학을 한 번에 내팽개칠 수 있는 문화적, 심리적 토대를 형성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것이 심리적 변명으로 작용하여 ..

하기아 소피아 성당

하기아 소피아 성당.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스탄불로 바뀌면서 교회는 이슬람사원 모스크로 바뀌었다. 그러니 현재의 모스크들은 건축학적으론 그리스도교의 교회에서 유래한 것이다. 애초에서는 로마의 바실리카에서 왔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르네상스 교회의 면죄부 판매는 성장하던 오스만제국에 맞서기 위한 로마 교황의 무리한 욕심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자생적으로 나온 듯하지만 실은 오스만제국과의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도 영향이 있었다. 내가 갔던 십수년 전 소피아성당에선 모스크의 흔적을 지우고 초기 교회의 벽화를 복원하고 있었다. 의미심장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 아래서 성지순례를 온 한국 기독교인들의 무례한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불쾌했지만. (하지만 2020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박물관에서 다시 모스크로..

눈 내린 도서관에서의 빡침 - 공적 공간의 사적 점유

책들이 고요하게 숨을 쉬는 서가 사이로, 눈 내리는 창 밖 풍경을 보러 집 근처 도서관에 왔지만, 아, 나는 스트레스로 터질 것만 같다. 내 옆에 앉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는 참고서를 잠시 보다가, 다시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고는 다시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참고서를 잠시 보다가 다시 뒤를 돌아보고, 그리고 이 행동을 무려 한 시간 이상 반복을 하다가 나갔다. 심지어 커피를 가지고 간 사이 내 책가방을 내려놓고 자신의 책가방을 올려놓는 대범함까지 보여주었다. 그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집어던질 뻔했다. 그 화를 참는데 약 삼십분 정도 걸렸다. 앞 좌석에 앉은 한 여성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앉더니,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기 시작한다. 책상 위에는 아무..

이미 시작된 전쟁, 이철

이미 시작된 전쟁 이철(지음), 페이지2 가끔 한국에서의 전문가 집단이 있는가 의아스러울 때가 있는데, 이런 책을 읽을 때이다. 러셀 저코비가 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의 지식인이 사라진 현상을 분석했듯이, 한국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다. 실은 대중들이 학교 선생이나 대학 교수들에게 기대하는 면이 있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과 식견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와 앞으로 닥칠 세계에 대한 이해와 대비일 것이다. 하지만 러셀 저코비가 프레드릭 제임슨을 비난하듯이 한국 대학 교수들 대부분은 학술지에만 글을 기고할 뿐, 대학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러셀 저코비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저서들은 학자들 사이에선 유명할 지 모르나, 일반 대중, 또는 인문학 전공으로 정상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이들조차 읽기 힘들고 심..

독서모임 빡센 - 책읽기 멤버 모집

안녕하세요. 한참을 닫아두었던 오프라인 독서모임을 재개하였습니다. 아는 분의 강권으로 책 읽기 모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나, 너무 오래 쉬었던 탓인지 참여하는 멤버가 거의 없네요. 몇 달동안 2명이 모여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바빠지는 연말에 잠시 쉬고 있는 중에, 이렇게 블로그에 공지를 올립니다. 저 또한 미루다 미루다 독서모임을 시작한 것입니다. 예전엔 혼자 읽기 어려운 인문학 책들 위주로 독서모임을 운영하였으나, 이젠 그 범위를 넓혀 다양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책을 넘어서 역사, 사회, 철학, 과학, 정치 등 지금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1달에 한 번 정도 오프라인 모임을 할 ..

책들의 우주 2023.12.14

연결된 위기, 백승욱

연결된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반도 위기까지, 얄타체제의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백승욱(지음), 생각의 힘 가끔 전국의 대학에 인문학 교수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이 가끔은 너무 신기하다. 왜냐면 내가 읽거나 읽으려고 기록해두는 인문학 책들 중에 국내 대학의 교수가 쓴 책은 정말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수십 년부터 이야기되던 인문학의 위기는 실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 교수의 위기라는 점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대학의 인문학 교수들은 좀 반성해라) 중앙대 사회학과 백승욱 교수의 글은 종종 여러 지면에 읽은 바 있다. 꾸준히 읽는 저널이 없음에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일반 대중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하고 있는 인문학자라 할 수 있다(그런가?). 이 책 는 최근의..

계속되는 이야기, 세스 노터봄

계속되는 이야기 Het Volgende Verhaal 세스 노터봄 Cees Nooteboom (지음), 김영중(옮김), 문학동네 이것이, 내가 믿는 그것이다. 육체적 죽음의 거친 고통이 아니라, 존재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데 필요한 신비로운 정신적 행위에 비할 데 없는 고통이다. 그 고통은 쉽게 찾아온단다. 알겠니, 아들아.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공허함, 그것은 어지러워하는 개의 눈에서 볼 수 있는 공허함이다. 내가 그 낯선 침대에서 느꼈던 것도 공허함이다. (13쪽) 사랑이야기지만, 사랑에 대해선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단어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히 사랑이야기다. 동시에 불륜이야기다. 동료 교사 유부녀와의 사랑 이야기이면서 한참 어린 제자에 대한 사랑이야기다..

동네 구멍가게의 폐업

마지막 남은 동네 구멍가게가 문을 닫았다. 이제 내가 사는 곳 반경 1km 이내에 구멍가게는, 없다. 대형 수퍼마켓과 편의점들만 남았다. 하나 둘 있던 식당들도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간판을 바꾸고 있다. 각자의 개성은 사라지고 평준화되며 비슷비슷하게 변해간다. 익숙해지고 평범해지면서 활력을 잃어간다. 풍경의 변화가 익숙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곳엔 이젠 나무 한 그루만 남아있다. 뒷산은 그대로이지만, 산으로 들어가는 길들은 모두 변했다. 어렸을 때 집들이, 마을이 사라지는 풍경을 보았다. 논, 밭, 집들이 있던 곳은 텅빈 황토빛 대지로 변했다. 그렇게 변해가던 몇 년 동안 그 곳을 돌아다니며 수정을 모았다. 자수정 광산이 있는 창원은 땅을 파헤치면 어렵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