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 8

도망가듯, 연천 호로고루

호로고루(瓠蘆古壘)은 한자 의미 풀이에서도 알 수 있듯 '표주박처럼 생긴 오래된 작은 성'이라는 뜻이다. 지난 토요일, 요즘 일상이 너무 힘들어 바람을 쐴 겸, 언제나 궁금했던 연천 호로고루에 다녀왔다. 그러나 진입로를 찾기 어려웠고 좀 어수선한 분위기랄까. 옆에 임진강이 있다는 것 이외에는 볼 만한 것이 없었다. 9월달에는 해바라기를 볼 수 있지만, 지금은 없고 10월에 피웠던 것으로 보이는 코스모스도 거의 없었다. 기원 후 5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이 남아있지만, 그 외의 것은 흔적만 남았고 이도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다. 일종의 작은 군사 기지 같은 개념으로 강을 끼고 고구려 최남단 경계선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입구에 광개토대왕비가 있다는 것이다. 북에서 가져온 것인데, 실..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The Conscience of a Liberal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지음), 예상한, 한상완, 유병규, 박태일(옮김), 현대경제연구원BOOKS, 2008년 ‘미래를 말하다’라는 번역서의 제목은 어울리지 않는다. 폴 크루그먼이 미래를 위해 이 책을 쓴 것 같지 않고 독자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미래에 대한 어떤 조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대신 이 책을 통해 지난 약 백 년간의 미국 정치 지형의 변화와 이로 인해 심해진 경제적 불평등을 알 수 있다. 동시에 한국 사회도 미국 사회와 비슷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고 할까.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08년도에 번역 초판이 나오고 2009년에 나온 32쇄본이다. 엄청 팔린 책인 셈이다. 폴 크루그먼의..

페이스북: 자본주의적 알고리즘의 어두운 미래

며칠 전부터, 아니 지난 주부터였나. 월스트리트저널에서 페이스북에 대한 비판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상당히 의외라고 할 수도 있겠고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일테다. 그러나 그 기사는 국내 IT/스타트업 전문 저널이나 아는 사람들끼리 공유되는 기사에 불과했다. (그런데 왜?) 바이라인네트워크 - 월스트리트저널의 ‘페이스북 저격’…5가지 잘못 뭐길래 그리고 며칠 전 프랜시스 하우건이 미 상원의회 청문회에 나와 페이스북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페이스북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지, 인스타그램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페이스북은 해결할 수 없는 조직임을 가감없이,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자 발칵 뒤집혔다. 실은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최초로..

봄의 정원, 시바사키 도모카

봄의 정원 시바사키 도모카(지음), 권영주(옮김), 은행나무 베란다와 창문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형태가 똑같은 창으로 햇빛이 비쳐 들었다. 2층 집은 벽에, 1층 집은 바닥에도, 볕이 드는 곳과 그늘의 경계가 보였다.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를 내는 것도 없었다. 해시계처럼 양달과 응달의 경계가 이동할 뿐이다. 도서관에서 그냥 집어들고 읽었다. '아쿠타카와 수상작'이라고 하나, 그냥 작은 소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시대 일본을 알 수 있을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할까. 관음증적이면서도 쓸쓸한 봄날의 풍경화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가도 독자도 심지어 소설 속 인물들 마저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고나 할까. 결코 속마음을 들킬 필요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그 때 그 모습만을 묘사할 ..

면접 / 인터뷰 질문

면접은 쉽지 않다. 이력서로 사람을 정하기 어렵고 면접으로도 어렵다. 그래서 면접 때 최대한 뽑아내야 하는데, 번번히 실패한다. 그래도 면접을 봐야 하기 때문에, 면접 시 필요한 질문들을 적어본다. 수시로 업데이트해서 관리해볼 생각이다. 1. 자기 소개. 지원자의 소개를 간단히 받도록 한다. 이력서에 다 있는 내용인데, 굳이 소개를 받아야 되나, 싶기도 하다. 그냥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내가 연습이 필요하다. 지원자는 왜 소개를 해야 하는지 설득력 있게 내가 설명해야 한다. 2. 왜 우리 회사에 지원했는지 물어보기. 이건 중요하다. 아무 생각없이 지원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데 회사에 대해 미리 조사하고 준비하고 온 지원가가 있었는데, 업무는 엉망이었다. 여기에 답변이 좋다고 ..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 윌리스 파울리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 Rimbaud and Jim Morrison: The Rebel as Poet 월리스 파울리 Wallace Fowlie(지음), 이양준(옮김), 민미디어, 2001년 듀크대학의 불문학 교수인 윌리스 파울리는 랭보를 사랑했던 짐 모리슨을 기억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 락스타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파리에서 시인을 꿈꾸었던 짐 모리슨을, 자신이 평생을 읽고 연구했던 프랑스의 시인 랭보와 비교하면서. 그래서 이 책은 랭보 소개서라기 보다는 짐 모리슨에 더 시선이 가지만, 나에게 더 재미있었던 부분은 파울리 교수가 랭보의 시편에 대해 설명하던 챕터였다. 솔직히 그 동안 랭보에 대한 많은 글들-한글로 된-을 읽었으나, 윌리스 파울리 교수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랭보가 가장 흥미진진했다..

테넷Tenet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가끔 다운로드 받아 보는 것이 전부다. 극장에 마지막으로 간 건 3년 전이다. 한때 영화에 빠져있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에 태만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딱히 챙겨서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니, ... 크리스토퍼 놀란의 을 봤다. 아무 내용도 모른 채 매우 어렵다는 풍문만 듣고 봤는데, 어렵다는 점에서는 가 확실히 낫다. '인버전inversion'이라는 기술이 나오지만, 이건 가정이다. 엔트로피의 방향을 반대로 할 수 있다는 가정, 그런 기술을 미래의 누군가가 개발했다는 가정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가정이 들어오면서 영화를 수수께기가 되고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다. 가 물리학에 바탕을 두고 중력과 우주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

다 좋은 세상, 전헌

다 좋은 세상 전헌(지음), 어떤책 1. ‘다 좋은 세상’이라니.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다 좋은 세상’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 좋은 세상'이라고 주장하는 전헌 교수의 이야기가 설득력 없는 건 아니지만,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젊은 날의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난 다음 다 좋은 세상이라 이야기하고 하지만, 그러나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아마 최악의 조건에 놓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안다면, 그는 이런 말을 쉽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약육강식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옛 철학자들의 문장들만 나온다. 이 책은 일종의 철학 교양서적으로,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다 좋은 세상’과 저자가 생각하는 의견들로 이루어진 (흥미로운) 산문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