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위기의 경제, 유종일

지하련 2009. 2. 1. 13:46

 

위기의 경제 - 10점
유종일 지음/생각의나무



위기의 경제 - 금융위기와 한국경제
유종일(지음), 생각의 나무, 2008



 

얼마 전 일어났던 용산의 불행한 사건이 나에게는 마치 앞으로 닥칠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의 서막처럼 보여졌다.

전제 군주가 나라를 다스렸던 조선 시대에도 아무런 권력도 없이 그저 가난하기만 백성들의 말을 귀담아 듣기 위해 노력했다.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김철 옮김, 이숲, 2008)을 보면, '조선 정부는 많은 잘못을 저지르긴 했으나 그래도 그때까지 말할 자유를 막은 적은 거의 없었다'라고 언급하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보수적인 신분 제도에,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조선 시대에도, 백성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고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참조:http://musicus.egloos.com/2220434)

그런데 민주적 제도로 뽑은 대통령과 내각, 정부 여당은 백성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한다. 며칠 전 사임한 이동걸 한국금융원구원장은 대놓고, ‘우리는 씽크탱크(Think Tank)가 아니라 정부의 마우스탱크’라고 했다. 심지어 현 정부의 법률제도는 아무런 배경도 없는, 일개 서민이자, 인터넷에서 글을 올리는 미네르바를 구속해버리자, 외국 언론에서마저 신기한 눈으로 이 이야기를 다루었다.

대통령 선거 때의 선거 공약들을 보면, 너무 놀라서 뒤로 쓰러질 지경이다. 세상에, 딱 1년 사이에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유종일 교수의 ‘위기의 경제’는 참 슬프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논문들은 현재의 한국 경제 상황을 분석하고 있으며,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의 어떤 지점이 잘못되었는가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은 하루하루 벌이에 하루의 대부분을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가게에서 보내는 우리들이 아니라, 이 나라의 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윗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책을 읽지 않을 것이며, 설사 읽는다 치더라도, 읽고 난 다음 고민하는 것은 이 책이 왜 잘못 되었으며, 우리의 정책이 어떤 이유로 해서 타당하고 긍정적이며, 그래서 이 나라의 경제 상황은 우리의 정책과 정치적 의견 속에서 어떻게 나아질 것인가를 설득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유종일 교수는 현 한국의 경제 위기의 문제는 ‘정치’라고 단언한다. 즉 정치적 상황(context) 속에서 경제 문제를 접근해야 하며, 여기에 대한 해법도 먼저 정치적 합의를 이룬 후에 이루어져야 된다고 말한다. 실은 경제 상황이 어렵기로 따지자면, 김대중 정부 때는 최악의 상황이었고 노무현 정부 때에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현 정부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현재와 같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두 가지 대조적인 경제발전 모델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추진한 이른바 공급중시 성장정책 모델이다. 둘 다 흘러간 과거의 모델이고 유효성이 다했거나 실패한 모델이다. 따로따로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일관성은 있는데,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는 이 두 가지 매우 다른 성격의 모델에서 나온 정책들이 혼재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헷갈린다. 정책의 일관성을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83쪽)


애초부터 경제정책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안전한 외화보유고를 가지고도 환율 위기라는 폭탄을 맞았고, 이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 위기 영향도 있지만, 상황이 이 정도까지 악화되지 않게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형성되어있었던 셈이다. 유종일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만 비판하고 있지 않다. 동일하게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 비판한다.


“문제의 핵심은 성장부진보다도 양극화에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 내에 모두가 무리한 목표라고 생각했던 1인당국민소득 2만 달러를 실제로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실패한 정부로 낙인 찍혀 국민들의 버림을 받은 것이 이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정말로 잃어버린 것은 성장이 아니라 경제민주화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완화와 감세 등 ‘친기업정책’을 통해서 747 고도성장을 달성하겠다고 한다. 정책의 목표도 잘못되었지만, 수단도 그에 못지않게 잘못되었다. 진정으로 성장잠재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 우선 기회의 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양적 투자 확대를 위주로 한 성장 단계는 이미 지났고 혁신과 효율적 투자에 의한 성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점적 지배력, 투기, 로비 등에 의한 이익추구가 아니라 혁신에 의해 가치를 창출하는 곳으로 자원이 배분되도록 재벌개혁, 금융개혁, 정부개혁 등을 추진해야 한다. 규제 완화가 아니라 필요한 규제는 하면서 규제의 투명성과 효율성, 일관성을 확보하는 규제개혁을 해야 한다.”(155쪽)



하지만 이 책의 후반부는, 산들로 둘러싸인 산 정상에 힘들게 올라가 ‘야호’하고 아무리 소리쳐도, 분명 그 야호 소리는 건너편 산들로 전달되어 부딪혀 다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와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장시간 반복해서 야호를 외쳐도 자연스럽게 들려야 할 메아리가 들려오지 않는, 난감한 상황 속에 처해 있는 듯 보인다. 실은 우리 모두가 그런 상황 속에 처해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