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 1095

볼스 Bols 칵테일 클래스 후기 - 칵테일 세계로의 초대

칵테일을 마실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심지어 얼음도 넣지 않는다.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요즘 그렇다는 말이다. 위스키는, 뭐랄까, 타격감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드러운 셰리 위스키보다 묵직한 피트 위스키로만 마신다. 이런 점에서 접근성이 좋은 탈리스커는 아웃이다. 라가불린도 살짝 위험하다. 이런 내가 칵테일 클래스라니.  주류 수입사에서는 마케팅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고 한다. 하긴 일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실제 관계자가 어려움을 토로하는 걸 들으니 새삼스러웠다.. 성인 대상의 마케팅으로, 다양한 법적 규제 속에서 제한적인 마케팅을 할 수 밖에 없는 대표적인 상품이 술과 담배다. 그 다음이 의료 부문인데, 상당히 까다롭다. 그..

퇴근 길 피트 위스키 한 잔, 두 잔, ...

탄소 함유량이 60%이하인 석탄을 이탄(peat)라고 한다. 아래와 같이 생겼다. 이끼 등이 썩지 못한 채 탄화되어 쌓인 것으로 보면 되는데, 이끼, 풀, 심지어 작은 나무 가지들도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먹을 수 있다는 설도 있는데, 그건 아니고 대부분 땔감용이었다.   피트 위스키는 맥아를 건조시킬 때 킬른(kiln)이라는 가마에 넣어 뜨거운 바람으로 30시간 정도 말리는데, 이 때 땔감으로 이탄, 즉 피트를 사용하는 경우, 독특한 향이 입혀진다. 최근에는 피트향을 강하게 하기 위해 피트 연기로 가득찬 밀폐된 공간에 두기도 하는데, 전통적인 방식은 아닌 셈이다.   라가불린 16년산을 마셨다. 아드벡이 남성적이라면 라가불린은 꽃향기처럼 부드럽다. 부드럽게 깔리는 피트향도 이 위스키의 ..

문득, 하늘, 그 거리, 그 골목의 새벽.

거실에서 바라본 하늘은 높고 구름은 현란하다. 바람이 많았다. 바람부는 날엔 압구정동으로 가야 된다던 그 시인을 읽지 못한지 한참 되었다. 슬픈 일이다. 영화 감독이 된 이후, 그는 인기를 잃어버렸다. 한 때 영화가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 잘 모르겠다. 아직 나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영화를  보다 말았고, 한 때 마돈나를 사랑했던 숀 펜의 영화는, 그 특유의 불편함으로 인해 매번 처음만 보다가 멈춘다. >가 그랬고 >가 그랬다. >의 사운드트랙은 정말이지!!  요즘 자주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 하지만 나는 혼자 여행 떠나는 것에 대해 어떤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유 탓인지 모르겠지만. 가족이 다들 잠든 자정. 일본의 어느 소도시 산기슭에 있는 어느 호텔, 하나둘 조명..

힐링가평오토캠핑장, 가평

거의 일년만에 캠핑을 갔다. 어떤 이유에선가, 혼자 운전하는 것도 그렇고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것도 부담스럽다. 혼자 전시를 보러 가거나 카페에 앉아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곤 하는데, 운전이나 여행은 왜 주저하게 되는 걸까. 하지만 올핸 혼자 자주 캠핑도 가고 여행도 떠나볼까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은 혼자서도 잘 놀고 아내도 대내외 활동에 열심이니, 나도 혼자 하는 것에 조금 더 익숙해져야 할 시간이다. 또 몸도 마음도 바빠질 테니, 도심을 떠나 자주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겠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고 겨울이 떠나지 않은 이월의 마지막 주말, 아침부터 서둘렀다. 코스트코를 가서 와인 몇 병을 사고 쿠팡으로 시킨 냉동 식품과 밀키트를 챙겨 출발했다. 집에서 가평의 캠핑장까지 2시간. 네비게..

사소한 의문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지 않고 기각된다면, 그 이후 한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탄핵을 반대하는 듯한 어조의 기사를 쓰는 기자들과 언론들은 책임을 질 수 있는가? 탄핵 반대 집회를 주장하는 기독교 목사들과 그 목사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신자들은 그 한국을 책임질 것인가? 단언컨대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민주주의를 떠나서 이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아래 기사에 나온 페루 뿐만 아니다. 필리핀도 그랬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836085483?fbclid=IwY2xjawIt4E9leHRuA2FlbQIxMAABHUmZzuUFf_-DibkLKih2VtxGvzKaTisyXryQtzcIzj4M8iJZk_31qj8qJw_aem_P0..

주말 오전의 첼로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음반을 꺼내 듣는다. 대체로 음반들은 몇 달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꺼내 듣는 게 전부다. 먼지 쌓인 음반을 닦으며 슬픈 표정으로 웃게 된다. 한 두 번 듣겠다고 지금도 음반을 사고 한 번 읽겠다고 책을 산다.결국 헤어질 운명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시인 남편은 바람이 나 집을 떠나고, 사랑 속에서 사랑을 잃고 시를 쓴 실비아 플라스도 죽고, 몇 년 후 그녀의 남편과 사랑에 빠져 살림을 차렸던 시인 아시아 베빌도, 테드 휴즈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딸과 함께 죽는다. 사랑이 뭔지. 이젠 테드 휴즈보다 실비아 플라스가 더 유명해졌지만, 사후의 명성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첼로 소리는 주말 아침과 참 잘 어울린다. 고통받고 있는 마음을 가..

산다는 것, 그리고 교통사고

부산 출장이 있었다. KTX는 너무 피곤해 비행기로 내려가 회의장소까지 택시를 탔다.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부산 신항 근처 도로. 정신을 차려보니, 대형화물차량이 택시를 밀고 있었다. 약 70미터를 밀려내려갔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부딪혔는지 기억 나지 않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어디를 다쳤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택시가 밀려 한 바퀴 돌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한 쪽 면은 다 엉망이 되었지만, 뒤집어지지도, 트럭 밑으로 깔리지도 않았으니, 구사일생이라고 해야 하나.    이게 몇 주 전 일이다. 실은 작년 말부터 시절이 좋지 못하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고, 누군가의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서로에게 좋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기에도 시간이..

듀안 마이클, 내 영혼의 먼지,들

듀안 마이클 Duane Michals. 그의 사진을 눈 그친 창 밖 화이트톤의 풍경과 대비해 본다, 읽는다, 느낀다. 시를 쓰며, 시인이었던 그녀에게 듀안을 아냐고 물었지만 모르다며 고개를 저었다. 조각을 전공하고 디자인을 하던 그녀에겐 물어볼 새도 없이 철없던 날 버렸다. 그리고 몇 년을 울었다. 하지만 듀안을 알던 내 지인들은 모두 등단하지 못했고 그림은 접었고 아이 아빠가 되거나 결혼하지 않았다, 못했다. 너무 자신만만했던 우리들의 호기심은 외부로만 향했을 뿐,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뒤늦은 후회와 반성으로 뒤범벅된 채로 듀안의 사진을 보며, 아, 어떻게 하면 소리없이 풍성해질까, 어떻게 하면 이 사소한 울적함마저 저 우주의 침묵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과연 내 신비를 그녀의 신..

그냥 비관적인 전망

어차피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아는 건 단편적이다. 그리고 그런 단편적인 것들으로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면 아래와 같다. 요즘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1.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조선이라는 나라를 상당히 높이 평가했다.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는 지식인들이 정치를 좌우하던 유일한 나라. 한 가문으로 오백년 이상 유지된 유일한 나라. 성리학과 정도전의 체계로 오백 년 이상 버틴 나라. 그러나 지금은 전혀 아니다.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사악한 노예사회. 아비의 신분이 아닌 어미의 신분을 따라가는 보기 드문 나라. 노비문서가 있어 노비가 재산처럼 넘겨지던 나라. 소수의 지식인들은 싸웠으나, 대부분의 지식인들, 양반, 선비라고 하던 작자들은 자신의 안위만 살폈던 나라. 그런 나라였다. 심지어 임진왜란..

새벽 5시, 빛의 슬픈 영역 속으로

나이가 들수록 변해간다. 몸이 변해가는 걸 적응하기 위해 내 영혼을 얼마나 많은 것들과 싸우고 있는 걸까. 문득 다시, 올해 글을 쓸까 생각했다. 수십년만에 만난 대학동기들에게 이 나이에 한 번 등단해보자, 하고 취기에 이야기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글을 잘 썼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글을 쓰지 않게 된 건, 누군가의 삶을, 그것이 허구라 할 지라도 과연 나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 끊임없이 되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을, 그 고통과 번민의 삶을 나는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가, 과연 그것은 가능한가 물었다. 가령,  *    *  그녀는 그에게 환하게 웃으며 아침을 차려 주었다. 그는 그 전날도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