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146

루시언 프로이드, 조디 그레이그

루시언 프로이드 Lucian Freud 조디 그레이그(지음), 권영진(옮김), 다비치 설마 이렇게 책이 끝나지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첫 장부터 끝날 때까지 저자는 각오한 듯이 루시언 프로이드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말하기로 작정했다. 루시언 프로이드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루시언 프로이드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큰 오산이다. 도리어 이 책을 읽음으로 루시언 프로이드를 좋아하는 현대 미술가의 목록에서 지우게 될 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의 인품이나 성격과 그의 작품을 동일시한다는 사실을 안다. 가끔 어느 전시회에서 어떤 작품을 보고 난 다음, 그 예술가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나는 이 장..

인생, 예술, 윤혜정

인생, 예술 윤혜정(지음), 을유문화사 살짝 궁금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거의 가지 못했다. 미술 잡지도 거의 사지 않으며 미술 관계자와 만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미술, 아니 예술은 내 삶의 일부다. 내가 마음의 안식을 얻는 곳은 늘 예술이 있는 장소이거나 공간이다. “미술관은 탐색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많은 진실에 둘러싸인 하나의 진실이다.” - 마르셀 브로타에스(20쪽) 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 1924 -1976)는 벨기에의 현대 시인이자 미술가였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나,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뒤늦게 회고전을 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 현대 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긴 개념미술가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마흔이 되어 미술계로 뛰어들었다. 더 이상 ..

르네상스, 제리 브로턴

르네상스 제리 브로턴(지음), 윤은주(옮김), 고유서가 이 책은 옥스포드 대학의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중 한 권으로, 고유서가에서 한글로 번역해 출간하였다. 개인적으로 옥스포드 대학의 이 시리즈로 나온 를 읽고 상당히 좋았는데, 이 시리즈가 번역되고 있었음을 이제서야 알았다. (예전엔 주위에 인문학 공부를 하거나 책을 좋아하던 이들이 꽤 있어서 새 책 소식이나 유명 학자들의 근황을 쉽게 알곤 했는데, ...) 르네상스에 대한 책들은 많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성과들까지 담은 책은 보기 드문데, 이 책은 그런 성과들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시사적이었다. 르네상스의 시기나 지역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관점이 다르긴 하지만(나 또한 제리 브로턴이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부..

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예술과 풍경 The Pursuit of Art: Travels, Encounters and Revelations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지음), 김유진(옮김), 을유문화사 “모든 화가는 자기 자신을 그린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시속 48킬로미터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좋은 회화와 나쁜 회화를 구분할 수 있다." - 케네스 클라크 빠르게 책을 읽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산문집이었다(이건 내 기준일테니,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구나). 마틴 게이퍼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평론가이면서 데이비드 호크니나 루시안 프로이드와 같은 현대 예술가들의 친구이다(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로 책을 몇 권 내었다). 이미 몇 권의 책들이 한글로 번역 출판되어, 현대 예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상한 날씨, 올리비아 랭

이상한 날씨 (Funny Weather - Art in an Emergency)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지음), 이동교(옮김), 어크로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미지를 만든다. 이미지로 하여금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 가고, 더는 할 수 없는 말을 하게 한다. (205쪽) 예술은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즉흥적으로 도달한 비상구, 한때 사람이 살았던 섬뜩한 공간을 오가는 일이다. (209쪽) 오랜만에 예술 관련 책을 읽었다. 좋았다. 그건 예술 관련 책이라서기보다는 올리비아 랭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녀의 글은 상당히 좋다. 예술에 대한 사랑이 있고 예술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녀는 예술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안다. 그래서 글은 깊이 있으면서도 따뜻한 진지함..

헬레니즘 모자이크화, 터키 제우그마 Zeugma

가끔 고대의 예술 작품을 보면 놀라게 된다. 위 작품은 비교적 최근에 발굴된 유리 모자이크화로 기원전 2세기 경 지금의 터키 내륙에 위치한 제우그마(Zeugma)라는 곳에서 발굴되었다. 이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 중 한 명이었던 셀레우쿠스 1세 니카토르(Seleucus I Nicator)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Seleukia-on-the-Euphrates으로 알려진 도시이기도 하다. 기원전 64년 로마제국에 의해 현재의 제우그마라고 불리게 된다. 유프라테스 강 인근에 위치해 있는 이 도시는 현재 바레인댐의 건설로 일부 강물 속에 잠겨 있으며,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들이 유실될 것으로 우려해 최근 집중적으로 발굴되기도 했다.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모자이크 박물관이기도 하며 한 ..

메이플소프와 패티 스미스, 1969

메이플소프의 꽃 사진이 아닌, 미국 내에서조차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을 올리고 싶지만, 아마 바로 차단당할 것이다. 섹슈얼리티는 논란의 대상이다.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조금 이상하지만, 여하튼 그렇다. 메이플소프는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땐 신부님께 종교적 의미가 담긴 그림을 그려 주기도 하였다. 그가 갑자기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에게 자연스러워졌을 뿐. 몇 해전 시간을 내어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메이플소프 전시를 보러 갔다. 좋았다. 패티 스미스는 라는 책을 통해 메이플소프를 이야기했다. 나는 이 책이 번역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출간된 후 몇 해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 번역출간된 걸 보면 조금은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메이플소프 다큐멘터리를 보면..

타타르인의 사막,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Il deserti dei Tartari 디노 부차티Dino Buzzati(지음), 한리나(옮김), 문학동네 "저야 알 도리가 없지요.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으리란 건 다들 압니다. 하지만 사령관이신 대령님이 배운 카드점에 따르면, 아직까지 타타르인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옛 부대에서 잔류한 타타르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말이지요." (69쪽) 사막 너머 타타르인들이 살고 있으며, 언젠가 우리를 침략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있고 지키고 있는 이 요새는 그 예정된 전쟁을 막기 위한 최전선이다. 그 곳에 새로 부임한 신참 장교 조반니 드로고도 결국 그 전쟁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 요새를 지키다가 떠나간 많은 군인들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전쟁이 일어날..

내 부모My Parents,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데이비드 호크니.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이 작가는 현대적 방식으로 원근법을 재해석하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원근법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교묘하게 원근법을 비틀어, 반-원근법적인 서사를 구성한다. 일종의 해체. 그러나 이건 분석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화법일 뿐(그래서 데이비드 호크니는 현대 비평의 측면에서도 성공한 작가이다). 호크니의 실제 작품은 이 비평적 언어를 뛰어 넘어 아득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이 세계의 불완전함 위에 서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파스칼적 구도랄까. 우리는 세계와 싸우며, 해석하고, 저 외부 세계 속에 자리 잡으려고 하나, 세계는 우리가 자리 잡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리 잡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지한 시공간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