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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입문 Theory of Beauty :  An Introduction to Aesthetics 

H. 오스본(Harold Osborne) 지음, 김광영 옮김, 박우사, 1994



한창 공부할 때 사둔 책을 이제서야 읽는다. 지금은 구할 수도 없고 구해 읽을 필요도 없는 책이다. 1952년 영국에서 출판된 책이며 해롤드 오스본의 주저도 아니다. 번역이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미학에 대한 충실한 이론서도 아니다. 저자는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아름다움(Beauty)를 가진 예술 작품에 대한 이론적, 미학적 논의를 이 책을 통해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름들은 한글로만 표기되어 정확히 누구인지 알기 어렵고 일부는 잘못 표기된 경우도 있어, 제대로 된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많은 인용문들은 어느 책에서 발췌한 것인지 알기 어려우며 그 번역을 신뢰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최근의 이론들이나 관점에 기반하지 않아 미학의 기본적인 생각을 다듬을 수 있으며, 특히 예술작품론이나 감상론 부분은 잘 다루어지지 않는 영역이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오스본은 책의 서두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는 당초 파산적(破産的)인 것'(10쪽)이라고 적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오스본은 자신만의 과감한 주장을 전개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양한 관점에서 예술작품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기술한다.  

 

예술작품이란 이 사람이나 저 사람 또는 여러 사람들에게 때때로 현실화되어 보이는 영원한 가능성인 것이다. 

- 128쪽 


미학 전공자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픈 생각은 없다. 요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새 책을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냥 습관처럼 읽은 책에 대한 메모를 남기기 위해 이 리뷰를 적는다. 이 책이 궁금하다면 영국 아마존에서 구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 이제서야 인문학 책들이 읽히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없다. 허망하다. 



https://www.amazon.co.uk/dp/B0000CIBJR/ref=cm_sw_r_cp_dp_T2_3GOrzbM9WCK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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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가나아트 컬렉션 앤솔러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어느 대담에서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과 미술관에 들어가 작품 감상을 하고 나온 후, 거리 가로수 이파리의 색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세상 풍경이 더 생생해지고 풍요로워졌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미술관에 들어가 작품을 둘러보고 나오는 일상이 우리들의 삶과 얼마나 멀리 동떨어져 있는가를 생각할 때면, 참 서글픈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일반인들의 그런 일상을 무너뜨리고 미술 - 순수 미술 - 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한 때 고민하고 실천하기도 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가람미술관에서 가끔, 인상주의전을 하기만 하면, 비싼 입장료를 내고 길게 줄을 서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더 절망스러운데, 그들 대부분 미술을 좋아하고 그걸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전시에 가게 된 다른 목적 - 아이들의 교육이나 일종의 허영의식 - 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한때 미술 작품 구입도 이와 비슷했다. 적어도 미술을 사랑하고 어느 정도 감식안이 생긴 후에 작품 구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전혀 그렇지 못하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컬렉션이 되는 이들은 아예 갤러리 후원을 하거나 갤러리를 직접 운영해버린다.) 


정작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엔 관람객이 적다. 토요일 오후라면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을까 했으나, 의외로 한가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한가로운 풍경은 지방의 국공립미술관의 그것을 예상케한다. 그리고 이는 정부나 지자체 예산 문제와 이어진다. 실은 미술관의 태만도 일부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학교에서의 미술을 포함한 예술 교육 전반이 잘못된 것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국공립미술관에 관람객 수가 적다고 하여 예산을 깎기보다는 도리어 학교에서의 예술, 특히 미술 교육과 연계된 국공립미술관의 역량 강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며, 이에 따른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글쎄다. 정치인들 중에 예술 교육에 관심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련지. (명품엔 관심 많겠지만!)


'가나안트 컬렉션 앤솔로지' 전은 2001년 가나아트 이호재 대표로부터 기증받은 200점의 작품 중 24명 작가의 대표적인 민중미술 작품 28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대부분 1980년대 만들어진 작품으로 정치적 메시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열리고 있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전(~11월 20일까지)과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는 이도 보았지만 '민중미술'이라는 한국 미술 역사의 한 장면을 연출하였으며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 작가들의 초기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전시임에 분명하다.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작가들은 강요배, 권순철, 김봉준, 김용태, 김정헌, 김호득, 김호석, 민정기, 박불똥, 손상기, 손장섭, 신학철, 심정수, 한성금, 안창홍, 오윤, 이종구, 임옥상, 정복수, 홍선웅, 홍성담, 홍순모, 황재형 등이다. 


강요배, 심정수, 손상기의 작품만 스크랩해본다. 조각가 심정수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거나 예전에 보았으나 무심코 흘려보낸 듯하다. 강요배와 손상기의 작품은 예전부터 좋아했고. 그 외 김호득, 안창홍, 정복수의 작품들을 좋아했다. 


맥잡기

강요배( 1952~) 

종이에 포스터컬러, 200×200cm, 1983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하지만 강요배의 근작들만 이들에게 위 작품은 참으로 낯선 것이다. 미술관 측의 작품 설명 일부를 옮긴다. 


강요배는 민중미술 1세대 작가로서, 주로 사회의 모순에 대해 발언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맥잡기>는 작가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장식적인 색채 등 민화풍의 소박하고 고졸한 표현 방식으로 그려진 정사각형의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 흰 무명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흰 천을 두른 한 청년이 쭈그리고 앉아있다. 양손에 나뭇가지를 붙잡고 맥잡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검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배경으로 화면 맨 위 중앙에는 '건곤(乾坤)'의 괘가 그려져 있다. (...) 작가는 급속한 서구화가 가져온 전통 문화의 붕괴 현실을 고발하고, 강한 극복의지를 표출하고자 하였다. - 전시설명 중에서



백로즈음

강요배

 Acrylic on canvas, 97×130cm, 2012

(출처: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tnu=201305100007 )


최근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서정성 밑에 굳고 일관된 역사 의식이 숨겨져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민중미술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른 강요배 작품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꽤 의미 있을 것같다. 



오늘

심정수(1942~)

동, 103x147x64cm, 1990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심정수는 사회와 괴리된기존의 추상적인 경향의 조각에 반대하며 진정한 삶과 사회의 리얼리티를 담아내려는 조각을 주장하였다. (...)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비판적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암울하고 절망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였다. 특히 고통받는 민중들의 삶의 모습과 시대의 아픔을 가장 한국적인 조형언어로 선보였다. <오늘>은 행동하는 인물 군상을 통해 오늘의 나아가야 할 바를 강하게 제시하는 작품이다. 새로운 세대에 대한 희망과 바램이 북을 치고 꽹과리를 들고 있는 인물, 어깨동무하고 행진하는 노동자, 민중의 모습을 통해 전달된다. - 전시 설명 중에서


심정수의 작품은 작지만, 힘차고 역동적이다. 강렬한 표현력으로 공간을 사로잡고 지나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조금은 거칠고 덜 세련되었더라도 강인하고 그 내부로부터 솟아나오는, 생명력있는, 정말로 왕성하게 살아 있는 미술을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더 이상 잃어버리기 전에 우리 미술의 건강성을 찾아야겠다. 편협되고 일방적인 사고의 강요에서 벗어나, 모든 문화, 가치존중의 평등시대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면 어느 누구에게서도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 현실의 모습과 역사 그리고 의식과 인식, 또한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건강한 정서, 그 모든 것들을 일깨워내야만 한다.”―심정수, 작가노트 중에서, 1990. 


공작도시 - 붉은 지붕

손상기(1949 ~ 1988)

캔버스에 유채, 111x144cm, 1984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손상기는 풍경화를 통해 서민의 삶을 표현했던 작가이다. 초등학교 때 척추를 다쳐 성장이 멈추는 불구가 되어 '꼽추화가'로 불리기도 했는데, 3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초기에는 자연적 이미지를 통해 자전적 이야기를 직, 간접적으로 표현하였으나, 사회와 역사 문제로 작품 세계를 확장시켰다. 80년대 당시 기계화, 산업화로 치닿고 있는 비인간적인 현실을 도시 풍경으로 그리면서 현실에 대한 인식과 사실적 발언을 도모하였다.

<공작도시> 연작은 붉게 물든 도시의 지붕과 잿빛의 담벼락을 보여준다. 시선의 흐름은 전면에 가로막혀 있는 철조망 너머로 붉은 지붕의 수평면을 따라 점차 희미해지며 이어진다. - 전시 설명 중에서 


손상기의 작품들은 보이는 이의 마음 한 구석을 잡아당긴다. 그의 <공작도시> 연작은 너무나 유명해서 미술애호가라면, 아마 다들 한 두번씩은 보았을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는 작지만, 무척 실속 있다. 전시 관람은 무료다. (현재 열리고 있는 미디어시티서울 전도 무료!) 전시 관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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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나쓰메 소세키(지음), 오석윤(옮김), 책세상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풀베개>>의 놀랍고 아름다운 시작은, 어쩌면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소설은 독자가 읽게 되는 첫 문장들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어쩌면 '하이쿠 소설'이라는 후대의 평가도 우호적인 것일지도.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가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서 짧은 생명을, 한 동안만이라도 살기 좋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시인이라는 천직이 생기고, 화가라는 사명이 내려진다.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까닭에 소중하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기 어렵게 하는 번뇌를 뽑아내고, 고마운 세계를 직접 묘사해내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혹은 음악이고 조각이다. 자세히 말한다면 묘사해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직접 보기만 하면 거기에서 시도 생기고, 노래도 샘솟는다. 착상을 종이에 옮기지 않아도 보옥이나 금속이 부딪쳐서 나는 소리는 가슴속에 일어난다. 

- 7쪽~ 8쪽



하지만 소세키는 우리를,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나는 소설 속의 '나미 氏'와 같은 이를 그리워하고 있는 지도 모르고, 작중화자처럼 그런 여행을 꿈꾸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에게 이 소설은 부러움의 대상인 셈이다. 


그래서 소설은 전쟁 중인 현실과 멀리 떨어져, 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아주 자주 딴 세상을 꿈꾼다. 그건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저 지금 여기를 벗어나 잠시 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남 몰래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고, 경제적 불안이나 세상사의 갈등이나 불협화음에서 벗어나, 어떤 사색의 풍요로움 속에 빠지고 싶은 게다. 


이 소설은, 바로 이 사색의 풍요로움으로 넘쳐나며, 나미 氏의 가느다란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소세키의 소설들 대부분이 현실 속에서 갈등하며 흔들리는 자아의 심리를 보여준다면, 이 <<풀베개>>는 그 갈등과 흔들림에서 한 발짝 옆으로 벗어나 꿈 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 끝에서 나미 氏의 이혼한 남편이 등장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규이치를 배웅해주는 장면에서, 주인공 화자가 그림 한 장면을 포착해내는 순간, 결국 예술의 창작은 꿈에서 벗어나 현실의 슬픔 속에서 나온다는 걸 이야기할 땐, 여행의 끝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것임을 비극적으로 깨닫게 된다. 



나미 씨는 우두커니 떠나가는 기차를 보내고 있다. 그녀가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에,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애련이 얼굴 가득히 떠 있다. 

"그거야! 그거야! 그게 나오면 그림이 됩니다."

나는 나미 씨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속삭였다. 내 가슴 속의 화면은, 뜻하지 않았던 바로 이 순간에 이루어졌다. 

-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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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말 Body Speaking Words

2015. 10. 17 ~ 12. 31

한미사진미술관 



작년 겨울, 온 몸이 지쳐있었을 때, 한미사진미술관엘 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 인근에 간 틈을 타, 잠시 미술관에 갔다 왔다. 미술관 안은 조용했다. 미술관의 조용함은,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탓에 나를 거친 현실로부터 떨어지게 한다. 하지만 이 낯설고 편안한 조용함은 반대로, 사람들이 좀 더 미술에 가까워지면, 미술시장 활성화나 예술가의 생계에 도움이 될 텐데라는 생각과 만나면, 조용함이 깨진 미술관이 어쩌면 우리 미래를 위해선 더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이 전시는 한미사진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몸을 주제로 하여 소장품들을 모아 전시하였고, 작품들의 수준 또한 좋았다. 다만, 몸의 말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메시지보다는 사진가들이 몸을 바라볼 때, 어떻게 바라보고 변모하였는가에, 지역이나 시대별로 그 변천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전시 스토리나 구성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 개별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 전시 구성은 아쉬운 점이 많았던 전시였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내설악), Gelatin silver print, 1977 ⓒ강운구 


하지만 몇몇 사진들이 주는 울림은 대단한 것이었고, 몇 명의 사진작가들을 새로 알게 된 것은 나에겐 꽤 소중했다. 모리스 타바르, 안타나 수트쿠스, ....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아래 사진 작품들은 한미사진미술관 소장품은 아니다. 구글 검색을 통해 찾은 몇 개의 이미지들이다. 


모리스 타바르 Maurice Tabard, Untitled, 1929 


안타나 수트쿠스 Antanas Sutkus 


안타나 수트쿠스 Antanas Sutkus 



* 한미사진미술관 : http://www.photomuseum.or.kr/ 

- 송파구 한미약품 빌딩 꼭대기 층에 있다. 입장료를 받으며, 미술관 창 밖 풍경이 무척 좋다. 근처를 왕래하는 이들에게 한 번 정도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곳이 될 것이다. 8호선 몽촌토성역에서 나오면 바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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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이었다. 당시 취재기자가 그에게 복기에 대해 물었다. 

"바둑 끝나면 이기든 지든 복기를 하잖아요.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나요? 진 것도 화나는데 졌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한다는 게 ..." 

"아닙니다. 오히려 어떻게 졌는지 모르는 게 더 답답하죠. 어떻게 이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어떻게 졌는지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오답노트 정리와 비슷한 개념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만 좀 다른 느낌이죠. 바둑이 스포츠가 됐지만, 저는 바둑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도자기를 구울 때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야 다음에 좋은 것을 만들 듯, 바둑 기사는 더 훌륭한 예술 작품을 위해 복기를 하는 겁니다."

- '복기 또 복기, 승부사 이세돌', 권혁재 기자, 중앙일보 6월 4일자 


바둑만 이럴까. 세상 모든 일을 이렇게 접근한다면, 안 될 일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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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본다는 것 Looking at pictures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지음), 엄미정(옮김), 엑스오북스, 2012년 (원저는 1972년에 출판)






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을 더 많이 더 오랫동안 느낄 수 있으려면 그림에 관해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 7쪽 



그림을 즐기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고 케네스 클라크는 말한다. 우리가 뭔가 배울 땐, 성적 때문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비밀을 조금 더 알게 될 것이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찰 지도 모른다. 아마 중세를 지나 근대를 향해 가던 서유럽인들이 느꼈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 것이다. 배우고 알아가는 과정은 어두운 세계를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다. 



우선 나는 그림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그림을 보기 시작한 뒤 한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의식하는 대상이 지닌 일반적 인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일반적 인상이란 색조와 부분,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 좌우된다. 일반적 인상이 주는 충격은 즉각적이다. (...) 그러므로 최초의 충격 다음에는 그림의 부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세부를 살펴보고 즐기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가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 8쪽 




하지만 즐기기 위해 배운다는 것이 우리들에게 낯선 건, 그만큼 배운다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온 탓일 게다. 의외로 미술에 대한 책은 잘 읽히지 않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갤러리가 많긴 하지만, 일반인들의 방문은 뜸하고, 전시를 열지만, 작품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니, 작품 가격은 비싸진다. 거기다 위작 논란까지. 그만큼 미술에 대한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그리고 현대 미술이든 고전 미술이든 다 어렵다고 여긴다. 심지어 현대 미술은 '난해한'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자연스럽게 붙어다닌다.


실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어렵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서구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선 대학생들도 어렵다고 하니, 한국 사람들의 책 읽기 수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밖에.


이런 면에서 이 책도 어려울 지 모르겠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는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림을 보는 것의 의미를 새삼 물으며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만 할 예술가들과 대표작품을 다룬다. 초심자에겐 그림 보는 재미를, 이미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이해를 갖진 사람들에겐 케네스 클라크만이 알려줄 수 있는 통찰이 흥미로울 것이다. 


책에선 더 많은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으나, 여기서는 3명의 작가들에 대한 케네스 클라크의 생각을 옮겨본다. 



엘 그레코El Greco 



16세기 후반 최고의 작가는 단연코 엘 그레코다. 하지만 그는 수 백년 동안 잊혀져 있던 작가였다. 근대 시대의 매너리즘(마니에리스모) 양식에 대한 경멸은 16세기 후반 작가들의 무시와 천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 초 엘 그레코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그럼에도 엘 그레코를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간주했던 1920년대의 비평가들은 옳았다. 첫번째는 엘 그레코가 비사실적인 두 양식, 곧 비잔틴과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거치며 화가로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사고 방식을 타고난 덕분에 고전주의적 전통의 주된 전제를 거부한 최초의 유럽화가였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화면의 깊이보다 표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 151쪽 



엘 그레코,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The Disrobing of Christ)

Oil on canvas, Height: 285 cm (112.2 in). Width: 173 cm (68.1 in). 

1577 ~ 1579, 톨레도 대성당 



표면을 중시했다는 표현과 함께 엘 그레코가 "미켈란젤로는 훌륭하지만 그림 그리는 법을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건 참 흥미롭다. 깊이 대신 표면을 중시할 때, 고전적 원근법적 세계는 흔들린다. 중심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균등해진다. 확고한 질서 대신 흔들리는 마음이 전면에 부상한다. 그래서 엘 그레코의 성상화들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엘 그레코는 알고 있었다.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장 앙트완 와토(Jean-Antoine Watteau), 제르생의 간판(The Shop Sign of Gersaint)

Oil on canvas, 163 cm × 308 cm (64 in × 121 in)

1720-1, Charlottenburg Palace, Berlin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27Enseigne_de_Gersaint 



신고전주의가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걸출한 천재가 만든 양식이라고 한다면, 회화에서의 로코코 양식은 장 앙트완 와토의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와토의 이미저리는 그가 처음으로 전시했던 그림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향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심지어 와토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후에 태어난 후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 - 1806)는 여전히 와토의 정원, 말하자면 그의 이미저리를 활용했다. - 127쪽 



와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진다. 절반은 포기하고, 절반은 포기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노는 것같다고 할까. 그 애상은 로코코 시대 전반을 물들였다. 한 시대(토지 귀족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부르조아지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계몽주의와 로코코는 같은 시대의 양식이다. '제르생의 간판'은 와토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줄 것이다. 위키피디아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작품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Eugène Delacroix, The Entry of the Crusaders into Constantinople 

oil on canvas, 81 × 99 cm (31.9 × 39 in)

루브르 박물관 

이미지출처: https://fr.wikipedia.org/wiki/Entr%C3%A9e_des_Crois%C3%A9s_%C3%A0_Constantinople 




오히려 그는 예술은 상상력을 비추어 사건을 재창조하므로 시의 특질을 띤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들라크루아는 아마도 매우 많은 이류화가들을 미혹했던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BC 65 ~ BC 8)의 조언, '시 같은 그림 ut pictura poesis'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마지막 유럽 화가였을 것이다. - 93쪽 



H.W. 잰슨(서양미술사가)이었던가, 낭만적 고전주의와 고전적 낭만주의라고. 다비드가 낭만적이고 들라크루아가 고전적이라고. 어쩌면 케네스 클라크의 견해에 힘입어, 들라크루아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마지막 고전주의자일 지도 모르겠다. 낭만주의였으나, 그의 마음은 확고하게 고전적이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였으며, 의미를 담아냈다. 그런 양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예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그 이후 나온 아카데미 화가들,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이들은 무식하게(성실하게) 그림만 그린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몰랐으며, 그 변화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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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내던 <<세계의 문학>>이 지난 겨울호로 '발행을 중단'했다, 혹은 폐간했다. 문학 잡지의 사소한 발행 중단이라고 하기엔 <<세계의 문학>>이라는 잡지가 가졌던 위상이나 내가 즐겨보던 잡지엿던 터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대학을 입학하고 난 다음, 처음 샀던 문학잡지이기도 했던 <<세계의 문학>>. 그 해 박일문이 '하루키 패러디'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고, 나는 <<세계의 문학>>에 실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었다.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사회>>와 달리, 좀 더 문학주의적이라고 할까, 이론주의적이라고 할까. 그 때 내가 받았던 인상은 그랬다. 그동안 많은 여러 문학 잡지들이 발행을 중단했다. <<문학정신>>, <<외국문학>>, <<상상>> 등등. 세상이 변하면 문학도 변하고, 문학잡지도 변해야 한다. 가끔 들리는 공공 도서관에 비치된 문학잡지들을 보며, 누가 저 잡지들을 읽을까 언제나 궁금하다. 결국 학생이나 관계자, 또는 나같은 이들이 읽을테지만. (나 같은 이들이라, ... 적고 보니, 참 쓸쓸하다는 생각이...)  


그래서 마지막 호를 샀다. 산 지 벌써 몇 달이 지났건만, 아직도 읽지 못한 채, 이 글이나 적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소셜 미디어와 사람들 간의 소통 증가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소셜 미디어같은 것들의 등장과 활성화로 사람들이 자주 대화하고 소통이 늘어났다고 여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반대다. 


우리는 대화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서로 얼마나 닮았는가를, 서로 얼마나 다른가를. 그러나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서로의 공통 관심사를 향해 갈 뿐, 서로의 다른 점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다른 점들이 부각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차단한다.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비슷한 사람들을 서로 끌어당기고 결국 우리는 비슷한 끼리끼리 모여 섬을 이룬다. 


그렇게 문학도, 문학잡지도 섬이 된 것이 아닐까. 한 때 문학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대화할 기회 조차 없었던 이들을 이어주던 다리가 되었다면, 지금은 스스로 고립되어가는 섬이 되고 있다. 


<<세계의 문학>>이 발행을 중단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문학의 존재나 위상이 예전만 못하고 잡지도 그러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제 문학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가야하는 건 아닐까.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보면서 그녀의 수상보다 저들은 번역문학도 자신들의 문학 속으로 끌어당기는구나하며 부러웠다. 우리에게는 번역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나 비평 따윈 없다. 그리고 한국의 문학이 그것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가에 대해 돌아보지도 않는다.


제발트의 소설을 읽고 난 다음, 다큐멘터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 스스로 다큐라고 이야기했으니까. 그러다가 진짜 다큐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문학은 타자를 받아들이며 성장해간다. 아니, 예술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낯선 것을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간다. <<세계의 문학>> 마지막 호 편집자 서문에 알레시예비치에 대한 이야기가 실린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세계에 대한 나의 비전, 즉 내 귀가 어떻게 삶을 듣고 또 내 눈이 어떻게 삶을 보는가를 전달하는 데 가장 잘 맞는 장르를 계속 찾아왔다.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본 후 결국 나는 인간의 목소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장르를 선택했다. 실제의 사람들은 내 책 속에서 전쟁이나 체르노빌 재난, 그리고 거대 제국의 몰락 등 시대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역사, 그들 공통의 역사에 대해 구술로써 기록하면서 동시에 그들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말로 옮기고 있다. 오늘날처럼 사람과 세계가 매우 다면적이고 다양해진 상황에서 예술 속 다큐멘트는 점점 흥미로워지는 것에 반해, 그와 같은 예술은 종종 무기력해졌다. 다큐멘트는 그것이 원래의 상태를 포착하고 간직할 때의 리얼리티에 가깝게 우리를 데려다준다. 그 다큐멘트 자료들로 20년간 작업을 하고 그것으로 다섯 권의 책을 쓰고 난 후, 나는 예술이 사람들에 관해 많은 것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고 선언한다. 

- 영원한 인간을 찾아서 A Search for Eternal Man, 알렉시예비치. 

(http://alexievich.info/indexEN.html)



내가 형식의 문제나 작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알레시예비치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밖에.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역사가다.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시간 속에 살고 구체적인 사건을 겪는 구체적인 사람을 연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인간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영원의 떨림을. 사람의 내면에 항상 존재하는 그것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박은정 역,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 중에서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이 의미있는 문학인가 판단하기 위해 범주와 장르를 따르는 것은 좋은 문학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즉 그 목소리와 내용으로, 그 영혼과 긴박함으로, 그 진실과 그리고 무엇보다 지혜로서 우리의 세계와 존재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확장하는 글쓰기로써 삶과 죽음에 반응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필립 구레비치Philip Gourevitch, 논픽션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Nonfiction deserves a Nobel, <<Newyorker>> 2014. 10. 9 



<<세계의 문학>> 창간호다. 1976년에 태어난 이들도 이젠 40대인가.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세상이 변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호메로스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음을, 플라톤이 저 이데아의 세계를 이야기했던 그 비극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글이 두서없고 뜬금없다. 문학이라, ... 참 오랜만에 생각해보게 된다.  



출처: http://myungworry.khan.kr/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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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설 읽기란, 묘한 느낌을 준다. 일상을 벗어난 공간 속에서, 현실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떨어져있고, 허구와 사실은 서로 혼재되어 혼란스럽게 한다. 시간마저 겹쳐 흐르며 외부는 모호해진다. 어쩌면 현대 소설이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치 <<아우스터리츠>>처럼.  


제발트는 소설 중간중간 사진들이 인용하는데,  마치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다'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허구와 사실 사이를 오가며, 소설은 대화의 인용으로 이루어진다. 문장의 호흡은 길고 묘사는 서정적이면서 치밀하고, 등장인물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슬프기만 하다. 과거는 추억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던 내 마음의 상처를, 가족의 상처를, 현대의 비극을 다시 꺼내어 보듬고 어루만진다. 대화는 자주 끊어지지만, 기억은 이어지고 소설은 챕터도 없이 그냥 하나다. 시간은 끊김 없고 끊어져 있던 기억들도 그것 안에서 하나로 이어져있듯, 소설은 허구와 사실을 이어 하나로 만든다.


아직도 2차 대전의 상처를 드러내며, 정면으로 응시하며 나아가는 <<아우스터리츠>>를 보며, 요즘 한국 문학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미국의 이창래도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 작가들만 무관심한 듯 싶기도 하고...


<<아우스터리츠>>의 명성은 이 작품을 향하고 있는 문제 의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 작법에서부터 전혀 다른 글쓰기를 보여주며, 현대 소설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 스스로 '다큐멘터리 픽션'(1)이라고 이야기하듯, 이 소설은 사건 중심이라기 보다는 사실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몇 개의 중요한 사실들과 이를 연결하여 소설의 중심 뼈대(내러티브)를 만들고 그 뼈대는 다시 사진들, (건축)공간에 대한 서술, 인물들에 대한 탐구와 인터뷰 등으로 형체를 이룬다. 


그런데 이 작법은 소설 감상에 그 어떤 영향을 주지 않으며, 도리어 전쟁에의 상처, 가족의 비극, 그리고 쓸쓸한 회상 속으로 빨려들게 하며,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소설적 완성도를 지닌다.

 


Bigsby(*) suggests that it was out of frustration with the strictures of academic publication that Sebald turned to creative writing (a vague and ungainly term that, by default, winds up being the most accurate generic description of his work). "He'd originally taught German literature," says Bigsby, "and had published the kind of books that academics do. But he got increasingly frustrated, and began to write in what he called an 'elliptical' way, breaching the supposed boundaries between fast and fiction - not what you're supposed to do as an academic." Sebald himself sometimes described his work as "documentary fiction," which goes some way toward capturing its integration of apparently irreconcilable elements. 


제발트는 학술 서적들의 심한 비난들에 대한 불만으로 문학창작(자연스레, 그의 작품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포괄적인 설명이 될 수 있는, 다소 모호하고 어색한 단어인)의 길로 들었다고 빅스비는 말한다. "그는 원래 독일 문학을 가르쳤어요"라고 빅스비는 말하며, "그는 학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하듯 몇 종의 책들을 출판했죠. 그러나 그의 불만은 계속 늘어났으며, 그가 말하는 '생략된(elliptical) 방식'으로이미 가정되어 있던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발트에게 대학 연구자처럼 하라고 제시되어져 있던 기존 방식이 아니라." 제발트는 그 스스로 그의 작품을 종종 명백하게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의 결합을 포착하기 위한 어떤 방식들을 향해 가는,  "다큐멘터리 픽션"이라고 표현했다. 


- Why You Should Read W. G. Sebald BY MARK O’CONNELL 

THE NEW YORKER, DECEMBER 14, 2011

http://www.newyorker.com/books/page-turner/why-you-should-read-w-g-sebald  


Christopher Bigsby(1941~): 소설가, 비평가, 제발트가 있었던 University of East Anglia의 Colleague. 



'Elliptical'라는 단어에 대한 번역어를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예전에도 한 번 언급했듯이 현대 소설, 아니 현대 예술가들은 스스로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작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해롤드 블룸은 이를 '시적 영향에의 불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우리 시대는 새로운 방식, 일종의 혁신을 추구해야만 하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W.G.제발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여기에 성공하고 있다.  


-- 



(1) 제발트가 스스로 '다큐멘터리 픽션'이라고 이야기했으나,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2015년 실제로 다큐멘터리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벨라루스의 논픽션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제발트의 문학과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은 확연히 다르지만, 제발트를 읽으면서 알렉시예비치를 떠올렸다. 번역된 제발트의 책들을 몇 권 더 챙겨 읽고 자세한 리뷰를 적어볼 생각이다. 그만큼 중요한 작가이기도 하다.알렉시예비치도 읽을 예정이니, 서로 비교해볼까 한다. 



W.G.제발트(Winfried Georg Sebald), 1944 -2001 






* 현대 예술가라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종종 어떤 이들은 자신의 예술론을 책으로 내기도 한다. 이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칸딘스키가 그랬고 미셸 빅토르, 로브-그리예, 오에 겐자부로, 심지어 이우환도 자신만의 예술론을 모아 책을 냈다. 아래 책은 미셸 뷔토르의 소설론이다. 소설 쓰기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2014/02/10 - [책들의 우주/이론] -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미셸 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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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도중, 베로니카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닦아 준다. 그리고 그 수건 위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 새겨진다. 아래 작품은 그 기적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전형적인 이콘화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비잔틴의 이콘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음을 알게 해준다. 그리스 태생의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르네상스 후기(매너리즘)의 화풍을 배웠고 이후 스페인 톨레도로 가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는다. 




엘 그레코, <<수건을 든 베로니카>>, 캔버스에 유채, 84 cm * 91 cm, 1580년경, 톨레도, 산타쿠루즈 성당



슬픔에 젖은 베로니카가 수건을 펼쳐 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줄 때, 어떤 비장미까지 느끼게 하는 이 작품은 수건과 뒤 배경 사이의 묘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보면 아래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 사진 한 장을 더 올린다. 무표정해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슬픔을 억누르는 듯한 베로니카, 두 손 사이의 수건, 주름진 천 위로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16세기 후반 최고의 예술가로 추앙받는 엘 그레코. 이 작품은 보면 볼 수록 빨려든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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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LEE BUL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2014.9.30 – 2015.3.1 

(현대자동차 http://brand.hyundai.com/ko/main.do)





그 공간에 서면, 작품 한 가운데 서면, ‘여긴 어디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빨리 나가거나 계속 머무르거나. <태양의 도시 II>에서. 


2014년 이불은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아 국립현대미술관에 2개의 작품을 전시한다. <태양의 도시II>와 <새벽의 노래II>. 둘 다 기계적 초현실주의, 혹은 실험주의라고 할까. 미술에서 초현실주의나 실험주의라고 하면, 반-기계적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이탈리아의 F.T.마리네티Marinetti는 미래주의를 주장하면서 기계적 특징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하지만 그 흐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금세 반-기계주의로 기울었지만.


내가 이불의 작품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녀의 이번 작품이 기계적 형태를 띄면서도 반-현실적인 유토피아를 향하고 있다고 할까. 




태양의 도시 II, 2014

폴리카보네이트, 아크릴 거울, LED 조명, 전선, 330 x 3325 x 1850 cm

사진: 전병철,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출처 http://brand.hyundai.com/ko/art/with-mmca/mmca-hyundai-motor-series-2014-leebul.do



한 편으로 건축적이면서 반-건축적이기도 하다. 건축이란 사람이 지낼 수 있는 공간, 사람과 호흡하는 공간을 향하지만, 이불의 작품 속에서 사람이 기댈 곳은 없었다. 작품 속을 걸어갈 수 있으나, 그것은 참여가 아니라 바라봄일 뿐이다. 



태양의 도시 II, 2014

폴리카보네이트, 아크릴 거울, LED 조명, 전선, 330 x 3325 x 1850 cm

사진: 서지연 아트인포스트 제공

출처 http://brand.hyundai.com/ko/art/with-mmca/mmca-hyundai-motor-series-2014-leebul.do




이불은 인류의 자유와 해방을 목표로 한 근대 기획의 모든 서사들을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으로 보고 이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완벽’에 대한 환상에 대해 언급한다. 완벽에의 헛된 열망과 그 적나라한 실체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어쩌면 외면하고자 하는 현실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불의 작품 세계는 삶과 죽음, 추와 미, 세속과 신성, 실재와 꿈이 무수히 교차하는 현실 속으로 차갑고도 뜨겁게 그 근원 혹은 경계를 찾아 나아간다. (전시 팜플릿 중에서) 



현대 예술은 종종 질문을 던진다. 이불은 낯선 공간을 보여주면서 관객을 자극한다. 낯선 공간 속에 관객을 밀어넣고 다소 신기하면서도 차갑고 두터운 경험을 선사하면서 작품 속 공간과 작품 밖 공간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원시적이며 무섭고, 그러면서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흥미롭게도 국립현대미술관은 더 기계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의 노래 III, 2014

알루미늄, 폴리카보네이트, 메탈라이즈드 필름, LED 조명, 전선, 스테인리스 스틸, 포그 머신, 가변 설치

사진: 전병철,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일반 관람객들에겐 이 정도의 경험도 무척 값질 것이다. 하지만 너무 스펙터클에만 집중한 건 아닐까. 다가갈 수 없는 공간에 대한 두려움, 경외감은 이미 자연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작품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그 공간이 익숙하지 않았고 너무 멀었다. 


2014년 전시 감상문을 지금이라도 정리해두는 이유는 이불은 그만큼 중요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작품은 정말 대단했다. 





화엄 Majestic Splendor

1997

stills from original installation

Courtesy: Studio Lee Bul

Photo: Robert Puglisi

출처 http://www.mori.art.museum/korean/contents/leebul/introduction/03.html



아래와 같이 죽은 물고기를 전시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시각적 효과를 가졌을 텐데, 전시 기간동안 물고기는 썩어갔다. 썩어가면서 다양한 향을 내품었다. 결국 관람객들의 항의로 인해 철수되었지만, 이 때 이불은 전세계 미술계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접근인가. 미술관 공간에 대한 질문부터 니네들도 이렇게 냄새 풍기며 썩을 거라고 경고까지 날리니까. 그리고 그 썩어가는 과정에 대해 경외감을 가진 제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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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그리고 '정물화: 살아있는 것의 소고' - 김주연 사진전

2016.4.7 - 5.3, 트렁크갤러리, 서울 





트렁크갤러리도 참 오랜만이었다. 설치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사진 작품으로 만났다. 2008년의 쿤스트독이었나, 아니면 다른 전시에서였나, 김주연의 작품을 만난 적이 있다. 선명한 작품 스타일로 한 번 보면 기억하게 된다. 그 동안 다양한 공간/물건에 식물을 키웠는데, 이번엔 옷이다. 



김주연, 존재의 가벼움I -2, 사진, 피그먼트 프린트, 144×108cm, 2014



시간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다. 김주연은 그 위로 생명의 시작과 끝은 넣으며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공간을 탈세속화시킨다. 세속에서 일정 기능을 수행하는 어떤 것에 씨앗을 심음으로서, 그것이 가지고 있던 세속의 기능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마치 버려진 물건처럼, 버려졌다가 기적처럼 식물에 의해 전혀 다른 기능과 목적으로 되살아 나는 듯하다. 


그런데 이건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여기에선 고객을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왜냐면 자연 속에 버려지는 모든 것들 위로는 무조건 어떤 것이 자라기 때문이다. 그게 식물이든 곰팡이든.  결국 작품들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어떤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깊은 산 속에서 마주할 때와 갤러리에서 마주하는 것이 다를 뿐. 

  


김주연, 정물화살아있는 것에 대한 소고I, 사진, 90×60cm



갤러리에서 인류 문명을 부정하는 작품을 만나, 우리와 무관한(혹은 거부하는) 자연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현대 문명에 대한 깊은 의문과 우려가 될 수 있겠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들 대부분, 그것을 위치한 콘텍스트를 상실하는 순간 전혀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김주연의 작품들은 자라나는 식물 속에서 우리를 다시 묻는 일종의 질문이며 반성이 된다.   




김주연, Metamorphosis, 아시바구조물, 신문지 약 18000부(3톤), 씨앗식물, 가변설치,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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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번역 출판하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고, 번번히 판매금지되었고, 최근에서야 겨우 '청소년 유해 도서' 형태로 구입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도 출판사가 항소한 끝에 제한적 판매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사드의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필립 솔레르스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사드 문학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 Marquis de Sade에 대한 영문위키 : https://en.wikipedia.org/wiki/Marquis_de_Sade 



“사드의 사랑 (Un amour de Sade)”, 필립 솔레르스와의 인터뷰 from ParisLike on Vimeo.




아래는 위 영상에서 나온 사드의 유언을 옮긴 것이다. 



사드의 유언 

샤롱통 성 모리스 병원에서 온전한 정시관 건강 양호한 상태에서 남김. 

1806년 1월 30일 

D.A.F. 사드 


"나는 금한다, 내 육체가 그 어어떠한 구실로도 부검되는 것을. 

내가 숨을 거둔 후엔 방에서 시신을 옮기지 않은 채

그리고 가져온 나무 관관에 48시간 동안 그대로 안치해 두었다가, 

앞서 언급한 48시간이 지난 뒤에 못을 박아 관을 폐쇄할 것을 간절히 요망한다. 

이 시간 동안, 베르사유에에 소재한 에갈리떼 길(평등 길) 

101번지에 사는 목재상 레노망씨에게 특사를 보내어, 

마차를 가지고 그가 몸소 와 줄 것을 부탁해,

그의 호송 하에 시산을 에페르뇽 근처, 

망세의 자치구 말메종에 있는 내 소유의 숲으로 데려가고, 

그 곳에 도착하면 오래된 성 쪽에서 난 길을 따라 들어가, 

숲을 가르는 넓은 길의 오른편에 자리한 덤불 숲에 

어떤 형태의 장례식 없이 안장해주길 바란다. 

덤불 속에 묏자리를 정하면 굿일은 말메종의 농부가 해주며 노르망 씨가 이를 감독하고

내가 무덤을 묻힐 때까지 그가 자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만일 그가 원한다면, 형식적 애도의 관행이 아닌 나에 대한 마지막 애정의 증거를 보이고자 하는 

내 친척이나 친구들과 동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무덤이 채워지면, 그 위에 도토리를 뿌려, 후에 그 자리 위로 다시 잡목이 우거지도록 하여, 

내 무덤의 흔적이 지상으로부터 사라지게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나에 대한 기억이 모든 이들의 마음에서 지워질 것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도록." 

(번역: 박해준Park Haijun)



사드에 대해선 몇 권의 책이 나와있다. 읽지 않았기에 뭐라 평할 순 없고, 조만간 한 권 읽어볼 생각이다. 필립 솔레스의 저 책은 한국에 번역 출판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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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지음), 김운찬(옮김), 열린책들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가 <<레스프레소L'espresso>>라는 이탈리아 주간지에 실었던 <미네르바 성냥갑> 칼럼을 모아 낸 책이다. 칼럼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1년 전에 읽었던 도정일 교수의 칼럼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과 묘하게 비교된다. 어떤 이는 이 '비교'가 부적절하다고 강하게 주장할 것이다. 나도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책 구입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독자로서, 도정일 교수의 칼럼집에 대해선 돈이 아까웠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칼럼집에 대해선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걸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낄 뿐(그런데 이것은 저자가 신경 쓸 부분이라기 보다는 출판사 관계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집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이 책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에코의 인문학적 재치는 유머스러하면서도 그 특유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가령 <왜 시인은 게을러야 하는가> 같은 칼럼에서. 


책과 예술, 인터넷 등 여러 분야에 대한 다양한 칼럼들로 채워진 이 책은 책상에 앉아 정독하면, 도리어 재미없어진다. 스마트폰에 정신 팔린 사람들도 가득찬 소란스러운 지하철이나 버스, 독서는 안중에도 없이 영어 공부방이 되어버린 커피숍 등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최고의 선택이다. 


나도 거의 십수년만에 움베르토 에코의 칼럼집을 읽었다. 예전에 사두었던 에코의 칼럼집 한 두 권이 서가 어딘가에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이여, 안심하시라. 열 권의 책을 읽든 같은 책을 열번 읽든, 똑같이 교양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단지 전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나 걱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 32쪽 



책을 읽다고 교양 있는 사람이 될 것같진 않고, 다만 요즘 같은 시절의 한국에서 책을 읽다는 것이 얼마나 유별난 습관인지, 깨닫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 그래도 움베르토 에코 같은 이에게서 위안을 얻어야 할 것이다. 


* 움베르토 에코 사이트 : http://www.umbertoeco.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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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8458 



잠을 자고 있는 두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거의 20년 이상 몰두했다. '잠자는 뮤즈'를 구상하고 작업할 때, 그는 근본적인 형태와 단순화된 세부를 위해 개념들(ideas)을 줄여나갔으며, 이를 위해 극적인 요소와 디테일을 피했다. 그는 관성으로 인해 무겁게 내려앉은, 그러면서 평화롭게 쉬는, 바닥에 엎드린 머리의 모습으로, 나른함(languor)의 본질을 만들었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설명을 번역함. 


 

*     * 


저런 잠이라면, 영원할 것만 같다. 1910년, 브랑쿠시는 왜 저런 잠을 꿈꾸었을까. 잠은 죽음과 맞닿아있고 꿈과 연결된다. 삶은 멈추고 운동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네 태양은 지고 내 어둠은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사랑은 잠시 숨을 고르고 떠나간 연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본다. 어쩌면서 우리의 모든 착오, 실수, 잘못, 그리고 실패한 사랑까지도 저 무거운 잠은 가지고 갈 것이다. 가지고 가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들이 단순화되면서 명료해지고 매끈해지면서 상처는 사라진다. 


그것은 어떤 종결이면서 시작이다. 우리를 아프게 했던 드라마는 흐릿해지고 그 날의 고통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브랑쿠시의 저 우아한 모더니즘이 향하는 위안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소란스러운 시절이 가고 고요하고 안정된 평화가 온 것이다. 적어도 저 잠자는 뮤즈 옆에서라면, 그런 평화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www.eroiiromanieichic.ro/constantin-brancusi-i/ 

잠자는 뮤즈의 실제 모델인 Baroness Rene Irana Fran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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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미술잡지를 보다, 오랜만에 선무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주말 사무실 출근 전 건성건성 읽곤 집에 와서 그의 전시 기사들을 챙기며 메모해둔다. 의외로 선무에 대한 글이 검색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보다 국외에서 더 주목받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삶이 가지는 드라마틱한 요소, 30년 북에서 살다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탈북하여 한국에서 들어온 사내, 새터민 화가, 홍대 미대 졸업, 그리고 이젠 두 아이의 아빠. 그런 그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 세계는 충분히 주목받을 만하고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선무, 들어라!, 캔버스에 유채, 116×91cm, 2009



특히 그가 배웠던 방식의 작품 스타일(일명 주체미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명확한 메시지를 무겁지 않은 화법으로 드러낸다는 점은 보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분단환경을 환기시키면서 작가의 의도를 분명히 전달한다. 



선무, 열다, 캔버스에 유채, 72×60cm, 2009



선무, 선무의 노래, C 프린트, 2014


선무, 창밖의 낯익음, C 프린트, 2014



최근의 작품들에서 그가 적극적으로 서구 현대 미술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선무, 엄마 여기 서울이야, 캔버스에 유채, 91×72cm, 2010



몇몇 작품들은 아프고 슬픈 분단 현실을 드러내지만, 우리들은 그걸 외면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의 한국 예술가들 중에 누가 분단 현실에 대해서 탐구하고 조명하면서 이야기하는가?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서 너무 둔감해진 건 아닐까. 이제 분단예술 따윈 없고, 이미 과거형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무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진다. 



선무, 조선의예수2, 캔버스에 유채, 91×91cm, 2010



한국현대미술에서 선무는 매우 중요한 작가이다. 그는 미래형이다. 탈북자 가족들 중에서 소설가나 시인이 나올 것이며 다문화가정이라는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이 나와, 한국 사회의 현재를 조명하고 비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정말 그것이 기대된다. 우리에게 참으로 많이 아픈 이야기를 들려줄 테지만, 그러는 동안 한국 사회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선무, 꽃보라 Piece of flower, 캔버스에 유채, 190×130cm, 2013



* 선무 / SUNMU / 線無   http://sunmu.kr

* 인터뷰기사 -  [RFA 초대석] 뉴욕에서 개인전 연 탈북화가 선무 

(선무의 인터뷰 기사 실린 '자유아시아방송(영어: Radio Free Asia, 약칭 RFA)은 1994년 미국 의회가 입법한 국제 방송법(International Broadcasting Act)에 의해, 1996년에 미국 의회의 출자에 의해 설립된 국제 방송국'이다. 홈페이지 상단의 언어들을 클릭하면, 해당 언어별로 다른 컨텐츠로 나온다.미국 연방 정부 기금에서 지원을 받아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웹사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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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9.01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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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城 

김화영(지음), 문학동네 






여행은 나의 삶이 남의 삶이나 공간을 만나는 감촉이며 공명(共鳴)이다. - 7쪽 




'예술기행'이라는 부제를 읽곤 프랑스의 여러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대부분 프랑스 문학 작품과 연관된 기행 산문집이다. 예술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미술이나 조각, 음악에 대한 다채로운 내용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대를 했다. 


김화영, 그는 1974년에 이미 카뮈 연구로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카뮈에 있어선 국내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년 그는 어느 형편없는 출판사의 노이즈 마케팅에 휘말렸다. 그 때 나온 기사들이나 광고를 거의 읽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번역 문제는 늘 있어왔던 것이고 해석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불어를 한글로 옮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며, 김화영 교수의 번역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는 있기에. 하지만 내가 그 기사들이나 광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예의 없고 버릇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성실한 프랑스 문학 연구자이며 한국 독자들에게 프랑스 문학을 소개해왔으며 카뮈 전집을 한국에서 읽을 수 있게 한 老교수에 대해 '엉터리 번역'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마케팅을 했고, 오래 전부터 자신들의 형편없음을 여러 기사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던 여러 일간지의 기자들마저도 앵무새처럼 '엉터리 번역'이라고 옮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절망적이었던 것은 이런 상황에 독자들은 자신들의 무지몽맹함을 뽐내며, '엉터리 번역'에 동조하며 흥분하고 있었다. 실은 지금도 인터넷 서점 리뷰들을 보면 그 때 올라간 많은 리뷰들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은 영어 번역본을 한글로 번역했고 이를 프랑스어 원문과 대조했음이 드러났다. (관련 사항은 엔하위키 미러 - 이방인 항목 참조) 더구나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indifference님 블로그 참조) 하지만 그래서? 일은 이미 벌어졌고 새움출판사는 자랑스레 이 책을 팔았고 지금도 팔고 있다. 세상은 이렇다. 상처는 아물지 않고 상처를 낸 사람은 잘 살아갈 것이다.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서두에 나오는 여러 성들의 모습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성만 남거나 그 성을 가지고 있던 귀족은 없고 그 후손도 없고 관리인만 남아있거나 ... ... 그런데 성마다 남모를 사연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놓칠 수 없다. 아마 지금 프랑스에 가서 그 성들을 보는 것과 이 산문집에서 표현된 성들과는 벌써 거의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책은 젊은 불문학자의 글에서부터 노년에 이른 불문학자의 글이 한 곳에 담긴 것이다. 첫 장 '예술의 성'은 이미 1980년에 열화당을 통해 문고판으로 나온 바 있었지만, 책 후반부의 여행 산문들은 1990년대 이후의 흔적들이다. 


나에게 이 책은 여러 성들의 모습과 이야기가 좋았다. 서양미술사에서 언급되는 성들은 그리 많지 않고 조형적 혁신을 이룬 대표적인 작품 위주이지, 그 성에 담긴 사연 위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몇 명의 작가들, 특히 샤토브리앙을 알게 된 것은!! 이미 샤토브리앙에 대해선 포스팅했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거나 기행 산문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우리가 요즘 흔히 접하는 그런 기행 산문집 - 글을 거의 없고 사진들로만 가득찬 - 이 아니다. 보기 좋은 사진들 대신 프랑스 소설가나 시인의, 기억하고 노트해 둘만한 글들이 인용된다. 그러니 이 책의 독자들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방인>> 번역을 언급한 것은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몇몇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사태가 바로 잡히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 바 기자나 학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블로거가 실질적인 대응을 했기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 자주 접하게 되는 역자들이 있다. 이휘영, 김현, 민희식, 김화영, 이재룡 ... 그들의 노고를 잊지 말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城) - 8점
김화영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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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ndro Erlich 레안드로 에를리치

Port of Reflections 대척점의 항구

2014. 11. 4 - 2015. 9. 1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박스 

한진해운 박스 프로젝트 2014 




2012년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의 전시 이후 다시 만나는 레안드로 에를리치다. 197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인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2001년에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에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로 참여했다. 이십대 후반에 이미 그는 아르헨티나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 셈이다. 2005년에 다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했고, 2000년에는 휘트니 비엔날레, 2001년에는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이른 나이에 세계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번 국립 현대 미술관에 전시된 <대척점의 항구>는 그간 그가 보여주었던 공간의 착시 효과를 통한 물리적 환경의 변화, 경험, 그리고 관람객의 놀라움 등을 느끼기엔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이전 송은아트스페이스는 낮은 천장의 실내 공간에서의 전시라는 점에서 작품은 좋았으나, 관람객의 극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힘에 부쳤다고 할까.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규모있는 작품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다고 해야 할까. 하긴 형편없는 작품이라도 규모에서 압도하면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파리 오르세 미술관 1층을 가득채운 19세기 후반 아카데미 미술 작품들을 떠올려 보라.이 작품들을 보며 흥분하는 관람객들이란!!)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모습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모습



위 사진들은 전시 공간 아래서 위로 본 모습이다. 그런데 저 위에서 아래를 보면 어떤 모습일까?(전시를 관람하면서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안내를 받지 못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leandroerlich.com.ar/ 


위에서 본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대척점의 항구>는 이런 모습이다. 그러니 반드시 위로 올라가서 두 개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봐야만 제대로 감상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다른 작품 <Swimming Pool>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풀장 아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http://whenonearth.net/the-swimming-pool-by-leandro-erlich-in-kanazawa-japan/ 



그리고 아래에선 이런 모습이다. 아, 이건 풀장이 아니다. 



출처: http://twistedsifter.com/2012/08/fake-swimming-pool-illusion-by-leandro-erlich/ 


실제 물은 약 10cm정도만 채워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물 아래 투명한 유리가 있고. 위에서 아래로 보면 영락없는 풀장이지만(실제 물인가 하고 만져보는 사람들도 있다), 아래에서 위로 보면 이건 뭐랄까. 



아래 작품은 2013년 런던 건축 페스티벌에서 전시된  <Dalston House>다.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Batiment>이라는 이름으로 최초 전시된 이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초대 전시되는 듯 싶다. 


아래 작품 사진을 보자.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약 45도 정도로 기울어진 거대한 유리를 통해 시각적 착시 효과를 노린 설치 작품이다. 아이디어도 흥미롭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관람객들의 반응이다. 



출처: http://www.dezeen.com/2013/06/26/dalston-house-by-leandro-erlich/ 


아래는 2004년 파리 전시 모습이다. 


출처: http://www.artforworldexpo.com/InitialProject/works_27_LeandroErlich.html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관람객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여기에 참여한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의 전시 설명을 읽어보자.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유망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서울관의 중심 공간인 서울박스의 공간적 특성을 반영한 신작 <대척점의 항구 Port of Reflections>을 선보입니다. 아름다운 항구로 변신한 서울박스 공간을 부유하는 선박들과 가로등은 거울처럼 맑은 수면 위에 반사된 물그림자와 함께 환상적이며, 초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줍니다. 현실과 환영, 실재와 가상이 절묘하게 결합된 풍경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경험할 수 있는 이 작품은 (...) 순수한 시각적 호기심을 유도합니다. 



위 전시 설명은 이번 전시 작품 이외에 이 글에서 언급한 두 작품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일관된 테마로 1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올 9월까지 이어지니, 한 번 가서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작품 이미지 및 자료 참고)

레안드로 에를리치 홈페이지 : http://www.leandroerlich.com.ar/ 

Dalston House by Leandro Erlich http://www.dezeen.com/2013/06/26/dalston-house-by-leandro-erlich/ 

Leandro Erlich http://en.wikipedia.org/wiki/Leandro_Erlich 

http://www.artforworldexpo.com/InitialProject/works_27_LeandroErlich.html 

http://momaps1.org/exhibitions/view/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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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지음), 최재혁(옮김), 반비 




현대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그녀와 이야기하는 게 어려울까? 그렇지 않을 게다. 그렇다면 그/그녀가 만들고 보여주는 미술 작품은? 정녕 모른다면 친구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동시대 미술(우리에겐 현대미술)을 보고 감상하지 못한다면, 그건 미술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우리 시대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주위를 돌아볼 겨를 조차 없이 무언가에 쫓겨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옳은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주 전시장을 찾고 자기 자신에 대해 보다 솔직해지고(심지어 자신의 아픔, 상처와 대면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진다면, 현대 미술은 감상하기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마치 이 책의 저자, 서경식 교수처럼. 그는 태생적 아픔으로부터 두 형의 구속 등 그의 인생 자체가 바로 한반도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그는 이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미술 순례 시리즈의 시작점이었을 지도. 

서경식은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공감을 가지고 있으나, 전문적인 식견으로 파고 들어 분석하는 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걸 원하지도 않는다. 그는 현대 미술 작가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그들의 작업과 작품에 대해 소개하면서도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고 도리어 감동적이고 내가 우리 미술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하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마음을 울리는 작품 앞에서, 그 작품과 그 작품을 만든 작가와의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감동은 커녕, 위선과 위악으로 가득찬 작품 도판을 책에 실고 갖가지 이론을 들이미는 책들을 보면서, 나는 '예술 작품의 감동 앞에선 그 어떤 이론도 무용지물인데'라고 중얼거리곤 한다.(아, 이 중얼거림이란!) 

이 책에서도 다소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가령 윤석남에 대한 챕터에서 길게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든지 ..., 하지만 페미니즘은 그저 시류처럼 흘러 지나가고 여성 작가로서의 윤석남에 대하여, 윤석남이 만드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그것을 보다 풍성하게 해주는 곁다리 이야기였을 뿐이다. 

현재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 미희, 홍성담, 송현숙, 그리고 월북작가 이쾌대, 조선 시대의 신윤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쉽게 읽히나 가볍지 않고,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울거나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일들이 있었나 할 정도로 담담하게 서술되고 있다. 아마 그건 이 책의 저자도 이미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피해자였으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작가들이 바로 그런 현대를 살아온 이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여러 예술 서적으로 탁월한 에세이스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서경식의 신작 <<나의 조선미술 순례>>도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다. 도리어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서 더 좋았다. 2015년, 이 책으로 시작해도 나쁘지 않으리라. 


**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을 짧게 메모해보았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해 그는 '한국'이라는 단어 대신 '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한국'은 그 범위가 작아 자기 같은 재일한국인이나 미희와 같은 해외입양아 등 우리 민족 전체를 보여주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단어라 생각했으며, 동시에 '조선'이라는 단어 속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경호, 넋이라도 있고 없고: 초혼 1980, 1980 


집에서 그렸을 거예요. 광주항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그렸던 그림이죠. 광주 상황이 끝나고 나니까 거지와 넝마주이, 구두닦이가 하나도 안 보이는 거예요. 그 기간에 다 사라져버렸죠. 그들은 대부분 고아였거든요. 찾거나 신고하는 사람도 없었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들이 언젠가는 광주로 돌아올 텐데 하는 마음으로 그렸던 그림입니다. - 신경호 (63쪽) 



**


정연두는 피사체가 되는 일반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작품을 만든다. (84쪽) 

정연두, 상록타워 Evergreen Tower55×80×32,  사진, 2001



정연두, 상록타워 Evergreen Tower55×80×32, 사진, 2001



예술가는 사회적인 리더도,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도 아니고 어려운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관찰자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기보다 예술 자체가 하나의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 같아요. 이해하기 힘들어도 "아아, 이건 예술이니까, 아트 프로젝트니까 ... ..." 라면서 관대히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 정연두(85쪽

**

신윤복, 미인도, 114.2cm * 45.7cm, 비단에 채색, 간송미술관 



바로 이런 인상이다. 나 역시 '미인도'에서 같은 인상을 받았다. 남성이 지닌 시선의 폭력에 갇혀 긴장하는 모습도 없고, 거꾸로 거기에 아양 떨며 자신을 상품화하려는 생각도 없이, 정녕 '자연체'인 것이다. 한 마디로 '미인도'의 여성은 '기호'가 아니다. 자신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동성인 여성이거나, 혹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기에 가능한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282쪽) 

**

최근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저는 단지 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디아스포라가 된 배경에는 어떤 식으로든 강제성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경제건, 전쟁이건, 혹은 입양 제도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억지로 갈라지고 헤어진 경험이 바로 디아스포라의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 미희(325쪽) 


**


홍성담, 욕조: 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 1999 



섬에서 자란 인간이라서 제게 물은 생산의 이미지입니다. (중략) 힘들 때마다 고향의 푸른 바다를 떠올리면 힘이 났습니다. 

그런데 남산에 있는 안기부 지하실에서 그 생산과 생명의 물, 생업으로서의 물, 나의 희망으로서의 물이 하필이면 나를 고문하는 도구가 될 줄 어떻게 예상했겠습니까? 안기부 놈들이 이른바 나를 물과 맞서게 했고, 결국 그 물에게 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날조한 대로 저는 북한에도 두 번이나 왕래한 간첩이 되어버린 거죠. 

감옥에서 나왔지만 그 후로는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되살아나서 완전히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도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물에 대한 공포를 계속 껴안고 살아갈 것인가? 세계를 이루는 원초적 개념 중 하나인 물에 공포를 가진 채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물과 정면대결하자고 생각했어요. - 홍성담 (333쪽)







나의 조선미술 순례 - 10점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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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영웅', 1998.



서경식 교수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읽고 있다. 여기에 실린 정연두와의 인터뷰는, 그동안 무심코 보아온 그의 작품들에 대해 다시 생각케 했다. 정연두의 스쳐가는 이미지들 사이로, 그의 작가적 개입과 실천을 보지 못한 셈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분당의 풍경이 완전히 변해 있었어요. 같은 규격의 아파트가 장대하게 늘어서서 마치 분당이라는 지명이 사라지고 아파트 동호수만 보이는 느낌이었죠. 어느 날 거기서 교통사고를 목격했어요. 작은 오토바이가 충돌해서 운전하던 아이가 다쳤습니다. 소년은 아픔을 참으며 달려온 사람들에게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고 대답했어요. 짜장면을 배달하러 가는 참이었나 봐요. 그 후에 그 아이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고 회복한 다음에 이 작품을 찍었습니다." - 정연두 

(서경식, <<나의 조선미술 순례>>, 반비, 115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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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을 찾아서 - 현대미술의 시작

이우환(지음), 김혜신(옮김), 학고재





번역자인 김혜신 교수에 따르면, 이 책에 실린 이우환의 글들은 주로 1960년대 말 쓰여졌다고 한다. 60년대 말에 출간된 이 책을 2000년에 일본에서 재 출간하였고, 2011년에 한국의 학고재에서 한글로 번역, 출판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당시 이 책은 일본 미술계의 ‘태풍이면서 바이블’이었다. 


우리는 이우환이 세계적인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탁월한 미술 비평가이자 이론가이며 일본 현대 미술에서도 그 위상이 대단한다는 사실은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일본어로 글을 쓰는 시인이자 산문가이며, 그의 일부 글은 일본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인정 받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이우환은 일본에서 먼저 유명해졌고 그 다음 파리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에서, 그런 다음 한국 미술계에 소개되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1960년대 말 이우환은 현상학에서 바라보는 바, 서양 근대 철학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시각을 이 책을 통해, 그리고 모노하(もの派)라는 미술 운동을 통해 드러낸다. 이 책은 일본 모노하 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으며, 미술 이론가 이우환을 제대로 알린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그 탄탄함과 생생함이 가시질 않는데, 60년대 말, 70년대 초 메를로 퐁티,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그리고 니시다 기타로를 인용하며 일본 현대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였을 때, 얼마나 많은 동시대 일본인들은 그를 질투했을까는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더구나 1960년대 말의 이우환만큼 탁월한 식견으로 뛰어난 글을 쓰는 미술 비평가, 혹은 이론가를 한국에서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원래 테이블이나 의자, 풍경 자체는 아무런 시각적인 원근법도 가지지 않는 세계이다. 실재는 인간의 가치 조정 없이 스스로의 거리를 가지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세계인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이 쪽이 중심이 되어 저 쪽을 보고 싶은 대로 규정하는 표상 관념에 의해 시야의 세계를 원근법의 화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110쪽) 



그는 서구의 모더니즘 미술을 부정한다. 그는 근대 철학은 실제 세계와는 무관한, 우리 관념의 표상을 상정하고 그 표상을 그대로 투영시킨다고 말한다. 즉 외부 세계는 우리의 관념으로 해석, 투영된 것이지, 실제 존재하는 바 외부 세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의 생각이 아니라 20세기 현상학자들, 특히 메를로 퐁티가 지적하는 바이며, 그 외 많은 사상가들이 지적해온 바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메를로 퐁티에서 출발해 니시다 기타로에 이른다. 



우리의 신체라고 생각되는 것이 이미 모순적 자기 동일로서 행위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행위하는 것이 보고 있는 것이며, 보는 것이 행위하는 것이다. 신체의 움직임은 이미 표현 행위인 것이다. … … 행위하는 것과 보는 것이 결합하는 곳에 신체가 있다. 행위적-직관적으로 사물이 보이는 곳에 신체가 있는 것이다. 

- 니시다 기타로, <인간의 존재> 중에서(227쪽 재인용) 



… … 예술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가의 온전한 신체라고 해도 좋다. 

- 니시다 기타로, <무의 자각적 한정> 중에서(228쪽 재인용) 



관계항2007



우리가 1990년대 초반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서구 근대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면, 이우환은 이미 1960년대 근대 철학, 근대성(Modernity)의 한계성을 이야기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예술적 방향이나 실천을 고민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긴 그 전에는 한국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그럴 여유도 없었겠지만, 그런데 지금은 뭐지?)


그가 집중하고 있는 현재의 작품 활동은 이런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인 동시에 공간이며, 공간인 동시에 시간인 지점이 열리는 순간, 시간은 동시성의 장소로서 만남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은 오는 시간도 가는 시간도 아니고, 바로 지금 여기의 안과 밖이 상호매개되는 열린 만남의 세계라는 점에서, 비대상적 차원인 것이다. (231쪽)



이런 측면에서 그는 상당히 관념적인 작가이며 일반 대중에게는 매우 어렵게 다가온다. 특히 그가 지향하는 미니멀한 표현 방식과 20세기 후반 서구 미술계를 주도했던 미니멀리즘과는 전적으로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제나 나는 니시다가 말한 ‘절대모순적 자기 동일’을 비동일성의 지평으로 삼아, ‘무의 장소’를 관계성의 표현을 통한 무한한 울림-여백으로 전개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 한다. 

(… …)

예술의 과제는 인간이 더욱 직접적인 세계로 해방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를 어떻게 열어 제시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그것은 어떻게 현실을 표현의 상태성으로부터 그것의 현재화로 이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242쪽) 



딱딱한 미술 이론서인 관계로 일반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술 전공자에게 추천하기에도 이 책은 솔직히 말해 어렵다. 실은 '어렵다'라고 하는 것이 다소 무안하게 여겨질 정도다. 1960년대 말 쓰여져, 그 당시 일본 미술계의 무수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책을 두고 '어렵다'라고 말하는 내가 부끄럽다. 아직까지 한국 문화, 예술계의 지적 토양은 1960년대 말 일본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이다. 


굳이 이 책의 단점을 이야기하자면, 근대 철학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거칠게 나누고 있었다. 서양 근대 철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드러나지 않고 한 쪽 방향으로 다 몰아넣고 있다는 느낌 말이다. 실은 그의 목적, 원근법적인 서양 근대 미술을 넘어서 새로운 예술적 실천을 도모하기 위함이지만. 하긴 이 책은 전문 철학 서적은 아니니... 


미술 이론 전공자이거나 비평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권한다. 그리고 이우환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이우환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탁월한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만남을 찾아서 - 10점
이우환 지음, 김혜신 옮김/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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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조각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  

July 18 - October 20, 2013 

리움Leeum, Samsung Museum of Art 




전시를 보고 난 다음, 리뷰를 쓰기 위해 몇 편의 논문들과 자료들을 모아두었는데, 역시 직장인이란 늘 시간이 없다보니, 이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냥 메모만 해둔다. 


2013년 여름에 있었던 이 전시는 총 118점이 전시된 국내 최대 규모의 알렉산더 칼더 회고전이었다. 칼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무척 뜻깊은 자리였으며, 칼더를 모르는 이들에겐 칼더의 조각 인생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서커스 장면 Circus Scene

1929

Wire, wood and paint

127 x 118.7 x 46 cm

Calder Foundation, New York



알렉산더 칼더(1898-1976)는 움직이는 조각, 모빌을 창안하여 현대 조각의 혁신을 이끌었다.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일상 속에서 미술을 접하며 자란 칼더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으나 결국 잠재된 예술성을 따라 조각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1920년대 파리에 머물면서 몬드리안과 미로, 뒤샹, 아르프 등 당시 파리 미술계를 이끌던 작가들과 교류하며 추상 미술과 초현실주의같은 당대 최신 미술 경향을 접하고 크게 영향 받았다. 칼더의 대표적인 작업인 모빌과 스태빌은 칼더의 예술적 재능과 동시대 아방가르드 미술, 움직임을 구현하는 그의 공학적 지식이 조화를 이루어 탄생한 20세기 최고의 혁신적 조각이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서커스 장면>이라는 작품에서 우리는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철사로만 표현하는 칼더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곡예사들>이라는 아래 작품에서 칼더가 지닌 탁월함을 확인할 수 있다. 



곡예사들 Acrobats

c. 1927

Wire and wood

87.6 x 22.9 x 30.5 cm

Calder Foundation, New York

Gift of Katherine Merle-Smith Thomas in memory of Van Santvoord Merle-Smith, Jr., 2010




(... ...) 칼더 예술의 근간이 형성된 1920년대와 그의 혁신적인 작업인 모빌이 처음 등장하는 1930년대의 작업들이 선보인다. 우선, 그의 예술적 관심이 발하기 시작한 학창 시절의 그림들, 동물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묘사한 동물 스케치들, 1926년 파리 이주 직후에 시작된 철사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상의 특징적인 형태와 움직임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이를 놀라운 솜씨로 표현한 철사조각은 칼더의 천재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어 칼더가 파리의 주요 미술가들과 교류하며 추상미술을 익히고 이를 자신만의 양식으로 탄생시킨 1930년대의 역사적인 모빌과 스태빌도 감상할 수 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Small Feathers

1931

Wire, hout, lead and paint

97.8 x 81.3 x 40.6 cm

Calder Foundation, New York





The Star, 1960

Polychrome sheet metal and steel wire, 35 3/4 x 53 3/4 x 17 5/8”

Bequest of George and Susan Proskauer 



(... ...) 작가의 전성기인 1940년대의 작업부터, 그가 말년에 집중적으로 제작한 대형 공공조각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숙의 경지에 들어선 1940년대의 모빌은 단순히 균형을 이루는 수준을 넘어 역동적이고 다양한 움직임들을 보여준다. 조각의 형태 역시 작업실 주변 자연 환경에서 받은 영감과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반영된 유깆거인 특징이 두드러지면서 다채로와진다. 칼더는 작가로서 큰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여전히 새로운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2차 대전 동안 부족해진 금속 재료를 대신하여 나무나 청동으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작업을 선보여 예술가로서의 부단한 노력과 창의성을 보여주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The three wings

Sculpture by Alexander Calder, 1967. 

Angered, Gothenburg, sweden.

출처 - http://commons.wikimedia.org/wiki/




1960년대부터는 칼더는 공학기술을 이용해 공공 장소에 어우러지는 대형 조각을 만드는 일에 더 흥미를 느꼈다. 산업용 철판을 사용한 그의 대형 조각들은 마치 선박을 건조하듯 볼트로 조립하여 완성되었다. 1960년대는 많은 미국 조각들이 공공조각을 제작한 시기인데, 그 가운데서도 역동적이면서 부드러운 곡석인 특징적인 칼더의 대형 조각은 직사각형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1960-70년대 국제 양식의 건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공간에 활기를 불어 넣었고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되었다. - <전시 팜플렛> 중에서 





거대한 속도 La Grande vitesse 

1969

sheet metal, bolts, and paint 



칼더의 <거대한 속도>는 너무 유명한 조각이라,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칼더의 탁월함은 자연적 요소 - 공간, 바람, 공기 - 등과 어우러지면서 조각이 움직이며 이 움직임 속으로 관객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은 지극히 기하학적이면서도 유려하고 아름답다. 더구나 대중적이기까지 하다. 칼더의 작품은 쉽게 볼 수 있으니, 다음에 보게 되면다면 한 번 유심히 보면서 칼더의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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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rsimmon Tree(감나무)

Sakai Hoitsu 

(Japanese, 1761-1828)

Period: Edo period (1615-1868)

Date: 1816

Culture: Japan

Medium: Two-panel folding screen; ink and color on paper

Dimensions: Image: 56 9/16 x 56 5/8 in. (143.7 x 143.8 cm) Overall: 65 1/4 x 64 in. (165.7 x 162.6 cm)

(c)Rogers Fund, 1957. Metropolitan Museum. 




사카이 호이츠(Sakai Hoitsu)의 작품이다. 타라시코미(Tarashikomi)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일본적이나, 서구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19세기 초, 일본에는 이미 서구의 문물이 많이 유입된 상태인 듯 싶다. 사카이 호이츠는 유복한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나중에 출가하여 스님이 된다. 타라시코미 기법이 어떤 것인가 검색해 보았더니, 한글로는 푸하, 네일아트가 뜬다. 이는 구글도 마찬가지여서, 타라시코미 기법을 알기 위해선 영어로 검색해야 된다. 한글로 온라인 상에서 구할 수 있는 정보는 종종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타라시코미는 일본 회화의 기법 중 하나로, 첫 채색이 마른 후에 두 번째 채색을 하는 기법이다. 두 번째 채색을 할 때 잔 물결이나 꽃잎 등을 흠뻑 젖게(dripping)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 위 작품에선 감잎이나 감에서 이 기법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페이스북에 올라온 작품인데, 내 마음에 들었다. 한 쪽을 여백으로 처리하고, 감나무 하나, 그런데 이 감나무도 나무만 남게 될 암시가 가득한 이 작품은 마치 서양의 바니타스(Vanitas)화처럼, 쓸쓸하게 지쳐갈, 외롭게 죽어갈, 그러나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오게 될 봄을 기다리는 느낌이랄까. 벤야민의 페허 같았다. 


우리는 종종 끝없는 절망이나 견딜 수 없는 우울,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빠지지만, 결국 살게 되고 살게 되는 원천이 이런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떤 심연 속에 빠졌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 언젠간 봄이 올 것이고 그 때를 위해 고통스럽더라도 현재에 충실하고 오게 될 미래에 대해 생각하자. 어차피 인생은 힘들고 외롭고 쓸쓸한 것이니 말이다. 





참고. 

1) 타라시코미 : http://en.wikipedia.org/wiki/Tarashikomi 

2) 일본 에도 시대의 painting 작품들만 모아 한국에서 전시하면 어떨까? 꽤 흥미로울 것같다. 혹시 진행하게 된다면 내가 가서 자원봉사하겠다. 전시설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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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1921 - 1986) 





요셉 보이스를 조금 안다고 여겼는데, 나는 전혀 그를 모르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실제로 분명히 봤을텐데, 그 기억은 나지 않고 작품 스틸 이미지만 머리에 맴돌 뿐이다.  



Joseph Beuys 1976 

출처: http://uk.phaidon.com/agenda/art/articles/2014/march/03/why-joseph-beuys-and-his-dead-hare-live-on/



그의 예술 세계는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치유와 회복, 특정 매체에 대한 집중, 은유, 알레고리, 예술과 삶,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진취적 모험에까지 이른다. 심지어 그는 실제 정치 활동까지 한다. 이런 다양성 밑에는 일관된 주제와 표현 방식이 있는데, 실은 이런 일관성이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 (죽은 토끼에게 그림을 어떻게 설명할까)

- Performance on 26 November 1965 at the Galerie Schmela(뒤셀도르프)


 

"For me the Hare is a symbol of incarnation, which the Hare really enacts-something a human can only do in imagination. It burrows, building itself a home in the earth. Thus it incarnates itself in the earth: that alone is important. So it seems to me. Honey on my head of course has to do with thought. While humans do not have the ability to produce honey, they do have the ability to think, to produce ideas. Therefore the state and morbid nature of thought is once again made living. Honey is an undoubtedly living substance-human thoughts can also become alive. On the other hand intellectualizing can be deadly to thought: one can talk one's mind to death in politics or in academia." - Joseph Beuys

(나에게 토끼는 육신화의 상징이죠. 이 토끼는 사람이 단지 상상 속에서만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진짜 보여주고 있어요. 땅을 파서 그 건축물 자체가 집인 곳을 이 지구에 만들죠. 이렇게 해서 지구에 그 스스로 구체화시킵니다: 그건 유일하게 중요한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보여요. 물론 내 머리 위의 꿀은 생각과 관련이 있죠. 사람들은 꿀을 생산할 능력을 가지지 못했지만, 그들은 생각할 수 있고 개념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사상의 오래되고 병적인 본성은 다시 한 번 살아있는 것이 됩니다. 꿀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인류의 사상을 또다시 살게 만드는, 살아있는 실체예요. 반면에 합리화는 사상에 있어서 치명적인 것이예요. 그것은 정치나 학문에 있어서 자신의 마음을 죽음과 이야기하게 만들 겁니다.)   

(* 번역해보았는데, 많이 다듬어야 한글로 뜻이 통할 것같은데, 능력 부족이군요. 양해를.)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위 문장을 옮겨왔으나, 작품 이해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퍼포먼스는 요셉 보이스의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이지만,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데, 그가 기대고 있는 세계가 북유럽, 켈트적 전통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우리와는 정서적으로 맞지 않다고 해야 하나. 


주술적이거나 제의적이라는 특징은 요셉 보이스 뿐만 아니라 현대 예술가들에게 대부분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요셉 보이스에게 해당된다. 죽은 토끼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는 다시 되살아남을 느낀다. 즉 이미 죽어야만 다시 되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 그가 죽다 살아났던 것처럼, 새로운 세계는 죽음을 거쳐야만 맞이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말하는 동안 그의 숨결은 죽은 토끼를 거치고 그가 퍼포먼스를 한 유리 부스 안에는 죽음을 거쳐온 생기(生氣)로 넘친다. 


실제 그의 퍼포먼스를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짧은 영상이지만, 한 번 보자. 

 




요셉 보이스의 펠트와 지방에 대한 천착에 대해선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경험 - 진위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 에 의해 치유와 회복의 상징이 되었다. (참고: 요셉 보이스 한글 위키피디아 설명) 그리고 그의 단골 매체가 되었고 일종의 집착처럼 느껴질 정도다. 



Joseph Beuys, The Pack 1969

Staaliche Museen Kassel, Neue Galerie. 

(c) DACS, 2005

출처: http://www.tate.org.uk/whats-on/tate-modern/exhibition/joseph-beuys-actions-vitrines-environments 



지방을 펠트천으로 감싸고 마치 개가 끄는 눈썰매 모습처럼 낡은 폭스바겐 밴에 연결된 이 작품은 일종의 비상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물건들처럼 보인다. 즉 상처입고 죽어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썰매에 있는 지방과 펠트천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 이런 상징과 은유는 ..., 역시 낯설다. (ㅡ_ㅡ)


<7,000 떡갈나무> 프로젝트는 그의 컨셉 - '사회적 조각, 혹은 예술작품으로서의 사회(social sculpture - society as artwork)'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Some of the 7,000 Oaks planted between 1982 and 1987 for Documenta 7 (1982)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Social_sculpture



Joseph Beuys, 7000 Oaks. Located on West 22nd Street between 10th and 11th Avenues. 

(The 7000 Oaks project began in 1982 with a planting of 7,000 trees, each accompanied by basalt stone columns, through the city of Kassel, Germany. Dia Art Foundation continued this project with plantings in Chelsea in 1988 and 1996.)

출처: http://www.times-arrow.com/joseph-beuys-7000-oaks/ 



"나는 7,000그루의 떡갈나무를 심을 것이다. 7,000그루의 떡갈나무 옆에는 각각 한 개의 돌들이 세워질 것이며, 이로써 최소한 800년을 생존한다고 알려진 떡갈나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역사적인 순간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노동과 테크놀로지의 개념, 물질주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산업화, 자본주의 혹은 공산주의란 미명 아래 인간이 취해온 폭력적인 황폐화과정에서 벗어나 올바른 재생의 과정, 다시 말해, 자연 뿐 아니라 사회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을 부여하는 소생의 과정인 '사회적 유기체'를 이끌어낼 때이다. 이를 위해 나는 돌을 필요로 한다." - 요셉 보이스 

출처: 송혜영, <요셉보이스의 <20세기 종말>>(2009. 영남대학교)에서 재인용



생명과 돌이 지니는 영속성, 그리고 이를 직접 땅에 심는 행위(action)으로 시작되고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예술작품. 요셉 보이스는 우리 모두가 예술가이며, 예술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Joseph Beuys

The End of the Twentieth Century, 1983–5, 

(c) DACS, 2014

출처: http://www.tate.org.uk/art/artworks/beuys-the-end-of-the-twentieth-century-t05855



"이것은 새로운 세상의 각인이 새겨진 낡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마치 석기 시대의 식물처럼 생겨난 이 마개를 보십시오. 나는 현무암 덩어리에서 정성 들여 원추형의 마개를 파내었고, 이 마개가 아프지 않고 따스함을 유지하도록 펠트와 점토로 감싼 후 깊숙이 파여진 원래의 자리에 삽입하였습니다. 마치 현무암 그 자체가 한때 지구내부에서 분출하여 응고되었듯이, 이것은 얼어붙은 돌덩어리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솟구치고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요셉 보이스

출처: 송혜영, <요셉보이스의 <20세기 종말>>(2009. 영남대학교)에서 재인용 



그런데 이 사회적 예술이 기반하고 있는 세계는 켈트적 전통, 고대 샤먼의 세계다. 일종의 반 지성주의, 반 인간주의이며, 이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20세기 초반 몇몇 예술가들이 매료당했던 원시적 양식의 지속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미술 양식 뿐만 아니라 연극에서는 제의적 양식으로 표현되었다. 아마 다른 장르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후 더 이상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고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차마 말할 수 없는 비극 뒤에서 인간적인 것들은 믿을 수 없는 어떤 것이 된다. 요셉 보이스에게 나타나는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배격은 우리 앞에 놓여진 어떤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새로 태어나야 된다는 제의(祭儀)로 양식화된다. 그의 작품들의 상당수는 이러한 알레고리를 밑바탕에 깔고 진행된다.


하지만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의 화법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그가 서구 미술계에 절대적 영향력을 끼쳤던 것만큼 나에게 호소력 있기를 바라지만, ... 그렇진 못한 듯싶다.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한 번 그의 작품을 보고 다시 이 글을 업데이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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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tmuseum.org/collection/metcollects/feature 

http://www.metmuseum.org/collection/objects?pkgids=279&feature=nineteenth-century-exhibition-pistols 



사진 이미지를 확대해서 보면, 그 장식의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그런데 이는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 권총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전시 중인데, ~ 왜 요즘에는 이런 물건이 나오지 않는 걸까? 인건비 때문일까. 


하긴 이 권총을 주문하여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재력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라는 건 상상하고도 남을 일이긴 하지만. 





Roses

Vincent van Gogh (Dutch, 1853–1890)

1890



반 고흐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을 후벼파는 듯하다(했다). 그의 정신적 고통, 혼란이 고스란히 페인팅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반 고흐를 좋아하세요? 얼마나 좋아하세요?라고 묻곤, 아, 반 고흐 시대였다면 '당신은 정신병자예요'라고 말한다. 너무 잔인한가. 하지만 알 건 알아야 하니까.


이것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있는 작품이다. 


두 사진 이미지 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옮겨왔다. 

https://www.facebook.com/met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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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서 떠나는 상상의 유목 - 경지연 전 

Portray Magic, Kyung Ji Yeon - 7th Solo Exhibition. 

인천아트플랫폼, 11.1.-11.12.2014. 




정사각형 캔버스에 담겨진 풍경들은 사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면서도 자족적인 완결 감을 가진다. 1m*1m 크기의 같은 규격과 형식을 가지는 단자적 세계들은 확장 가능성이 있다. 세상 사람들의 희망 사항을 그런 식으로 다 모은다면 밤하늘에 뿌려진 별처럼 많아지리라. 현실이 절망적일수록 멀리 있는 희망의 빛은 더욱 빛날 것이다. 설치형식으로 건 그림들 앞에서 관객은 여기에 머물다가 저쪽으로 옮겨갈 수 있으며, 장면전환은 신속하다.구글에서 검색한 무채색 톤의 자료는 지도와 풍경, 실제와 상상의 중간 단계로 재탄생한다. 칙칙한 현실은 원색과 야광 색을 비롯한 비현실적이고 화려한 색채로 거듭난다. 전시장은 고화질의 총천연색 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듯하다. 풍경의 참조대상인 지도는 모노톤이지만, 형형색색의 젤리나 사탕같이 반짝거리는 미디움으로 변형시킨다. 현실이 씁쓸한 만큼 환상은 달콤할 것이다. 현실이 밋밋한 만큼 환상은 강렬할 것이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현실은 상상의 바람에 의해 부풀어 오른다. 작가는 상상으로 충전된 기구를 타고 세계 곳곳을 넘나든다. 

- 이선영(미술평론가), 전시 설명 중에서. 






전시를 보러 가기 위해 인천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긴 했지만, 짧지만 모처럼 기분 좋은 외출이 되었다. 


1930-40년대 지어진 물류 창고 건물을 새로 꾸며 복합 문화 공연 전시 공간인 인천아트플랫폼은 그 시설이나 운영 프로그램 등의 여러 측면에서 부러움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경지연의 7번째 전시는 인천아트플랫폼 G1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의 삶은 여러 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글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 아빠로서의 나와 술을 마시는 나, ... 무수한 나들은 서로 경쟁하며 다투고 헤어지기도 하다가 때론 어루만지기도 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구성한다. 



경지연, work1. 로마에서의 기적+콜로세움, 캔버스에 혼합재료, 아크릴채색, 100×100cm, 2014



갤러리 한 쪽 벽에는 작가가 모티브를 얻은 구글의 위성 사진들이 프린트되어 있고 이 사진들이 어떻게 조형적으로 구성되고 창조되었는가는 알 수 있다. 그리고 캔버스 위에 물감들이 보여주는 물질감은 장식적이고 화려하며 기분을 좋게 한다. 종종 예술은 꿈을 꾸고 꿈으로의 통로를 마련한다. 




꿈은 현실을 위해 존재하고 현실 속에서 태어나 자라난다. 그러나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꿈과 현실 사이에 예술이 있고 예술가의 작업, 노동이 존재한다. 경지연의 이번 작품들은 그 사이에서, 때로 삶이 우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은 나도 그런 걸까. 작품들은 매끈하면서 리듬감이 있으며 다채롭고 즐겁다. 우리 삶이 그렇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경지연, work4.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타임스퀘어_캔버스에 혼합재료, 아크릴채색, 100×100cm, 2014




경지연, work6. 꿈을 빌려드립니다+괌, 캔버스에 혼합재료, 아크릴채색, 100×100cm, 2014


실제 작품에서는 물감 덩어리가 가지는 느낌, 그것이 캔버스 위에서 요동치는 듯한 분위기, 색채와 형태, 물성의 어루어짐을 느낄 수 있지만, 역시 사진 이미지로는 알기 어렵다. 


전시는 이번 주 수요일까지이니, 오늘이 적기일 것이다. 그리고 인천아트플랫폼, 충분히 가볼 만한 공간이다. 아주 매력적이다. 바로 옆에서는 인천 차이나타운이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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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 혼 Roni Horn 

5.20 - 6. 22. 2014

국제갤러리 Kukje Gallery 





늦은 봄, 관람했던 전시에 대한 소개를 지금 올리는 건 너무 태만한 짓인가. 실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몸도 피곤하다. 해야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로니 혼Roni Horn.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나하나 작품을 기억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졌다는 건, 그만큼 관심사에 멀어졌다는 이야기다. 


형편없어진 '이미지에 대한 기억'력. (현대는 원하지 않는, 그러나 범람하는 이미지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는 건 아닐까.) 



로니 혼은 작가 특유의 공간에 대한 감성으로 시간, 기억 그리고 지각이라는 주제들을 탐색하며 강력하고, 절묘할 만큼 아름다운 시각적 명상 속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부드럽지만 힘있게 이끌고 나간다. 작가는 몇 초 간격으로 촬영한 사진 이미지들을 쌍을 이루거나 중복시키는 등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이번 전시의 근간을 관통하는 동일성과 상이성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전시 설명 중에서)





Installation view, 'Roni Horn. Well and Truly', Kunsthaus Bregenz, Austria, 2010

Photo: Stefan Altenburger Photography Zürich

출처: http://www.hauserwirth.com/artists/14/roni-horn/images-clips/20/  



K3에는 본 전시의 주요 작품인 유리 주조 조각들이 소개된다. 이 유리 조각 작품들은 작가의 날카로운 인식론적 문제 의식을 담아낼 뿐 아니라, 관객 개개인이 이 유색의 눈동자 형태 조각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게끔 유도한다. 전작들에 비해 규모적으로 더욱 확대된 이러한 작품들은 빛을 포획하는 동시에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거대한 물의 덩어리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전시 공각 전체를 압도하는 육중함을 지니게 된다. 이들이 띠고 있는 흔치 않은 연두색 계통의 색채는 독특한 빛의 분사를 유발시키는 것은 물론 대지와 바다를 연상시키며 관객들을 사로 잡는다. 조화롭게 설치된 이러한 일련의 유리 조각들은 친밀하고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적 환경을 창조해낸다. (전시 설명 중에서) 





Opposite of White V.1, 2006

출처: http://www.theguardian.com/artanddesign/gallery/2009/feb/25/roni-horn-tate-modern 




국제갤러리에서의 전시는 고요했다. 길게 전시 설명을 옮기는 이유는, 2009년 테이트 모던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졌던 로니 혼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확실히 대형 유리 주조 작품은, 사진으로 보여지는 것과 달리,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만지고 싶고 한참을 들여다 보게 된다. 사진 작업들도 흥미로웠으나, 탁월하진 않았다. 실은 내가 좋아할 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뜻일 게다.  

 



"Untitled (Weather)" - 2011 - Inkjet / pigment print on paper: 5 COLOR PRINTS, mounted on sintra - 31,11 x 26,03 cm each 

출처 http://www.galleriaraffaellacortese.com/artists/view/24/roni-horn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사이로, 텅 빈 캔버스 위에 거울을 올려놓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울을 올려놓을 순 없는 일. 그래서 응시하는 타인이나 자아. 혹은 마주 보는 타인이나 자아를 거울 대신 배치시킨다. 시선의 가리워진 폭력성, 그리고 철학적 질문 - 타자와 동일성. 


하지만 이는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 나에게 로니 혼은 평범했다. (하긴 이 평범함에도 오지 못하는 작가들이 부지기수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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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2012.10.25 - 2013.2.8 

삼성미술관 Leeum 





황량한 현대 미술의 첨단에 카푸어가 불과 몇 명의 위대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우뚝 서 있음은 하나의 구원이다. 시각의 초월적인 기능, 아트의 건전한 엘레멘트의 구사, 풍요로운 표현방식, 긍정적인 미지의 암시 등으로, 그 환기력의 유효성을 정면에서 입증해주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 이우환 


* * 



(리움에서 출간된 아니쉬 카푸어 도록. 잘 만든 도록이다)



전시를 본 것은 일 여년 전이지만, 아니쉬 카푸어는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상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아니쉬 카푸어의 도록 탓도 있었지만, 전시 공간 안에서 보여주는 놀라움과 경이는 현대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듯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도록 - 아니쉬 카푸어는 리움(Leeum)에서 낸 도록을 직접 감수하며 사진하나하나 손수 골랐다고 전해들었다 - 을 펼치며 그의 작품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호미 바바의 말대로, 내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작품을 제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카푸어의 작업은 기존에 되풀이 되어온 비평 방식으로 종종 다루어졌는데, 이는 그의 작업을 이미 만들어진 초월적 형이상학의 틀 속에 넣어버림으로써 독창성을 제한해 버렸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허, 암흑을 절개하는 거울, 아득한, 잊혀진 풍경처럼 수집된, 채색된 꿈의 오브제들, 카푸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같은 특징들은 '동양적인' 성스러움이나 '서양적인' 숭고 같은 낡아빠진 어휘들에 너무 쉬이 흡수돼 버린다. 초월성에 치우친 담론은 개념미술에 문화적인 강령과 해석적인 코드를 교묘하게 부과한다. - 호미 바바 



이렇듯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들은 우리가 가진 언어적 세계 너머를 향한다. 그리고 작품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혹은 행복하게 강요당하는) 신비한 몰입은 현대 예술의 한 극점을 보여주었다.


카푸어의 고향, 인도를 제외하곤 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었으며, 아마 그 규모의 개인전은 한국에서는 꽤 오래동안 힘들 것이다(아니면 없을 것이다). 아래 이미지들은 구글링을 통해 구한 작품 사진들이다. 레비아탄의 경우에는 리움에서 전시되지 않았으며, 2012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보여주었던 작품이다(이우환은 이 작품을 그랑팔레에서 보았던 놀라움을 도록에 실린 글에서 표현하고 있었다).


*  * 


아니쉬 카푸어에 대한 상당수의 글들이 호미 바바가 지적한 대로의 비평적 방향을 그대로 수용하고, 나 또한 그렇게 해석하려고 했다. 도리어 호미 바바의 글 - 규정하기 어려운 오브제들: 아니쉬 카푸어의 분열적 예술(Elusive Objects: Anish Kapoor's Fissionary Art) - 은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또한 포스트모던의 관점에서 기존 사고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 속에서 씌어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강박증이야 말로 기존 틀을 벗어나 혼란 속으로 들어가, 미래를, 새로운 공간을 여는 행위로 유도하는 촉매제다. 


아니쉬 카푸어와 호미 바바는 같은 인도 출신이며, 호미 바바는 아니쉬 카푸어에 대해 다수의 글을 썼다. 아니쉬 카푸어에 대한 글을 통해, 나는 이제서야 호미 바바를 읽었는데, 그의 책을 한 권 사서 읽어야겠다. 




Sky Mirror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Sky_Mirror




Yellow 

출처 http://openhousebcn.wordpress.com/2012/01/27/good-morning-yellow-anish-kapoor-openhouse-barcelona-art/ 




출처 http://www.omnilexica.com/







1000 Names 

출처 http://www.designyearbook.com/2010/06/1000-names-by-anish-kapoor.html




My Red Homeland 

출처 http://chincha.co.uk/2012/11/anish-kapoor-exhibition-review/ 




Leviathan

출처 http://videoinstallationperformanceliupost.wordpress.com/20-2/sung-bok/installation-sung-b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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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rupy1 2014.10.17 20:17 신고

    큐비즘 관련 글도 기다리겠습니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http://www.mmca.go.kr/)



문지방(프로젝트팀 이름으로, 세 명의 건축가, 권경민, 박천강, 최장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선놀음, 201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제 네 살이 된 아들과 단 둘이 미술관 투어를 계획하고 실행했지만, 실패였다. 외부에 보이는 모든 것들 위로 물음표로 떠오르는 그 시절, 작품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만지고 흔들어보고 던져보는 대상이다. 결국 나는 갤러리에 들어갔다고 소리만 지르다 나와, 사간동을 배회하기만 했다. 


공간 건물에 새로 들어온 아라리오 뮤지엄은 입구 앞에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만난 신선놀음. '무화과같다'는 네 살배기 아들의 말. 연신 뛰어다니는 아들 뒤를 따라다니느라, 나는 금세 지쳤다. 


조형적 견고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진 이 구조물은 미술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건축적이다. 건축적 상상력은 건축 안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미술은 반대다. 우선 밖에서 바라보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다음 참여를 유도한다. 이 참여란 공간 안으로의 참여라기 보다는 공간의 안 / 밖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너무 편협한 구분법인가. 한 때 미술은 건축과 한 몸이였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 많은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이 이 미술과 건축의 한 몸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케네스 클라크의 지적, 미술가들이 건축가였던 시절의 행복함은 생각나는 건 뭘까. 


(그나저나 요즘 자주 눈이 침침해진다. 노안의 시작인가. ㅡ_ㅡ;;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갑자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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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명 Civilisation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 지음, 최석태 옮김, 문예출판사, 1989년 

(현재 절판) 




책을 읽어나가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 이미 20세기의 저명한 미술사학자였지만, 그는 미술의 역사 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건축, 음악을 아우르면서 서양 문명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었다. 


가령 그는 장 안트완 와또와 존 키츠, 그리고 모차르트를 함께 비교하며 설명한다. 아래 그가 인용한 존 키츠의 시 구절을 옮긴다. 



Ay, in the very temple of Delight   

Veil'd Melancholy has her sovran shrine, 

Though seen of none save him whose strenuous tongue 

Can burst Joy's grape against his palate fine;  


아아, 환희의 신전 바로 그 안에서 

베일에 가린 우울은 그녀만의 자유로운 성지를 가진다.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지만, 오직 강렬한 혀로 

기쁨의 포도를 예민한 입 안에 넣고 터뜨릴 수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 키츠Keats, <우울에 부치는 송가 Ode on Melancholy> 중에서 

(이 책의 215쪽에서 옮기나, 문학 인용문에 대한 번역은 신뢰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직접 번역했다. 뭐, 나도 신뢰할 수준이 안 되겠지만. 이에 원문도 함께 찾아 옮긴다.) 



케네스 클라크는 '와토보다 더 '예민한 입(palate fine)'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한다(번역서에서는 '민감한 입'으로 옮기고 있다). 대강 이해할 순 있으나, palate가 미각이나 감식력 등을 뜻하기 때문에, '탁월한 심미안' 정도로 받아들으면 된다(이럴 때 원문을 찾아 읽는 것이 좋다). 



와토가 세상에 나온 것은 18세기 초의 일이었습니다. 그의 걸작 <시테르 섬에의 순례 Pilgrimage to Cythera>는 1712년, 루이 14세가 아직도 생존 중인 시대에 그려졌습니다. 이 그림에는 모차르트 오페라에서 경험할 수 있는 특유한 경쾌함과 예민함이 있으며, 또 인생의 극적 요소를 파악하는 감각이 있습니다. 비너스 섬에서 한 나절을 보내고, 이제 귀로에 선 이들 남녀의 미묘한 관계는 <여자는 다 이런 것Cosi Fan Tutte> 속에서 자신에 넘친 연인들이 출발에 앞어서 전개한 무아 상태의 흥분을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차르트의 그 오페라는 70년 이상이나 뒤에 작곡되었습니다. (215쪽) 




Jean-Antoine Watteau, Pilgrimage to Cythera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내가 경험한 한국의 인문학자들이나 인문학 전공 교수들 대부분이 가진 편협한 전문성 - 자신의 학위 논문 주제만 딱 알고 나머지는 전혀 모르는(심지어 인문학 전공 교수이면서 서양 철학사 한 권 제대로 읽어 내지도 못하는 지적 무능함까지 갖춘) - 과 대비되는 케네스 클라크의 이 책은, 1969년 그가 쓰고 직접 출연한 영국 BBC 다큐멘터리 <문명 Civilisation>의 방송 대본을 책으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방송 대본이라고 낮게 치부하기에는 책은 의외로 탄탄하고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면서 인문학과 서양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진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쉴새없이 자극한다. 


실제 다큐멘터리가 13부로 나누어 방송된 것처럼, 이 책도 1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구사 일생The Skin of Our Teeth>로 시작해 13장 <영웅적인 물질문명Heroic Materialism>으로 끝나는 이 책은 중세부터 19세기말, 20세기 초까지의 서양 문명을 탐구한다.


대부분의 지성사 책들이 철학이나 사상에 기울어져 서술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압도적으로 건축과 시각 예술 작품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그래서 책에는 다수의 미술 작품 도판이 있으며, 해당 작품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읽을 수 있다. 



(13부 전체를 볼 수 있으나, 아, 한글 자막은 없다. 짧은 듣기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다큐멘터리다.) 



서양 미술사에 대해선 전문가 수준이라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이 책은 중세 후기, 근세 초기 북유럽 미술에 대한 설명은 무척 유용했다. 또한, 가령 이런 문장들은 흥미로웠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건축이 현대 건축보다 훨씬 나은 이유의 하나는 그 건축가가 예술가였다는 점에 있습니다. (...) 본직이 아닌 모든 건축가들 중에서 미켈란젤로는 가장 모험적이며, 고전주의적 원칙이나 기능면의 여러 가지 요구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덜 제약받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실제적이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아마도 미켈란젤로만이 미완성의 커다란 골치덩어리였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정돈할 만한 정신적 정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결국 그의 독자성으로 이 건물을 혼연일체의 통일체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164쪽 - 165쪽) 


 

케네스 클라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알브레히트 뒤러를 비교하며, '뒤러는 아주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스니다. (...) 그에게는 우선 강렬한 자의식과 과도한 허영심이 있었습니다'(147쪽)라고 말한다. 



Raphael, Portrait of a Cardinal, oil on wood, 79cm*61cm, about 1510 


라파엘로의 어느 추기경은 '최고의 교양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균형과 자제심을 갖춘 사람'으로 느껴지지만, 


오스발트 크렐은 지금 막 히스테리를 일으킬 것같습니다. 저 노려보는 듯한 눈, 자의식이 강한 내성적인 얼굴, 얼굴의 볼륨을 불안정하게 함으로써 뒤러가 아주 잘 파악한 저 불안, 이건 얼마나 독일적일까요? 그리고 독일 이외의 나라였다면 또 얼마나 이상한 일이었을까요? (140쪽) 



Albrecht Durer, Portrait of Oswolt Krel, oil on panel, 50cm * 39cm, 1499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양상은, 의외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 시기(15세기와 16세기)의 건축과 미술은 고딕에서 국제 고딕, 혹은 후기 고딕으로 이어지면서 동시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기법들을 받아들여 양식 상으로는 르네상스로 향하는 듯 여겨지나, 정신적으로는 중세에서 바로 종교개혁으로 이어진다. 


말이 종교개혁이지, 이는 성직자의 차원에서였지, 실제 일반 대중에게서는 일종의 반달리즘으로 표현되었다. 이 시기에는 16세기 이탈리아 매너리즘의 경향까지도 보이는 바, 16세기 북유럽 미술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는 판이하게 다른 미술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케네스 클라크는 뒤러의 작품을 저렇게 설명한다. 


이 책의 몇 부분을 옮기며 설명하다 보니,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꽤나 까다롭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미 절판된 책이니, 구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고, 도서관에서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번역된 문장들 상당수가 비문들이어서 이 부분에 까다로운 독자들은 화를 낼 만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수준의 책을 한글로 접하긴 어려운지라, 독자들에게 과감하게 추천한다.


(또는 이 책의 번역서가 새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생생한 컬러 도판들과 함께.)  



Amazon Link : http://www.amazon.com/Civilisation-Personal-View-Kenneth-Clark/dp/B0016XQ7LQ/ref=sr_1_5?s=books&ie=UTF8&qid=1410690328&sr=1-5 




예술과문명

케네드클라크저 | 최석태역 | 문예출판사 | ..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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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보엠 2015.07.24 19:51 신고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행보는 정말 복잡해서 공부할 부분이 많아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또 반대로 이탈리아에 회화적 영향을 주는 게 보이니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기쁜 일일까요? 저는 반종교개혁이라고도 불리는 카톨릭 종교개혁 시대의 북이탈리아 회화와 기억술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인데, 추천해주신 클락크의 다큐는 꼭 볼게요. 시작페이지에 저장해두었어요. 매일 한 편씩 보려고 합니다. 추천 고맙습니다.

    • 지하련 2015.07.28 23:00 신고

      16세기는 정말 흥미로운 시기입니다. 16세기 초반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절정기였으나, 북유럽은 이탈리아와 비교해보면 너무 경직되어 있지요. 그리곤 곧바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마치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건너뛰고 곧바로 근대로 뛰쳐나가는 듯합니다. 제대로만 공부한다면 현대, 그리고 앞으로 오게 될 어떤 시대에 대한 무수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아마 제가 계속 공부를 했더라면 그 시대를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말이죠. ㅎㅎ )


오르세 미술관 전 -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

국립중앙박물관, 2014.5.3 - 8. 31 





몇 해 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놀라웠던 건, 1층에 놓인 거대한 작품들 -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화가들이 그린 - 을 보면서 참 식상하다는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4층(?)의 낮은 천장 아래 놓인 작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앞에서 전율같은 감동을 느껴졌을 때였다. 어쩌면 예상되었을 법한 일일 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예상했던 범위 이상이었고 그 놀라움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르세미술관에서의 그 경험에 비한다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다소 어수선하고 산만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급하게 보고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탓도 있었지만, ... 집중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오늘 도록을 꼼꼼히 읽으면서 몇 점의 작품은 본 기억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나의 경우, 이미 국내에 번역된 대부분의 인상주의 연구서들을 읽었고 인상주의와 관련해선 아예 한 학기 수업까지 들었던 터라 왠만한 전문가 이상으로 알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니, 이젠 가물가물해지는10년 전 버전의 지식으로 인상주의를 안다고 하기 조심스럽기만 하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내가 공부하는 직업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 직업을 가졌을 때의 내 모습(괴팍스러워 보이는)도 상상되어, 약간의 다행스러움도 있다.



1. 인상주의, 현대 미술 (시장)의 개화  


사실 제일 처음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렸던 1874년의 상황은 간단했다. 제도권 기관인 살롱전의 부당함에 대해 반발하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린 1886년의 상황은 달랐다. 미술 시장에 대한 화가들 스스로의 독립성을 정립해야 했기 때문이다. 

- 전시 도록, 13쪽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인상주의의 미술사적 의의는 너무 익숙한 내용일 것이다. 가령 아래와 같은 것들.  


- 반-원근법적 세계관의 시작

- 문학적 세계관에서 회화 그 자체에의 집중(물질성의 강조)  

- 기하학적 세계에서 벗어남. 혹은 새로운 기하학의 시작. 

- 탈중심화, 탈가치화 


그런데 막상 적고 보니,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건 서양 미술사 교수님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고. 실은 위 짧은 인용문과 관련해서 (내가 아는 바를) 언급하자면, 인상주의 이전의 미술 시장과 이후의 미술 시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시장 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공공연하게 인상주의 미술이 현대 미술 시장의 개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할 정도이고, 그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미국에서의 인상주의 열풍이었다. 지독한 무시와 냉대, 가난 속에서 인상주의가 시작된 것과 반대로, 인상주의 화가들 대부분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말년을 보내게 된다. 고독한 몇 명의 천재들을 제외한다면. 


19세기는 그 전까지 일종의 미술가 생계 수단 프로그램이었던 패트런이 사라진 시대였다(귀족 계급이 힘을 쓰지 못했던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18세기에 시작된). 부르조아지의 등장과 전통적인 성직자와 귀족 계급의 후퇴가 직접적인 영향이었으며, 이 때부터 미술가들은 자신의 재능을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고, 인상주의자들의 시작은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미술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존 미술 권력과 싸우면서 동시에 미술 시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있었던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 1886년 전시는 미술계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인지도가 올라간 인상주의 화가들의 (미술 시장에서의) 자리 잡기가 중요해졌다. 뭐, 이 때에도 위대한 세잔은 무시당하고 있었지만. 


"지난 15년 간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가장 많이 공격을 받고 가장 대우를 못 받은 화가는 바로 세잔이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에 모욕적인 수식어란 수식어는 모두 갖다 붙였다. 그리고 아직도 그의 작품에 대고 폭소를 터뜨린다."

- 조르주 리비에르, 1977년. 


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세잔의 탁월함을 알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궤적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동선을 보여준다. 그래서 전시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인상주의, 그 이후

2. 새로운 시각, 신인상주의

3. 원시적 삶을 찾아서, 고갱과 퐁타방파

4. 반 고흐와 세잔, 고독한 천재들

5. 파리, 아름다운 시절

6. 세기말의 꿈, 상징주의와 나비파. 


많은 수의 작품이 전시되진 않았지만, 천천히 깊이 살펴본다면 이번 전시 관람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다.(하지만 이것이 꽤 어려운 일임을 안다) 



2. 내 마음에 들었던 주요 작품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

야외에서 그린 인물 :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 양산을 쓴 여인 

Essai de figure en plein air: Femme 'a l'ombrelle tourne'e vers la droite 

oil on canvas, 131*88cm, 1886 



이 작품은 왼쪽 버전과 오른쪽 버전이 있고, 이번 전시에선 오른쪽 버전이 전시되었다. 


이 두 작품의 모델은 모네의 두 번째 부인인 알리스의 딸 수잔 오셰데이다. 그는 친 자녀와 의붓 자녀 모두에게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였다.(......) 수잔이 서른 살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는 깊은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 전시도록, 41쪽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와르 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

앉아 있는 젊은 여인 Jeune fille assise 

oil on canvas, 65.4 * 55.5 cm, 1909 




풍만한 몸매에 널찍한 얼굴, 관능적인 도톰한 입술, 상큼하고 혈색 좋은 얼굴빛, 그리고 까만 머리칼의 엘렌 벨롱은 그 미모가 르누와르 자신의 이상적 여인상에 부합했기 때문에, 르누와르로서는 이런 엘렌의 모습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쥘의 약혹녀를 모델로 세우기까지는 수개월 간의 설득 기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르누와르는 그에게 옷을 입힌 상태에서 모델을 그리겠다는 약속도 해야 했다." 

- 62쪽 



작품 이미지를 찾기 위해 구글링을 해보니, 똑같은 제목의 아래 작품도 있다. 제작년도를 보니, 19년 차이가 난다. 나머지는 보는 이들이 알아서 해석하길. 



Renoir 

Jeune Femme Assise 앉아있는 젊은 여인

oil on canvas, 91 * 72cm, 1890.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시인 외젠 보흐 Eug'ene Boch(Le po'ete) 

oil on canvas, 60.3*45.4cm, 1888



반짝이는 별이 빛나는 호화로운 청색 배경은 그의 이상향을 떠올려준다. 예술가들 사이에 영원하고 보편적인 애착 관계가 자리잡길 바란 것이다. 별의 무한성을 통해 예술과 예술가들을 한데 엮으면서 예술적 창작력의 무한한 삶을 구현하려던 그의 생각은 친한 동료 화가의 이 초상화 속에서 표현되고 있다. 외젠 보흐의 이 초상화는 외젠 보흐 보인이 루브르 박물관에 유증했다. 

- 115쪽 


 


폴 시냐크 Paul Signac (1863 - 1935)

안개 낀 에르블레, 작품번호 208 Herblay, Brouilladr, Opus 208 

oil on canvas, 33.2 * 55 cm, 1889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폴 시냐크의 그림이 다른 후기 인상주의 어느 화가들보다 더 끌린다. 이건 천천히 고민해보기로 하자. 


대기는 평온하며, 색조는 서서히 옅어진다. 정밀하고 규칙적인 붓 터치는 흰색 위주의 창백한 빛을 분산시키고, 노란 빛과 푸른 빛은 가까스로 느껴지는 정도다. 집요할 정도로 대칭적인 구도는 정적인 느낌을 더욱 강화하고, 지평선을 중심으로 화면이 정확히 둘로 나뉘는데, 수면에 반사된 풍경만이 물의 흐름으로 아주 약간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 전시도록, 72쪽 




에드가 드가 Edgar Degas(1834-1917)

메닐 위베르의 당구대가 있는 방 Salle de billard au Menil-Hubert 

Oil on canvas, 50.7*65.5cm, 1892



"당구대가 있는 실내 풍경을 그려보려고 하네. 내가 원근법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공간 안에서 각도를 재고 수직과 수평을 열심히 연구하면 원근법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네." 

- 드가, 1982년 



이번 전시에선 드가의 조각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실은 이것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번 전시는 놓치지 말아야 할 듯 싶다. 


3. 전시장 풍경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한다고 해서 전시의 상업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 하지만 상업성이라는 단어 대신 대중을 보고 쉽고 편안하게 끌어들이기 위한 전시 환경의 구성이 아쉬었다. 인상주의 미술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참여 프로그램의 운영(돈은 안 되고 노력만 들어가겠지만, 이것이 바로 공공미술관의 역할이 아닐까)이라든가, 보다 넓은 전시 공간의 확보, 다양한 미디어의 활용 등은 전시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비파의 몇몇 눈 여겨볼 만한 작품들도 있었는데, 그 작품들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자. 실은 이 글을 적는 것도 나에겐 꽤 벅찬 일이다. 시간적으로... ㅡ_ㅡ;; 전시가 며칠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 보기로 하자.  아래는 나비파의 한 명이었던 피에르 보나르의 작품이다. 




피에르 보나르, 흰 고양이, 1894. 


위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작품은 아니지만, 도록에 흥미로운 구절이 있어 인용해본다. 



19세기 후반의 약 30여 년간, 고양이는 예술 작품 속에서 눈에 띄게 나타났으며, 보헤미아인, 극장식 까페 등과 연계하여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던 한 세대의 상징적 동물이 된다. 

- 270쪽 



과연 그랬나? 흥미로운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애완동물을 좋아하진 않지만, 고양이에 대한 예술가들의 애호는 꽤 유래가 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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