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151

듀안 마이클, 내 영혼의 먼지,들

듀안 마이클 Duane Michals. 그의 사진을 눈 그친 창 밖 화이트톤의 풍경과 대비해 본다, 읽는다, 느낀다. 시를 쓰며, 시인이었던 그녀에게 듀안을 아냐고 물었지만 모르다며 고개를 저었다. 조각을 전공하고 디자인을 하던 그녀에겐 물어볼 새도 없이 철없던 날 버렸다. 그리고 몇 년을 울었다. 하지만 듀안을 알던 내 지인들은 모두 등단하지 못했고 그림은 접었고 아이 아빠가 되거나 결혼하지 않았다, 못했다. 너무 자신만만했던 우리들의 호기심은 외부로만 향했을 뿐,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뒤늦은 후회와 반성으로 뒤범벅된 채로 듀안의 사진을 보며, 아, 어떻게 하면 소리없이 풍성해질까, 어떻게 하면 이 사소한 울적함마저 저 우주의 침묵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과연 내 신비를 그녀의 신..

인상주의와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인상주의 조각에 대해선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네, 피사로, 르느와르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회화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도 있지만, 낭만주의 조각에서 인상주의 조각으로의 이행은 눈에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로델의 조각은 언제나 나를 감동시킨다.  결과적으로 양식이란 동시대 미술의 흐름 안에서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종종 예술사에서는 '시대착오적 양식'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인상주의의 시대에 제롬이나 부게로 같은 프랑스 아카데미 미술가들의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예술가적 고집이나 과거에 대한 향수나 고집도 어느 정도가 있지, 이들의 미술은 문화예술의 발전을 저해한 대표적인 사례다. 하긴 현대에도 그런 예술가들은 많으니까. 대신 이들은 근대 프랑스 미술계 헤게모니의 꼭대기에 있었으며,..

The Deer's Cry, Arvo Part.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를 말하라고 하면 단연코 "아르보 페르트"다. 그는 모더니즘 시대에 태어나 탈근대와 억압적 사회주의를 거치면서, 어찌된 일인지 중세적인 신성(神聖, Divine)에 빠져들었다. 그의 미니멀리즘은 감각적이면 본질적, 함축적이면서 우리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어제 우연히 Arvo Part의 >를 들었다. 아! .... VOCES8 performs 'The Deer's Cry' by Arvo Part at St Vedast Church in London. Text Christ with me, Christ before me, Christ behind me, Christ in me, Christ beneath me, Christ above me, Christ on my right, C..

세상의 모든 시간, 토마스 기르스트

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토마스 기르스트(지음), 이덕임(옮김), 을유문화사   우연히 방문한 서점에서 산 작은 책. 의외로 재미있고 유용했다. 독후감을 쓰려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의 저자이기도 했다. 글 스타일도 비슷하다. 이 책은 작은 칼럼들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이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 읽어도 된다. 문화 칼럼 정도라고 할까. 다양한 작품들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데, 읽을 만하다.  그러고 보니, 뭔가 하나로 모아지진 않는다. 현대 문화/예술에 대한 트렌디한 감각을 알 수 있지만, 거기서 멈춘다. 대단한 통찰을 얻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카페에 혼자 앉아 바깥 풍경을 보면서 읽기 좋은 책이다. 책의 시작은 상당히 좋지만, 뒤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흠이..

리처드 세라

도심 광장에 있던 것만 보다가 넓은 풀밭 위에 놓인 세라의 작품을 보니, 색다르다. 예술작품은 주변 풍경을 변화시키고 낯설게 하여 다시 한 번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종종 무언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의 본질을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을 벗어나, 그것의 밖에서, 혹은 그것을 벗어나 바라볼 수 있었을 때, 그것을 알게 된다. 마치 헤어진 다음에서야 알게 되는 어떤 사랑처럼.    ... 하지만 누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질까. 지금 이 사랑스럽고 정적인 풍경을, 오늘의 저 별빛이 내일도 뜰 것임을, 지금 곁의 사랑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 존재할 것임을, 그래서 최선을 다해 현재에 집중할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무너져내릴 것이다.

루시언 프로이드, 조디 그레이그

루시언 프로이드 Lucian Freud 조디 그레이그(지음), 권영진(옮김), 다비치 설마 이렇게 책이 끝나지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첫 장부터 끝날 때까지 저자는 각오한 듯이 루시언 프로이드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말하기로 작정했다. 루시언 프로이드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루시언 프로이드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큰 오산이다. 도리어 이 책을 읽음으로 루시언 프로이드를 좋아하는 현대 미술가의 목록에서 지우게 될 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의 인품이나 성격과 그의 작품을 동일시한다는 사실을 안다. 가끔 어느 전시회에서 어떤 작품을 보고 난 다음, 그 예술가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것을 종종 보게 되는데, 나는 이 장..

인생, 예술, 윤혜정

인생, 예술 윤혜정(지음), 을유문화사 살짝 궁금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거의 가지 못했다. 미술 잡지도 거의 사지 않으며 미술 관계자와 만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미술, 아니 예술은 내 삶의 일부다. 내가 마음의 안식을 얻는 곳은 늘 예술이 있는 장소이거나 공간이다. “미술관은 탐색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많은 진실에 둘러싸인 하나의 진실이다.” - 마르셀 브로타에스(20쪽) 마르셀 브로타에스(Marcel Broodthaers, 1924 -1976)는 벨기에의 현대 시인이자 미술가였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나,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뒤늦게 회고전을 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 현대 미술사에 큰 자취를 남긴 개념미술가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마흔이 되어 미술계로 뛰어들었다. 더 이상 ..

르네상스, 제리 브로턴

르네상스 제리 브로턴(지음), 윤은주(옮김), 고유서가 이 책은 옥스포드 대학의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중 한 권으로, 고유서가에서 한글로 번역해 출간하였다. 개인적으로 옥스포드 대학의 이 시리즈로 나온 를 읽고 상당히 좋았는데, 이 시리즈가 번역되고 있었음을 이제서야 알았다. (예전엔 주위에 인문학 공부를 하거나 책을 좋아하던 이들이 꽤 있어서 새 책 소식이나 유명 학자들의 근황을 쉽게 알곤 했는데, ...) 르네상스에 대한 책들은 많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성과들까지 담은 책은 보기 드문데, 이 책은 그런 성과들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시사적이었다. 르네상스의 시기나 지역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관점이 다르긴 하지만(나 또한 제리 브로턴이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부..

예술과 풍경, 마틴 게이퍼드

예술과 풍경 The Pursuit of Art: Travels, Encounters and Revelations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지음), 김유진(옮김), 을유문화사 “모든 화가는 자기 자신을 그린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시속 48킬로미터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좋은 회화와 나쁜 회화를 구분할 수 있다." - 케네스 클라크 빠르게 책을 읽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산문집이었다(이건 내 기준일테니,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구나). 마틴 게이퍼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 평론가이면서 데이비드 호크니나 루시안 프로이드와 같은 현대 예술가들의 친구이다(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로 책을 몇 권 내었다). 이미 몇 권의 책들이 한글로 번역 출판되어, 현대 예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상한 날씨, 올리비아 랭

이상한 날씨 (Funny Weather - Art in an Emergency) 올리비아 랭Olivia Laing(지음), 이동교(옮김), 어크로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이미지를 만든다. 이미지로 하여금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 가고, 더는 할 수 없는 말을 하게 한다. (205쪽) 예술은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즉흥적으로 도달한 비상구, 한때 사람이 살았던 섬뜩한 공간을 오가는 일이다. (209쪽) 오랜만에 예술 관련 책을 읽었다. 좋았다. 그건 예술 관련 책이라서기보다는 올리비아 랭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녀의 글은 상당히 좋다. 예술에 대한 사랑이 있고 예술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녀는 예술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안다. 그래서 글은 깊이 있으면서도 따뜻한 진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