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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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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미래 Die Zukunft Des Konsums

다비트 보스하르트(지음), 박종대(옮김), 생각의 나무 






2001년에 번역된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더구나 <<소비의 미래>>라는 경제경영서적을(경제경영서들은 시류를 타는 탓에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읽기 애매해진다). 그런데 이 책, 의외로 단단하고 읽을 게 많으며 십 수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호소력 짙다. 아마 2001년에 읽었다면 제대로 읽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책은 소비자, 소비 문화를 여러 현대 이론들의 시각에서 냉정하게 치밀하게 분석하고 진단한다. 가령 스포츠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아래와 같다.


현대는 광범한 스포츠화 사회이다. 스포츠는 사고 오락(denkunterhaltung)이 되었고, 스포츠에 대한 전통적 인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특정한 인생관이 되었다. 

- 327쪽 


과거의 스포츠 스타들은 건실한 민족적 영웅의 화신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스타는 컬트적 존재이며, 포스트모던적 상표 기법의 법칙에 따라 완벽하게 움직이는 '연출된 가정적 존재(ein inszeniertes konstrukt)이다.

- 329쪽


솔직히 스포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보지 않았음을 위 인용된 부분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았다. 


저자는 전반적인 소비자의 태도의 변화, 소비 문화의 변화, 여기에 대응한 상품/서비스/기업의 대응을 분석하면서, 특히 사치 산업, 오락/관광/멀티미디어 산업, 음식, 팝 문화 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면서 앞으로의 시대는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임을 강조한다. 


* 마케팅 의식의 발전이 곧 경쟁력의 차이를 보여준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정말 중요한 가치를 소비자에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중요하다.

* 미래의 시장에서의 투쟁은 더 이상 (구체적인) 상품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징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될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당신의 (구체적인) 상품을 잊어버려라.

* 시장의 감성화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감성의 영역을 체크하는 것으로 당신의 사업을 시작하라.

- 86쪽 ~ 87쪽 


특히 책 말미에 언급된 시장 조사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은 최근에 들어서야 주목받는 요소라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 시장조사를 함으로써 허위사실만 점점 더 증가한다(합리적 세분화 과정만 증가한다). 

- 시장 조사는 인구통계학 및 구매력에 따른 분류를 신뢰하는 감옥이다. 

- 피드백 시스템(Feedback, 고객의 반응과 의견을 반영하는 시스템)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 고객을 정적인 표본으로 간주하는 보수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 유형론을 신뢰한다(방향성에 대한 분석보다는 확정적 형식을 선호).

- 관료주의적인 경향(역동성 대신 관리, 행정).

- 403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 대부분은 지금도 끊임없이 시장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하긴 예전보다 많이 개선된 방식을 도입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는 대중에게 수요를 물어보지 않고 상품을 공급하고자 한다. 대중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뿐 아니라, 무엇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 ... 따라서 우리는 시장 조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상품을 만들고 그 사용가능성을 고안한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대중이 그 상품을 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면서 시장을 점령한다." - 아키오 모리타(소니 공동창업자)

 - 404쪽에서 인용 


이에 덧붙여 저자인 다비트 보스하르트는 '성공의 본질적인 요인은 고객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기 상품에 대한 믿음이다'라고 단언한다. 


무척 흥미롭게 읽은 이 책은 종종 문화 분석서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여러 철학자들의 견해를 언급해서 더 그럴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만 구할 수 있을 텐데,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읽어봐도 좋을 듯 싶다. 지금 읽기엔 대부분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몇몇 기업의 사례는 부적절하기도 하다(망한 기업이나 서비스를 사례로 들고 있어서). 하지만 이 책이 1997년에 독일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바타이유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있어 길게 인용해볼까 한다(바타이유의 경제학은 정말 흥미로운데,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바타이유는 이미 <소비입문 La notion de'pense>이라는 이전의 논문에서 이러한 현상을 열거했다. "사치, 상(喪), 전쟁, 종교, 호화 기념 건출물 건립, 놀이, 공연, 예술 그리고 도착적 섹스 행위" 등 이 모든 것은 전통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일체 "비생산적인 지출"로 간주되었고, 손실로서 평가받았으며, 정상적인 인간 살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우리가 이러한 영역을 도외시하였던 탓에 오히려 우리 사회가 도착적인 증상을 보였다. 바타이유는 궁핍의 경제학 비판에서 궁핍이 아니라 과잉이 정상적인 현존재의 상태라고 주장한 니체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바타이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그 "추방 영역"들이 경제와 문화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취, 탐닉 혹은 광란까지도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인간적인 것을 도외시하는 셈이 되고, 따라서 현대 경제학도 이미 출발에서부터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 131쪽 





소비의 미래 - 10점
다비트 보스하르트 지음, 박종대 옮김/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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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디자인일까. 서비스이든, 제품이든 디자인이 KSF(key success factor)가 되었다. 심지어 디자인의 관점에서 비즈니스 컨설팅까지 하고 있으니, 디자인의 시대라고 해야 할까. 기존의 전략 수립 프로세스 - 정량적인 접근의 시장 조사, FGI나 전략 수립 프레임워크에 기반한 접근 - 가 뒤로 물러나고 Service Design의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재정리하고 있다. 


이 접근의 장점은 확실하다. 기존 전략 수립 프로세스에서 볼 수 없었던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것을 기반하여 경쟁자들이 놓치는 부분까지 커버하여 전략적 혁신(Strategic Innovation)까지 가능하게 만든다. 이에 성공적인 디자인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정리된 문서가 있어서 공유한다. 의외로 거둘 수 있는 기대효과가 풍부하다. 아래에는 해당 문서를 링크해두었다. 발표문서가 설명이 간단하지만, 꽤 좋은 내용이 담겨져 있으니, 업무에 참고할 만하다.  


- Ease of learning and relearning (learnability) 

- Ease of use (efficiency) 

- Consistency within and between products 

- First impressions

- Error prevention and recovery

- Memorability 

- Satisfaction or likeability 

- Flexibility and discoverability 

- Improved collaboration for groups of users 

출처: <An Introduction to User Experience Fundamentals>, Christopher S.LaRoche, 2016 



특히 마지막 기대효과는 꽤 흥미롭다. '향상된 협업'. 우리는 디자인을 심미적 관점에서 이해하곤 하는데, 디자인은 먼저 기능성, 사용성이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 그 다음이 심미성이다. 따라서 좋은 사용자 중심적 디자인은 무엇보다 쉬워야 하고 효율적이어야 하며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미적 즐거움이 다소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기능성이나 사용성이 탁월하다면 그 디자인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이쁜 디자인를 찾지 말고 효율적인 디자인을 찾아라고 고객에게 말하곤 하지만, 대체로 아직까지 이쁜 디자인만 찾는 고객들이 많다. 이건 반대로 해석하지만 디자인 전략에 기반한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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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알던 지인을 십 수년만에 만날 때, '글을 쓰냐'고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글을 써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글과 어울렸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때로 내 불성실을 탓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나에게 사업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이럴 때마다 고민을 한다. 나는 사업을 하는 것이 어울리는가. 나는 사업 추진/실행에 대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훈수'와 '실제 플레이'는 다르다. 실제 플레이(사업)도 해보았지만, 철저한 준비나 계획 속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되지 않는 까닭에 어디 가서 말하기 어렵다. 


사업을 한다는 건 무엇일까. 짧게 경영학 공부를 했고 전략 수립 컨설팅 업무도 했으며 IT 프로젝트에서 프로젝트 관리와 리딩을 경험하였으며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 영업을 하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조직 관리도 했고 사람을 채용하기도 했다. 사업을 할 수 있는 지식이나 기술들 대부분을 경험했다. 기업 규모의 문제가 있을 순 있으나,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사업을 할 수 있고 그것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더구나 사업을 성공시킨다는 건 전혀. 


그렇다면 사업을 한다는 건 진정으로 무엇일까. 내 짧은 경험을 비추어볼 때 그건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지키기 위해 기업은 수익을 내야 하고, 상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유지하며 월급을 주고 새로운 투자를 한다. 사업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며, 사람에게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업은 결국 사람 앞에서 여러 차원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 관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기업의 목적이 오직 '수익'이라면, 그 수익을 위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해치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면 그 기업은 이 사회에 필요없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묻는다. '나는 사람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가'라고. 이 물음 앞에서 나는 늘 뒷걸음질 친다. 


(내 경우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책임에 대한 교육'이 너무 허술하다. 동시에 '책임'에 대한 불평등은 전 세계 최고로 여겨진다. 국회의원들은 매일 막말을 해대지만, 구속되지 않는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들은 운이 나쁜 경우 막말의 책임을 혹독하게 치른다. 잘못된 조직(시스템)의 의사결정에 대해 그 조직의 리더나 대주주가 아니라 대체로 조직 피라미드의 아래 쪽부터 책임을 진다. 이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았고 나 또한 경험했으니, 나이 든 지금, 후배들에게 뭐라 말해줄 것이 없다. 


언제나 사업을 하지 않느냐의 물음에 대해 그 '책임'에 대해서 스스로 묻는다. 그 책임을 견디고 성실히 수행하며 완수할 수 있는가라고. 너무 이상주의적이거나 교과서적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언제나 조심스럽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조심스러워진다. 어렸을 땐,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더욱 강한 자신감으로 도전해나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나에게 묻는다. '사업을 할 수준이 된 것같다'고.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높이 평가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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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메모를 다시 한 번 살펴보다가 아래 문장을 읽었다. 유럽도 미국과 비슷하다. 아마 서구 선진국들은 다들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듯 싶다. 


“내가 미국에 40년 넘게 있었어요. 그런데 보면 볼수록 미국은 오묘한 힘이 있는 나라야. 한국 사람들 일 많이 한다고 하지만 미국 투자은행IB에 근무하는 사람들 보면 1주일 동안 100시간, 110시간 넘게 일해요. 최고의 로펌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100시간 이상 일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져요. 미국의 엘리트들을 보면 미국을 평가절하가더나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사람들의 마인드도 중요합니다. 내가 미국과 한국 양쪽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한국은 에너지 리스크가 커요. 서로 경쟁하다가 정작 꼭 달성해야 하는 목표에 쏟는 에너지를 뺏기는 거지. 자기 목표를 가지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이를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고 사람들이 규범을 준수해야 해요. 그런 측면에서 나는 중국의 경제적 파워도 어느 순간에는 한계에 부딪힐 거라고 봐요. 정신적 선진화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입니다.” 

-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금융공학 교수(KRX 2013년 8월호 중에서) 



*월간 <KRX>는 한국증권거래소에 발간하던 잡지였는데, 지금은 폐간되었다. 계속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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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oitte Digital에서 발간한 <<The rise of the Chief Digital Officer>>을 읽고 정리해 본다. CDO는 Chief Digital Officer의 약자로, 아직 한국 기업에선 없지만, 해외에서는 소수의 기업에서 CDO라는 포지션을 만들어 기업의 디지털 전략과 실행을 책임지게 하고 있다. 아직 CIO 중심의, 기업 내부 IT 자산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국내 기업의 조직 개편과 디지털 환경을 둘러싼 전략 수정이 필요해보이지만, 이를 체감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CDO로 자리를 옮기는 세 가지 경우는 아래와 같다. 


Three Types of CDOS


Ex-agency 

Traditional interactive marketing leaders that view digital as "digital marketing" and engagement with the customer


Digital transformation strategists 

Change agents chartered with reinvention of their organizations (e.g., in media and entertainment)


Technologists

Those who view digital primarily from an enterprise perspective - most often reporting to the CIO 


실은 이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 문화나 디지털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오프라인에 맞추어진 기존 조직 문화를 디지털에 맞게끔 변화시켜야 하고, 그러면서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왜냐면 이제 기업 전략이 바로 디지털 전략이기 때문이다. 


A compelling convergence is happening where the digital strategy of many organizations is fast becoming the corporate strategy. 



이 둘 사이의 구분은 없다. Corporate Strategy = Digital Strategy이다. 보고서에는 'Gateways to the CDO'라고 하여 CDO가 없는 조직에서 CDO를 만들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즉 디지털 자산이나 디지털 비즈니스를 실행하기 위해 어떻게 기업 내에서 움직이고 준비해야 하는지 가이드한다. 



1. Elevate a non-executive digital role 

2. Centralize fragmented capabilities

3. Create Something new 



이 보고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Traditional work environment와 Ideal digital work environment를 비교한 표이다. 내가 직장 생활 시작할 때도 저런 이야기를 떠들었는데, 지금도 그렇다고 하니 ... 




다만 3 years of experience 라는 단어는 마음에 걸린다. 그만큼 트렌드에 민감해지고 젋은 사고를 가져야 하는데, 요즘 곧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기존 통념에 비추어 먼저 결정부터 내리려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 최근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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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계절 사이. 도로와 도로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에 앉아 책을 읽으며 창 밖과 창 안쪽을 번갈아 바라다보았다. 풍경 안에 있지만, 풍경 밖으로 계속 밀려나갔다.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문장이 되지 못했다. 복 없는 단어들이여. 결국 사라질 것들이다. 


고비 사막에서 발견되었다는 미이라의 뉴스가 떠올랐다.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은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사막 속으로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토요일 오전, 동네 카페에 앉아 이 사람, 저 사람 보면서 잠시 나를 잊었다. 내가 있는 곳, 내가 처한 곳, 내 앞 절벽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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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도표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18세부터 26세 사이의 젊은이들이 1주 동안 얼마나 TV를 보는가를 조사한 것인데,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Traditional TV)이라고 부르는 디바이스로 보는 주당 평균 시간이 줄어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제 영상물을 제작할 때 TV만을 고려하면 안 된다. 실제로 우리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방송물을 즐기고 있다. 유튜브나 아프리카TV, 심지어 Facebook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라이브 방송을 볼 수 있다. 이제 영상의 스토리텔링은 각 채널과 그것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다채널 시대에 맞춘 콘텐츠 전략 수립과 실행이 필요하다. 하나의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그 메인 프로그램 외에 다양한 채널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영상물도 별도로 제작하여 TV가 아닌 다른 채널에서도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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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과, 내 처지와 다르게, 하늘은 맑고 바람은 불고 대기는 상쾌했다. 아마 누구에겐 이런 날씨가 감미로운 휴식이 되겠지만, 누구에게는 감미로운 불안이 되었을테지. 그 불안 속에서도 다행히 한낮의 더위는 견딜만했고 아침과 저녁의 한기寒氣는 때때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마음 위에 앉아 아침 저녁으로 지친 손 두 개를 모으고 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파스칼Pascal을 읽은 까닭에, '저 끝없는 우주의  영원한 침묵' 앞에서도 놀라지 않았다. 그 동안의 독서가 삶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사소한 위안이 될 것이라 여겨지 않았건만, 예상하지 못한 사이, 다행스러운 일 하나가 더 늘어났다. (이렇게 '다행多幸'이 쌓으면 내 삶도 복으로 가득차게 될 지 모른다)


나이가 들자 눈물이 많아지고 건강은 나빠졌다. 주량은 변함이 없으나, 술친구는 줄고 술 깨는 시간은 늘어났다. 여자친구들은 사라졌고 남자친구들은 만나기 어려워졌다. 때로 술에 취해 전화를 하려고 꺼내지만, 걸 곳이 없다. 그 시절, 그 계절, 그 바람 속에서 건조한 전화기 속에 잘도 숨어있었던 그/그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러나 정신없이 바쁜 탓에 쉽게 감상에 젖지 않는다, 못한다. 



8월의 어느 금요일 동네 근처 공원에 올라가 한강 북쪽을 향해 보았다. 남산타워가 저렇게 보이는 날도 일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인데, 그런 날 속에 있었다. 하지만 기쁘지도 슬프지도, 그저 무덤덤했다. 무감각해졌다. 애써 태연한 척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그 다음 날, 토요일 오후 약속이 있어 집 밖으로 나서는 길가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하늘 모습이 좋았다. 서쪽 하늘은 들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하늘 아래서 저렇게 노래 부를 일들만 생겼으면 하고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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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지음), 정현종(옮김), 문예출판사 



전반적으로 잘 읽히지 않는다. 자주 등장하는 '올드 스포트old sport'는 '친구'(소설가 김영하의 번역), 또는 '형씨'(김욱동 교수의 번역)로 옮길 수 있지만, 이 번역본에서는 그냥 '올드 스포트'로 옮긴다. 읽으면서 왜 다수의 사람에게 이 명칭이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영문을 병기하지 않았기에 찾아보지 않는 이상 알 턱이 없다. old sport는 이보게, 자네 정도로 옮길 수 있는 표현으로 good sport도 동일한 말이다. 일부 의견으로는 1970년대에 번역되어 일어중역본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정현종 시인의 명성과 달리 이 책은 읽지 않는 편이 좋을 듯 싶다. 다행이 이 번역서는 절판되었으며, 이 소설의 유명세로 인해 번역서는 충분히 많다(솔직히 이 책을 찾아보니, 이렇게 번역서가 많은 소설도 처음 보는 듯 하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미국 소설들 중의 하나다. 아마 풍속 소설로는 최고일 것이다. 하지만 개츠비, 그의 아름다운 사랑과 불운한 운명은 피츠제럴드의 감미롭고도 우울한 시선에 가두워져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젊은이들이다. 결혼한 부부라도 아이가 없으며, 이혼을 한 적도 없는, 그렇다고 가난에 고통스러워하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술을 자주 마시고 취하며 비틀거리며 대화를 나눈다. 


그 모습은 아름답지 않으나, 그 사건들이 지난 후 회고하는 문장들은 감미롭고 우울하며 비극적이다. 질풍노도의 청춘을 지나고 그 청춘은 아팠지만 아름다웠노라 하는 식이랄까. 


그저 혼자만의 사랑일 뿐이다. 혼자 사랑하고 혼자 그 사랑을 위해 분투하다가 혼자 그 사랑 때문에 죽는다. 어쩌면 어떤 종류의 남자들에게 사랑이라는 건 자신의 생애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죄악일 지도 모른다. 




위대한 개츠비 - 6점
F.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정현종 옮김/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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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저널리즘이 나온 것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 사이 변화가 있을 법도 한데, 아주 느린 속도로 브랜드 저널리즘을 표방한 사이트는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현대자동차의 브랜드 저널리즘 사이트은 국내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이에 마케팅 컨설팅 에이전시인 Hubspot에서는 브랜드 저널리즘을 4가지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1. Brand Awareness

일반적으로 회사(브랜드)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내용을 주로 제작하여 배포하는 형태로, GE, IBM에서 운영 중임 


2. Industry News

회사 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대한 뉴스/정보 중심으로 제작하여 배포하는 형태. Intel, MS 등에서 운영 중임


3. Create And Sponsor

회사(브랜드, 서비스)가 지향하는 목표를 위해 전략적인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하여 배포하는 형태. Adobe의 CMO.com


4. Lead Generation

고객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여 배포하는 형태(전문콘텐츠+서비스소개). 마케팅회사인 Hubspot의 경우가 대표적임 


최근에 브랜드에서 많은 콘텐츠들을 생산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텐데, 이것이 바로 브랜드 저널리즘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콘텐츠가 Social Media 등 다양한 채널들로 배포, 공유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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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를 다루다보면, 너무 많은 방법론들이 나와 혼란스럽다. 더구나 실제 업무에서 그렇게 많은 방법론을 다 사용할 수도 없다.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에서 다양한 학문의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많은 방법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곤 하지만,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입장에선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방법론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방법론은 ISO 13407: Human-centered design process을 추천할 수 있겠다. 


1. the context of use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목적으로 그것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게 되는 환경을 파악해야 한다.


2. Specify requirements 

서비스나 상품이 성공적으로 기능하거나 사용되기 위한 사용자의 목적이나 비즈니스적 요구사항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3. Create design solutions 

최초의 거친 컨셉에서부터 시작하여 완전한 형태의 디자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4. Evaluate designs 

실제 사용자와 함께 사용성 테스트를 통한 평가는 HCD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품질 테스트가 좋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필수적이듯,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절차이다. 



그리고 위 단계마다 각각의 세부 방법론들이 존재한다.



(참고: ux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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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UI(User Interface)와 UX(User Experience)는 서로 다른 개념이다. UI는 목표 지향적이다. 하지만 UX는 환경(Context) 지향적이다. 그래서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는 목표가 생기면, UI에서는 시간, 비용 등의 측면의 최소 투자로 해당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하지만 UX는 시간, 비용 등에서의 최소 투자도 고려하지만, 그와 함께 상쾌함, 쾌적함, 즐거움 등과 같은 감성적 요소도 함께 고려한다. UI는 감성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다. 대체로 좋은 UI는 좋은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다소 불편한 UI라도 UX가 무척 좋다면 어떨까? 


2. Usability(사용성)은 UI와 일맥상통하는 단어이다. 좋은 사용성은 상쾌한 기분을 들게 하지만, 풍부한 사용자 경험과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좋은 Usability는 UX의 측면에서 충분 조건이지만, 필요 조건은 아닌 셈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UX는 UI, Usability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3. UX는 다양한 인접 학문이나 이론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종종 그 경계가 혼란스럽다. 이는 리서치 기반인데, 이는 기존의 마켓 리서치와 같은 정량적 방식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인터뷰나 관찰, 프로토타이핑 등과 같은 정성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IDEO의 경우, 프로젝트팀을 구성할 때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함께 한다. 


4. 그러나 UX는 만능 도구가 아니다. 그리고 꽤 긴 시간이 요구된다. 리서치에 기반하기 때문에 리서치 준비에만 한두달은 쉽게 지나간다. 그래서 시제품 제작비용이나 실제 서비스 구축 비용에 버금가는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마음에 드는 UX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기도 어렵다. 


5. 아래 도표는 UX를 둘러싼 이론적 환경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한 눈에 보여준다. 그만큼 UX 컨설팅을 통해 제대로 된 아웃풋을 내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출처: http://uxpa.org/resources/about-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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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Messy - 혼돈에서 탄생하는 극적인 결과

팀 하포드(지음), 윤영삼(옮김),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확실히 기존 통념을 깨뜨린다. Messy라는 제목 그대로, 무질서와 혼돈으로 뛰어들어라고 주장한다. 이를 찬양하며 '창조성'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부수고 깨뜨리며 그냥 저지르라고 말한다.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 법칙에 의문을 제기하며 ADHD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더 창의적이며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엘 고어의 사무실 풍경 


이 책을 읽은 후, 우리는 비로소 엘 고어의 지저분한, 혹은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책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도 일종의 정리방식이라는 걸. 그냥 쌓아두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보게 되는 서류들은 위로 올라오고 거의 보지 않는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 쌓여있는 서류들 위로 그 곳의 주인만이 아는 질서가 부여되어 있음을. 도리어 인덱스를 붙이고 서류를 봉투나 상자에 담는 식의 정리방식이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가를 팀 하포드는 강조한다. 이 책에서 정리정돈, 깔끔함, 정량적인 규칙은 버려야할 적이 된다. 


노스웨일즈 랜드는 그 자체로 무질서한 공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땅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널려 있고 잡초가 무성하다. 물이 차 있는 도랑이 놀이터 한가운데를 지나간다. 바닥에는 거대한 드럼통이 누워 있고 그 옆에는 페타이어가 세 개가 쌓여있다. 보조바퀴를 단 고장 난 자전거가 쓰러져 있고, 뒤집어진 의자, 산업용 케이블을 감는 데 쓰는 나무로 된 거대한 굴대,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들로 채워진 타이어들이 널부러져 있다. 

(...) 이 곳이 놀이터라는 표지판도 없다. 형형색색의 밝은 색깔의 반짝이는 미끄럼틀도 없고 고무로 된 부드러운 배트도 없다. 

(...) 불은 톱, 못, 밧줄 그네만큼 이곳에서 흔한 장난감이다. 이곳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랜드에는 어른이 없으며 어른은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 열 살짜리 소년이 거침없이 두꺼운 골판지를 톱으로 자른다. 장갑도 끼지 않았다. 

(...) 하지만 연구결과, 이처럼 위험해 보이는 놀이들이 몇 가지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 재미있고 더 많은 사교적인 기술을 배우도록 하며, 공격성을 줄이고, 부상 당할 확률도 줄인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조심스러웠다. 아직 신뢰할 수 있는 연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확고하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아이들이 서툴게 톱질을 하고 불장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전문가들이 세심하게 디자인한 공간 못지 않게 안전하다는 것이다. 

(64 - 66 부분 인용)   



사진 출처: https://frontporchne.com/article/putting-play-back-playground/ 


아이들의 놀이터가 이렇다니! 부모의 눈에 이 곳은 위험천만한 곳이다. 하지만 이 곳이 더 안전하며 아이들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고 팀은 말한다. 대형 여객기의 자동항법장치로 인해 조종사의 기량이 떨어지고 더 항공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에 언급되는 사례들과 이론들, 연구들 하나하나 우리의 통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심지어 롬멜의 성공방정식은 그냥 혼돈 속으로 뛰어든 것이라고. 그래서 적들의 예상을 깨뜨리고 스스로 혼란을 불러일으켜 승리했다고. 


그의 초기 비나르빌 전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롬멜은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술의 제왕이었다. 그는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기회를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한마디로 그의 전략은 전장에서 더 많은 혼란을 초래해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재빠른 기동과 독자적인 과감한 작전은 일종의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낸다. 적이 혼란 상태에 빠지면 이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 롬멜은 그 기회를 잡아 더 큰 혼란을 만들어내고 더 큰 기회를 잡는다.

이것이 혼돈 전략이다. 예측할 수 없는 맹렬하고 빠른 움직임은 상대방이 보기에 너무나 당황스럽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163쪽) 


질서정연함은 도리어 우리의 몰락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벡만이 노르웨이산 가문비 나무 인공림을 조성한 뒤, 처음 몇 해는 수익성이 좋았다. 가문비 나무 '순림純林' 1세대는 매우 잘 자랐다. 하지만 2세대로 넘어가면서 놀랍게도 퇴행하는 징표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폴록만, <<독일연방공화국 산림관리학>> 중에서 (329쪽에서 재인용)


이 책에서 언급되는 키스 자렛의 <<퀼른 콘서트>>, 마일즈 데이비스의 <<카인드 오브 블루>>, 데이빗 보위와 브라이언 이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놀라운 감동을 선사한다. 





메시 Messy - 10점
팀 하포드 지음, 윤영삼 옮김/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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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고민. 

비즈니스에 대한 단상을 자주 적고 메모도 하는데, 여기에 올리기 참 망설여진다. 뭐랄까. 비즈니스는 좀 차갑다고 할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블로그를 하나 새로 만들어 몇 개의 포스팅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방문자도 거의 없고 피드백도 당연히 없으니, 관리가 뜸해진다. 결국 이 블로그에 다시 정리해 올리지만,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직도 나는 나를 부정하는 것일까. 아마 이 공간에 대한 애정 때문일 것이다. 마치 직장인과는 무관한 사소한 취미를 보전하고 싶은. 하지만 비즈니스도 내 일부이니, 다른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여기로 옮길 예정이다. 당연히 그 블로그는 폐쇄하고. 아래 글은 작년 이맘때 정리해 올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작년이나 올해나 별반 달라진 게 없구나. 빨리 어수선해지자. 


**** 



막상 구직활동을 하다보면, 나에게 맞는 회사 찾기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반대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기업에서는 정작 원하는 인재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기업에서 하는 일은구직웹사이트의 배너 상품을 이용하거나 헤드헌팅 업체를 이용하여 인재를 구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활동과 별개로, 고용브랜드(Employment Brand) 구축에 신경 쓴다면 어떨까.  


실제 기업들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에서는 열심이지만, 미래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활동에서는 소극적이다 못해 그냥 무신경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대기업은 별도의 부서(HR부서)가 있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고용 브랜드 구축과는 무관한 활동들이 많겠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하지 못한다.  


나 또한 그런 기업에 다닌 바 있고, 고용 브랜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영진들은 관심이 없었다. 도리어 그걸 이야기한 내가 무안해질 정도의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기업의 수익을 만드는 건 그 기업의 구성원이고, 좋은 구성원을 많이 뽑을 수록 그 기업은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특히 작은 기업일 수록 고용브랜드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그것에 신경쓰는 회사나 기업인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것도 내 직장 경험의 불행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제가 고용브랜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010년,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발간한 하나의 리포트 때문이다. <HR의 새로운 도전과제, 고용 브랜드 구축>라는 리포트에서는 고용 브랜드 구축과 관련된 여러 내용들을 언급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Talent Relationship Management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그들이 원하는 인재상을 제시하지만, 대부분 비슷해 보인다. 실은 기업이 구성원들에게 인물상에 대한 적절한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이 홈페이지나 회사 소개서 등에서 제시하는 인재상과 실제 그 기업을 다니는 인재들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쩌면 그냥 근태 좋고 시킨 일 열심히 하고 상사 말 잘 들으면 된다고 믿는 건 아닐까.  (하긴 근태 좋고 시킨 일 열심히 하고 상사 말 잘 듣는 직원 보기도 힘든 요즘입니다만... ㅡㅡ) 


보고서에서는 구성원들도 기업의 이해관계자로 인지하고 적극적인 가치 제안을 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성원 가치 제안의 3가지 요소는 아래와 같다. 


- 경력 career 

- 문화 culture 

- 보상 compensation 

 



아래 도표는 '입사지원자 관계 관리' 도표다. 입사지원이라는 관점에서 TRM을 풀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Talent Relationship Management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영어 자료는 없고 독일어 자료만 있어, 그냥 도표 인용만.. ^^;; 



고용브랜드가 구축하기 위해선 기업의 입장에선 꽤 많은 것을 준비하기도 해야 하고 기존 관행을 바꾸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고용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제대로 구축된 고용브랜드는 중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경쟁력 있는 인재을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기폭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https://shaw64blog.wordpress.com/2014/03/21/avoid-the-negative-candidate-experience-t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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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지나고, 매 순간 매 순간, 아니 그 때, 그리고 그 때도, 그리고 그 때도, 후회는 대양의 밀물처럼 밀려와 내 마음을 휩쓸고 지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던 곳이 아파지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잘 보이던 글자가 흐릿하게 보인다고 해서 나이가 드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후회와 한탄이 많아지는 것이다. 젊을 땐 후회스럽지 않던 것이 갑작스레 잘못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 나이든 지금 아파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많이 아프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고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닌데, 나이 먹는 게 마치 훈장처럼 보일까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다. 조심하게 된다. 함부로 말을 놓지 못하고 깍듯해지려고 노력한다. 늘 배우려고 하고 겸손하려고 하고 말을 아끼려고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나는, 그것을 무시라고 종종 오해하기도 한다. 


반듯이 누워 천정을 바라보다, 삶과 죽음 사이를 흐르는 시공간과 숨겨진 우주를 생각했다. 현대물리학에선 미래란 이미 정해져있다고 말하지만, ... 나는 한사코 그걸 부정하고 싶다. 다시, 다시, 나이 먹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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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줍게 사랑하고 좋아했던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소설가였던 샘 쉐퍼드Sam Shepard가 73세의 나이로, 수다스러우면서도 지독히 쓸쓸했던 이 세상과 헤어졌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의 재능이며, 그의 언어가, 그의 표정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며 혼자 숨겨두었던 존재들이 나에겐 알려주지 않고 마음대로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모나드에서 모나드로 연결고리는 없겠지만, 모나드 바깥에선 단절된 모나드들을 볼 수 있으리라 한 때 생각했지만, 태어남-죽음은 하나의, 일체의 모나드임을. 

우리 각자는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정해진 궤도를 돌아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그 궤도가 얼마나 우아해질 수 있는지, 한 번 보여주자. 샘 쉐퍼드를 떠올리면서, 천천히 그의 부고 기사를 읽으며. (아. 젊었던 그가 나왔던 테렌스 멜릭의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은!! 혹은 줄리 델피와 함께 나왔던 <<Voyage>>는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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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도널드 바셀미(지음), 김상률(옮김), 책세상 



이 번역 소설을 다시 영어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정도까지는 비슷할까, 아니면 전혀 다른 소설이 될까? 바셀미의 고도로 양식화되어 있는 미니멀리즘 소설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을 테지만, 너무 성의 없이 옮겼다는 건 바셀미의 소설을 기다려온 나에겐 상당히 불쾌하게 여겨졌다. 실제 원작에서는 문장은 짧고 단순하며 표현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 번역본에서는 늘어지며 중언부언하면서 양식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그러니 이 번역서를 읽고 바셀미를 읽었다고 하지 말기를. 


도널드 바셀미는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의 한 명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미니멀리즘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제서야 소개된다는 것이 뒤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읽는 독자가 거의 없듯, 도널드 바셀미도 한국에선 그와 비슷해 보인다. 언어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번역본은 너무 형편없어서 반드시 영어로 읽어보길 권할 뿐이다. 


찾아보니, 아예 원문과 대조하여 번역서의 표현과 비교하여 새로 번역한 블로그가 있어 링크를 달아둔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최선의 번역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http://blog.aladin.co.kr/710357193/8795032 

http://blog.aladin.co.kr/710357193/8797048 

(위 블로그에 가면 <<백설공주>>의 번역에 대해선 여러 개의 글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평점은 한글 번역본을 읽고 바셀미가 어떠니 평가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바셀미의 <<백설공주>>가 형편없음이 아니라. 



백설공주 - 4점
도널드 바셀미 지음, 김상률 옮김/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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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Acide sulfurique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문학세계사 (2006년 초판 1쇄) 



작년 이맘때쯤 프랑스에서 아멜리 노통브(Amelie Nothomb)의 신작 <<황산>>이 발표되었을 때, 프랑스 비평계는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한쪽에선 "스캔들!", "졸작!"을 외치며 "매년 신작을 내놓지 않아도 되니 힘겨우면 좀 쉬라"고 비아냥거리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비판을 위한 비판은 그만!" "프랑스에서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많은 책을 팔면 으레 미움을 사게 되어있다.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반박했다.

논쟁이 격렬해지자 서평 전문잡지 <<리르>>는 비판과 옹호의 글을 나란히 게재하기도 했다. 그 사이,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 205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사놓고 읽지 않다가, 오늘 우연히 들고 읽었다. 두 시간 정도 들고 읽었으니, 매우 짧은 소설이고 쉽게 읽힌다. 2006년에 번역된 소설이 아직도 팔리고 있으니, 아멜리 노통브의 팬은 한국에도 꽤 많은 셈이다. 


하지만 (그 유명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이제서야 읽었다는 것 이외에 이 소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소설을 너무 쉽게 썼다는 것. 굳이 사서 읽을 필요 없는 소설이다. "매년 신작을 내놓지 않아도 되니 힘겨우면 좀 쉬라"라는 평가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감동적이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비상식적이고 우화라고 하기엔 너무 허술하다. 이걸 소설이라고 내놓았다니, 너무 잘 나간다고 막 출판한 느낌이다. 사서 읽지 마시라. 후회한다. 



Ame'lie Nothomb (1966~ ) - 위키를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거의 매년 1권 이상의 소설을 내고 있다!! 





황산 - 4점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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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나의 격한 집착은 뜰로 난 창문처럼 죽음을 향해 있네." - 조르주 바타유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의 "무신론대전"(La Somme athe'ologique)에 나온 문장으로, 원문은 'Ma rage d'aimer donne sur la mort comme une fenetre sur la cour'이다. 


위 사진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Enciklopedija Mrtvih>>라는 다닐로 키슈Danilo Kis의 소설 첫 장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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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신뢰할 만하며 단테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성장해 나갔으며, 어떻게 근대 문학의 시초가 되었는가를 분석하고 예증한다. 단테 문학의 변화와 성장은 이 책의 중심 테마이며, <<신곡>>을 향해간다. 



인간에 대한 단테의 미메시스는 고전 고대의 미메시스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 이전의 중세 시대에는 전혀 없었던 미메시스를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다. 단테는 고전 고대처럼 인간을 아득히 떨어져 있는 신화적 영웅으로 보지도 않았고, 중세 시대처럼 인간의 윤리적 타입을 추상적으로 혹은 일화적으로 재현하지도 않았다. 단테는 살아있는 역사적 리얼리티 속의 인간, 단일성과 전체성을 간직한 구체적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재현했다. 

- 343쪽 



사실적인 표현과 문장이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어떻게 구분되는가를 실제 문학 작품들을 예시하여 중세 후반기의 문학과 단테가 이룬 문학의 차이를 보여준다. 딱딱하고 어색했던 중세 말의 표현들이 어떻게 자연주의적으로, 감각적이며 세속적인 풍성함을 가지게 되는가를 말이다. 



조반니 피사로 이래 화가들은 세상에 대해 날카로운 지각을 개발해왔다. 그래서 단테와 그 시대의 위대한 화가인 조토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발견된다. 두 사람에게 사건은 자급자족적 리얼리티로 다시 태어난다. 두 사람은 고전적 감각을 지녔고 리드미컬한 구조를 구현한다. 또 이 세상의 감각적 구체성 속에서 사물에 내재하는 법칙을 파악하는 방법도 상당히 유사하다. 

- 195쪽 




하지만 단테 문학 이상으로 이 책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것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플로티노스에 대한 짧은 설명이다. 몇 페이지에 걸친 플로티노스에 대한 설명에서 아우어바흐는 중세 초기 미메시스 예술의 몰락을 플로티노스를 통해 설명한다. 실은 이러한 관점에서의 이해는 나로서도 처음 읽는다. 그만큼 중세 초기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고 플로티노스 철학에 대한 번역이나 소개는 최근의 일이기도 하지만, 그냥 막연하게 중세 예술에서의 미메시스에 대한 무관심, 또는 경멸이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엄숙주의라고 여겼던 것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플로티노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가져온 여러 요소들을 융합하여 그 자신의 유출주의를 만들어냈고, 신비하면서도 종합적인 명상으로 기울어졌다. 이렇게 하여 영(Spirit)이 참여하는 지상의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은 내적 원형(이데아)의 상태에서만 순수하다고 보았고 물질 속에서는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플로티노스의 사상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형상 없는 질료는 플라톤의 비존재(non-being)와 동일시되어, 완전한 존재를 갖춘 이데아와는 정반대의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하여 질료(물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단순한 저항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물질은 그 다양성과 분할 가능성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악(惡)이 되었다. 영이 물질세계로 유출되기는 하지만, 다양하고 구체적인 물질은 피지스(physis: 이것은 개체화의 시작[principium individuationis]이 되는데 곧 저급한 영혼을 의미함)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악하고 불순한 것이 된다. 따라서 미메시스 예술은 경험적 리얼리티와 접촉하지 못하고 순수한 에우레시스(euresis: 내적 형상의 복사물)가 된다. 플로티노스는 미학의 영성적 체계에 대하여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지만 그 실제적 결과는 미메시스의 부정이었다. 그는 생성(becoming)보다 존재(being)를, 물질보다는 이데아의 우월성을 강조했고, 물질과 변화를 형이상학적 비존재(존재하지 않는 것)와 동일시했다. 이런 사상은 세속적 운명을 예술 속에서 재현된 가능성을 모조리 파괴했다. 

- 56쪽 



두 번째는 그리스도 스토리에 대한 설명이다. 성경을 종교 경전으로, 그리고 서양예술작품에서 표현된 다양한 종교적 주제나 소재의 원천 정도로만 여겼지, 그것을 하나의 서사 문학으로 접근하지 못했는데, 아우어바흐는 이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스도 스토리는 로고스logos의 비유(parousia) 혹은 이데아의 나타남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 51쪽 



그리스도 스토리는 개인적 생활의 강렬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다양성과 풍부한 형식 또한 보여준다. 그 스토리는 고대 미메시스 이론의 한계를 돌파한다. 그 스토리 속에서 인간은 지상의 위엄을 잃어버린다. 모든 일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고, 고전주의에서 규정한 장르의 구분(합리와 우연의 구분)은 가뭇없이 사라진다. 숭고한 스타일과 천박한 스타일의 구분도 더 이상 없다. 복음서에는 마치 고대 코미디처럼 온갖 계급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부, 왕, 고위 사제, 세리, 창녀 등이 그들이다. 지체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희극 속의 인물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와는 전혀 다르게, 모든 사회적, 미학적 제한이 철폐된다. 그 무대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을 허용한다. 그 무대에 오르는 캐릭터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혹은 각각의 개별 인물로 등장하든 여전히 다양성을 유지한다. 각각의 개인은 온전하게 합법화되며, 그 합법화는 사회적인 기반과는 무관하다. 그의 현세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그의 개성은 완전히 개발되며, 그에게 일어난 일은 고상하지도 천박하지도 않다. 예수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베르도도 엄청난 굴욕을 당한다. 그리스도 스토리가 갖고 있는 자연주의(자연스러운 사실주의)는 깊이나 넓이에 있어서 전례 없는 것이다. 고대의 시인이나 역사가들은 인간의 사건을 이런 방식으로 서술하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 53쪽에서 54쪽 



세 번째는 단테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계다. 단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깊이 심취해 있었으며, 그 철학이 단테의 문학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글을 쓸 때 단테처럼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쓰는 사상가는 없을 것이다. 이런 단테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퀴나스 철학이었다. 그가 믿고 따른 아퀴나스 철학은 개성적 형태를 중시하고 그에 대한 묘사를 정당화했다. 성 토마스는 이 세상이 하나의 이미지를 따라 창조되었다는 신학적인 교리로써 사물의 다양성을 설명했다.(...) 따라서 천지창조 전체를 두고 볼 때, 다양성은 완전함의 반대 명제가 아니라 그것의 적절한 표현이다. 더욱이 우주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에 적극 참여하며, 그 움직임은 우주의 형식들을 움직여 자기-완성으로 나아간다. 이런 행동의 능력이 발휘되는 과저에서 다양성은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필요한 과정이다.

- 178쪽에서 179쪽 



단테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세속적 자연주의는 아퀴나스 철학에 기반해 있는 셈이다. 마치 고딕 자연주의처럼. 


 

책 뒤에 수록된 '인명-용어풀이'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잘 알려져 있는 철학자에 대한 설명보다 가령 사랑이나 천국, 연옥 같은 단어에 대한 풀이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책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읽어야겠지만, 이 번역서 자체의 완성도도 나쁘지 않고 강력하게 추천한다. 꽤 밀도가 높은 책이라 읽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것이다. 


아래는 사랑이라는 용어 풀이에 실린 아퀴나스의 사랑에 대한 정의다. 선한 것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것일까. 선미(kalokagathia) 의식은 그리스의 것이라 여겼는데, 중세 후기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선을 원함(velle bonum)이다. 자기 자신에게 또는 남에게 선을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이기적 사랑과 우정의 사랑으로 나뉜다. 사랑의 고유한 원인은 선이다. 사랑은 사람의 본성에 타고난 것이나 그 본성에 어울리는 것이다. 악이 선'처럼' 나타날 때 악을 사랑하게 된다. 아름다움(pulchrum)은 선과 같은 개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름다움의 소유는 보는 것 또는 인식에 있는데, 선의 소유는 사랑 속에 있다. 사랑의 가까운 원인은 선에 대한 인식이다. 이 인식이 없으면 그것을 결코 욕심낼 수 없다. 사랑의 결과는 상호 침투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것을 주는 자가 그것을 받는 자 속에 있고, 또 반대로 사랑 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 속에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엑스터시(황홀)는 사랑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혼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사랑의 대상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격정과 질투는 사랑의 결과이다. 강렬한 사랑은 그것을 반대하고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다 물리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가 행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2부 1편 중에서(367쪽 재인용) 

 


아우어바흐(1892-1957) 



단테 - 10점
에리히 아우어바흐 지음, 이종인 옮김/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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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바람이 부는 바다 앞에 서서 수면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눈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 도시의 거리에나 그 도시 앞 바다에나 눈을 쌓이는 법이 없었다. 자주 만나면 사랑이 싹틀 것이라는 바람 대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나는 것처럼, 몇 시간 동안 내린 눈은 내린 시간 보다도 더 빨리 녹아 사라졌다. 


바다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통영은 그 도시 근처에 있지만, 자주 가지 않았다. 자주 갈 일도 없었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었다.




윤이상 음악당이 통영국제음악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고 윤이상 선생의 세계를 알려고 해도 알지도 못할 이들이 나서서 명칭을 바꾸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분개했다. 


'내 고향 남쪽바다'라고 일컫어지던 고향 앞바다를 떠올리며, 잠시 향수에 젖었다. 그러고 보니, 내 고향엔 세계적인 조각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어젠 사람들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그의 신앙심과 절망을, 그의 예술과 매너리즘에 대해서. 미켈란젤로에 대해 한 권을 책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 


Michelangelo Buonarotti

Rondanini Pietà (론다니니의 피에타)

1552–1564, height 195 cm

Castello Sforzesco, Mi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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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까페 하나가 생겼다. 몇 번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 까페 한 쪽 면의 창문들은 어두워지면 저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강변북로를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처럼 수놓는 자동차 불빛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야경을 가졌다. 사무실의 술자리를 줄이니, 동네 술자리가 늘어났다. 동네 술자리가 마음 편하다. 술을 많이 마실 염려도 없고 많이 마시더라도 걸어서 집에 가니 걱정 없다. 


비가 많이 내렸다. 내린 비만큼 내 치아와 잇몸 상태도 엉망이었음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매주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걸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안다. 우리는 나이 드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늘 상투적으로 말한다. "몸은 늙었으나, 마음만은 이팔청춘이야"라고. 


그런데 저 상투적 표현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우리 마음과 몸을 병들이는가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는다. 청춘의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험해본 이는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무수한 도전과 실패로 얼룩져 중년의 몸과 마음까지 영향을 주는 그 이팔청춘! 이팔청춘이 뭐가 좋다고. 


그래, 이팔청춘 시절 그대의 사랑은 행복했나요? 그대의 학창 시절은 즐겁고 유익했나요? 그대의 대학 시절은 바람직했나요?  


제대로 된 사회는 그 나이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대로 된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 없이 오직 대학 입학만을 준비한다. 사춘기의 철없지만 향기롭게 들뜬 사랑에 대해서도 그 어떤 조언도 받지 못하고, 머리 가득하게 퍼지는 성적 유혹에 대해서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아파할 뿐이다. 그렇다고 대학이 딱히 나은 것도 아니어서,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성적 방종이거나 자유, 혹은 학문 탐구에 대한 무책임함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갑자기 괴롭히는 것이 생기는데, 그건 취업 준비다. 



이팔청춘이 한참 지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와인을 마셨다. 비는 쉴새없이 내렸고 투명한 유리잔은 채워졌다가 비워지길 반복했다. 말은 끊겼다가 이어졌고 시간은 쉼없이 흘렀다. 어느 새 나이가 들어 이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게 남은 우리들에게 청춘이란 무엇일까. 늙어간다는 건 무얼까. 인생은, ... ... 


그저 의미없이 지나갈 뿐이다. 아. 다행이다, 까뮈와 베케트를 읽어둔 것은. 까뮈와 베케트는 내가 젊었던 시절, 이 생이 아무 의미 없음을 알려주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살아있는 것이다.


치과 치료가 있는 날이면 아련한 고통에 정신이 없다.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그나저나 목요일 통영에 가는데, 가서 뭘하지. 회의를 끝내고 뭘하지. 혹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통영에 사는 이가 없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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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지음), 성귀수(옮김), 책읽는수요일 




"오늘은 어제보다 덜 나빴다. 그런 오늘보다 내일은 좀 더 나을 것이고, 그렇게 계속 나아질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하나의 원칙만을 고수할 것이다. 마치 살아서 다른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주님이 나를 세상에 내신 이유가 오직 그것뿐인 것처럼, 그리하여 오로지 그 하나를 이루는 일에 나의 구원이 달려 있는 것처럼, 모든 사소한 일, 작은 기도, 세세한 규칙들을 철저히 수행해나갈 것이다."

"이 원칙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전략을 다하며, 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굳건히 매진할 것을 내게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런 원칙이 일상의 처음 취하는 동작에서부터 꼼꼼히 적용되어야만 한다."

- 교황 요한 23세, <<영혼의 일기>>, 1962년 12월 23일 (54쪽에서 재인용) 



부끄러웠다. 졸리앙의 글을 읽으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어느 순간 세속에 물들어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적당히 타협을 하며 사소한 나쁜 행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잊고 지내던 것이었다. 소년이었던 시절, 나는 내 삶의 지향점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사랑은 날 떠났고, 나에게 실패했으며, 모든 것들은 내가 원하던 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내 착오였다. 그 착오의 영향은 꽤 심각해서 아직도 허우적되고 있다. 그 때의 나는 오만했으며, 타인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터무니없는 낙관주의로 날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다. 



졸리앙은 그런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다만 그의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 자신이 벗어나고 했던 그 불완전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싸워왔음을 이야기할 뿐이다. 인터넷 서점(혹은 책 표지)에서의 저자 소개는 아래와 같다. 



1975년 스위스 시에르에서 트럭운전사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갖게 되었고, 3살 때부터 17년간 요양 시설에서 지냈다. 장애로 인해 불편과 고통, 난관에 수없이 부딪히면서 그는 내면에 잠자고 있는 인식에 대한 강렬한 갈증을 느껴 철학에 빠졌다. ... 

- 인터넷서점 작가 소개 




"실재성과 완전성을 나는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2부 정의 6



스피노자의 저 한 마디는 졸리앙의 인생 전체를 위로 끌어올린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이 표현은 아래의 글귀로 이어진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바 그 직관, 즉 우리 모두가 불성을 타고 났다는 위대한 깨달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 94쪽 




이 책은 '내려놓음'에 대한 명상과 그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졸리앙은 나직한 목소리로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오가며 부족한 자신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일상을 통해서 그것을 담담히(아마 처절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적는다. 그런데 그 울림이 작지 않아서, 책을 한 번 잡으면 놓지 못한다. 


나는 알렉상드르 졸리앙에 대해서는 신문 칼럼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역시 이 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마치 짧은 힐링 여행 같은 책이라고 할까. 마음의 여유를 잃기 쉬운 요즘, 이 한 권의 책이 휴식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추천한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 8점
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성귀수 옮김/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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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시대 The Age of Shakespeare 

프랭크 커모드(지음), 한은경(옮김), 을유문화사 크로노스 총서 11



책은 얇지만, 의외로 단단하고 빽빽하다. 셰익스피어(1564 ~ 1616)가 살고 활동했던 시대 전후로 셰익스피어 극작품에 영향을 주고 받은 다양한 환경적 요인이나 연극 제작, 그리고 개별 작품에 대해 분석하고 언급하고 있으니, 당연히 쉬운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독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 번역서에 대한 일반 독자의 반응은 좋지 않다. 너무 어렵다는.  


그러나 미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과 교수인 제임스 샤피로(James Shapiro)는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 1919~2010) 교수 생전에 '현존하는 최고의 셰익스피어 안내자(reader)'라고 평가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rank_Kermode)


이 책의 대부분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 제작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을 서술하고 분석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셰익스피어 극작품의 일부를 인용하여 어떻게 셰익스피어에게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보여준다. 


엘리자베스 시대(이 용어는 편의상 제임스 1세 초까지 망라하기도 한다)는 전문 연극이 발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최초의 대중연극은 주로 임시 극장에서 공연되었고, 심지어 여인숙의 뒷마당이 무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6세기 후기에 이르러 런던에는 최고 3,000명까지 수용할 수 잇는 전용극장이 여럿 생겨났는데, 이런 극장은 주로 극단주들이 소유했다. 대개 극단은 과거 길드와 구조가 흡사했으나, 셰익스피어의 극단은 다소 달랐다. 단원들이 연극은 물론이고 극장까지 소유했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연극을 위탁하고 소유하고 출연했으며,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직접 연극을 쓰기도 했다. 그를 위시하여 일부 동업자들은 상당한 수입을 올리며 자산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건 나중 일이었고, 엘리자베스 여왕 초창기에 극장 공연자들은 여전히 곡예사나 순회 공연자, 방랑자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 10쪽 


(* 참고. 엘리자베스 1세(1533 ~ 1603), 제임스 1세(1566 ~ 1625). 엘리자베스 시대는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반으로 이해하면 된다. 예술사에서는 매너리즘 시대로 이해하는 기간이다.)


따라서 일반 독자에게 권하기는 다소 난이도가 있는 책이다. 더구나 2004년도에 런던에서 출간된 이 얇은 책을 내기 전 프랭크 커머드는 이미 10권 이상의 셰익스피어 저술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목차도 아래와 같다. 


- 종교개혁과 왕위 계승의 문제

- 엘리자베스의 영국

- 셰익스피어, 런던으로 가다

- 로드 체임 벌린스멘 극장

- 극장

- 초기의 셰익스피어 

- 글로브극장

- 글로브극장의 연극

- 블랙 프라이어스 연극 


셰익스피어 연극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은 보물단지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 그 정도 되려면 전문연구자일 테니, 프랭크 커모드를 모를 일 없을테지만.  영미문학에서의 프랭크 커모드는 상당한 유명한 연구자이며, 오래 전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이라는 번역서가 나오기도 했다.  나 또한 이 책을 꽤 열심히 읽었으니, 프랭크 커모드의 책은 두 권을 읽은 셈이다. 


이 책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 영국 상황에 대해서도 간단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의 처녀성은 찬양과 희망을 표출한다는 은밀한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29쪽)라는 언급은 꽤 흥미로웠다. 왕이 아니라 여왕, 더구나 결혼을 하지 않은 여왕은 영국 귀족 사회에서도 상당히 골치거리였다고 한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주요 극작품에 대한 간단한 언급도 등장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 인용해본다. 먼저 <<햄릿>>에 대한 언급이다. 


이렇듯 다양한 스타일이 구사되는 이면으로 가족의 이중성과 그 외 여러 이중성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배어있다. 햄릿에게 클라우디우스는 삼촌이자 아버지이며, 그 자신이 조카이자 아들이다. 끔찍한 현실이다. 자신의 어머니와 계부가 몸을 합했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간통이 실은 근친상간이라는 것은 혐오스러울 따름이다. 

대사는 언어학적인 이중적 의미로 가득하며, 전례가 없을 정도로 중언법이 많이 사용된다(중언법은 '하나를 통한 둘'을 뜻하며, 하나의 복잡한 개념이 형용사와 명사 대신 접속사로 연결되는 두단어로 표현된다.[옥스포드사전]). 사전에서는 중언법의 예로 <<햄릿>>이 인용된다. "의전법으로 잘 비준된 것 Well ratified by law and heraldry"(1막 1장 87).  이 때 '법과 의전 law and heraldry'은 '의전법'을 의미한다. 

- 148쪽 


아래는 <<맥베스>에 대한 서술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미래는 다의적이다. 시간은 다의성의 대리인이다. 던컨을 살해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 순간 어느 쪽으로도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시간이 정지된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 순간은 의도와 행위 간의 간극이며, 그 사이에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의적으로 하나가 된다. 정당한 것은 사악한 것과, 실패한 것과 성공한 것과, 미래와 순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 176쪽 



영문학 전공자에게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되는 을유문화사 관계자가 있다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크로노스 총서를 계속 발간하는 것을 검토해볼 것을 권한다.아마 국내에 번역된 여러 인문 시리즈들 중 이 시리즈가 단연코 최고라고 여기는데, 나오다가 중단되었다(참고로 이 시리즈의 1권으로 번역된 폴 존슨의 <<르네상스>>는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최고의 르네상스 개론서이다). 그러니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면, 나라도 열심히 소개할 테니 .... )






셰익스피어의 시대 - 10점
프랭크 커모드 지음, 한은경 옮김/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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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 

차문성(지음), 책문(성안당), 2013년 초판/2015년 장정개정판 


좋은 책이다. 비전문가인 저자가 전문가가 되어간 과정이 녹아있다. 성실한 내용과 애정이 담긴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물관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에서 가기 쉬운 미술관/박물관을 선정해 보여주었다는 점도 이 책이 꽤 실용적임을 증명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 흩어진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 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책 제목 그대로 예술기행이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생페테르부르그 등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박물관에 대한 소개와 그 곳에 대한 간단한 느낌이나 감상, 그리고 소장 전시되고 있는 주요 작품들에 대한 짧은 안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내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매우 부러웠다. 한 달 이상 파리에 체류하면서, 일 드 프랑스와 생-제르맹 거리를 오가며, 갤러리에만 있었던 건 아닌가 후회를 한다. 누구나 다 가는 루브르와 오르세만 간 걸 이제서야 후회하다니. 다시 가게 되면 꽤 오래 머무르며 작품들을 보고 와야 겠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 대부분은 이미 여러 미술 관련 서적에서 본 내용들인 탓에, 빠르게 읽었다.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유럽 여행객들이 미술관 관람이 목적이 아닌 만큼, 이 책에서 언급된 도시에 가게 될 경우, 이 책은 꽤 유용할 수 있겠다. 



렘브란트, <예루살렘의 멸망을 탄식하는 예레미야>, 1630,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그렸다. 렘브란트가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깊이를 가진 작품을 그렸다는 건 놀랍기만 하다. 아마 그만큼 신앙심이 깊었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통을 지긋이 누르며 곤혹스러워하는 얼굴 옆으로 불타는 예루살렘이 보인다. 바로크 특유의 명암법은 화면 전체를 감싼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하지만 밝은 쪽은 슬픔으로 가득하고 어둠 속으로는 절망감이 감돈다. 그리고 팔을 괴고 있는 모습 아래로 성경이 보이고 그 밑으로는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로부터 받은 금은보화로 보이는 것들이 놓여져 있다. 전체적으로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통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바로크의 고민이 보인다. 확실하 바로크는 과거를 향하지 않는다. 미래로 열린 양식이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그러나 우리 시선은 어두운 쪽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래서 저 반짝이는 금속물질의 물건은 참 흥미롭기만 하다. 


이 책에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소개하면서 이 작품을 언급했다. 위 설명은 내가 별도로 작성한 것이라 책 내용과는 다소 다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작품이 눈에 들어왔는데, 마네의 베르트 모리조 초상화와 렘브란트의 위 작품이었다.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관계에 대해선 다음에 한 번 언급하기로 하자. 혹자는 19세기 미술사 가장 아찔한 로맨스라고도 하니 말이다. 대체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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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책을 읽기는 하나, 그건 일 년에 한 권 될까 말까이다. 한때 책을 내기도 했고 강의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십 수년 전 일이고, 마지막 잡지 기고를 한 것도 꽤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우연히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요즘 아내의 일로 커뮤니티 자치 활동을 잠시 도와주고 있는데, 그 곳에 계신 분의 제안으로 한 차례 강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래는 간단한 강의 개요다. 막상 적기는 쉽게 적었으나, ... 도판 찾는 게 일일 듯 싶다. 요즘은 워낙 온라인 아카이브가 잘 되어 있어 쉽게 도판을 찾을 수 있으나, 정확하고 적절한 도판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지라, 꽤 시간이 걸릴 듯 싶다. 동네에서의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공개적인 장소, 가령 북까페 같은 곳에서 한 번 더 하면 좋을 것같기도 하다. 이런 강의도 자주 해야 까먹지 않는데, ... 머리가 굳어져서 큰 일이다. 


*** 

 

미술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현대미술감상법 


우리의 마음과 예술의 경향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을 뿐이다’라고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의 첫 문장으로 적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 뒤에 놓여진 예술가의 삶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때의 예술작품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중세 말의 고딕 성당을 알기 위해선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13세기의 유럽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바라볼 때 비로소 예술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현대의 어떤 사람은 조용히 교회당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교회당 대신 거리로 나가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의 차이는 이와 비슷합니다. 신의 존재와 신앙의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각기 다른 마음과 태도도 그 시대의, 그 나라의 예술작품을 만듭니다. 





생-드니 성당. (1135 - 1144)



매너리즘과 현대 

예술사에서 매너리즘(마니에리즘)은 16세기 중후반의 지배적인 양식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퇴보로 이해되었던 탓에, 이 양식의 명칭은 경멸적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시대의 예술은 가장 현대적인 예술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예술 양식이 어떻게 경멸당하고 다시 받아들여지게 되는가 흥미로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 당시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게 됩니다.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예술은 크게 고전주의(고전적 예술)과 낭만주의(낭만적 예술)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식에서의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시대와 예술가들,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해하며 현대 미술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도 함께 탐구합니다. 


라파엘로, <초원의 성모>, 1505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 

서로 대립되는 양식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대립되는 양식이 아니라 우리가 외부 세계와 마주할 때 취하게 되는 양식적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가 함께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자연주의 작품과 기하학주의 작품을 함께 비교해가며 예술가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해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봅니다. 


이집트, <사자의 서> 일부, BC.1275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으로 보는 현대미술과 우리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은 현대 미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 작품 안에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살피고, 현대 미술 작품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론 뮤익, <침대에서>,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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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의 정치학

조기숙(지음), 위즈덤하우스, 2017 



정치학이라는 단어가 있어 정치학 이론서라고 오해하기 쉽다. 더구나 아래 동영상을 보면 꽤 전문적인 정치 이론서라는 면모까지 풍긴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이 책은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기초로, 조기숙 교수의 개인적인 경험들과 의견(노무현과 문재인에 대한 왕따 현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언론사들의 사례들,이해를 돕기 위한 서구 정치사의 변화와 관련된 이론들이 다소 어수선하게 전개되는 대중 정치 서적에 가깝다.  




지식인 중에 이명박과 노무현이 다르지 않다며 '노명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최근에는 친박과 친문이 패권주의적이라는 점에서 같다며 반문연대를 지지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흑백을 구분하지 못하는 반지성적 태도다.

나는 조동문과 한경오가 같다는 말을 절대로 할 생각이 없다. 분명히  이들 언론은 다르다. 하지만 진보언론이 노무현과 문재에게만큼은 가혹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 325쪽 


저자가 이 책을 쓴 계기는 위 인용문과 같다. 그래서 책 내용 대부분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할애되어 있으며, 상당히 설득력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이전/이후의 여러 진보 언론의 다시 행태를 떠올리게 만든다. 


처음부터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내가 기고하던 고정 칼럼이 노무현에게 유리하면 수정되거나 삭제되거나 이상한 제목이 붙는 일을 겪으면서 언론의 부당함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 12쪽 


책의 서두에서 노무현 정부와 거리를 두었던 조기숙 교수는 자신이 어떻게 친노가 되어갔는지 묵묵히 서술하며, 중후반에는 정동영 의원과의 관계를 이이야기하며 자신이 정치권에 몸 담게 되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노무현 -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야당 정치 지형의 변화를 통해 친노, 친문 프레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뿐, 이 책의 대부분은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가 어떻게 친노프레임, 친문프레임을 어떻게 확대 재생산하며,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후보에게 부정적인 어조로 기사를 내보내는가에 맞춰져 있다. 실제 기사를 사례로 하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황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좌우언론은 역대 가장 민주적이었던 노 대통령에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해 비판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90쪽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가 이념의 차이에게 기인한다고 보는 저자는 서구의 구좌파, 신좌파라는 구도를 가지고 와서 설명하는데,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될 것이다. 가볍지만 심각한 왕따 이야기들 속에 갑자기 서구 정치사에 대한 학술적 서술이 다소 뜬금없이 진행된다. 


이들 세대의 핵심 가치관을 '탈물질주의 post-materialism'라고 하는데 물질보다는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화를 연구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 교수는 유럽의 변화를 일컫어 '조용한 혁명 silent revolution'이라고 했다. 

- 171쪽 



잉글하트 교수의 책은 1977년도에 나왔으며 압축적 정치 성장을 겪고 있는 한국 정치에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선 논의의 여지가 있다. 또한 '조용한 혁명'의 결과가 에마뉘엘 마크롱이며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진 않지만, 현대 정치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의 현실 정치를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재미있기는 하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으며 좀 더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무현에게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사람은 말할 권리를 잃어버리는 게 한국 사회라는 걸 그 때 분명히 깨달았다. 사실 지금도 내가 팟캐스트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다른 영향력 있는 지면이나 방송에서 발언할 기회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 209쪽 


이 책은 정치학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한국 현실 정치의 이론화가 아니라, 왜 노무현과 문재인은 좌우언론 따지지 않고 왕따를 당하고 있는가이며,  이 점에서 이 책은 충분한 공감과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읽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다음 사라진 단어들을 보라. 친문이나 친노, 그리고 여타 많은 인물들. 이러한 언론들의 변신이 나는 놀랍기만 하다. 


우리 사회의 위기는 늘 지성 리더십이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에도 유림이 패거리 싸움을 할 때 서민들이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했다. 

- 327쪽 


마지막으로 이 책에 실린 도표 하나 올린다. 그리고 이번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우리모두 기원해보자. 




왕따의 정치학 - 8점
조기숙 지음/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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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입문 Theory of Beauty :  An Introduction to Aesthetics 

H. 오스본(Harold Osborne) 지음, 김광영 옮김, 박우사, 1994



한창 공부할 때 사둔 책을 이제서야 읽는다. 지금은 구할 수도 없고 구해 읽을 필요도 없는 책이다. 1952년 영국에서 출판된 책이며 해롤드 오스본의 주저도 아니다. 번역이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미학에 대한 충실한 이론서도 아니다. 저자는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아름다움(Beauty)를 가진 예술 작품에 대한 이론적, 미학적 논의를 이 책을 통해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름들은 한글로만 표기되어 정확히 누구인지 알기 어렵고 일부는 잘못 표기된 경우도 있어, 제대로 된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많은 인용문들은 어느 책에서 발췌한 것인지 알기 어려우며 그 번역을 신뢰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최근의 이론들이나 관점에 기반하지 않아 미학의 기본적인 생각을 다듬을 수 있으며, 특히 예술작품론이나 감상론 부분은 잘 다루어지지 않는 영역이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오스본은 책의 서두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는 당초 파산적(破産的)인 것'(10쪽)이라고 적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오스본은 자신만의 과감한 주장을 전개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양한 관점에서 예술작품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기술한다.  

 

예술작품이란 이 사람이나 저 사람 또는 여러 사람들에게 때때로 현실화되어 보이는 영원한 가능성인 것이다. 

- 128쪽 


미학 전공자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픈 생각은 없다. 요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새 책을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냥 습관처럼 읽은 책에 대한 메모를 남기기 위해 이 리뷰를 적는다. 이 책이 궁금하다면 영국 아마존에서 구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 이제서야 인문학 책들이 읽히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없다. 허망하다. 



https://www.amazon.co.uk/dp/B0000CIBJR/ref=cm_sw_r_cp_dp_T2_3GOrzbM9WCK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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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의 빅픽처

선대인(지음), 웅진지식하우스 



대중 경제학 책이라 여겼으나, 실제로는 주식 투자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겠다. 요점은 세계 경제 흐름의 큰 그림(빅픽처)를 보면서 투자해야 된다는 것. 일종의 가이드북이며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진 않다. 나로선 약간 실망했다고 할 수 있다. 초반엔 꼼꼼하게 정독하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대강 읽게 되었다. 주식 투자를 하고 있지 않으나,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터라 몇 가지의 지침이 될 만한 언급을 옮겨보자면 아래와 같다. 


투자의 기본은 리스크 관리

 - 30쪽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절대 원칙 

첫째,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투자 방법을 택해야 한다.

둘째, 투자를 하면서 과한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

셋째, 반드시 여윳돈으로 투자해야 한다. 

- 271쪽 


바이오 헬스케어(B), 금리(I), 색산업(G), 석유(P), 인도(I), 중국(C), 기술기업(T), 미국(U), 리스크(R), 환율(E)를 저금리 저성장 시대의 키워드로 주목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 2015년도에 출간되었으니, 벌써 2년이 지난 셈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 중 일부는 바로 앞으로 닥쳐온 것도 있다. 가령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주가가 오른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정책에 대한 대응이 주목된다. 


한 나라의 경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정치적 불확실성인데, 사람들은 아직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제정책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실은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주식 투자에 대한 가이드북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책 말미에는 여러 추천 도서와 관련 웹사이트 정보를 제공하고 있음), 주식 투자에 대한 방향을 잡고 싶은 이들에겐 괜찮은 책이 될 수 있다. 


선대인 소장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관계로, 다른 책들도 한 번 읽어봐야 겠다. 






선대인의 빅픽처 - 8점
선대인 지음/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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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uta Fanti Santantimo Rosso Sassomagno 2013

Fanti (Sant'Antimo) 

와인너리 홈페이지:  http://www.tenutafanti.it/en/home 



와인은 언제, 어떤 상태(마실 때의 온도라든가 보관상태),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 마시는가가 중요하다. 60%의 산지오베제와 함께 멜롯(25%), 시라(10%), 카베르네 쇼비뇽(5%)로 블랜딩된 이 와인은 부드러운 단단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이 가격대에서의 놀라운 수준이라는 것이지,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양한 품종의 포도를 성공적으로 브랜딩한 와인이라 할 수 있다. 


샵 가격은 2만원 대로 예상된다. 망원동 쪽 까페에서 5만원 정도로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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