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단테 - 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좋은 책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핵심을 찌른다. 이종인 선생의 번역도 신뢰할 만하며 단테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성장해 나갔으며, 어떻게 근대 문학의 시초가 되었는가를 분석하고 예증한다. 단테 문학의 변화와 성장은 이 책의 중심 테마이며, <<신곡>>을 향해간다. 



인간에 대한 단테의 미메시스는 고전 고대의 미메시스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그 이전의 중세 시대에는 전혀 없었던 미메시스를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다. 단테는 고전 고대처럼 인간을 아득히 떨어져 있는 신화적 영웅으로 보지도 않았고, 중세 시대처럼 인간의 윤리적 타입을 추상적으로 혹은 일화적으로 재현하지도 않았다. 단테는 살아있는 역사적 리얼리티 속의 인간, 단일성과 전체성을 간직한 구체적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재현했다. 

- 343쪽 



사실적인 표현과 문장이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과 어떻게 구분되는가를 실제 문학 작품들을 예시하여 중세 후반기의 문학과 단테가 이룬 문학의 차이를 보여준다. 딱딱하고 어색했던 중세 말의 표현들이 어떻게 자연주의적으로, 감각적이며 세속적인 풍성함을 가지게 되는가를 말이다. 



조반니 피사로 이래 화가들은 세상에 대해 날카로운 지각을 개발해왔다. 그래서 단테와 그 시대의 위대한 화가인 조토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발견된다. 두 사람에게 사건은 자급자족적 리얼리티로 다시 태어난다. 두 사람은 고전적 감각을 지녔고 리드미컬한 구조를 구현한다. 또 이 세상의 감각적 구체성 속에서 사물에 내재하는 법칙을 파악하는 방법도 상당히 유사하다. 

- 195쪽 




하지만 단테 문학 이상으로 이 책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것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플로티노스에 대한 짧은 설명이다. 몇 페이지에 걸친 플로티노스에 대한 설명에서 아우어바흐는 중세 초기 미메시스 예술의 몰락을 플로티노스를 통해 설명한다. 실은 이러한 관점에서의 이해는 나로서도 처음 읽는다. 그만큼 중세 초기 신플라톤주의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고 플로티노스 철학에 대한 번역이나 소개는 최근의 일이기도 하지만, 그냥 막연하게 중세 예술에서의 미메시스에 대한 무관심, 또는 경멸이 종교적인 이유에서의 엄숙주의라고 여겼던 것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플로티노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가져온 여러 요소들을 융합하여 그 자신의 유출주의를 만들어냈고, 신비하면서도 종합적인 명상으로 기울어졌다. 이렇게 하여 영(Spirit)이 참여하는 지상의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은 내적 원형(이데아)의 상태에서만 순수하다고 보았고 물질 속에서는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플로티노스의 사상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형상 없는 질료는 플라톤의 비존재(non-being)와 동일시되어, 완전한 존재를 갖춘 이데아와는 정반대의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렇게 하여 질료(물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단순한 저항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물질은 그 다양성과 분할 가능성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악(惡)이 되었다. 영이 물질세계로 유출되기는 하지만, 다양하고 구체적인 물질은 피지스(physis: 이것은 개체화의 시작[principium individuationis]이 되는데 곧 저급한 영혼을 의미함)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악하고 불순한 것이 된다. 따라서 미메시스 예술은 경험적 리얼리티와 접촉하지 못하고 순수한 에우레시스(euresis: 내적 형상의 복사물)가 된다. 플로티노스는 미학의 영성적 체계에 대하여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지만 그 실제적 결과는 미메시스의 부정이었다. 그는 생성(becoming)보다 존재(being)를, 물질보다는 이데아의 우월성을 강조했고, 물질과 변화를 형이상학적 비존재(존재하지 않는 것)와 동일시했다. 이런 사상은 세속적 운명을 예술 속에서 재현된 가능성을 모조리 파괴했다. 

- 56쪽 



두 번째는 그리스도 스토리에 대한 설명이다. 성경을 종교 경전으로, 그리고 서양예술작품에서 표현된 다양한 종교적 주제나 소재의 원천 정도로만 여겼지, 그것을 하나의 서사 문학으로 접근하지 못했는데, 아우어바흐는 이를 분석하고 있었다. 




그리스도 스토리는 로고스logos의 비유(parousia) 혹은 이데아의 나타남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 51쪽 



그리스도 스토리는 개인적 생활의 강렬함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다양성과 풍부한 형식 또한 보여준다. 그 스토리는 고대 미메시스 이론의 한계를 돌파한다. 그 스토리 속에서 인간은 지상의 위엄을 잃어버린다. 모든 일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고, 고전주의에서 규정한 장르의 구분(합리와 우연의 구분)은 가뭇없이 사라진다. 숭고한 스타일과 천박한 스타일의 구분도 더 이상 없다. 복음서에는 마치 고대 코미디처럼 온갖 계급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부, 왕, 고위 사제, 세리, 창녀 등이 그들이다. 지체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희극 속의 인물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와는 전혀 다르게, 모든 사회적, 미학적 제한이 철폐된다. 그 무대는 다양한 종류의 인간을 허용한다. 그 무대에 오르는 캐릭터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혹은 각각의 개별 인물로 등장하든 여전히 다양성을 유지한다. 각각의 개인은 온전하게 합법화되며, 그 합법화는 사회적인 기반과는 무관하다. 그의 현세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그의 개성은 완전히 개발되며, 그에게 일어난 일은 고상하지도 천박하지도 않다. 예수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베르도도 엄청난 굴욕을 당한다. 그리스도 스토리가 갖고 있는 자연주의(자연스러운 사실주의)는 깊이나 넓이에 있어서 전례 없는 것이다. 고대의 시인이나 역사가들은 인간의 사건을 이런 방식으로 서술하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 53쪽에서 54쪽 



세 번째는 단테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계다. 단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깊이 심취해 있었으며, 그 철학이 단테의 문학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글을 쓸 때 단테처럼 철저하게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쓰는 사상가는 없을 것이다. 이런 단테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퀴나스 철학이었다. 그가 믿고 따른 아퀴나스 철학은 개성적 형태를 중시하고 그에 대한 묘사를 정당화했다. 성 토마스는 이 세상이 하나의 이미지를 따라 창조되었다는 신학적인 교리로써 사물의 다양성을 설명했다.(...) 따라서 천지창조 전체를 두고 볼 때, 다양성은 완전함의 반대 명제가 아니라 그것의 적절한 표현이다. 더욱이 우주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에 적극 참여하며, 그 움직임은 우주의 형식들을 움직여 자기-완성으로 나아간다. 이런 행동의 능력이 발휘되는 과저에서 다양성은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필요한 과정이다.

- 178쪽에서 179쪽 



단테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세속적 자연주의는 아퀴나스 철학에 기반해 있는 셈이다. 마치 고딕 자연주의처럼. 


 

책 뒤에 수록된 '인명-용어풀이'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잘 알려져 있는 철학자에 대한 설명보다 가령 사랑이나 천국, 연옥 같은 단어에 대한 풀이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것이었다.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책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읽어야겠지만, 이 번역서 자체의 완성도도 나쁘지 않고 강력하게 추천한다. 꽤 밀도가 높은 책이라 읽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것이다. 


아래는 사랑이라는 용어 풀이에 실린 아퀴나스의 사랑에 대한 정의다. 선한 것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것일까. 선미(kalokagathia) 의식은 그리스의 것이라 여겼는데, 중세 후기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선을 원함(velle bonum)이다. 자기 자신에게 또는 남에게 선을 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이기적 사랑과 우정의 사랑으로 나뉜다. 사랑의 고유한 원인은 선이다. 사랑은 사람의 본성에 타고난 것이나 그 본성에 어울리는 것이다. 악이 선'처럼' 나타날 때 악을 사랑하게 된다. 아름다움(pulchrum)은 선과 같은 개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름다움의 소유는 보는 것 또는 인식에 있는데, 선의 소유는 사랑 속에 있다. 사랑의 가까운 원인은 선에 대한 인식이다. 이 인식이 없으면 그것을 결코 욕심낼 수 없다. 사랑의 결과는 상호 침투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것을 주는 자가 그것을 받는 자 속에 있고, 또 반대로 사랑 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 속에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엑스터시(황홀)는 사랑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영혼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사랑의 대상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격정과 질투는 사랑의 결과이다. 강렬한 사랑은 그것을 반대하고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다 물리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가 행하는 모든 것의 원인이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2부 1편 중에서(367쪽 재인용) 

 


아우어바흐(1892-1957) 



단테 - 10점
에리히 아우어바흐 지음, 이종인 옮김/연암서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눈바람이 부는 바다 앞에 서서 수면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눈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 도시의 거리에나 그 도시 앞 바다에나 눈을 쌓이는 법이 없었다. 자주 만나면 사랑이 싹틀 것이라는 바람 대신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 떠나는 것처럼, 몇 시간 동안 내린 눈은 내린 시간 보다도 더 빨리 녹아 사라졌다. 


바다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통영은 그 도시 근처에 있지만, 자주 가지 않았다. 자주 갈 일도 없었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었다.




윤이상 음악당이 통영국제음악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고 윤이상 선생의 세계를 알려고 해도 알지도 못할 이들이 나서서 명칭을 바꾸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분개했다. 


'내 고향 남쪽바다'라고 일컫어지던 고향 앞바다를 떠올리며, 잠시 향수에 젖었다. 그러고 보니, 내 고향엔 세계적인 조각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쓰며 깨닫는다. 


어젠 사람들 앞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그의 신앙심과 절망을, 그의 예술과 매너리즘에 대해서. 미켈란젤로에 대해 한 권을 책을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 


Michelangelo Buonarotti

Rondanini Pietà (론다니니의 피에타)

1552–1564, height 195 cm

Castello Sforzesco, Milan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동네에 까페 하나가 생겼다. 몇 번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 까페 한 쪽 면의 창문들은 어두워지면 저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강변북로를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처럼 수놓는 자동차 불빛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야경을 가졌다. 사무실의 술자리를 줄이니, 동네 술자리가 늘어났다. 동네 술자리가 마음 편하다. 술을 많이 마실 염려도 없고 많이 마시더라도 걸어서 집에 가니 걱정 없다. 


비가 많이 내렸다. 내린 비만큼 내 치아와 잇몸 상태도 엉망이었음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매주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걸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안다. 우리는 나이 드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늘 상투적으로 말한다. "몸은 늙었으나, 마음만은 이팔청춘이야"라고. 


그런데 저 상투적 표현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우리 마음과 몸을 병들이는가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는다. 청춘의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험해본 이는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무수한 도전과 실패로 얼룩져 중년의 몸과 마음까지 영향을 주는 그 이팔청춘! 이팔청춘이 뭐가 좋다고. 


그래, 이팔청춘 시절 그대의 사랑은 행복했나요? 그대의 학창 시절은 즐겁고 유익했나요? 그대의 대학 시절은 바람직했나요?  


제대로 된 사회는 그 나이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대로 된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 없이 오직 대학 입학만을 준비한다. 사춘기의 철없지만 향기롭게 들뜬 사랑에 대해서도 그 어떤 조언도 받지 못하고, 머리 가득하게 퍼지는 성적 유혹에 대해서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아파할 뿐이다. 그렇다고 대학이 딱히 나은 것도 아니어서,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성적 방종이거나 자유, 혹은 학문 탐구에 대한 무책임함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갑자기 괴롭히는 것이 생기는데, 그건 취업 준비다. 



이팔청춘이 한참 지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와인을 마셨다. 비는 쉴새없이 내렸고 투명한 유리잔은 채워졌다가 비워지길 반복했다. 말은 끊겼다가 이어졌고 시간은 쉼없이 흘렀다. 어느 새 나이가 들어 이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게 남은 우리들에게 청춘이란 무엇일까. 늙어간다는 건 무얼까. 인생은, ... ... 


그저 의미없이 지나갈 뿐이다. 아. 다행이다, 까뮈와 베케트를 읽어둔 것은. 까뮈와 베케트는 내가 젊었던 시절, 이 생이 아무 의미 없음을 알려주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살아있는 것이다.


치과 치료가 있는 날이면 아련한 고통에 정신이 없다.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그나저나 목요일 통영에 가는데, 가서 뭘하지. 회의를 끝내고 뭘하지. 혹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통영에 사는 이가 없었나?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알렉상드르 졸리앙(지음), 성귀수(옮김), 책읽는수요일 




"오늘은 어제보다 덜 나빴다. 그런 오늘보다 내일은 좀 더 나을 것이고, 그렇게 계속 나아질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하나의 원칙만을 고수할 것이다. 마치 살아서 다른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주님이 나를 세상에 내신 이유가 오직 그것뿐인 것처럼, 그리하여 오로지 그 하나를 이루는 일에 나의 구원이 달려 있는 것처럼, 모든 사소한 일, 작은 기도, 세세한 규칙들을 철저히 수행해나갈 것이다."

"이 원칙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전략을 다하며, 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굳건히 매진할 것을 내게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런 원칙이 일상의 처음 취하는 동작에서부터 꼼꼼히 적용되어야만 한다."

- 교황 요한 23세, <<영혼의 일기>>, 1962년 12월 23일 (54쪽에서 재인용) 



부끄러웠다. 졸리앙의 글을 읽으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어느 순간 세속에 물들어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적당히 타협을 하며 사소한 나쁜 행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잊고 지내던 것이었다. 소년이었던 시절, 나는 내 삶의 지향점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사랑은 날 떠났고, 나에게 실패했으며, 모든 것들은 내가 원하던 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내 착오였다. 그 착오의 영향은 꽤 심각해서 아직도 허우적되고 있다. 그 때의 나는 오만했으며, 타인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터무니없는 낙관주의로 날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었지만, 그것을 알지 못했다. 



졸리앙은 그런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다만 그의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 자신이 벗어나고 했던 그 불완전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싸워왔음을 이야기할 뿐이다. 인터넷 서점(혹은 책 표지)에서의 저자 소개는 아래와 같다. 



1975년 스위스 시에르에서 트럭운전사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사 직전에 기적적으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갖게 되었고, 3살 때부터 17년간 요양 시설에서 지냈다. 장애로 인해 불편과 고통, 난관에 수없이 부딪히면서 그는 내면에 잠자고 있는 인식에 대한 강렬한 갈증을 느껴 철학에 빠졌다. ... 

- 인터넷서점 작가 소개 




"실재성과 완전성을 나는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2부 정의 6



스피노자의 저 한 마디는 졸리앙의 인생 전체를 위로 끌어올린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이 표현은 아래의 글귀로 이어진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바 그 직관, 즉 우리 모두가 불성을 타고 났다는 위대한 깨달음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 94쪽 




이 책은 '내려놓음'에 대한 명상과 그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졸리앙은 나직한 목소리로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오가며 부족한 자신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육체를, 자신의 일상을 통해서 그것을 담담히(아마 처절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적는다. 그런데 그 울림이 작지 않아서, 책을 한 번 잡으면 놓지 못한다. 


나는 알렉상드르 졸리앙에 대해서는 신문 칼럼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역시 이 책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마치 짧은 힐링 여행 같은 책이라고 할까. 마음의 여유를 잃기 쉬운 요즘, 이 한 권의 책이 휴식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추천한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 8점
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성귀수 옮김/책읽는수요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셰익스피어의 시대 The Age of Shakespeare 

프랭크 커모드(지음), 한은경(옮김), 을유문화사 크로노스 총서 11



책은 얇지만, 의외로 단단하고 빽빽하다. 셰익스피어(1564 ~ 1616)가 살고 활동했던 시대 전후로 셰익스피어 극작품에 영향을 주고 받은 다양한 환경적 요인이나 연극 제작, 그리고 개별 작품에 대해 분석하고 언급하고 있으니, 당연히 쉬운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독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 번역서에 대한 일반 독자의 반응은 좋지 않다. 너무 어렵다는.  


그러나 미 컬럼비아대 비교문학과 교수인 제임스 샤피로(James Shapiro)는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 1919~2010) 교수 생전에 '현존하는 최고의 셰익스피어 안내자(reader)'라고 평가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rank_Kermode)


이 책의 대부분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연극 제작을 둘러싼 다양한 환경을 서술하고 분석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셰익스피어 극작품의 일부를 인용하여 어떻게 셰익스피어에게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보여준다. 


엘리자베스 시대(이 용어는 편의상 제임스 1세 초까지 망라하기도 한다)는 전문 연극이 발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최초의 대중연극은 주로 임시 극장에서 공연되었고, 심지어 여인숙의 뒷마당이 무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6세기 후기에 이르러 런던에는 최고 3,000명까지 수용할 수 잇는 전용극장이 여럿 생겨났는데, 이런 극장은 주로 극단주들이 소유했다. 대개 극단은 과거 길드와 구조가 흡사했으나, 셰익스피어의 극단은 다소 달랐다. 단원들이 연극은 물론이고 극장까지 소유했기 때문이다. '주주'들은 연극을 위탁하고 소유하고 출연했으며, 셰익스피어의 경우는 직접 연극을 쓰기도 했다. 그를 위시하여 일부 동업자들은 상당한 수입을 올리며 자산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건 나중 일이었고, 엘리자베스 여왕 초창기에 극장 공연자들은 여전히 곡예사나 순회 공연자, 방랑자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 10쪽 


(* 참고. 엘리자베스 1세(1533 ~ 1603), 제임스 1세(1566 ~ 1625). 엘리자베스 시대는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반으로 이해하면 된다. 예술사에서는 매너리즘 시대로 이해하는 기간이다.)


따라서 일반 독자에게 권하기는 다소 난이도가 있는 책이다. 더구나 2004년도에 런던에서 출간된 이 얇은 책을 내기 전 프랭크 커머드는 이미 10권 이상의 셰익스피어 저술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목차도 아래와 같다. 


- 종교개혁과 왕위 계승의 문제

- 엘리자베스의 영국

- 셰익스피어, 런던으로 가다

- 로드 체임 벌린스멘 극장

- 극장

- 초기의 셰익스피어 

- 글로브극장

- 글로브극장의 연극

- 블랙 프라이어스 연극 


셰익스피어 연극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은 보물단지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 그 정도 되려면 전문연구자일 테니, 프랭크 커모드를 모를 일 없을테지만.  영미문학에서의 프랭크 커모드는 상당한 유명한 연구자이며, 오래 전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이라는 번역서가 나오기도 했다.  나 또한 이 책을 꽤 열심히 읽었으니, 프랭크 커모드의 책은 두 권을 읽은 셈이다. 


이 책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 영국 상황에 대해서도 간단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의 처녀성은 찬양과 희망을 표출한다는 은밀한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29쪽)라는 언급은 꽤 흥미로웠다. 왕이 아니라 여왕, 더구나 결혼을 하지 않은 여왕은 영국 귀족 사회에서도 상당히 골치거리였다고 한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주요 극작품에 대한 간단한 언급도 등장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라 인용해본다. 먼저 <<햄릿>>에 대한 언급이다. 


이렇듯 다양한 스타일이 구사되는 이면으로 가족의 이중성과 그 외 여러 이중성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배어있다. 햄릿에게 클라우디우스는 삼촌이자 아버지이며, 그 자신이 조카이자 아들이다. 끔찍한 현실이다. 자신의 어머니와 계부가 몸을 합했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간통이 실은 근친상간이라는 것은 혐오스러울 따름이다. 

대사는 언어학적인 이중적 의미로 가득하며, 전례가 없을 정도로 중언법이 많이 사용된다(중언법은 '하나를 통한 둘'을 뜻하며, 하나의 복잡한 개념이 형용사와 명사 대신 접속사로 연결되는 두단어로 표현된다.[옥스포드사전]). 사전에서는 중언법의 예로 <<햄릿>>이 인용된다. "의전법으로 잘 비준된 것 Well ratified by law and heraldry"(1막 1장 87).  이 때 '법과 의전 law and heraldry'은 '의전법'을 의미한다. 

- 148쪽 


아래는 <<맥베스>에 대한 서술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미래는 다의적이다. 시간은 다의성의 대리인이다. 던컨을 살해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 순간 어느 쪽으로도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시간이 정지된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 순간은 의도와 행위 간의 간극이며, 그 사이에 과거와 현재, 미래는 다의적으로 하나가 된다. 정당한 것은 사악한 것과, 실패한 것과 성공한 것과, 미래와 순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 176쪽 



영문학 전공자에게는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혹시 이 글을 읽게 되는 을유문화사 관계자가 있다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크로노스 총서를 계속 발간하는 것을 검토해볼 것을 권한다.아마 국내에 번역된 여러 인문 시리즈들 중 이 시리즈가 단연코 최고라고 여기는데, 나오다가 중단되었다(참고로 이 시리즈의 1권으로 번역된 폴 존슨의 <<르네상스>>는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최고의 르네상스 개론서이다). 그러니 다시 나오기 시작한다면, 나라도 열심히 소개할 테니 .... )






셰익스피어의 시대 - 10점
프랭크 커모드 지음, 한은경 옮김/을유문화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세계의 박물관 미술관 예술기행 - 유럽편 - 

차문성(지음), 책문(성안당), 2013년 초판/2015년 장정개정판 


좋은 책이다. 비전문가인 저자가 전문가가 되어간 과정이 녹아있다. 성실한 내용과 애정이 담긴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박물관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특히 유럽 주요 도시에서 가기 쉬운 미술관/박물관을 선정해 보여주었다는 점도 이 책이 꽤 실용적임을 증명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 흩어진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이 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책 제목 그대로 예술기행이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생페테르부르그 등의 도시에 있는 미술관/박물관에 대한 소개와 그 곳에 대한 간단한 느낌이나 감상, 그리고 소장 전시되고 있는 주요 작품들에 대한 짧은 안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내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매우 부러웠다. 한 달 이상 파리에 체류하면서, 일 드 프랑스와 생-제르맹 거리를 오가며, 갤러리에만 있었던 건 아닌가 후회를 한다. 누구나 다 가는 루브르와 오르세만 간 걸 이제서야 후회하다니. 다시 가게 되면 꽤 오래 머무르며 작품들을 보고 와야 겠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작품들 대부분은 이미 여러 미술 관련 서적에서 본 내용들인 탓에, 빠르게 읽었다. 서양미술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꽤 도움이 될 내용이었다. 


대부분의 유럽 여행객들이 미술관 관람이 목적이 아닌 만큼, 이 책에서 언급된 도시에 가게 될 경우, 이 책은 꽤 유용할 수 있겠다. 



렘브란트, <예루살렘의 멸망을 탄식하는 예레미야>, 1630,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그렸다. 렘브란트가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깊이를 가진 작품을 그렸다는 건 놀랍기만 하다. 아마 그만큼 신앙심이 깊었을 것이다. 예레미야의, 고통을 지긋이 누르며 곤혹스러워하는 얼굴 옆으로 불타는 예루살렘이 보인다. 바로크 특유의 명암법은 화면 전체를 감싼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하지만 밝은 쪽은 슬픔으로 가득하고 어둠 속으로는 절망감이 감돈다. 그리고 팔을 괴고 있는 모습 아래로 성경이 보이고 그 밑으로는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로부터 받은 금은보화로 보이는 것들이 놓여져 있다. 전체적으로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통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바로크의 고민이 보인다. 확실하 바로크는 과거를 향하지 않는다. 미래로 열린 양식이다. 한 쪽은 밝고 한 쪽은 어둡다. 그러나 우리 시선은 어두운 쪽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래서 저 반짝이는 금속물질의 물건은 참 흥미롭기만 하다. 


이 책에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을 소개하면서 이 작품을 언급했다. 위 설명은 내가 별도로 작성한 것이라 책 내용과는 다소 다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작품이 눈에 들어왔는데, 마네의 베르트 모리조 초상화와 렘브란트의 위 작품이었다. 마네와 베르트 모리조의 관계에 대해선 다음에 한 번 언급하기로 하자. 혹자는 19세기 미술사 가장 아찔한 로맨스라고도 하니 말이다. 대체로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미술사 책을 읽기는 하나, 그건 일 년에 한 권 될까 말까이다. 한때 책을 내기도 했고 강의도 하기도 했지만, 그건 십 수년 전 일이고, 마지막 잡지 기고를 한 것도 꽤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우연히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 요즘 아내의 일로 커뮤니티 자치 활동을 잠시 도와주고 있는데, 그 곳에 계신 분의 제안으로 한 차례 강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래는 간단한 강의 개요다. 막상 적기는 쉽게 적었으나, ... 도판 찾는 게 일일 듯 싶다. 요즘은 워낙 온라인 아카이브가 잘 되어 있어 쉽게 도판을 찾을 수 있으나, 정확하고 적절한 도판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인지라, 꽤 시간이 걸릴 듯 싶다. 동네에서의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 공개적인 장소, 가령 북까페 같은 곳에서 한 번 더 하면 좋을 것같기도 하다. 이런 강의도 자주 해야 까먹지 않는데, ... 머리가 굳어져서 큰 일이다. 


*** 

 

미술의 역사를 통해 배우는 현대미술감상법 


우리의 마음과 예술의 경향 

‘예술은 없고 예술가만 있을 뿐이다’라고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의 첫 문장으로 적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 뒤에 놓여진 예술가의 삶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그 때의 예술작품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중세 말의 고딕 성당을 알기 위해선 그 당시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깊은 공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13세기의 유럽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고 솔직하게 바라볼 때 비로소 예술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태도가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현대의 어떤 사람은 조용히 교회당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아침저녁으로 묵상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교회당 대신 거리로 나가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의 차이는 이와 비슷합니다. 신의 존재와 신앙의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각기 다른 마음과 태도도 그 시대의, 그 나라의 예술작품을 만듭니다. 





생-드니 성당. (1135 - 1144)



매너리즘과 현대 

예술사에서 매너리즘(마니에리즘)은 16세기 중후반의 지배적인 양식을 의미합니다. 일종의 퇴보로 이해되었던 탓에, 이 양식의 명칭은 경멸적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그 시대의 예술은 가장 현대적인 예술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우리는 예술 양식이 어떻게 경멸당하고 다시 받아들여지게 되는가 흥미로운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 당시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게 됩니다.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예술은 크게 고전주의(고전적 예술)과 낭만주의(낭만적 예술)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양식에서의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시대와 예술가들, 그들의 작품에 대해 이해하며 현대 미술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도 함께 탐구합니다. 


라파엘로, <초원의 성모>, 1505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 

서로 대립되는 양식으로 여겨지지만, 이는 대립되는 양식이 아니라 우리가 외부 세계와 마주할 때 취하게 되는 양식적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자연주의와 기하학주의가 함께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자연주의 작품과 기하학주의 작품을 함께 비교해가며 예술가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이해하도록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해봅니다. 


이집트, <사자의 서> 일부, BC.1275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으로 보는 현대미술과 우리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소장품기획전>은 현대 미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 미술 작품 안에 그러한 것들이 어떻게 녹아 있는지 살피고, 현대 미술 작품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론 뮤익, <침대에서>, 2005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왕따의 정치학

조기숙(지음), 위즈덤하우스, 2017 



정치학이라는 단어가 있어 정치학 이론서라고 오해하기 쉽다. 더구나 아래 동영상을 보면 꽤 전문적인 정치 이론서라는 면모까지 풍긴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이 책은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기초로, 조기숙 교수의 개인적인 경험들과 의견(노무현과 문재인에 대한 왕따 현상),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언론사들의 사례들,이해를 돕기 위한 서구 정치사의 변화와 관련된 이론들이 다소 어수선하게 전개되는 대중 정치 서적에 가깝다.  




지식인 중에 이명박과 노무현이 다르지 않다며 '노명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최근에는 친박과 친문이 패권주의적이라는 점에서 같다며 반문연대를 지지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흑백을 구분하지 못하는 반지성적 태도다.

나는 조동문과 한경오가 같다는 말을 절대로 할 생각이 없다. 분명히  이들 언론은 다르다. 하지만 진보언론이 노무현과 문재에게만큼은 가혹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 325쪽 


저자가 이 책을 쓴 계기는 위 인용문과 같다. 그래서 책 내용 대부분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할애되어 있으며, 상당히 설득력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이전/이후의 여러 진보 언론의 다시 행태를 떠올리게 만든다. 


처음부터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내가 기고하던 고정 칼럼이 노무현에게 유리하면 수정되거나 삭제되거나 이상한 제목이 붙는 일을 겪으면서 언론의 부당함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 12쪽 


책의 서두에서 노무현 정부와 거리를 두었던 조기숙 교수는 자신이 어떻게 친노가 되어갔는지 묵묵히 서술하며, 중후반에는 정동영 의원과의 관계를 이이야기하며 자신이 정치권에 몸 담게 되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노무현 -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야당 정치 지형의 변화를 통해 친노, 친문 프레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뿐, 이 책의 대부분은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가 어떻게 친노프레임, 친문프레임을 어떻게 확대 재생산하며,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나 문재인 후보에게 부정적인 어조로 기사를 내보내는가에 맞춰져 있다. 실제 기사를 사례로 하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황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좌우언론은 역대 가장 민주적이었던 노 대통령에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해 비판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90쪽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가 이념의 차이에게 기인한다고 보는 저자는 서구의 구좌파, 신좌파라는 구도를 가지고 와서 설명하는데,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될 것이다. 가볍지만 심각한 왕따 이야기들 속에 갑자기 서구 정치사에 대한 학술적 서술이 다소 뜬금없이 진행된다. 


이들 세대의 핵심 가치관을 '탈물질주의 post-materialism'라고 하는데 물질보다는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화를 연구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 교수는 유럽의 변화를 일컫어 '조용한 혁명 silent revolution'이라고 했다. 

- 171쪽 



잉글하트 교수의 책은 1977년도에 나왔으며 압축적 정치 성장을 겪고 있는 한국 정치에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선 논의의 여지가 있다. 또한 '조용한 혁명'의 결과가 에마뉘엘 마크롱이며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진 않지만, 현대 정치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의 현실 정치를 분석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재미있기는 하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많으며 좀 더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무현에게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사람은 말할 권리를 잃어버리는 게 한국 사회라는 걸 그 때 분명히 깨달았다. 사실 지금도 내가 팟캐스트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다른 영향력 있는 지면이나 방송에서 발언할 기회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 209쪽 


이 책은 정치학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한국 현실 정치의 이론화가 아니라, 왜 노무현과 문재인은 좌우언론 따지지 않고 왕따를 당하고 있는가이며,  이 점에서 이 책은 충분한 공감과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읽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다음 사라진 단어들을 보라. 친문이나 친노, 그리고 여타 많은 인물들. 이러한 언론들의 변신이 나는 놀랍기만 하다. 


우리 사회의 위기는 늘 지성 리더십이 초래한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에도 유림이 패거리 싸움을 할 때 서민들이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했다. 

- 327쪽 


마지막으로 이 책에 실린 도표 하나 올린다. 그리고 이번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우리모두 기원해보자. 




왕따의 정치학 - 8점
조기숙 지음/위즈덤하우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미학입문 Theory of Beauty :  An Introduction to Aesthetics 

H. 오스본(Harold Osborne) 지음, 김광영 옮김, 박우사, 1994



한창 공부할 때 사둔 책을 이제서야 읽는다. 지금은 구할 수도 없고 구해 읽을 필요도 없는 책이다. 1952년 영국에서 출판된 책이며 해롤드 오스본의 주저도 아니다. 번역이 딱히 좋은 것도 아니고 미학에 대한 충실한 이론서도 아니다. 저자는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아름다움(Beauty)를 가진 예술 작품에 대한 이론적, 미학적 논의를 이 책을 통해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름들은 한글로만 표기되어 정확히 누구인지 알기 어렵고 일부는 잘못 표기된 경우도 있어, 제대로 된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많은 인용문들은 어느 책에서 발췌한 것인지 알기 어려우며 그 번역을 신뢰하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최근의 이론들이나 관점에 기반하지 않아 미학의 기본적인 생각을 다듬을 수 있으며, 특히 예술작품론이나 감상론 부분은 잘 다루어지지 않는 영역이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오스본은 책의 서두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는 당초 파산적(破産的)인 것'(10쪽)이라고 적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오스본은 자신만의 과감한 주장을 전개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양한 관점에서 예술작품과 아름다움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기술한다.  

 

예술작품이란 이 사람이나 저 사람 또는 여러 사람들에게 때때로 현실화되어 보이는 영원한 가능성인 것이다. 

- 128쪽 


미학 전공자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픈 생각은 없다. 요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새 책을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냥 습관처럼 읽은 책에 대한 메모를 남기기 위해 이 리뷰를 적는다. 이 책이 궁금하다면 영국 아마존에서 구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 이제서야 인문학 책들이 읽히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없다. 허망하다. 



https://www.amazon.co.uk/dp/B0000CIBJR/ref=cm_sw_r_cp_dp_T2_3GOrzbM9WCKEM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선대인의 빅픽처

선대인(지음), 웅진지식하우스 



대중 경제학 책이라 여겼으나, 실제로는 주식 투자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겠다. 요점은 세계 경제 흐름의 큰 그림(빅픽처)를 보면서 투자해야 된다는 것. 일종의 가이드북이며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진 않다. 나로선 약간 실망했다고 할 수 있다. 초반엔 꼼꼼하게 정독하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대강 읽게 되었다. 주식 투자를 하고 있지 않으나,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터라 몇 가지의 지침이 될 만한 언급을 옮겨보자면 아래와 같다. 


투자의 기본은 리스크 관리

 - 30쪽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절대 원칙 

첫째,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투자 방법을 택해야 한다.

둘째, 투자를 하면서 과한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

셋째, 반드시 여윳돈으로 투자해야 한다. 

- 271쪽 


바이오 헬스케어(B), 금리(I), 색산업(G), 석유(P), 인도(I), 중국(C), 기술기업(T), 미국(U), 리스크(R), 환율(E)를 저금리 저성장 시대의 키워드로 주목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다. 2015년도에 출간되었으니, 벌써 2년이 지난 셈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 중 일부는 바로 앞으로 닥쳐온 것도 있다. 가령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 한국 정치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주가가 오른 상황에서 미국의 금리 정책에 대한 대응이 주목된다. 


한 나라의 경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이 정치적 불확실성인데, 사람들은 아직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제정책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실은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더 중요한데도 말이다. 


주식 투자에 대한 가이드북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책 말미에는 여러 추천 도서와 관련 웹사이트 정보를 제공하고 있음), 주식 투자에 대한 방향을 잡고 싶은 이들에겐 괜찮은 책이 될 수 있다. 


선대인 소장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관계로, 다른 책들도 한 번 읽어봐야 겠다. 






선대인의 빅픽처 - 8점
선대인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enuta Fanti Santantimo Rosso Sassomagno 2013

Fanti (Sant'Antimo) 

와인너리 홈페이지:  http://www.tenutafanti.it/en/home 



와인은 언제, 어떤 상태(마실 때의 온도라든가 보관상태), 어떤 장소에서 누구와 마시는가가 중요하다. 60%의 산지오베제와 함께 멜롯(25%), 시라(10%), 카베르네 쇼비뇽(5%)로 블랜딩된 이 와인은 부드러운 단단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그러나 이 가격대에서의 놀라운 수준이라는 것이지,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양한 품종의 포도를 성공적으로 브랜딩한 와인이라 할 수 있다. 


샵 가격은 2만원 대로 예상된다. 망원동 쪽 까페에서 5만원 정도로 판매되고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nte di Campiano Primitivo Di Manduira 2015 

와인너리 홈페이지 : http://www.contedicampiano.it/en/ 



100% 프리미티보(primitivo) 와인이다(미국의 진판델과 동일한 품종이다). 가벼우면서도 풍성한 느낌을 주는 와인이다. 바디감에 있어서는 약간 부족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가격대에서 이 정도의 풍미를 준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국순당에서 수입하고 있는 와인이며, 롯데백화점 와인샵에 가서 구할 수 있다. 


소매 가격이 1-2만원대로 예상된다. 와인바에서 4만원대로 마실 수 있었으니. (저 정도의 소매가격이라면 추천한다!) 


Manduria는 이탈리아 남동부 지역의 작은 도시다. 아래 지도에서 표시된 지역, 타란토Taranto 지방에 위치해 있는 해변도시다.  



아래는 Manduria 지역 사진이다. 가고 싶지 않은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사진출처: https://www.concertgebouw.be/en/event/detail/1442/Federico_Garcia_Lorca 




강의 백일몽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지음), 정현종(옮김), 민음사 




이 번역 시집은 시인 정현종이 스페인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다. 하지만 어떤 시들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지고, 옮겨진 그 언어에서 다시 또다른 언어로 옮겨지는 사이에도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집의 경우에 해댱된다. 채 마흔이 되기 전에 총살당한 이 스페인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자면,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첫 사랑을 만난 듯 가슴 떨리고 흥분된다. 


서정적인 강렬함이 지배하는 로르카의 시 세계는 후회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 청춘의 아름다운 무모함과 인생의 낭떠러지 앞에서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 사랑으로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자연은 그 무모함과 위험한 사랑을 지지하며 같이 노래 부른다. 


시들은 적절한 은유와 상징, 알레고리 또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독자는 스페인 그나라다의, 저 거대한 대지를 감싸고 도는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 사랑스럽기만 한 바람의 그늘 속에서 앉아 있게 될 것이다.  



산티아고 시를 위한 마드리갈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내 달콤한 사랑

공중의 흰 동백

햇빛은 희미하게 비친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어두운 밤에

잠든 은빛 풀잎들이

텅 빈 달을 덮는다


거리의 비를 보렴

돌과 수정의 비탄을

사라지는 바람 속에서 본다

네 바다의 재와 그림자를 


네 바다의 재와 그림자

산티아고, 태양에서 먼

옛 아침의 물이

내 가슴에서 떤










강의 백일몽 - 10점
페데리코 가르시아로르카 지음, 정현종 옮김/민음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he Death of Young Bara, Joseph Bara or The Death of Bara is an incomplete 1794 painting by the French artist Jacques-Louis David, now in the musee Calvet.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he_Death_of_Young_Bara




1793년 12월 7일 대서양 연안의 Vendee에서 왕당파 당원들에 의해 살해당한 13살의 소년 'Bara'. 


고전주의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서정적이며 슬프고 애처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어쩌면 자끄 루이 다비드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일 지도. 신고전주의는 의도된 고전주의다. 자끄 루이 다비드는 '혁명 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 작품을 그렸으며 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혁명의 적들인 '왕당파'들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을 가지게 만들게 한다. 정치적 예술의 대가로서의 다비드는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이러한 작품을 그린 것이다. 


어린 소년 바라는, 죽은 후 영웅이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의 순교자로 여겨졌다.  작품 속 Bara는 모래 해변에 알몸으로 쓰러져 있다.  Vendee이라는 곳이 해변 지방으로, 해변에 쓰러져 있는 것으로 그린 것이다. 





신고




얼음의 책

한유주(지음), 문학과지성사 




문장은 대체로 짧다. 그렇다고 긴 문장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의 호흡은 한결같이 짧고 반복적이며, 작가 한효주의 숨소리가 문장들에 어김없이 들어가거나 들어갈 것으로 계획되었던 '있다'와 '없다' 사이 어디쯤 자리잡고 앉아있었. 그 숨소리에 귀기울이며 나는 이 소설집을 읽는다. 그리고 읽었다. 계절과 계절 사이를 지나, 작년을 지나 올해 봄까지. 


그 사이 아이는 자라나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자기 주장을 펼쳤고,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이 들고 늙어가는 우리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아이가 상처 입으며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동안, 나는, 늙어가는 우리들은 우리 밖으로 나가 혼자 웅크리고 말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아름답게 수다스럽던 청춘이 사라지고, 그 청춘 옆에서 조용히 젊은 영혼을 어루만지던 책도, 언어도 얼어 간다. 그가 내 곁을 떠나고 그녀 주변을 맴돌던 그 화사한 미소도 사라진다. 


변화란, 어쩌면 과거의 상실이고 다시 오지 않을 사랑의 증거다. 아마 작가 한효주는 얼어버린 마음을, 잃어버린 단어, 혹은 어떤 대명사를, 따스함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스스로 움츠리고 가라앉고 조용해지며 팔을 내리고 손을 굳게 쥐고 입을 닫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침묵을 견딜 수 없어질 때쯤 해가 완전히 졌다. 실내등이 켜져 있었지만, 매우 어두웠다. - 206쪽  


결국 침묵 바깥으로 나갈 일이 없다. 변화 앞에서 침묵은 그녀의, 나의 유일한 무기였고 그 무기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건, 언제나 황혼 녘이다. 작가의 숨소리에서 주저하며 강요된 억제의 불편함이 느껴지는 건 나 뿐일까. 때론 글쓰기보단 우는 것이, 잔뜻 술에 취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나이 들고 보니, 글쓰기가 내 일상에서 저 멀리 달아나, 도망가, 내 곁으로 오지 않을 거리로 밀려나있긴 했지만. 


문장이 딱딱해지고 건조해지고 반복되며 있음과 없음에 매달리게 된다. 실험적 글쓰기가 아니라, 침묵 밖으로 나가기 위한 싸움이고 이미 일어난 변화에 저항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다. 얼지 않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다. 그렇게 작가는 나이가 들고, 변하고, 나도 이미 죽은 날이 더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변화, 참 싫다. 그렇게 얼어가는 건 더 싫다. 



얼음의 책 - 8점
한유주 지음/문학과지성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지음), 김욱(옮김), 책읽는고양이(도서출판 리수)




우연히 알게 된 이 책,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매우 산뜻한 울림을 가졌다. 어느 면에선 냉소적이며, 어느 순간엔 포기하는 듯 보이고, 때론 그냥 되는 대로 내버려두면서 일상을 사는 듯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낙관적이며 희망을 잃지 않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면까지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종교-카톨릭-가 큰 힘이 되는 듯 싶다. 그래서인지 자주 '운명'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책은 운명론적이지 않다. 도리어 실용적인 처세술에 대한 격언들, 저자 자신의 생각들이 담겨있다. 짧은 에세이들을 통해 그녀는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하며, 지지치 않기를 강력하게 말한다. 책의 서두에서부터 인내와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최선을 다해 기다리고 노력하면 언젠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은 탓이다. 


인간에겐 운명이 강제로 부과된다. 우리가 바꿀 수 없으므로 운명이다. 또 억지로 바꿔본들 부자연스럽고 아름답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감수하고 그 운명을 토양삼아 인생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운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위대함이다. - 45쪽 


또한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내길 기원한다. '불행한 사람만이 희망을 소유한다'(62쪽)든가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107쪽)고 말하며 원래 살아간다는 게 그런 것일 뿐이니, 희망을 버리지 버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타인의 장점을 깨닫는 것이 재능이라면 타인의 좋지 않은 점을 깨닫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본능이다. - 131쪽 


일본에선 매우 저명한 작가인 소노 아야코를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은 그동안 내 독서가 다소 편파적이었음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매우 작고 얇고 짧다. 카페에 앉아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그 울림은 꽤 길다. 또한 유쾌하고 긍정적이다.(또는 내가 소노 아야코를 읽을 수 있음을 그만큼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1931년생인 소노 아야코의 2015년 신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그동안 소노 아야코의 여러 수필집에서 발췌한, 일종의 편집본이다. 여든을 훌쩍 넘긴 그녀가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는데, 예전 글들을 모은 책이였던 셈이다. 그래서 일본 아마존의 평점은 상당히 낮다.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는 소노 아야코의 신간으로 알고 구입한 독자들이 실망하며 낮은 평점을 준 것이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 8점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책읽는고양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는 지도. 그래서 그 조각이나 파편들을 이어붙여 우리가 이해가능하거나 수용가능한 형태로 만들고자 하는 학문적/이론적 시도는 애체로 불가능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삶이나 그 삶 속의 사람들, 사건들, 이야기들을 분석하고 체계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그 조작과 파편들의 일부이거나, 그 일부를 묘사한 글이나 풍경이 전부이지 않을까. 그리고 기시 마사히코의 이 책,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그렇게 시작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주욱 늘어놓고, 그것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관한 생각'(7쪽)으로 시작되지만, 그 생각은 정리되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하고 '원래 이렇지, 뭐' 식의 자조로 끝난다고 할까. 그런데 이 자조 앞에서 우리들은, 독자들은 이론적이 아니라 심정적으로 무너진다. 기시 마사히코가 펼쳐놓는 사람들 앞에서, 사건들 앞에서, 이야기들 속에서 결국 마주하는 건 쓸쓸한 우리들이거나 어디로도 갈 곳 없고 공감받지 못하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기시 마사히코는 구술 조사를 주로 하는 사회학자다. 


사회학을 연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경우에는 한 사람씩 찾아가 어떤 역사적 사건을 체험한 당사자 개인의 생활사를 듣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왔다. - 9쪽 



여기에는 다 쓸 수 없지만 구술 조사의 현장에서는 이렇듯, 갑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수없이 일어난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은 구술현장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널려 있다. 사회학자로서는 실격인지 모르지만, 언젠간 '분석할 수 없는 것'만 모아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 13쪽 


이 책 속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대체로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호소력이 있으며 애잔하다. 


아버지는 수감되고 어머니는 증발되고 아이들은 보육시설에 맡겨졌으니 아무도 없는 방이 되었는데도, 악취와 해충에 대한 민원이 몇 번이나 되풀이해 들어왔다. 그래서 아파트 관리 회사의 입회 아래, 그 분이 여벌 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곳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가구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텅 빈 깨끗한 방이었다고 했다. - 62쪽 


학문의 테두리 안으로 모이지 않지만, 어찌되었건 우리 삶이며 일상이고, 우리가 길을 가며 마주치게 되는 이 도시의, 이 세계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딱히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냥 자신이 수행해왔던 사회학적 연구 속에서, 그 연구에 들어오진 못했지만, 저마다의 사연으로 누군가에게 알려지길, 읽히길, 그리고 읽혀졌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으로 이렇게 책으로 엮여져 나온 것일지도.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 가든 있을 곳이 없다. 그래서 언제나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 어디론가 가고 싶다. - 80쪽 


우리들은 '책 읽기'라는 행위를 통해 어떤 참여를 하게 된다. 소극적 형태의, 작은 공유이거나 공감이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다.  


네모진 종이책은 그대로 온전히 바깥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네모난 창이다. 따라서 우리는 책을 읽으면 실제로는 자기 집이나 거리 밖에 알지 못하면서도 여기에 없는 어딘가 '바깥'이 있고, 자유롭게 문을 열고 어디에라도 갈 수 있다는 감각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때가 오면 진정 창과 문을 열어젖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풀쩍 뛰어나가는 것이다. - 82쪽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타인에게 무신경한 현대의 우리들. 그렇다고 해서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타인에게 신경 써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이 좁은 지구에, 다 같이 모여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아도,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저마다의 쓸쓸한 사연을 안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만으로도, 아주 작은 위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는 것이 고통 뿐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름 아닌 바로 나에게만 시간이 흐르는 것'이라는 '구조'를, 우리는 일체의 감동이나 감정을 빼고, 서로 공유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안에서 각자가 고독하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각자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라는 것을 조용하게 나눌 수 있다.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도 있다는 단적인 사실을, 서로 알고 있다. 그것을 공유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 141쪽 


기시 마사히코(岸政彦)

사진 출처: http://www.hankookilbo.com/m/v/9716234b333841bb96d0651e0d0ad18a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 10점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이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뽑아 지금 이 순간의 느낌 그대로 적어볼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게. 아직도 나는 내 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않는다. 


나이만 앞으로, 앞으로,  내 글은 뒤로, 내 마음은 뒤로, 내 사랑도 뒤로, 술버릇도 뒤로, 뒤로, 내 몸도, 열정도, 돈벌이도, ... 모든 게 뒤로, 뒤로 밀려나간다. 


한때 꿈이, 이번 생의 끝에서 이 생을 저주하고, 다음 생에선 바다에 갇혀 그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채, 깊은 바다로 내려가 사냥을 하다 홀로 죽는 향유고래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적고, 읊조렸다. 그 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한 것이 십 여년 전이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도 않았고, 기억하지 않았고, 가을에 떨어져 겨울을 뒹굴다 다음 해 봄날 따뜻한 햇빛 속에서 때론 축축하게, 때론 건조하게 썩어들어갈 이파리를 그 꿈은 닮았다. 


다행히, 그런 이파리를 닮은 바다표범이 수조를 헤엄치는 모습을 보자, 내 마음이 놓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수조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말을 잃었고 얼굴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다, 그러자 물 속 자유를 얻었다,고 상상했지만, 계속 눈을 감고 있을 순 없다, 없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 가족과 함께 한강대교까지 걸어가 칼국수를 먹었다. 거리는 고요했고 마음은 황폐했다. 대기는 건조했고 높은 하늘은 나에게, 우리에게 무관심했다. 



하지만 무관심할수록 매력적인 하늘은, 때론 우리를 기분좋게 한다. 그게 참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렇게 오후가 가고, 또 오후가 가고. 어린 아이는 흑석동과 본동 사이의 숲에서 이루어질 숲 체험 교실을 기대하고 있었다. 도시에서의 유년기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나에겐 없는 풍경이다.


나에겐 있고 당신에 없는 걸 내가 줄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알고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건 거의 없었다,는 걸 태어난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운 어느 날 새삼 깨닫게 되었다. 4월, 5월, 내내 제안서만 쓰고 프리젠테이션만 하다 시간을 보냈다. 어떤 회사로의 이직은 계속 연기되다가 결국 물거품이 되었고, 그 일 여년 사이 두 세 군데의 입사 제의를 거절한 것을 후회하게 될 줄 몰랐다. 


많은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진행 중이고,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어느 중년의 봄날들 사이, 방통대 영문과 졸업 논문은 스케치만 하다 결국 작성하지 못했고, 어떻게든 마무리해보겠다는 생각만으로 <<Shakespeare and The Mannerist Tradition>>을 주문했다. 여름이 오기 전에 '제안서 쓰는 법'을 사무실 멤버들에게 강의할 예정이고, 그리고 나는 꿈을 꿀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향유고래는 이미 죽었고 내 마음은 식었다. 그 이전의 기억은 나지 않고 그 때를 수놓았던 무수한 단어들은 공기 속에 묻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해졌다.  


방통대 졸업 논문 스케치 속, 멕베스는, 그 가련한 멕베스는 마녀들의 예언에 자신을 놓아버렸다. 마녀들의 예언은 실현되지만, 그건 그리스 비극의 신탁이 아니다. 신탁 앞에서 비극의 영웅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장엄하게 자신의 고결함을 지키지만, 멕베스는 마녀들의 예언 위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지 못한다. 고대의 운명과 근대의 운명이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멕베스를 마주 하면서 드는 그 아련한 불쾌감은, 외부의 힘에,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와 닮아있어서 그런 걸까. 


 


늦은 5월의 수요일, 아침부터 덥다. 그대 목덜미도, 내 손도, 당신의 구두도, 내 마음도 쓸쓸한 땀으로 가득 찬다. 두 손을 모아, 행복한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길 기도한다, 마음 속으로, 이 비정한 도시가 떠나갈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친다, 외치고, 외치지만, 아무도 들리지 않는, 들을 수 없는, 그리고 흔적이 남지 않을 그 소리만 가득 안고 오늘 하루을 산다. 그렇게, 당신과 똑같이, 그렇게 하루를 산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1. 2017.05.24 18:35

    비밀댓글입니다




아마존 프라임 가입 고객의 상승세가 무섭다. 코스트코 멤버십에 대해선 한국 소비자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글로벌 유통 업체들이 한국 시장에 들어왔지만, 살아남은 곳은 코스트코가 유일하고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Business Insider의 새로운 보고서는 이러한 쇼핑몰 멤버쉽 프로그램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이건 미국 사례여서 다소 아쉽긴 하지만, 쇼핑몰, 즉 전자상거래(E-Commerce) 업체들이라면 다들 유료 멤버쉽 프로그램을 고민했거나 하고 있을 테니까. 최근의 '미미박스'와 같은 서비스를 쇼핑몰 기업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서비스였음을, 지금 후회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보고서 소개 기사에서는 '배송비 무료'와 '낮은 가격'이 유료 멤버쉽의 큰 혜택이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에선 이미 일정 금액 이상이면 배송비 무료이고, 배송비 자체가 너무 낮은 가격(택배 회사의 난립과 택배 기사들의 저임금으로 인해)*으로 형성되어 있어 미국 시장과 직접 비교하긴 어렵다. 


하지만 유료 멤버쉽에 대한 고객들의 저항이 낮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아마존의 경우, 프라임 고객들의 높은 구매액을 보더라도 유료 멤버십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 기사 출처: http://www.businessinsider.com/ecommerce-membership-report-2015-3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봄, 바람은 사무실 안으로도, 내 마음으로도, 그대 가슴으로도 밀려들지 않는다. 늘, 그렇듯, 우리에게 싱그러운 바람은 비켜나간다. 그렇게 청춘은 지나갔고 노년은 음울한 기운을 풍기며 낮게 깔려 들어와 자리잡는다. 노안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무심결에 했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젊은 시절 상상했지만, 마치 SF 영화와 같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안다. 


이런 비-일치는 우리 생애 전반을 물들이고도 모자라, 이 도시를, 이 나라를, 이 지구를 물들인다. 그래서 엘레야의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있다'고 말한 것일까. 그 때 그녀의 손가락 끝을 잘 살펴볼 걸, 지금에서야 후회한다. 


일요일 오후, 몇 시간 일을 하고 난 다음, 남은 일을 체크하곤 집에 가긴 틀렸다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봄날은 가고, 주말은 지나간다. 


우리의 희망은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을까. 과연 그럴까. 주말의 여유가 그리운 어느 봄 일요일이 조용히 사라져간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지금 페이스북은 정치 싸움 중이다. 각자 편을 나누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야기를 퍼다 나른다.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여는 즐거운 이벤트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한국의 정치 지형은 너무 형편없고 몇 명의 후보는 누가 봐도 함량미달인데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만만치 않다(일부 국민의 정치에 대한 이해나 식견이 한참 모자른다고 볼 수 밖에 업다고 말하는 너무 심한가. 하긴 트럼프도 만만치 않았으니, 여기나 거기나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도덕 수준은 형편없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치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정치에 대한 이해나 분석력이나 판단이 희미해지는 듯 싶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학자나 정치평론가, 전문가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해선 안 된다는 건 아니다. 도리어 지지하는 편이 낫다. 나 또한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대한 선호를 분명히 밝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편파적인 의견만을 고수할 땐, 해당 후보의 캠프로 들어가는 편이 낫다. 편파적인 객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평론가들은 자주 욕을 먹기 마련이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독자들을 설득하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자신의 의견을 지킬 때, 비로소 평론가의 명성이 쌓이는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객관성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주장만을 나열하곤 끝이었다. 결국 나도 나도 다소 화가 나서 친구 끊어야 했다. 아래는 친구를 끊으면서 짧게 단상을 적어보았다. 아마 정치평론 뿐만 아니라 다른 평론들이 이와 비슷해보이기에 블로그에 옮기고 저장해둔다.


*   *

2017년 5월 6일 저녁에 쓴 메모. 



(어떤 분야이든지 간에)평론가는 (무조건) 편파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편파적일 수 있다. 그 주장(누군가의 눈에 보기에 편견으로 가득 찬 자기주장)은 자신의 신념이며 현재이고 미래이다. 그런데 그것을 툭 던져놓고 그 주장 밑에 무수히 달린 댓글들을 통한 (경제적이지 못한)논쟁 중에 누군가가, "왜 댓글에 답글을 달지 않고"(사람들끼리의 논쟁을 불러일으키는가)라는 문구를 읽고 난 다음 바로 페친을 끊었다.


(다소 이해는 가지만)그 신념 - 보수/진보 구도를 깨기 위해선 새로운 후보가 나와야 된다는 - 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과연 한국이 보수/진보 구도였던가 싶다. 한국은 이때까지 일당 독재 구도였다. 늘 정치적 주도권은 보수우파(내가 볼 때 수구 꼴통이며, 'conservative'라는 단어가 아까운)를 중심으로 한 헤쳐모여 구도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많은 진보적 인사들이 보수로 배를 갈아탔다. (왜 배를 갈아탔는지도 의문이지만)


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당선되었고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좌우 막론하지 않고 공격을 받았다(심지어 탄핵을 받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법적인 심판을 받은 후에도). 심지어 강준만 교수는 마키아벨리즘을 멈춰라고 소리 질렀다(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즉 보수우파는 늘 공격자의 입장에 서 있었으며 기득권과 함께 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매체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할 수 있는 (무척 합리적인 단어들로 포장된) 무수한 표현들을 만들었다. 조중동 뿐만 아니라 한겨레, 프레시안, 오마이에서도. 그런데 그 표현들이 MB가 들어서자 (참 흥미롭게도) 표현의 빈곤함을 드러냈다. 그 사실이 너무 슬펐지만, 그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몰랐던가)


정치는 지정학적 구도나 평형의 문제는 아니다. 그건 신념의 문제이며 가치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신념과 가치에 기반한 미래의 문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를 담보로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반대로 미래를 가지기 위해 현재에 대해 모험을 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무수한 이들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인생을, 삶을 던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온 몸을 던지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인이 가져야 하는 첫번째 미덕이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문과 심 이외엔 없다(아! 얼마나 안타까운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길 "그의 성격이 그의 운명이다."


그녀의 성격을 따라, 그녀의 운명을 따라 대한민국이 침몰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이럴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은 단정한 언어로 명확한 평가를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냉철한 현실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먼 미래를 보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이 점에서 헤겔의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 녁에 날아오른다"라는 표현은, 지식인의 슬픈 운명을 이야기한 것이다. 결국 (정치적) 상황 정리가 다 끝난 다음 지식인은 거기에 한 마디 덧붙인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그러면 안된다고 헤겔에 기대어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선 끝까지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주장은 늘 그렇듯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어떤 기반 위에 있어야 한다.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까닭에, .... 그러나 페친을 끊었다. 평론가는 편파적이어야 하지만, 그 주장이 너무 편파적이어서 끊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어떤 것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래야 평론가다.


그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평론가가 아닌 지지자일 뿐이다. 아마 그에겐 5천명 중의 한 명이겠지만, 나에겐 내 타임라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함으로 의미 깊은 페친이었음을. 내가 정치적인 이유로 페친을 끊는 건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오랜만에 르몽드 디플로마크 한국어판 4월호를 읽으며 자크 랑시에르의 인터뷰 일부를 옮긴다. 끔찍하고 지독한 분석이지만, 동의하게 되는 건, 실제 이렇게 변했는지도 모를 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쎄다. 어떻게든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놓으면 안 된다. 그냥 선거 때 반짝하고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계속 지켜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참여해야 한다. (참으로 말은 쉽구나, 쉽지!)   



"대의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애매모호한 성격 외에도 국민들이 대표자를 선출함으로써 자신들을 표현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국민은 정치과정에 선행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의 결과물이다. 어떤 정치 시스템을 갖추느냐에 따라서 그에 따른 국민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또한 대의제는 사회의 일반적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사회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관점에서는 계몽된 지주들이 그런 계층이었다. 대의제의 결과로 국민들은 사진들의 합법적 대표자들이 이런 계층 출신일 것으로 여기며, 투표를 통해 이를 정기적으로 재확인한다. 대의제는 전문가들을 위한 제도로 점차 바뀌어갔고, 이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이 제도는 자체 역설을 생성하게 됐다. 국민들은 전문가들이 자신들을 대표하기보다는, 그들이 자신들을 정말로 그대로 구현하는 화신이 되어주기를 갈망하는 신화적 사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선거 때마다 재현되는, 점차 저질이 되어가는 한 편의 연극과 같다."

- 자크 랑시에르 (* 르몽드디플로마크 한국어판 4월호에서 인용)  



*   * 

몇 해 전에 읽었던 랑시에르 책에 대한 독후감. 

2012/05/13 - [책들의 우주/이론] -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4월 5일 

혼란스러운 사각형의 냉동, 냉장 공간 탐험 끝에 만난 또띠아, 치즈, 오래된 소시지. 늦은 퇴근. 혼자 식탁에 앉아 먹는 맥주. 어쩔 수 없이 아저씨가 되어가는 밤의 쓸쓸한 어둠.




4월 7일 

#혼술 생활의 연속. 아슬, 아슬, 하늘, 하늘, 흔들, 흔들, 빙글, 빙글, 그렇게 #혼술 #중년  



4월 24일 

혼자 술만 마시다 나이가 들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을 때, 찾는 건 그 때 그녀,들,목소리,들,그,손길,들,그,술자리,로 이루어진 대명사들. 

책상에 앉아 이리저리 흩어진 내 현재를 추스리다가 '내 길이 뭘까', 하고 생각했을 때, ...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척 맨지오니의 저 LP가 어디 있는가 찾다가 그만 두었다, 술에 취해. 몇 해 전 일이다. 혹시 결혼 전 일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술에 취한 채 이 LP를 찾았는데,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사이 나이가 든 탓에 찾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도 있다'서술어이 가지는 느낌은, 젊었을 때는 '가능성'이었으나, 나이가 들면 무너진 터널 앞에 서 있는 기차같다. '수도 있다'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무모하게 시도했다는 의미다. 가령, '그녀와 키스할 수 있었는데', '그녀에게 고백할 수 있었는데', 혹은 '사랑하던 그를 붙잡을 수 있었는데' 따위의 표현들과 밀접한 연관를 갖는다.


결국 생명이란 생명의 지속과 연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그 시작은 작은 만남과 사랑으로 포장될 것이다.


 '수도 있다'는 서술어의 사용은, 아쉽다는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건 가능한 일이었음을 주장하기 위한 첫 계단이다. 애초 불가능한 것에 대한 도전(무모한 시도)을 가능성의 회상으로 바뀌고 기적의 출현(열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결국 나는 LP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고 대신 다른 LP를 찾아 틀었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오역이지만, 그렇게 굳어진)의 '러브이데아'를 들으며 제니퍼 제이슨 리가 분한 트랄라를 떠올린다. 


결국 삶이란, 우리가 어떻게 어긋나는가를 하나하나둘 되새기며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 되새기지도 않고 죽는 이들이 한없이 부럽기만 저녁, 몇 주 동안 계속된 치통과 함께 불안한 미래는 장막처럼 내 앞에 드러누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도 'Feels So Good', 'So Good'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1. 2017.04.21 05:04

    비밀댓글입니다

    • 지하련 2017.04.24 13:37 신고

      오랜만의 댓글. 감사합니다. 벌써 이십년 가까이 지난 영화지요. 음반도, OST도. 그렇게 ...




뉴스레터를 읽다, 그만 놀라고 말았다. 테슬라의 시가 총액이 GM이나 포드보다 많다는 사실에. 심지어 2016년에 net loss(순손실)이 발생했는데도. 


한편으로는 무척 부러웠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상품을 가진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문화가. 그만큼 투자 철학이나 투자 노하우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아마 대기업에게 잡아먹혔거나 문을 닫았을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기업 생태계는 나라 경제 시스템을 왜곡시키고 있지만, 나서서 해결하는 이가 없다.

또한 사업하기 무척 어려운 나라이고, 사업하다 잘못 되면 그냥 집안이 쑥대밭이 된다. 

그런데 나라에선 창업을 권한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을까! 


저 차트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기사 출처: 비즈니스인사이더


뉴스레터를 보다, 이제 스트리밍은 음악 소비의 미래가 아니라 그냥 이제 다 스트리밍으로 소비한다(is the new normal)는 분석 기사를 읽었다. 하긴 나도 유튜브로 스트리밍으로 듣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편하게 느낀다. 하드웨어와 통신 인프라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음악 유통의 모습까지 변화시킨다. 유튜브의 새로운 서비스 '유튜브레드'도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유통/소비 형태의 변화는 본질적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콘텐츠의 질과 성격까지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콘텐츠 창작자들이 주목해야 될 부분은 여기다. 


1.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음악 영상의 유통이 늘어날 것이다. (단순히 음원만 스트리밍하는 것보다) 

2. 기존 오프라인 유통 시장은 계속 줄어들다가 하이엔드 소비자들을 위한 비주류 시장이 될 것이다. 

3. 스트리밍 시장은 계속 늘어날 것이며 다운로드 시장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1번은 어쩌면 뮤지션들에겐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고품질의 라이브 음악 실시간 스트리밍'도 등장하지 않을까. 가령 내가 요즘 빠져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밴드의 실황 음악을 서울에서 듣고 보고 실시간으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1. SONYLOVE 2017.04.06 11:32 신고

    유형의 음악 시장이 사라지는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어떻게라도 살아 남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지하련 2017.04.07 11:24 신고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대신 많이 줄어들고 음반 사는 사람들이 소수가 되겠죠. ~~...



영어공부를 위해 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를 편입했다. 그러나 영어 공부 대신 나는 영미시의 아름다움과 셰익스피어를 알게 되었다. 문학 전공자로서, 시 창작까지 공부했지만, 영미시의 아름다움을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는 건, 내가 다닌 학부 과정이 형편없었거나, 내 지적 역량이 떨어졌던 탓일 게다. 


셰익스피어는 매너리즘 후반과 바로크 전반기에 속한다. 근대에서 속하면서도 근대가 시작되던 시기의 혼란스러움이 셰익스피어 극작품 속에 숨겨져 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극중 인물들의 운명을 가로지르며 절정을 지나 결말에 이르게 한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극작품들과 비교해 그 분량은 짧으며, 극적 완성도나 속도감은 최고다. 하나의 사건은 곧장 다른 사건으로 이어지며 인물들의 감정도 마치 폭풍이 치는 해안가의 파도처럼 격정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것들이 매너리즘적 속성이라 파악하고 이를 매너리즘 양식 속에서 해석하는 것을 방송통신대 영문학과 졸업 논문 주제로 정했다. 아래는 졸업논문계획서다. 바쁜 프로젝트 중에 겨우 시간을 내어 급하게 적어 제출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방송통신대 다니는 것은, 그냥 졸업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칠만한 일임을 휴학을 밥 먹듯 한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작년에 졸업할 수 있었으나, 결국 하지 못하고 올 1학기에 졸업한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하자. 


*     *  

<<맥베스>>의 매너리즘적 성격에 대하여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은 문학과 예술의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시기였다. 중세가 끝났지만, 중세의 여운이 남아 있었으며(<<맥베스>>에서는 세 명의 마녀들로 표현된다), 동시에 운명의 손(또는 기독교의 질서)을 벗어나 개인의 능력, 이성과 과학을 믿는 시대로 나아가려고 몸부림친다. 그래서 한 손에는 종교를, 한 손에서는 이성을 들고 서로 갈등하면서 혼란스러워 하고 그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셰익스피어는 세르반테스와 함께 매너리즘의 가장 위대한 작가들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매너리즘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모호함은, 양식적인 측면에서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분석하고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이에 필자는 1)문학에서의 매너리즘 양식의 특성을 먼저 정의하며, 2)세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의 영국과 유럽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난 다음, 3)세익스피어의 <<맥베스>>가 가지는 매너리즘적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매너리즘은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고전주의와 바로크 사이의 반동적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속하는 이들로는 말년의 미켈란젤로, 세르반테스, 마키아벨리, 엘 그레코 등이 있다. 이들은 다가오는 미래-이성의 시대인 근대-를 예감하면서도 동시에 종교적 질서에 대한 믿음(혹은 의심) 속에서 끊임없이 번민하고 갈등하는 세계를 공유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도덕적 수단까지도 용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하다고 말하면서 노골적인 폭로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즉 잘못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전도된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몽상(꿈)에 빠진 인물을 통해 시대착오적 현실-근대이지만 중세인-을 비아냥거리며 비판하고 절망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도 현실의 세계가 비현실적 요소(꿈, 유령, 마녀 등)로 영향 받고 흔들리며 결말에 이르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극적 현실 속에 숨겨진 인간 군상의 진실을 보며, 그 앞에서 신의 세계에서 벗어난 인간의 개별성에 주목하게 된다. 매너리즘은 신의 세계를 떠나 인간의 세계로 가는 도정 상에 위치하면서 그 길 위에서 흔들리는 시대상을 대변하는 양식인 셈이다. 


필자는 이러한 매너리즘적 세계가 어떻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구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구성이 그 당시 영국과 유럽의 상황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게 될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혼술의 비밀. 그건 와인 잔에 맥주를 담는 허세다. 

혼자 고독한 척 쓸쓸한 척 멋있는 척... 척의 비밀. 

그건 아는 자만 아는 유쾌한 허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니힐리즘과 문화(Nihilism en Culture) 

고드스블룸(Johan Goudsblom) 지음, 천형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49쪽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 죽는다. 자신이 이상주의자인지 현실주의자인지, 고전주의자인지 낭만주의자인지, 플라톤주의자인지, 반-플라톤주의자인지. 심지어 인문학을 전공하는 이들 중에서도 이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동시에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지)를 알지 못한다. 


고드스블룸이 니힐리즘을 문화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분석하고 정리하고자 한 것은 현대에 이르러 니힐리즘이 일종의 문화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 대중화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에서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이 속에서 니힐리즘의 문제를 거론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니체의 니힐리즘에 많은 할애를 하고 있지만(그 정도로 니체와 니힐리즘을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가장 고귀한 가치는 상실되어 버렸다. 그 가치들은 평가절하되었다. 존재의 목적도 상실되어가고 있다. 존재의 목적에 대한 문제도 모두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있다. 이것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니힐리즘이다. '진리의 세계'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에 관한 모든 글이나, 진리로 인정되고 있는 모든 것이 허위임을 그것은 일깨워주고 있다. 니힐리즘은 '무'에 대한 감정, 즉 '허무감 pathos in vain'을 통해 절정에 도달하는 하나의 계시이다. 

- 61쪽 


특히 '진리 추구'라는 관점에서의 니힐리즘에 대한 접근(니체에 기대어)은 이 책의 내용을 진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니힐리즘은 이 시대의 저변 문화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한 때 나는 '니힐리즘'이라는 단어가 더욱 유행할 것이라 여겼다. 동시대의 많은 이론들이 니힐리즘을 부추기며 '무가 바로 진리'라는 걸 대변하는 듯, 기존의 질서, 학설, 태도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렇게 요란하게 발언하는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을 이어갈 때, 허무주의가 우리 시대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종교를 찾을 것이고 새로운 중세가 올 것이라고. 


체홉은 이 사태를 이미 예견한다. (실은 19세기 이후 많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니힐리즘을 노래했다)


모든 감정과 사상은 나와는 상관없이 존재한다. 과학, 연극, 문학, 제자들에 대한 나의 모든 비판 속에서, 그리고 모든 정경 속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분석가조차도 발견할 수 없었던 일반적인 개념이나 살아있는 인간의 신으로 불리는 것까지도 상상으로 그릴 수가 있다. 

그것마저도 없다면, 있는 것은 오직 무 뿐이다. 

이 극빈과 심한 질병과 죽음의 공포가 몰고온 환경이나 인간의 영향이 한때 내가 생활철학으로 받들고, 나의 존재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았던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산산이 파괴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지쳐버렸다. 그렇다면 생각하고, 말하는 것조차도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조용히 앉아서 나에게 닥쳐오는 것을 맞이할 생각이다. 

- 안톤 체홉, <<음울한 이야기>>(272쪽에서 재인용) 


고드스블룸의 입장은 니힐리즘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연구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원하는 뉘앙스를 풍기지만(종종 니힐리즘이 가진 부정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그것에까지 이 책은 이르지 못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자신의 선명한 주제의식을 드러내었다기 보다는 니힐리즘을 둘러싼 니체와 다양한 작가와 학자들의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이지만, 니힐리즘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의외로 책 읽는 속도가 빨랐는데, 저자의 풍부한 인용과 깔끔한 정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새로 생긴 동네 더치 커피 전문점, 스테이지 나인. 

그리고 잠깐 동안의 커피 여행. 

짧고 굵은 목넘김, 낮고 은은한 향기, 

초봄 햇살이 빌딩 사이로 사라지고 그 틈새를 물들이는 어둠.  

출렁이는 어두움이 입술에 닿을 때, 살짝 미소를 짓는다. 

아, 나는 역시 예가체프구나. 

우아하고 깊은 시원함. 시큼함. 쓸쓸함. 허전함. 

지난 청춘 깊이 숨겨져 있던, 늙어가는 피부 아래 잠겨있던, 그 기억이 

무심한 거리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함께 다가오는 공포여. 내 삶, 미래의 두려움이여. 

쫓기듯 뭉게, 뭉게, 뭉게

위로, 위로, 올라가는 내 삶의 진정성이여, 

모든 것을 앗아가는 들뜬 모험이여, 

얼마 남지 않은 내 영혼의 불꽃을 앗아갔던 사랑이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늦은 봄날의 일상

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단테:세속을 노래한 시인, 에리히 아우어바흐
통영 출장, 그리고
통영 출장, 그리고
통영 출장, 그리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