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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모차르트: 차이데; 아리아, Ruhe Sanft - 펠리시티 롯/ 모차르트: 레퀴엠, K626 - 아카데미 합창단/ 라즐로 헬타이 


집에 있는 아마데우스 OST LP를 듣지 않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예전, 2장의 레코드판으로 된 이 앨범을 꺼내 D면 첫 번째로 나오는 이 아리아를 즐겨 들었다. 모차르트는 그냥 천재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르의 질투이 주 테마다. 그 위로 수놓아지는 음악들.


이 영화의 힘은 대단해서, 많은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살리에르가 독살했다거나, 혹은 살리에르의 모차르트에 대한 질투와 증오가 하늘을 찌를듯했다고 믿을 지도 모르겠다. 이 스토리는 애초에 소문으로만 떠돌던(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으나) 독살설을 푸쉬킨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라는 짧은 극시로 시작해 피터 쉐퍼(영화 아마데우스의 원작자)의 희곡으로, 그리고 영화로 확대되었다. 하지만 살리에르는 의외로 괜찮은 작곡가였다. 가난했던 많은 작곡가들을 도와주었으며 베토벤, 체르니, 슈베르트, 리스트의 스승이었고 모차르트의 아들도 살리에르가 가르쳤다.


어쩌면 모차르트의 음악에 비한다면(비교라는 단어가 그렇긴 하지만), 보잘 것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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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절이라도 들으면 바로 빨려들어간다. 직감적으로 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는 걸. 어제 퇴근길 샌디에고 KPBS 클래식음악 라디오를 듣던 중, 이 노래를 들었다. 역시 아르보 페르트. 한동안 잊고 지내던, 내가 사랑하는 이름이다.


아르보 페르트 Arvo Part - Triod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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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rino Respighi 

- The Pines of Rome (Pini di Roma)

- The Birds (Gli uccelli)

- Fountains of Rome (Fontane di Roma) 


London Symphony Orchestra 

Istvan Kertesz 



이스트반 케르테츠 박스 세트에서 시디 한 장을 꺼내 듣는다. 어디선가 들어본 선율이라 여겼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다만 무척 극적(dramatic)이다라는 느낌. 부드러우면서도 굵은 선율의 흐름이 지나가며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아마존의 어떤 이는 그 스스로 레스피기의 팬이라면서, 이 앨범이 최고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하긴 나는 레스피기를 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바로 이 음반에 빠져 며칠 째 이 음악만 듣고 있으니까. 



데카에서 나온 박스세트. 이스트반 케르테츠의 런던 필 시절 주요 음반들을 모아 낸 것이다. 한창 전성기였던 1973년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지휘자라, 아는 이들만 알지만, 20세기 후반 최고의 지휘자들 중의 한 명이었다. 


박스세트 10번째 시디에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http://www.bandinlunis.com/front/product/detailProduct.do?prodId=7474286 



아마존에서는 해당 음반을 구할 수 있다. 

http://www.amazon.com/dp/B000025UK9/ref=cm_sw_su_dp 



아래 유튜브는 본 음반에서 세 번째 연주된 <로마의 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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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며 인간의 이성적인 냉담함을 약화하는 힘으로 간주되어 왔던) 감상벽이 단숨에 가면을 벗고 증오 속에, 복수 속에, 피를 보는 승리의 환희 속에 항상 존재하는 "광포함의 상부구조"로 등장하는 순간이 (한 인간의 삶에서나 한 문명의 삶에서) 올 수 있다. 내게 음악이 감정의 폭음으로 들린 반면, 크세나키스의 곡에서 소음의 세계가 아름다움이 된 것은 바로 그런 때다. 그것은 감정의 더러움이 씻겨나간 아름다움이며 감상적인 야만이 빠진 아름다움이다. 

- 밀란 쿤데라, <<만남>>, 123쪽 









크세나키스Xenakis의 음악을 매일 같이 듣는 건 아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우연히 듣기 시작해 끝까지 듣는다. 솔직히 쉽지 않다. 밀란 쿤데라의 산문 속에서 크세나키스를 읽었고, 오늘 크세나키스 음반을 꺼낸다. 두 장으로 구성된크세나키스의 음반은 Naive의 "La Collection" 시리즈 중의 하나로 출시되었다.  


두 번째 시디의 두 번째 음악은 Tetora를 듣는다.  나에게도 밀란 쿤데라가 이야기하는 '아방가르드의 속물 근성'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본다. 




밀란 쿤데라는 '소음의 세계'라는 표현으로 소음에 가까운 크세나키스의 음악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일상의 소음은 그냥 시끄러울 뿐이지만,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더 시끄러워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마치 쇠사슬같은 소음이랄까. 무직하고 딱딱하며 두툼하게 각이 져서 귀를 무겁게 만든다. 



올리비에 메시앙은 크세나키스의 음악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이전 단계의 음악과 대립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유럽의 음악을, 유럽의 유산 전체를 우회한다. 그의 출발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의 출발점은 인간의 주관성을 표현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유리되었던 음이 내는 인위적인 소리 안이 아니라, 세상의 소리 안, 마음 속에서 분추로디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비가 내리는 소리나 공장의 왁자지껄한 소리 또는 대중의 고함소리처럼 외부로부터 우리를 향해 도달하는 '음(音)의 덩어리' 안에 있다. 

- 밀란 쿤데라, <<만남>>, 125쪽



예전엔 라디오에서 듣거나 누군가에서 빌리지 않는 이상, 듣지 못했던 음악들도 Youtube에서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편리함 속에서 정작 내 주위엔 음악 듣는 이들이 사라졌다. 어쩌면 문화는 심심함 뿐만 아니라 어떤 불편함마저 필요한 것이 아닐지. 크세나키스가 어떤 불편함 속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그래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노력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 속물적 아방가르드가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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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클래식음악을 듣는다는 건 참 드문 일이다. 더구나 클래식 연주회를 가게 되는 건 특별하다고 할까. 


현대자동차의 여러 가지 지원 프로그램엔 나에게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준다. 기업의 사회 환원은 다양한 측면에서 진행될 수 있고, 현대차의 서울 시향 지원도 이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이런 지원은 문화예술 단체에 대한 재정적 기반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일반 대중에게 문화 예술 체험의 기회를 넓힌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있다. 


이브 아벨Yves Abel의 지휘, 서울시향 연주, 니콜라스 안겔리치Nicholas Angelich의 피아노로 어우러진 '이브 아벨의 프렌치 콜렉션'은 나에게 서울 시향의 안정적이고 훌륭한 연주력을 알게 해준, 행복한 경험이었다. 참 오랜만에 방문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클래식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지만, 연주회를 자주 간 것은 아니다. 한 10년 전쯤 갔던 연주회에서 너무 실망해, 연주회를 멀리 하게 되었다.  국내에선 꽤 오래되고 유명한 교향악단의 형편없는 연주실력, 합창단의 한 번도 아닌 수 번의 실수와 엉성한 화음, 성악가들의 불협화음, 그리고 내 경험은 최악이어서 환불해달라고 할 판인데, 관객들은 '앵콜'을 외치고 있었다(으악!) 


이번 '이브 아벨의 프렌치 콜렉션'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건 이브 아벨, 니콜라스 안겔리치 때문이 아니라 해외 유명 교향 악단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서울 시향의 안정적인 연주력 때문이었다. 이미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여러 장의 음반을 내기도 한 서울 시향은 천천히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정명훈이 서울 시향을 맡은 것은 정말 훌륭한 결정이었다.) 여기에 이브 아벨의 지휘는 서울 시향의 선율 위에 프랑스적 감수성을 살짝 칠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니콜라스 안겔리치! 사진과 달리 너무 둔해보인다고요! 아래는 니콜라스 안겔리치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3번이다. 


이 연주 영상을 보고, 아, 그 때 그 피아니스트 맞나? 하고 생각했다. 연주한 곡이 다르긴 하지만, 7월 4일 밤, 안겔리치의 연주는 최고는 아니었다.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었다고 하더라도. 





니콜라스 안겔리치는 브람스 연주에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날 연주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았다.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Gioacchino Rossini, William Tell Overture 


모리스 라벨, 왼손을 위한 협주곡 D장조

Maurice Ravel, Piano Concerto for the Left Hand in D Major 


모리스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Maurice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조르주 비제,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1번

Georgers Bizet, L'Arlesienne Suite No.1


조르주 비제,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2번

Georges Bizet, L'Arlesienne Suite No.2 




Gioacchino Rossini - Guillaume Tell (Overture)

Herbert Von Karajan ( Berlin Philarmonie Conductor)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 D 장조는 약 19분 동안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는, 피아니스트에게는 참 쉽지 않은 곡이다. 1차 대전 중에 전투에서 오른손을 잃게 된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라벨이 작곡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동생이 바로 철학자가 비트겐슈타인이다)


아래는 그 파울 비트겐슈타인이 연주하는 왼손을 위한 협주곡이다. 




Ravel : Piano Concerto for the Left Hand in D major

Paul Wittgenstein (Piano)

Bruno Walter (Conductor)

Amsterdam Concertgebouw Orchestra


(Rec.1937) Public Domain


비트겐슈타인의 연주는 1937년에 녹음된 곡인지라, 듣기 편한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최근 연주를 아래 놓았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레온 플라이셔의 연주다. 세이지 오자와의 지휘와 보스턴 심포니의 연주!! 



Maurice Ravel (1875-1937), France


- Concerto pour piano et orchestre en r? majeur pour la main gauche

- Concerto for Piano and Orchestra in D Major for the Left Hand 


Lento - Andante - Allegro - Tempo 1


LEON FLEISHER, Piano

Boston Symphony Orchestra

Seiji Ozawa



그 다음 약간의 휴식을 하고 난 다음,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 그런데 엘렌 그리모의 연주를 보면, 안겔리치의 연주와 비교하게 된다. 


아래는 미켈란젤리의 연주!! (집에 이 실황 음반이 있는데, 도대체 들을 여유가 없다. ㅜㅜ) 




V.Jurowski

Chamber Orchestra of Europe.






엘렌 그리모의 연주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좋아지고 있다. 초창기 녹음에서는 약간 엉성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지금은 무척 풍부한 연주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피아노를 비행기에 싣고 다닌 미켈란젤리는! 아! 





M. Ravel, Piano Concerto in Sol - 2nd movement (Adagio Assai)


London Symphony Orchestra

Sergiu Celibidache, conductor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piano


Royal Festival Hall, London. 8 April 1982



그리고 마지막은 비제Bizet다! 의외로 자주 듣게 되는 작곡가가 있는데, 비제다. 언제나 들어도 열정적인 감미로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Georges Bizet: L'Arl?sienne Suite No. 1 & Suite No. 2 / Nathalie Stutzmann, conductor · Orquesta Sinfonica Valencia / Recorded at Palau de la Musica, Valencia, 12 December 2012.



클래식 연주회를 가기 전에 한 번씩이라도 연주되는 음악을 듣고 갔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악장 사이에 박수가 나왔다. 헐. 연주되는 곡의 연주 길이만 알아도 박수 칠 일이 없다. 요즘 youtube는 너무 좋다. 특히 클래식 음악의 경우에는 웬만한 것은 다 찾아서 들을 수 있다. 이렇게 한 번 듣고 실제 연주회에 와서 한 번 더 들으면, 한동안 그 음악을 잊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운은 꽤 오래 간다. 


Youtube에서 이렇게 음악 찾아 포스팅을 하려다 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이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바쁜 직장 생활 중에서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들을 기회가 점차 줄어들다 보니.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나오니, 밤 10시가 지나있었다. 그리고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을 다운받아 집에 가는 내내 들었다. 음악은 종종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흥분과 위안을 준다. 많은 이들이 음악과 친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서울 시향 지원도 이 의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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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Haden & Pat Metheny 

Beyond the Missouri Sky 

Verve, 1997 



여러 번 들었던 음반, 그러나 딱히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던 환경이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훨씬 더 좋은 음반들을 들고 있어서 그런 걸까. 


토요일 저녁, 서재에 앉아 찰리 헤이든과 팻 메쓰니의 '미주리 하늘 너머'를 들었다. 악기의 구성이나 흐름은 단조롭지만, 풍성한 서정성은 '역시'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찰리 헤이든은 베이스를, 팻 메쓰니는 어쿠스틱 기타와 다른 악기들을 맡았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이 음반은 그들의 다른 앨범들-정말 뛰어났던-과 비교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쉽게 들을 수 있으면서, 컨템플러리 재즈가 가지는 서정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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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8번 미완성 교향곡의 시작은 우아하면서도 격조있는 애잔함으로 시작한다. 참 오래만에 듣는다. 잊고 있었던 선율을 다시 들었을 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구나. 


바렌보임의 지휘 대신 첼리비다케의 지휘 음향을 공유한다. 바렌보임의 지휘보다 좀 더 긴장감이 더 있다고 할까. 그런데 슈베르트스럽지 못한 느낌이다. 낭만주의적이어야 하는데, 첼리비다케는 각이 잡혀 있는 고전적인 스타일이다. 다행히 바렌보임은 그렇지 않다.  


어느새 책도 예전만큼 읽지 못하고 음악도 예전만큼 듣지 못하는 시절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변화시키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시절이 나에게 닥쳤고 그럴 만한 나이가 되었을 뿐이다. 오늘 오후와 저녁은 슈베르트와 함께 보내야겠다. 



 




찾아보니, 이런 게 있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고 베를린 필이 연주한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 그런데 지금 구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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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를 책상 밑으로 옮겨놓았다. 1년 넘게 창고에 있다가 겨우 밖으로 나온 녀석들이다. 이 사이엔 젊은 아쉬케나지가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Tchaikovsky Piano Concerto No.1)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 차이코프스키는 참 매력적이다.

위 영상은 에밀 길레스(Emil Gilels)의 연주다. 피아노가 부서져라 치는 그의 연주는 에밀 길레스의 상징처럼 굳어졌다고 한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저 연주는!

강철과 같은 타건 때문에 연주회에서 자주 피아노현을 끊었다고 하는 길렐스에게 있어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의 피아니즘을 상징하는 이모티콘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 가운데 프리츠 라이너와의 50년대 스테레오 녹음(RCA)과 1970년 로린 마젤과의 녹음(EMI), 그의 마지막 차이콥스키 협주곡 레코딩으로서 1979년 주빈 메타와의 뉴욕 라이브(SONY)가 가장 눈에 띈다. 세 녹음 모두 길렐스의 불을 뿜는 듯한 맹렬함이 인상적이지만, 시기별로 해석에 있어서의 차이를 보이며 독립적인 개성을 보여준다.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468 글.박제성

LP를 제대로 배열하고 인티 앰프와 턴테이블이 들어오면 다시 사진을 올릴 생각이다. 그와 함께 아쉬케나지의 젊은 시절이 담긴 LP 자켓 사진도 함께~.


(사진으로 찍어놓으니, 더 처량하게 보인다. 하지만 2월 안에 턴테이블을 지르기로 했으니,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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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 Fantasie-Impromptu No.4 in C sharp minor, op.66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의 쇼팽Chopin을 꺼냈다. 폴란드 태생의 작곡가 쇼팽과 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 루빈스타인하면 쇼팽이 떠오르고 쇼팽하면 루빈스타인이 떠오른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와 쌍벽을 이루며, 한 시대의 피아노를 지배했던 그의 음반을 꺼내 듣는다.

상쾌하지만, 금세 쓸쓸한 기분에 잠겨 들고, 어쩔 수 없이 쇼팽인가 하며 중얼거린다. 내가 좋아하는 곡은 쇼팽의 즉흥곡Impromptu. 방 안 가득 피아노 소리가 깔리고 방금 내린 커피로 나는 목을 적신다. 음악은 마치 사랑에 빠진 외로운 마음을 닮아서, 어떤 때는 화가 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다시 사랑하는 연인을 떠올리며 평정을 되찾기를 여러 차례 … 창 밖으로는 거센 폭풍우가 지나지만, 튼튼한 벽돌로 지어진 주택의 거실 창문 안으로는 오직 마음의 아름다운 태풍이 실내의 온기 속에서 조용히 내려앉는 듯한, 그런 음악이다.

웹 검색을 통한 쇼팽의 즉흥곡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하네커가 ‘분방한 감정과 묵상적인 의지로 이루어진 독창적인 네 개의 즉흥곡’이라고 표현한 이 곡은, 쇼팽의 다른 곡과 같이 그의 천재를 나타낸 대표적인 것으로, 약간의 과장된 구상과 표현이 있다 하더라도 끓어오르는 그의 악상이 생생하게 흘러 넘치고 있다.

제1번 A♭장조 작품29번.
네 곡 중에서도 특히 즉흥 기분이 넘치고, 처음부터 끓어오르는 듯하면서도 장난치는 듯한 성질을 지녔으며, 자연 그 자체와 같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맑고 명백하고 진실하게 불려진다. 1837년 출판.

제2번 F#장조 작품36번.
‘과거의 따뜻한 은혜와 사랑을 처량하게 묵상하는 한 개의 발라드이다’라고 하네커가 평했는데, 꿈꾸는 듯한 노래, 환상, 모두가 즉흥의 이상답게 실감대로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1839년 작.

제3번 G♭장조 작품51번.
우수의 쇼팽을 나타낸 듯한 곡인데, 네 개의 즉흥곡 중 가장 어려운 것으로 인정받고 있고, 부드럽고 울적한 시정(詩情)을 띠고 있다. 1842년 작.

제4번 c#단조 작품66번 (「환상 즉흥곡」).
쇼팽의 사후에 발견된 곡으로서, 쇼팽은 ‘내가 죽은 후 파기해 주기 바란다’고 유언했는데, 오늘날에는 오히려 전곡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매혹적이며 안타까운 슬픔과 상냥함이 깃든 곡이다. 1834년 작.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00804



오늘 오후 키신Kissin의 쇼팽과 미켈란젤리Michelangeli의 쇼팽도 들을 생각이다. 19세기 초반 전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낭만적 세계 속에서 쇼팽의 음악은 달콤한 슬픔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듯하다. 그래서 더 슬프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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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과 루빈스타인, 차이코프스키와 에밀 길레스가 언급된 몇 개의 포스팅을 적고 수정했지만, 예약으로 걸어둔다. 오늘 너무 많은 포스팅을 올리게 되기에(이제 나도 그런 걸 신경써야 할 때가 왔다).

어느 새 일요일 오후이고 쓸쓸하다는 기분에 잠긴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연주를 듣는다. 20세기 피아노 연주의 낮을 지배했다는 루빈스타인과 밤을 지배했다는 호로비츠의 연주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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